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russell93님이 쓰신 것처럼, 『허구세계의 존재론』이라는 책을 어느 정도 참고하실 수 있을 것 같네요. 데이비드 루이스 같은 형이상학자들의 논의를 통해 소설 속 캐릭터나 이야기 등과 관련된 철학적 문제들을 다루는 책이에요. 질문에 정확히 대응하는 내용을 이 책에서 찾으시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허구적 캐릭터들을 철학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논의하는지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2) 철학의 범위를 조금 벗어나서, 사이토 타마키의 『캐릭터의 정신분석』 같은 서브컬쳐 비평 계열의 책들에서도 관련된 내용이 나올 것 같아요. 이 책은 저도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사이토의 『전투미소녀의 정신분석』이라는 책을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은 적이 있거든요. (정신분석가인 저자가, 라캉주의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일본 애니에 '전투미소녀'들이 등장하게 된 사회적-심리적 배경을 설명한 내용이었는데, 다소 자극적인(?) 제목과는 달리 꽤나 진지한 학술적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캐릭터의 정신분석』에도 '캬라의 하나의 신체'라는 제목을 지닌 장이 있는 걸 보면, 어느 정도 비슷한 주제가 나오지 않을까 하네요.
(3) 서브컬쳐 비평과 관련해서 이 분야의 '고전'이라고 불릴 수 있는 책들이 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과 『게임적 리얼리즘』이에요. (농담이 아니라, 두 책은 대학에서 이쪽을 전공하거나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필독서에요.) 두 책은 현대사회를 '데이터베이스 모델'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오늘날의 오타쿠 애니나 게임(주로 '미연시' 게임) 속에서 독자가 겪는 경험이 어떻게 이전의 문학적 경험들과 구분되는지 설명하는 내용이에요. 저는 아즈마 히로키의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상당히 많지만, 그래도 가상 현실에서의 경험에 대해 관심 있으시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4) 정신-신체 관계에 대한 철학의 가장 고전적 연구로는 역시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이 있죠. victorego님은 신체를 마치 정신이 조종한다는 뉘앙스로 글을 쓰셨지만, 메를로퐁티는 이런 '데카르트주의적' 신체관을 날카롭게 비판해요. 우리의 지각 경험이 언젠나 신체성과 긴밀하게 엮여 있기 때문에, 정신이 신체를 마음대로 조종한다는 식의 생각들이 허구적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오히려 신체의 구조와 분리된 '순수한 정신'이나 '순수한 지각' 따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메를로퐁티의 지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