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귀납의 문제 2. 재구성 섹션 번역

과학철학 공부하다가 공부하기 싫을 때마다 번역했는데, 공유하는 게 다른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게시합니다.

2. 재구성

흄의 논증은 많은 다양한 버전으로 제시되고 정식화되었다. 논증을 통해 흄 자신이 의도한 바에 대한 역사적 해석에도 활발한 논쟁이 진행중이다. 그러므로 흄의 논증의 확실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재구성을 제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서에서 논의될 흄의 문제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을 정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음의 재구성이 유용한 시작점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흄의 논증은 다음과 같은 특정한 귀납 추론에 관련한다:

A의 모든 관찰된 사례들은 B였다.
A의 다음 사례는 B일 것이다.

이를 “추론 I”이라고 부르자. 오늘날 이러한 유형의 도식에 속하는 추론은 종종 “단순 열거적 귀납”의 경우라고 표현된다.

흄 자신의 사례는 이러했다:

(특정한 외형을 가진) 빵의 모든 관찰된 사례들은 영양분을 제공했다.
(그러한 외형을 가진) 빵의 다음 사례는 영양분을 제공할 것이다.

흄의 논증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전제는 P로, 보조결론과 결론은 C로 이름한다):

P1. 입증적인demonstrative 것과 그럼직한probable 것 오직 두 종류의 논증만이 존재한다 (흄의 포크).
P2. 추론 I는 균일성 원리(UP)를 선제한다.

첫번째 갈래:

P3. 입증적인 논증이 확립하는 결론은 그의 부정이 모순이다.
P4. UP의 부정은 모순이 아니다.
C1. UP를 옹호하는 입증적인 논증은 존재하지 않는다 (P3와 P4에 의함).

두번째 갈래:

P5. UP를 옹호하는 어떠한 그럼직한 논증도 UP를 선제한다.
P6. 한 원리를 옹호하는 논증은 그 원리를 선제하지 않아야 한다 (비순환성).
C2. UP를 옹호하는 그럼직한 논증은 존재하지 않는다 (P5와 P6에 의함).

귀결:

C3. UP를 옹호하는 어떤 논증도 존재하지 않는다 (P1, C1, C2에 의함).
P7. 만약 UP를 옹호하는 어떤 논증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UP를 선제하는 어떠한 추론도 그의 전제로부터 결론으로 이어지는 추리의 연쇄가 존재하지 않는다.
C4. 추론 I의 전제로부터 결론으로 이어지는 추리의 연쇄가 존재하지 않는다 (P2, C3, P7에 의함).
P8. 만약 추론 I의 전제로부터 결론으로 이어지는 추리의 연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추론 I는 정당화되지 않는다.
C5. 추론 I는 정당화되지 않는다 (C4와 P8에 의함).

흄이 “입증적인” 논증과 “그럼직한” 논증으로 무엇을 의미한 것인지 다양한 해석이 있다. “입증적인”이 “연역적인”과, “그럼직한”이 “귀납적인”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예: Salmon 1966). 그렇다면 흄의 딜레마의 첫번째 갈래는 연역 논증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이겠고, 두번째 갈래는 귀납 논증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이겠다. 하지만 이 해석에 따르면 전제 P3이 유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연역 논증의 결론이 비필연적 명제인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제 P3을 수정하여, 입증적인 (연역적인) 논증이 확립하는 결론은 전제가 참이라면 거짓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된다면 미래가 과거와 유사하다는 가정이 필연적 명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떤 전제(선험적 전제는 아닐지라도)를 갖는 연역 논증에 의하여 확립될 수 있게 된다 (결론 C1과 모순을 이룸).

또다른 흔한 독해법은 “입증적인”을 “선험적 전제로부터 연역적으로 타당한”과, “그럼직한”을 “경험적 전제를 갖는”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예: Okasha 2001). 흄이 그런 것 같듯이, 선험적인 것으로 알려진 전제는 거짓일 수 없고 따라서 필연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해석이 그가 의도한 바에 더 가까울 것이다. 만약 추론이 연역적으로 타당하다면, 선험적 전제에서 출발한 추론의 결론 또한 필연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딜레마의 첫번째 갈래가 배제하는 것은 선험적 전제를 갖는 연역적으로 타당한 논증의 가능성이고, 두번째 갈래는 경험적 전제에 의존하는 어떠한 논증도 (논증이 연역적이든 비연역적이든) 배제한다.

