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라벤스크로프트, 『심리철학-초보자 안내서』 5장 “제거주의와 허구주의” 문제풀이

(1) 제거주의란 무엇인가?

제거주의는 심적 상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신조이다.

(2) 통속 심리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이론은 과학적 대상을 양화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간과 공간을 양화한다. 이런 맥락에서, 통속적 심리학은 신념, 욕구, 믿음과 같은 정신적 상태들을 양화하는 이론이다.

(3) 처칠랜드는 통속적 심리학이 철저하게 그르다고 생각한다. 일너 생각의 근거를 간략히 서술하시오. 이 근거가 좋은 근거인가?

두 가지 측면에서 처칠랜드는 통속적 심리학을 비판한다. 하나는 통속적 심리학이 중대한 진보를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체된 연구계획을 가진 그릇된 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통속적 심리학이 마음의 병, 창조성, 수면, 기억, 학습 등과 같은 심적 생활의 중요한 요소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과서는 처칠랜드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과학적-통속적 심리학을 제시한다. 심적 상태의 실재성을 인정하는 과학적 이론이 중대한 진보를 이루고, 기존의 통속적 심리학이 해명하지 못한 개념들을 설명해냈다는 점에서 처칠랜드의 비판은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다른 방향으로 처칠랜드를 비판하고 싶다. 처칠랜드는 "심적 상태가 엄밀한 과학적 이론에 의해 양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제 자체를 거부하는 입장도 존재한다. 일례로 데이비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심적 개념 안의 규범적 요소는 어떻게 심적 개념의 물리적 개념으로의 환원을 막는가? 정의적 환원이 논외라는 것은 어쩌면 분명하다. 하지만 각각의 심적 사건 또는 상태를 진보된 물리학의 어휘로 기술되는 사건 또는 엄밀법칙 - 상태와 연결시키는 법칙 - 은 있을 수 없는가? (중략)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법칙에 의해서 연결되는 개념들이 같은 종류의 기준 위에 기초하는 오직 그 경우에만 우리는 엄밀한 연결 법칙을 희망할 수 있으며, 그래서 엄밀한 법칙은 규범적인 개념을 비규범적인 개념과 결합할 수 없다.”(데이비슨, 2001:412)

데이비슨은 심적 개념의 규범성을 강조하며 심적 개념이 물리적 개념으로 환원되거나 엄밀한 법칙의 기준으로 재단돼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처럼 심적 개념의 존재와 인과성을 인정하면서도 심적 개념이 엄밀한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나는 이런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 간략히 말하자면, 심적 개념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타인의 마음에 관한 지식(가령, 동의)에 기반한 의사소통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애초에 객관적 지식을 수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객관적이고 엄밀한 법칙과 지식과 독립적인, 규범적 성격을 지니는 심적 개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4) 다음 논증을 논의하시오. -> 처칠랜드는 신념과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그는 신념과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모순이다. 따라서 제거주의는 그르다.

처칠랜드는 자기가 주장하는 활동이 신념과 같은 심적 상태가 아닌 관찰가능한 명제 내지는 두뇌상태로부터 기인한 행위라고 해석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논증은 처칠랜드에 대한 결정적 비판이라고 보기 어렵다.

(5) 데넷이 말한 세 가지 종류의 자세를 기술하시오.

데넷은 하나의 행위나 사건을 예측하는 세 가지 종류의 자세가 있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는 물리적 자세이다. 가령 체스를 두는 컴퓨터와 인간이 있다면, 이들을 기본 물리입자를 취급하고 이를 물리적 법칙을 통해 예측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설계적 자세이다. 설계적 자세가 어떤 대상이 어떤 일을 수행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관점에 입각해 행위나 사건을 예측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지향적 자세이다. 물리적 자세와 설계적 자세 둘 다 단순한 물리적 대상에는 잘 적용되지만 인간의 활동과 같은 복잡계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우리는 이 복잡계가 이성적이라고 가정하고 이 이성적 대상에 심적 상태를 귀속시켜 인과성을 구성하고 예측을 시도할 수 있다.

(6) 왜 데넷은 체스-두는 컴퓨터가 진정으로 신념이나 욕구를 갖지 않는다고 생각했는가?

데넷은 체스-두는 컴퓨터의 알고리즘은 "퀸을 빨리 죽여야 한다"와 같은 신념을 가진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지만, 실제로 컴퓨터가 신념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저 승리하기 위해 확률이 높은 수를 계산해서 선택할 뿐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심적 상태가 아닌 계산과정이므로 컴퓨터는 신념과 욕구를 가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심적 상태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행위를 예측하기 위해 심적 상태를 상정하고 귀속시켜서 예측하는게 유용하다는 방식으로 심적 상태의 허구주의를 지지한다.

(7) ‘통속 심리학의 예측적 성공이 데넷의 허구주의를 반박하는 좋은 이유를 제공한다.’ 이 주장을 논의하시오.

나는 이런 주장이 데넷의 주장을 반박하는 좋은 근거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데넷은 심적 개념을 활용해 인간의 행위를 예측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데넷은 통속 심리학의 예측 성공이 통속 심리학이 가정하는 심적 개념의 실재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주장을 방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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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심리철학에서 '행동주의’와 '제거주의’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입장인가요, 아니면 강조점이 다를 뿐 상당부분 합치되는 입장인가요? 전에 행동주의와 관련해서 쓰셨던 내용과 제거주의에 대한 설명이 비슷한 것 같아서요.

  • 몇 가지 오타 수정

일너 > 이런
(데이비슨(2001). p.412 > (데이비슨, 2001: 412)

두 입장 모두 심적 상태를 지칭하는 어휘들(신념, 믿음 등)이 적절한 의미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가 다릅니다.

행동주의는 검증주의 의미이론을 받아들이는 입장으로 관찰/감각 가능한 대상만 유의미하다고 주장하는 입장인 반면, 제거주의는 관찰/감각은 되지 않아도 적절한 과학적 이론으로 양화될 수 있다면 그 존재를 인정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저는 제거주의가 행동주의를 포함할 수 있지만 행동주의는 제거주의를 포함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관찰/감각 가능한 대상"은 "과학 이론으로 양화 가능한 대상"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제거주의는 심적 상태를 일련의 행동목록으로 대체해야한다는 아이디어를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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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명쾌한 설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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