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텍스트 연구 방식에 관한 물음]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의 '분리가능한'(χωριστός)의 의미를 묻다가 '존재론적 의존'(ontological dependence) 개념을 접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실체론에서 실체의 분리가능성 문제에 중점을 두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당 주제를 다룬 이차 문헌을 살펴보는데 유독 20세기 후반에 나온 영어권 논문들에서 'independent existence'나 'ontological separation'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더라고요. [e.g. Gail Fine, 1984] 사실 저에게는 생경한 용어들인지라... 뭐지 싶었습니다. 1831년 임마누엘 벡커(Immanuel Bekker)가 편집한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이 출간된 이래 수많은 판본과 주석서들이 나왔는데, 적어도 제가 본 어떤 편집자나 주석가도 그렇게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관련한 논의가 따로 축적되어 오지 않았을까 싶어서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SEP)를 뒤져보았고 'Ontological Dependence' 항목을 발견했습니다.

  1. 이런 배경에서 두 가지 물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는 번역 문제입니다. 제가 이 분야의 기본 개념에 대한 이해조차 없어서 영어 원문을 어떻게 한국어로 옮겨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는 SEP에서 Tuomas E. Takho & E. Jonathan Lowe 두 선생님이 '존재론적 의존'(ontological dependence)을 설명하기 위해 쓰신 글의 도입부입니다.

"Ontological dependence is a relation—or, more accurately, a family of relations—between entities or beings (onta in Greek, whence ontological ). For there are various ways in which one being may be said to depend upon one or more other beings, in a sense of “depend” that is distinctly metaphysical in character and that may be contrasted, thus, with various causal senses of this word. More specifically, a being may be said to depend, in such a sense, upon one or more other beings for its existence or for its identity . A traditional approach was to analyze all forms of ontological dependence in modal terms, that is, in terms of distinctly metaphysical notions of possibility and necessity , but more recently an analysis in terms of the notion of essence has become popular. A third option is to treat the notion of ontological dependence as a metaphysical primitive , in which case it is not possible to give a further definition of it. This entry will remain neutral about the ultimate basis of ontological dependence. At least in some cases, it is possible to use ontological dependence as a tool to describe the relationship between entities without taking a stand about its basis, but in other cases this may not be possible. Notions of ontological dependence are frequently called upon by metaphysicians in their proposed analyses of other metaphysically important notions, such as the notion of substance or the thought that tropes depend for their existence on a substance." 출처: Ontological Dependenc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굵은 글씨는 인용자 강조

  • a family of relations: 관계들의 family가 무엇일까요?
  • causal, modal: 각각 '인과적', '양상적'으로 옮기는 게 일반적인가요?
  • primitive: 전문용어 같습니다. 통상 '원초'(原初)로 번역되나요?
  • tropes: 검색해보니 'trope'의 복수형인 것 같습니다. 역시 전문용어 같고요. 특별히 정착된 번역어는 없고 '트롭'이라고 음역하나요?
  1. 다른 하나는 텍스트 연구 방식의 차이에 관한 문제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의 실체의 분리가능성 문제를 조금이라도 언급한 연구 문헌을 모조리 읽지는 않았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살펴본 바로는 이 하나의 낱말만을 놓고서도 연구자들의 접근법이 두 가지로 갈린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편에는 벡커의 아리스토텔레스 비판본 전집 출간부터 20세기 중엽 사이에 활동한 학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실체의 분리가능성이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개별자로서의 실체가 자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분리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질료 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분리가능성이라고요. 다른 한편에는 서두에서 언급한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영어권 학자들이 있는 듯합니다. 그들은 '분리가능한'(χωριστός)의 의미를 선배들처럼 파악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χωριστός를 비롯해 동일한 어원에서 파생한 단어들이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그 용례들을 집요하게 분석함으로써 '장소적 분리', '개념적 분리', '존재론적 분리', '분류학적 분리'로 세분화 하더라고요. 이런 차이가 소위 대륙철학과 분석철학이라는 서로 다른 전통에 기인하고 있는 걸까? 하는 물음이 들었습니다.

※ 상세한 전거를 달아야 하는데, 메모를 제때 안 해놔서 일단 기억에 의존해 남겨봅니다 ㅠㅠ

(1)

(i) family는 말 그대로, 다양한 "관계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보입니다. 즉 존재론적 의존이라는 관계의 형태가 여러 가지이며, (존재론적 의존이라는 것으로 묶이긴 하지만) 꽤 상이한 것들이 이 안에 속해있다고 생각해봄 직 합니다.

(ii) 제가 알기로는 인과적/양상적으로 번역되는 것이 맞습니다.

(iii) 한국어 번역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네요. 다만 '원초적', '기본적' 등등, 더 이상 분석 불가능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심급이라는 뜻으로 종종 사용됩니다.

(iv) 트롭이라고 음차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국역어가 하나 쯤 있을 수는 있는데, 뭘 본 적은 없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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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Mandala 님이 잘 달아주셔서…
primitive: ‘원초’를 통해 염두에 두신 것처럼 여기에서는 명사적 사용을 갖고 있습니다. ‘원초자’ 내지 ‘형이상학적으로 원초적인 것’ 정도로 옮기시면 됩니다. 전문용어까지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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