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현상학 전공자가 아니라 관련 질문에 답해드릴 수는 없지만, YOUN님께서 좋은 말씀 해주셔서 한 마디 덧붙이겠습니다. 무작정 물에 들어간다고 해서 수영을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예 물에 들어가지 않고 땅에서 동작만 익힌다고 수영을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단 한 권의 이차문헌도 참조하지 않고서 일차문헌만 읽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일차문헌은 도외시한 채 방대한 양의 이차문헌 목록을 수집하고 그것들을 읽느라 모든 시간을 쏟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텍스트를 읽기 위한 사전 독해는 짧은 책 한두 권을 정독하는 정도로 하고, 일차문헌과 직접 대면하면서 해설서나 연구서를 참조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텍스트를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거나 철학사적 배경지식이 필요한 부분이 나온다면, 그때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후설은 아니지만 아도르노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아도르노가 배경으로 삼는 철학적 자원은 칸트에서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고전 철학, 후설, 셸러, 하이데거 등의 당대 독일 현상학, 마르크스에서 루카치로 이어지는 사회비판이론, 벤야민과 다른 프랑크푸르트 학파 학자들, 심지어는 베버, 뒤르켐, 모스 등 사회학 및 인류학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데 아도르노 한 사람의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이 모든 철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을 모조리 공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거꾸로, 아도르노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틀을 잡기 위해 한두 권의 입문서를 읽은 뒤, 일차문헌을 직접 천천히 독해하면서 난해하거나 배경지식이 요구되는 부분에 대한 이차문헌들을 그때그때 찾아보면서 공부하면 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게 제일 현실적인 방법이고, 이런 과정으로 공부를 진행하시는 분도 저뿐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기는 합니다. 전문가는 텍스트의 내용을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이해하기 쉬울지 감을 잡고 있고, 논쟁거리가 되거나 오독 가능성이 많은 부분이 어딘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헷갈리는 부분에 대한 신빙성 있는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굉장히 중요한 장점입니다. (강의를 듣더라도 혼자 책을 읽고 공부하는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일단 그게 녹록치 않다면 책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 대한 질문을 여기에 올리셔도 좋은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여기에는 현상학 전공자들도 상주하니까요.
PS. YOUN님이 추천하신 단 자하비 책은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