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 W. 아도르노, M. 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서문」

*『계몽의 변증법』은 20세기에 출범한 “프랑크푸르트학파” 내지 "비판 이론"으로 불리는 조류의 발전 과정에서 전후 1세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입장을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책입니다. 그래서 비판 이론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고전이며, 그 밖에 예술 이론, 사회 및 정치철학, 예술철학 등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서적입니다. 그런데 저자들이 택한 비논증적이고 난해한 글쓰기 스타일이, 이 책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을 물리치고 내쫓는 진입장벽의 역할을 본의 아니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면서 책의 요지를 파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소모했던 경험이 있어서, 가급적 명료한 요약 등이 도우미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름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를 해서 올려봤습니다.

  1. 『계몽의 변증법』의 문제의식은 “왜 인류는, 참된 인간적인 상태로 들어서기보다는, 새로운 종류의 야만에 빠져드는가”이다.

  2. 통용되는 학문과 그 개념들이 이미 현 시대 상황(“계몽의 자기파괴”)에 의해 전유되고 있기 때문에, 1에 답하려는 과제는 그에 대해 종래의 용법들을 따르기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3. 제도권 학문에 대한 비판적인 사유 노선 또한 생산관계에 의한 사회지배에 붙잡혀 변질되어 있다.
    3.1. 사유가 비판적이기를 그만두고 기존 질서의 지배 수단으로 전락하면, 사유는 자신이 산출했던 긍정적인 요소를 부정적으로 변모시킨다.
    3.1.1. 가령 비판적이었던 백과전서학파의 뒤에 등장한 실증주의는 이론을 공허하게 만들어버린다.

  4. 현 시대는 자신에 부합하는 개념 용법을 전유할 뿐만 아니라, 그에 반하는 사용 방식들을 제재하고 검열한다.

  5. 계몽은 개념적으로 그 자신 안에 자기파괴적 요소를 함유한다. 이것이 『계몽의 변증법』의 첫 번째 과제이다.
    5.1. 그러나 여전히 자유는 계몽으로부터 찾아지지 않으면 안 되며, 이와 관련하여 계몽의 자기파괴적 특성을 자각하는 일이 중요하다.

  6. 5를 통찰하는 일은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6.1. 계몽과 진리는 사유의 층위에 머무를 뿐만이 아니라 그 현실적 체현이기도 하다.
    6.2. 현대 문명은 명백성을 빌미로 하여 자신의 방식에 반하는 사유들을 애매모호하다거나 비사실적이라고 매도하지만, 그것은 이미 그 자체 애매모호한 범주들을 배후에 전제하고 있다.

  7. 인간의 본성적 퇴락(Naturverfallenheit)은 사회경제적 진보와 불가분하다.
    7.1. 인간은 기술적 진보를 운용하는 집단에 의해, 물질적으로 잘 보살펴짐과 동시에 정신적으로 무력하게, 체제 순응적으로 되도록 관리된다.

  8. 이 책의 관심사는 계몽의 자기자각이지, “가치로서의 문화”를 긍정하는 일이 아니다.
    8.1. 중요한 것은 과거를 긍정하는 일이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희망을 되찾는 일일뿐더러, 과거는 이미 훼손되고 있다.

  9. 재화 역시 현재의 사회적 관계 아래에서는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산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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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기로 유명한 텍스트도 이렇게 분석이 될 수 있다는게 놀랍네요.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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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감사합니다. 책 읽을 때마다 서문 안 읽는 몹쓸 버릇이 있어서 계몽의 변증법도 서문도 안 읽고 읽다가 던져버린 기억이 있는데… 덕분에 한번 더 펼쳐볼 수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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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 학부생들 앞에서 아도르노 강의할 일이 있어서 참고하려고 켰는데 정말 잘 요약하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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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예전에 『계몽의 변증법』 읽을 적에 머릿속이 복잡해서 '일단 최대한 단순하게 요약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요약했던 건데, 강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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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verfallenheit'는 '본성적 퇴락'보다는 '자연에 예속된 상태가 됨'이나 그런 의미를 갖는 더 간결한 표현으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아도르노의 사상 전체는 '자연과의 화해 추구'로 요약될 수 있고 그 추구는 '인간의 자연지배가 변증법적으로 자연의 인간지배로 전화되었다'는 판단에 입각해 있습니다. 관련하여 서문 뒷 부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제2 보론은 계몽의 무자비한 완성자인 칸트, 사드, 니체를 다룬다. 그것은 모든 자연적인 것을 자기 지배적 주체 아래 굴복시키는 것이 어떻게 결국 맹목적인 객체적인 것, 자연적인 것에 의한 지배에서 정점에 이르는지 보여 준다." 아마 아도르노의 어느 글에서도 'Nature'를 '본성'으로 옮겨야 하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아도르노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아무런 중요한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도르노는 인간의 본성을 '내적 자연'이라고 부르고 '외적 자연'의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내적 자연'이 지배되어야 했다고 봅니다. 따라서 아도르노에게서 자연과의 화해는 인간이 자신이 얼마나 자연적이기도 한 존재인지를 상기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명시적으로 그 상기를 촉구하거나 결국 그 상기의 촉구인 구절들이 <계몽의 변증법>에서 <미학이론>에 이르기까기 곳곳에 등장합니다. 아도르노는 요약을 싫어하지만 아도르노의 사상도 요약될 수, 그것도 엄청나게 간결하게 요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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