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지적과 질문 감사합니다. YOUN님께서 제기하신 '유사 물리학적' 작업에 대한 회의감과 논리실증주의와의 비교는 저도 깊이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사이더와 같은 형이상학자의 작업이 과연 철학의 고유한 영역인지, 아니면 과학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이 문제를 약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싶습니다.
1.
말씀하신 대로 사이더의 '원자'를 물리학의 기본 입자와 동일시하면, 그의 작업은 '어설픈 물리학 흉내 내기'처럼 보일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이더의 '원자'를 고대 원자론부터 이어져 온 형이상학적 혹은 논리적 개념물들에 대한 탐구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데모크리토스의 원자,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처럼, 더 이상 분석되지 않는 세계의 근본 구성 요소를 찾으려는 철학적 전통 속에서 그의 논의를 위치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논문에서 특히 흥미롭게 본 지점은, 사이더가 왜 자신의 철학적 기반이었던 부분-전체 관계 중심의 설명을 '구성(constitution)' 개념으로 대체 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상징과도 같았던 4차원주의나 무제한적 합성 원리마저도 '비근본적'이고 '파생적'인 지위로 격하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논의를 근본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대담한 전환의 동기가, 그가 '필연성(Necessity)'이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탐구하고 싶어 하기 때문 이라고 추정합니다. 왜냐하면 부분-전체 관계적 설명은 논리적 순환문제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2.
저는 철학적 합리성의 오랜 프로그램을 필연적이고, 변하지 않으며, 보편적인 진리(나아가 이론)를 찾는 과정으로 이해하며, 이 프로그램이 현대 분석 형이상학에도 여전히 어느정도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YOUN님께서 제기하신 "왜 철학이 과학의 영역을 다루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이더와 같은 합리적 형이상학자들은 이렇게 답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이론(예: 원자론)이 경험적 대상들로부터 인식적으로는 유추될지라도, 그것은 세상의 근본 구조를 기술하기에 논리적으로는 우선한다"고요.
그리고 저는 이 논리를 한 단계 더 밀어붙여, 저희가 지금 나누고 있는 대화의 핵심에 적용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끝까지 방어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필연성'이라는 개념을 처음 발견하는 경로는 논리적 분석일 수 있다. 하지만 필연성 자체는, 논리적 분석을 통해 인식적으로 발견되더라도, 모든 논리학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로서 형이상학적으로 우선한다."
결국, 사이더의 이 논문은 단순한 존재론 논쟁을 넘어, 필연성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길들여서 합리주의 혹은 형이상학적 철학의 오랜 꿈, 즉 '세계에 대한 완전하고 필연적인 이론'을 구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장대한 시도의 일환으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의 시선에서 보면 비상식적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저는 이게 기존 철학 프로그램에 대한 근본적 비평 방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 혹은 그 과정에서 다른 문제에 빠지게 될지는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한 문제겠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예전 논의들을 사이더가 차근차근 하나씩 정리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를 명료하게 보려면 꼭 필요한 일로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