하지만, 최근 주석가들은 흄이 처해 있던 역사적 맥락에서 그가 입증적인 논증과 그럼직한 논증 사이에 그은 구분이 그 논증이 연역적 형식을 갖는지 혹은 갖지 않는지와 거의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Owen 1999; Garrett 2002). 게다가, 결론의 부정이 모순인 추론의 종류에는 선험적 전제로부터 출발하는 연역적으로 타당한 추론뿐만 아니라 선험적 추리(전제로부터 결론으로의 이행이 관찰로부터 학습된 것에 호소하지 않는 추리)를 사용하여 얻어질 수 있는 모든 추론도 포함된다. 흄이 자연의 변화는 “어떠한 입증적인 논증 혹은 추상적인 선험적 추리로도” (E. 5.2.18) 배제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흄은 첫번째 갈래의 논증이 모든 선험적 추리를 배제하도록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해에 기반하면, 선험적 논증이 흄이 제기한 딜레마의 첫번째 갈래에 의하여 배제될 것이고, 경험적 논증은 두번째 갈래에 의하여 배제될 것이다. 이 문서에서 나는 이러한 해석을 채택하겠다.

흄의 논증에서 UP는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4.2절에서 보겠지만, 다양한 저자들이 이 원리에 의심을 품어왔다. 흄의 논증의 많은 버전들은 UP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정식화되기도 했다. UP에 호소하기 보다는 구체적인 귀납 추론 I에서 전제로부터 결론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지지하기 위해 어떤 논증이 주어질 수 있는지를 직접 다루려 했다. 어떤 논증이 우리를, 예컨대 빵이 영양분을 제공하는 것을 지금까지 관측한 것으로부터 다음 빵 조각이 영양분을 제공하리라고 추론하도록 이끄는 것인가? 첫번째 갈래의 경우 흄의 논증은 직접적으로 적용이 된다. 입증적인 논증이 확립하는 결론은 그의 부정이 모순이다. 귀납 추론의 결론은 그의 부정이 모순이 아니다. 다음 빵 조각이 영양분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그러므로 귀납 추론의 결과를 옹호할 어떤 입증적인 논증도 존재하지 않는다. 논증의 두번째 갈래에서 흄이 제기하는 문제는 순환성이다. 모든 귀납 추론이 UP에 의존한다는 흄의 주장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순환성의 문제가 존재한다. 그러나 4.1절에서 보겠지만, 순환의 정확한 본성은 세심하게 고려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요점은 흄적 논증이 UP를 끌어내지 않으면서 정식화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흄의 논증은 딜레마(Dilemma)이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첫번째 갈래에 딴지를 걸고 사실 귀납 추론을 정당화할 수 있는 입증적인 논증(여기선 선험적 추리에 기반한 논증을 의미하도록 쓰임)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두번째 갈래에 딴지를 걸고 사실 귀납 추론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그럼직한 (혹은 경험적인) 논증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두 접근법의 다양한 변이들을 3절과 4절에서 논의하겠다.

딜레마의 귀결에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자들은 흄이 전제 P8과 같은 전제를 조금이라도 이끌어내었다고 읽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제시한 이유는 흄이 C5와 같이 정당화에 대한 명시적으로 규범적인 결론을 겨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흄은 분명 귀납 추론에서 전제로부터 결론으로 이어지는 “추리의 연쇄”를 찾으려 했고, 그 연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UP를 옹호하는 논증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 정당화에 관련한 전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의 논증의 결론은 단순히 C4, 즉 추론 I의 전제로부터 결론으로 이어지는 추리의 연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흄은, 돈 가렛과 데이비드 오웬이 주장했듯, 정당화에 대한 규범적인 주장을 제기한 것이라기보단 “인지심리학의 논제”를 진전시킨 것이다 (Owen 1999; Garrett 2002). 추론의 기저에 놓인 인지 과정의 본성에 관한 논제 말이다. 가렛에 의하면, 흄의 논증의 주요 논점은 UP를 확립하는 추리 과정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웬에게는, 추론이 매개고리에 의해 연결된 관념의 연쇄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마치 이성 능력(faculty of reason)의 특징과 같다는 것이다.

