현상학과 칸트철학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테브나즈가 칸트와 후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한 단락 인용하면 좋을 것 같네요.

"칸트처럼, 후설은 대상이 주체에 준거하는 것이고, 인식의 문제가 본질적으로 구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 하지만 데카르트처럼 후설은 의식 안에서, 단순히 인식의 형식적 요소 및 통일성, 대상의 가능성의 조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주어진 것(경험적인 것이 아닌)에서, 의식(심리적이 아닌)에서 직접적으로 체험된 것을 본다. 또한 대상은 이러한 의식을 통해 구성되지 않으며, 대상은 이 의식의 봄(vision)에 그 자신을 주거나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여기서 우리는 데카르트적인 직관이라는 주제와 칸트적인 구성이라는 주제를 결합하는 이 스스로 줌(Selbstgebung)이라는 개념 덕분에 그 모든 실재론과 관념론(심리학주의적이거나 주관주의적인)을 대담하게 넘어서게 된다. 우리는 모든 초월론(transcendantalisme), 특별히 후설이 함축하는 초월론 때문에 이러한 진전을 이룰 수 있었다. 현상학은 우리를 일종의 초월적 봄 내지는 초월적 체험으로 초대한다."(피에르 테브나즈,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김동규 옮김, 그린비, 2011, 43-44쪽.)

칸트와 후설을 비교할 수 있는 지점들이 여러 가지이다 보니, 학자들마다 비교의 내용은 조금씩 다를 수 있을 거에요. 다만, 테브나즈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리고 TheNewHegel님이 잘 지적해주신 것처럼, "인식의 문제가 본질적으로 구성의 문제"라는 점에 대해서는 두 철학자가 일치합니다. 더 정확히 말해, 이 지점에서는 후설이 칸트의 '초월론적(transcendental)' 철학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즉, 우리 인식의 조건을 통해 세계가 구성된다는 생각은 후설의 현상학이 지닌 칸트적 면모라고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렇지만 테브나즈가 '데카르트'라는 이름을 통해 강조한 것처럼, 그리고 TheNewHegel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후설은 우리 인식을 통해 구성된 대상을 단순한 '현상'이라고 주장하지 않죠. 칸트가 '현상'과 '사물 자체'를 엄격하게 분리해서, 현상은 구성된 것으로, 사물 자체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이분화시킨 것과는 달리, 후설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현상'이야 말로 사물 자체가 "그 자신을 주거나 자기 자신을 드러낸" 모습이라고 지적하는 거죠. 우리에게 주어진 현상이 그 자체로 실재인 것이지, 그 현상 뒤편에 따로 사물 자체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실재'란 우리의 지향적 태도에 따라 매 순간 변화되고, 새롭게 주어지고, 끊임없이 구성되는 '현상'인 것이고, 현상이 단순히 계속 변화한다는 이유만으로 현상을 실재에 미치지 못하는 허구로 취급하려는 전통적 철학의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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