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an David, “The Correspondence Theory of Truth” (2018) 요약

Marian David, “The Correspondence Theory of Truth”, The Oxford Handbook of Truth (2018), Michael Glanzberg (ed.) p.238-258

진리 대응론

  1. 사실기반이론과 대상기반이론

진리 대응론(The correspondence theory of truth)은 크게 두 가지 갈래가 있다. 하나는 사실기반이론(fact-based theory)이고, 다른 하나는 대상기반이론(object-based theory)이다. 각각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A] belief is true when there is a corresponding fact, and is false when there is no corresponding fact.
(Russell 1971 [1912]: 129)
(2) A judgment is true if and only if it/its predicate corresponds with its object, i.e. with the object signified by the subject-term of the judgment.

대상기반이론은 두 개의 관계를 동반한다. (i) 판단의 주어와 판단이 관련하는 대상 사이의 관계. (ii) 그 대상과 판단의 술어 사이의 관계. 후자의 관계는 판단의 술어가 속성을 signify하고, 다시금 그 속성이 대상에 의해 예화되는 이중의 관계로 이해될 수 있겠다.

대상기반이론은 진리담지자의 주술 구조를 선제한다. 그러나 주술 구조는 충분히 일반적이지 않다. 따라서 주술 구조를 갖지 않는 진리담지자에는 대상기반이론을 적용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사실기반이론이 대상기반이론에 비해 우위를 점하는 것 같다.

  1. 진리담지자

진리담지자(Truth-bearer)란 용어는 참이나 거짓의 담지자를 말한다. 진리담지자의 후보로는 믿음, 생각, 관념, 판단, 진술, 주장, 발화, 문장, 명제 등이 있어왔다.

현대에는 진리담지자로 문장이나 명제가 주요 후보로 지목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i) 논리적으로 복합적인 담지자의 진릿값은 그의 구성요소의 진릿값에 의존한다. 그런데 담지자를 믿음이나 판단 등으로 상정한다면, 복합적인 믿음의 구성요소를 이루는 믿음이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복합적인 믿음의 진릿값이 결정될 수 있다. ‘assertoric’한 담지자는 모두 이와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ii) ‘믿음’이라는 단어는 믿는다는 상태로도, 믿어지는 것으로도 이해된다. 그런데 전자의 의미로서의 믿음이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는 것은 후자로서의 믿음이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는 한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보통 후자로서의 믿음은 명제나 문장과 같다. 행위/대상 이중의 의미를 갖는 용어는 모두 이와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일차(기본) 진리담지자, 이차 진리담지자를 구분하기도 한다. 이차 진리담지자는 그의 진릿값이 일차 진리담지자로부터 파생되는 것이다.

  1. 사실기반이론의 네 가지 형식

사실기반이론의 중심 원리는 보통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형식으로 표현된다. 이들은 보통 참이라는 속성이 보다 일반적인 관계적 속성과 동일하다는 속성 동일성 주장을 내포한다.

CF: If x is a ϕ, then
x is true iff x corresponds with some fact;
x is false iff x does not correspond with any fact.

CS: If x is a ϕ, then
x is true iff x corresponds with some state of affairs that obtains;
x is false iff x corresponds with some state of affairs that does not obtain.

C†: If x is a ϕ, then
x is true iff x corresponds with some fact that exists;
x is false iff x corresponds with some fact that does not exist.

C⇆ If x is a ϕ, then
x is true iff x agrees with some fact;
x is false iff x disagrees with some fact.

단, ϕ는 진리담지자의 범주를 나타내는 명사임.

CF와 CS를 주목하자. 둘의 존재론적 커미트먼트가 다른데, CS는 성립하지 않는 사태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반면, CF는 성립하지 않는 사실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C†는 마이농주의적 존재론을 받아들인다. C⇆는 CS나 C†의 커미트먼트를 피해간다.

CS의 옹호자는 CF가 CS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사실은 그저 성립하는 사태일 뿐이고, 어떤 사실과도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저 성립하지 않는 사태와 대응한다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CF의 옹호자는 성립하지 않는 사태라는 것에 committed하지 않는다. 그것은 진리를 설명하는 데 필요하지도 않을 뿐더러, 너무 추상적이어서 진리가 실재와의 대응이라는 직관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앞의 세 형식과 달리, C⇆는 명제와 사실 간의 관계를 일치와 불일치라는 두 종류의 관계로 상정한다. 필요하지도 않은 불일치라는 관계를 상정한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이후의 논의에서는 CS와 CF만을 다룰 것이며, 이 둘을 묶어서 “진리는 사실과의 대응이다”라고 압축하기도 할 것이다. CS는 사실을 성립하는 사태로 이해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은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1. 비동일성, 상관관계, 구조

대응이론가들은 보통 다음 원칙들을 받아들인다. Correlation은 (a)만 받아들이거나, (a)와 (b) 모두 받아들이기도 한다.

Non-Identity:
No truth is identical with a fact correspondence with which is sufficient for its being a truth.

Correlation:
(a) Every truth corresponds with exactly one fact.
(b) Different truths correspond with different facts.

