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학을 공부하면 철학텍스트를 분석하는 데 도움되나요?

어빙코피, 피셔, 이병덕, 최원배 등 유명한 교수님들의 논리학 책을 봐두고 있습니다.
제 목적은, 철학 텍스트나 고전 텍스트를 읽고 논증 구조를 명확히 파악하여, 그 지면을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를 하기 위해 논리학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아직 공부하지 않아 모르겠습니다만, 논리학 저서들을 공부하면 (논증, 기호논리, 양화, 연역귀납 등) 확실히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요? 경험담이 궁금합니다. 이에 조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초적인 논리학 지식을 익혀두는 일은 철학 텍스트 독해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책을 읽을 때 요구되는 것은 책에 서술된 내용을 전제와 결론으로, 즉 논증의 형태로 요약하고 평가해보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텍스트의 내용을 논증으로 정리하는 훈련은 논리학 지식을 공부하는 것과는 별개이지만, 정리한 논증을 곱씹어보고 평가하고 비판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논증의 구조, 논증의 종류(연역/귀납), 타당성과 건전성, 기초적인 논리적 연결사들(연언, 선언, 조건문)과 규칙 등 기초적인 논리학 지식과 테크닉을 익히신 후 텍스트를 논증적으로 요약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시면 이해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철학 책 읽는 법에 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매일같이 철학 텍스트를 붙잡고 읽는데도 머릿속이 복잡해지기만 하고 제대로 이해했다는 느낌이 안 들었거든요. 그러다가 철학과에 진학하고 기초논리학 수업을 듣고 여러 강독 수업 등을 통해 글을 논증으로 재구성하고 평가하고 비판하는 훈련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 새에 비로소 독해력에 진전이 생겼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게 되더라고요. 지금도 논리학 교재는 필요할 때마다 곁에 두고 종종 펼쳐봅니다.

2개의 좋아요

저는 논리학 공부가 철학 텍스트 분석에 주는 도움은 굉장히 제한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전무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논리학의 이로움을 과장하고 싶지도 폄하하고 싶지도 않을 뿐입죠. 수학 공부할 때 사칙연산의 법칙을 알아두면 참 좋잖아요? 하지만 그게 수학 실력을 본질적으로 늘려주진 않지요. 논리학도 딱 그런 관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논증을 평가할 때 교양 수준의 논리학적 지식이 편의를 제공한다는 건 확실합니다. 이 논증은 이러이러한 종류의 논증이고 이러이러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간결하게 정리하고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논리적인 분석 능력 자체는 오로지 지속적인 논증적 요약의 연습으로만 달성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논리학 공부보다는 오히려 논증을 갖춘 논리적으로 잘 쓰여진 글을 계속해서 읽으면서 이것을 논증적으로 요약하는 연습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그게 꼭 철학 텍스트일 필요도 없지요. 논증을 가지고 있는 글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철학책을 분석하는 게 목표라면 철학책을 읽어야겠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최선의 방식은 논리학 교과서 하나 정도는 상식으로 삼고 -논리학자가 될 것이 아닌 한- 얼른 논리적 텍스트들을 논증적으로 요약하는 실전형 연습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게 실력을 가장 크고 빠르게 키우는 길이라고 봅니다.

철학 텍스트들을 읽어보면 이들이 특별히 눈에 띄는 오류를 범하지는 않고 다만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걸 알게 되더군요. 결국 철학자들은 서로 변증하고 있는 게지요!

4개의 좋아요

위의 두 분이 좋은 이야기들을 해주셔서 추가적으로 몇 가지만 덧붙이자면,

(1) 저는 논리학 공부가 분명 도움은 되긴 하는데, 지금 가지고 계신 논리학 책들을 굳이 다 보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논리학 공부는, 여러 책을 많이 보는 것보다도, 한 책 안에 있는 연습문제들을 제대로 풀어보는 게 중요해서요.

(2) 논리학도 전공으로 들어가려면 공부해야 할 범위가 한도 끝도 없이 많지만, 사실 철학 텍스트를 논증적으로 읽기 위해 필요한 수준은 그렇게까지 세부적이거나 깊은 내용을 다룰 필요는 없어요. 아주 기본적인 명제논리와 1차 술어논리 사용법만 익히면 되는데, 딱 그 정도 수준의 책들이 코피와 이병덕의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책들은 제가 보지를 못했지만, 아마 국내에 ‘논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는 대부분의 책들이 비슷한 수준일 거에요. (정말 전문적인 논리학 교재들은 거의 출판이 안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권을 보시더라도 대부분 겹치는 내용들일 거라서, 1-2권만 집중적으로 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3) 개인적으로, 저에게는 논리학이 텍스트 독해와 비판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막연하게 ‘이게 맞는 것 같다.’ 혹은 ‘이건 이상하다.’라고만 생각했던 내용들을, 연역규칙에 맞춰서 재구성하고 나면 생각이 명료해져서요. 특히, 저는 대륙철학으로 공부를 처음 시작했고, 지금도 그쪽 텍스트를 많이 보는 편이지만, 얼핏 논리학과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은 대륙철학 텍스트도 논리학을 배우고 난 뒤에는 이전보다 훨씬 깔끔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어요.

7개의 좋아요

윤리학을 공부한다고해서 비윤리적인 사람이 윤리적으로 바뀌지는 않지요? 하지만 윤리적으로 변모할 가능성과 고민거리를 제공하기는 하지요. 이와 똑같이 논리학을 공부한다고해서 비논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논리적으로 변모하진 않습니다. 다만 어느정도의 기회를 제공하기는 합니다.

2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