흄은 단지 귀납의 정당화의 특정 부류를 배제하려던 것이라고 주장한 해석가들도 있다. 이는 정당화 일반이 아니라 그 시대의 합리론에 만연하던 이성 개념에 기반한 것이다 (Beauchamp & Rosenberg 1981; Baier 2009). 특히, “적어도 어떤 귀납 논증은 입증적이라는 합리론적 믿음을 반박하려는 시도”(Beauchamp & Rosenberg 1981: xviii)라고 주장되었다. 이러한 해석 하에 전제 P8은 다음처럼 수정되어야 한다:

만약 추론 I의 전제로부터 결론으로 이어지는 입증적인 논증에 기반한 추리의 연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추론 I는 정당화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흄의 논증이 명백히 두 갈래로 된 비판이라는 사실에 고전한다. 흄은 입증적인 논증뿐만 아니라 그럼직한 논증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확장적인 규범적 결론을 흄에게 돌릴 수 있는지는 복잡한 질문이다. 부분적으론, 문제에 대해 흄 자신이 제시한 해답의 해석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1절에서 봤듯이, 흄은 귀납 추론의 근거를 『논고』에선 상상력의 원리에 돌리고 있고, 『탐구』에선 “관습”, “습관”에 돌려서 이를 자연스러운 본능과 같은 것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문제는, 비록 이성에 기반한 것이 아닐지라도, 이러한 대안이 귀납 추론에 대한 일종의 정당화를 제공하는가이다. 표면적으로는, 귀납 추론은 완전히 비합리적인 근거에 기반하여 진행된다고 제안하는 듯하다. 그는 분명히 합리론자들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흄은 마음의 이러한 작용이 “느리게 작동하는 우리 이성의 오류투성이 연역”에 맡겨졌다고 가정할 때보다도 덜 “오류와 실수를 범할 법하다”고까지 제안한다 (E. 5.2.22). 그가 상상력의 작동을 합리성을 완전히 결여한 것으로 보았는지도 분명치 않다. 첫째로, 흄은 원리에 의해 지배되는 상상력에 대해 말한다. 『논고』의 뒷부분에서, 그는 좋은 인과 추론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것을 특징짓는 과정에서 “규칙”과 “논리”를 제시하기까지 한다 (T. 1.3.15). 또한 그러한 (그가 계속해서 부른 대로) “추론”의 더 나은 형식을 구별하는 것도 그는 분명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주장에는 근거가 있을지도 모른다: 흄은 귀납 추론이 합리적 토대를 전혀 갖지 않는다고 주장하려 한 게 아니고, 단지 이성 능력에 기원한 특수한 유형의 합리적 토대를 갖지 않는다고 하려던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흄 자신이 의도한 결론의 범위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있음을 가리킨다. 나아가 그의 논증 나머지와 규범적 결론을 연결하는 (전제 P8와 같은) 전제가 정확히 어떤 형식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어떤 견해가 옳든 간에, 역사를 통틀어 흄은 대부분의 경우 귀납적 회의주의를 옹호하는 논증을 제시했다고 읽힌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전제 P8과 관련하여 전제로부터 결론으로 이르는 추리의 연쇄를 제공하는 것이 귀납 추론의 정당화에 대한 필요조건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접근들도 상당히 많다. 이러한 접근에 의하면, 흄은 귀납 추론이 그의 결론이 참이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를 갖느냐의 의미에서는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였음을 인정하되, 더 약한 종류의 귀납의 정당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5절). 마지막으로, 회의주의적 결론 C5을 받아들이고 그에 순응하려 하는 철학자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귀납 추론은 보통 생각되는 것만큼 과학적 탐구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시도들이 있어왔다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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