Structure:
If a ϕ (a truth-bearer) corresponds with a certain fact, then they have the same or sufficiently similar structure: the overall correspondence between a true ϕ and a fact is a matter of part-wise correspondences, of their having corresponding constituents in corresponding places in the same structure, or in sufficiently similar structures.

진리대응론에는 대응 관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이 있는데, 구조 원리를 통해 대응 관계를 해명할 수 있다. (i) 진리담지자가 문장일 경우, 문장과 사실 간의 대응 관계는 단어와 대상 사이의 의미론적 관계로 환원된다. 따라서 대응 관계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거부하는 것은 의미론적 관계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이는 단어가 사물에 관한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무시하는 것이다. (ii) 진리담지자가 명제일 경우, 명제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ii-1) 프레게적 명제는 개념들로 구성된다. 따라서 명제와 사실 간의 대응 관계는 명제를 구성하는 개념들과 개념들이 제시하는 것들 사이의 관계로 환원되고, 이는 위와 마찬가지로 의미론적 관계이다. (ii-2) 러셀적 명제는 대상과 속성 그 자체들로 구성된다.[1] 그런데 러셀적 명제를 받아들일 경우, 애초에 진리담지자를 명제로 삼는 진리 대응론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최초의 비판은 소용없게 된다.

구조 원리를 비판하는 입장이 있다. 이들은 우리의 언어가 들쑥날쑥하기(vagaries) 때문에 참인 진리담지자와 사실 간의 완벽한 동형성이 성립한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 원리의 지지자들은 그 원리가 일상 언어가 아니라, 일상 언어의 주요 구조를 추출해낸 이상 언어에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이상 언어의 formula가 진리담지자의 내부 구조를 잘 드러내어 그를 표상(represent)하고, 그로써 실재를 간접적으로 표상한다는 것이다. 혹은 진리담지자의 매개 없이 이상 언어의 (참된) formula가 사실의 존재론적 구조를 반영하여, 실재를 직접적으로 표상한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상 언어를 받아들이면 얻게 되는 이점은 다음과 같다.[2] (i) Correlation 원리의 (b) 파트를 거부하게 된다. 일상 언어의 동의적인 문장들은 하나의 formula에 할당될 것이고, 그 formula에 하나의 사실이 대응되므로, 더이상 서로 다른 참인 일상 문장들이 서로 다른 사실에 대응하진 않을 것이다. (ii) 일상 문장 내에 있는 진릿값과 상관없는 부분에, 예컨대 “따라서” 등에, 대상을 할당할 필요가 사라진다. 이상 언어에서 그러한 부분은 제거되기 때문이다. (iii) 일상 문장 내에 있고 진릿값에 영향을 미치지만, 존재론적 상관항이 다소 의문스러운 부분에, 예컨대 “평균적인 남편” 등에, 대상을 할당할 필요가 사라진다.

구조 원리는 사실기반이론과 대상기반이론 간의 차이를 흐린다. 원래 사실기반이론과 대상기반이론에는 두 가지 주요 차이점이 있다. (i) 사실기반이론에 비해 대상기반이론은 더 복잡한 속성을 참인 진리담지자에 귀속한다. 다음 각각은 전자와 후자가 참인 진리담지자 x에 귀속하는 속성이다.

x is such that (∃y)(xRy & Fy)
x is such that (∃y)(∃z)(∃t_1)(∃t_2)(Oy & Pz & Tt_1 & Tt_2 & (t_1 R_s x & t_2 R_p x & (t_1 R_n o & t_2 R_e z & (y R_i z)))) [3]

(ii) 사실기반이론과 달리, 대상기반이론은 진리담지자의 주술 구조를 선제한다. 그런데 사실기반이론의 옹호자가 구조 원리를 받아들이는 순간, 이러한 차이점들은 사라지게 된다.

  1. 구조와 진리담지자

명제의 본성에 대해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프레게적이고, 다른 하나는 러셀적이다. [4]

명제의 본성에 대하여 프레게가 옳았다고 치자. 명제는 추상적이고, 마음과 언어에 독립적인 것이며, 추상적이고 마음과 언어에 독립적인 개념들로 구성된다. [5]

이 경우, 서로 다른 참인 명제가 서로 다른 사실에 대응하진 않는다. ‘키케로는 웅변가이다’라는 명제는 ‘툴리는 웅변가이다’라는 명제와 다르다. 키케로의 개념과 툴리의 개념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명제는 동일한 사실, 키케로(즉 툴리)가 웅변가라는 사실에 대응한다.

프레게의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CF나 CS는 명제를 일차 진리담지자로 삼는 이론이 된다. 다시 말해 문장은 명제와 어떤 관계를 맺고, 명제는 다시 사실과 대응 관계를 맺는다. (double-correspondence account of truth)
명제의 본성에 대하여 러셀이 옳았다고 치자. 명제는 하나 이상의 n자리 관계와, n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다른 구성요소들로 구성된다.

