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성에 관하여"를 세부적으로 설명한 2차저작을 알고 싶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나 그 사람 책에서 들어본 적 있어."

사촌형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저희들은 시간을 때우려 뭐라도 했고, 저는 심심풀이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무엇인지를 즉흥적이고 얉게 설명해줬습니다.
다 들은 사촌형은 말했습니다. 정확히는 뭐라 했는지는 모르겠다만 내용만 알아줬음 합니다.

"이 사람은 모든 문제가 언어라고 생각하고 있네. 언어로 토론으로 얻을 수 있는 것,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게 있어. 신념의 문제지. 사람들은 과학 이론 앞에서도 하나의 신념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법이든 뭐든간에 말싸움이 일어나는 건 다 언어의 싸움이 아냐. 마치 일본 틀딱 애니메이션의 로봇 싸움처럼 그 안에 들어 있는 신념 싸움에 불과해."

저는 "아, 비트겐슈타인이 쓴 책 중에 그 주제를 다룬 확실성에 관하여라는 책이 있어요" 라고 할까 하다, 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제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다는 게 너무 좋아서 따지지 말고 그냥 거기서 그만두었죠.

집에 돌아와서 생각을 해봤는데, 그냥 넘길 말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던 거 같습니다.
정말 신념, 다시 말해 축 명제가 그의 철학에 큰 역할을 하는 거 같습니다.
예전부터 비트겐슈타인은 왜 탐구도 끝내지 않고 확실성에 대한 글에 집중했지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그걸 단번에 풀어버린 것 같고요.

저는 철학이 논리적 분석보다 교화적 대화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로티의 말에 아주 동의합니다.
하지만 로티의 이론은 좀 순박하다고 봅니다. 교화만을 말했을 뿐 교화하는 방법이 얼마나 많고 설득이 얼마나 쉽고 어려울지 울퉁불퉁할지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해줬거든요.
그런 교화에 대해 확실성에 관하여가 좀 더 세련되게 말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생각해보면, 코로나19 이후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두 편이 자기 꺼가 팩트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허무감도 들었는데, 그것도 확실성에 관하여의 주제와 어울리는 거 같아요.

이 주제에 대해 좀 더 깊숙하게 알고 싶습니다.
특히 설득이나 교화, "팩트" 관련해서 말이죠.
영어도 괜찮으니 무슨 논문을 읽는 것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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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확실성에 관하여』와 관련해서 제가 정말 인상 깊게 읽은 논문이 있습니다. 김진희의 「힌지의 동물성과 문법성: 모얄-섀록의 『확실성에 관하여』 해석 비판」 (서강대학교: 석사논문, 2018)이라는 논문인데, 저만 잘 썼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비트겐슈타인 연구자로 유명하신 서강대학교의 김영건 교수님도 인정하신 논문입니다. 아래 링크는 논문에 대한 제 감상평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힌지(hinge)' 개념: 김진희, 「힌지의 동물성과 문법성」

(2) 저 논문에도 잘 나와 있지만, 다니엘레 모얄-섀록 등 최근의 몇몇 연구자들은, 『확실성에 관하여』를 중심 텍스트로 삼아서, 『논리-철학 논고』(1기 비트겐슈타인)나 『철학적 탐구』(2기 비트겐슈타인)로 환원될 수 없는, 소위 '3기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새로운 구분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3)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언어'란 우리의 '삶의 형식(form of life)' 그 자체죠. 그러니까, 신념을 포함하여, 우리가 자연세계에서 반응하는 모든 방식까지 아우르는 게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개념인 것이죠. 사촌형분께서 신념과 언어를 구분한 건, 적어도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비판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4)

글쎄요, 저는 로티야 말로 교화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강조한 철학자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해요. 로티-퍼트남 논쟁이나 로티-하버마스 논쟁을 보면, 퍼트남이나 하버마스가 '이상적 토의 상황'에서 상대방에 대한 합리적 설득이 가능할 수 있다고 순진하게 전제한 반면에, 로티는 그런 순진한 생각이 얼마나 근거가 없는지를 요목조목 지적하거든요. (대표적인 게 과연 퍼트남이나 하버마스가 나치 철학자를 합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방법론 따위를 제시할 수 있겠냐는 비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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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남기창 교수님의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에서의 의미론과 인식론 사이의 관계>(1999) 을 읽고 '확실성에 관하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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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너무 좋아해요! 그냥 알려주고 싶었어요
논문 다 읽어서 만약 물어보고 싶은 거 있음 알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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