러셀적 명제를 진리담지자로 삼는 진리 대응론은 주장될 수 없다. 러셀적 명제는 관계, 속성, 대상들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참인 러셀적 명제는 사실과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비동일성 원리가 성립하지 않게 되고, 진리 대응론 역시 설 자리를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의 견해는 진리 대응론과 양립가능하다. 다만 진리담지자는 명제가 아니어야 하며, 러셀적 명제가 사실상 사태와 동일하므로 CF가 아닌 CS의 형식으로 이론이 제시될 것이다.

  1. 논리적 원자론

진리 대응론에 따르면, 논리적으로 복합적인 진리담지자가 있으므로, 그에 대응하는 복합적인 사실 또한 존재할 것이다. 더불어, 대응론은 진리담지자의 모든 구성요소 각각에 대응하는 실체(entity)를 할당하므로, 논리 상수(“or”, “not”, “if-then”, etc.)에도 논리적 대상을 할당하게 된다. 복합적인 사실과 논리적 대상이란 허무맹랑한 것으로 보이기에, 이들의 존재를 거부하면서 진리 대응론을 구성하려는 시도(논리적 원자론)가 나타났다.

이들은 복합 문장의 진릿값을, 복합적인 사실과의 대응이 아니라, 더 단순한 문장들과의 논리적 관계와 “요소” 문장/“요소” 사실 대응 여부에 의거하여 설명한다.
논리적 원자론은 러셀적 명제와 양립할 수 없다. 참인 복합 문장의 내용은 참인 복합 명제이고, 이 명제가 러셀적 의미에서의 명제라면, 복합적인 사실이다. 따라서 참인 복합 문장의 수만큼 복합적인 사실이 존재하게 되고 이는 논리적 원자론이 거부했던 존재이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논리적 원자론은 대응론을 거부한다. CS나 CF가 요소 문장에만 한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과 대응하지 않는 문장(복합 문장)을 요소 문장과의 논리적 관계 하에서 설명하기 때문에, 대개 논리적 원자론을 대응론으로 치부한다.

논리적 원자론이 복합적인 사실을 거부하긴 하지만, 완전한 거부가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다. 논리적 원자론자들은 negative fact를 받아들이거나, general fact를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 중 어떤 것이 더 ‘순수한’ 원자론인지는 분명치 않은데, 요소 문장의 개념을 정의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i) n개의 이름들과 n자리 술어로 이루어진 단일 문장. (ii) 다른 문장을 구성요소로 갖지 않는 문장.

물론 논리적 원자론에도 문제점이 있다. (i) 가정법적 조건문은 논리적으로 복합적인 담지자이면서도, 구성요소들의 진릿값에 의하여 그의 진릿값이 결정되지 않는다. (ii) “Tina believes that Ludwig is hungry”라는 문장은 복합적이지만, 그의 진릿값이 그의 요소 문장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논리적 원자론은 더 나아가 subatomism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들은 요소 문장을 문장 하위의 구성요소들로 분해하여, 요소 문장의 대응 관계를 문장 하위 구성요소들의 의미론적 관계로 환원한다. 예컨대 이름은 대상을 지시하고, 술어는 대상에 의해 만족된다.

  1. 사실

사실(Fact)에 대해서도 많은 논쟁이 있다. 데이빗슨(1969)은 slingshot 논증을 통해, 진리 대응론이 결국에는 모든 참인 진리담지자가 하나의 동일한 사실과 대응한다는 결론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다만, 닐(2001)의 분석에 따르면 러셀의 한정 기술구 분석에 동의하는 자들은 slingshot을 피할 수 있고, 러셀의 분석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다음 두 주장을 거부한다면 slingshot을 피할 수 있다: (i) 모든 논리적으로 동치인 참된 것들은 동일한 사실에 대응한다. (ii) a가 F라는 사실 = a와 동일한 무언가가 F라는 사실.

구조 원리는 사실이 부분들로 구성된 복합 구조를 갖는다고 상정한다. 이에 대해 비판이 있다. 부분과 전체라는 말은 실연적 사물들(material things)의 영역에 적용되는 것이지, 사실의 영역에 적용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서로 다른 사실들이 동일한 구성요소를 동시에 갖는 것이 가능하지만, 실연적 사물들은 그렇지 못하다. 또한 하나의 사실에 하나의 구성요소가 여러 번 나타날 수 있다. 이 또한 실연적 사물들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렇게 이상한 일들이 가능한데도 사실들이 구조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비판의 논지는 사실뿐만 아니라 명제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1] David는 개념(concept)이라는 용어로 프레게의 뜻(sense)을 의도했다.
[2] 다만 이들은 진리담지자가 문장일 때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3] x is true iff, there is an object y, a property z, a term t1, and a term t2, such that (i) t1 is the subject-term of x, and t2 is the predicate-term of x, (ii) t1 names y, and t2 expresses z, and (iii) y instantiates z.
[4] 러셀은 러셀적 명제를 짧은 기간동안만 받아들였다. 이후 그는 명제라는 용어를 공적 문장을 가리키는 데, 더 나중에는 심적 문장을 가리키는 데 사용했다.
[5] 각주 1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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