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의 언명 "leaves everything as it is"의 의미

공부 주제인 샹탈 무페의 원전을 읽다가 비트겐슈타인의 구절이 나와 그 의미를 질문드립니다.
아래 인용하는 구절 중 첫문장을 제외하면 저자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첫문장이 갖는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아는게 전무하여, 그가 말한 "'leaves everything as it is"이 갖는 구체적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무페가 인용 표시를 안해두어 정확히 어느 책 몇 페이지에서 나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Finally, the absence of foundation 'leaves everything as it is', as Wittgenstein would say, and obliges us to ask the same questions in a new way. Hence the error of a certain kind of apocalyptical postmodernism which would like us to believe that we are at the threshold of a radically new epoch, characterized by drift, dissemination,and the uncontrollable play of significations. Such a view remains the captive of a rationalistic problematic, which it attempts to criticize. As has been pointed out: 'The real mistake of the classical metaphysician was not the belief that there were metaphysical foundations, but rather the belief that somehow or other such foundations were necessary, the belief that unless there are foundations something is lost or threatened or undermined or just in question.'

이에 따른 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결국, 토대의 부재는 비트겐슈타인이 말한대로 '존재하는 대로 내버려 두며', 같은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묻도록 강요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있다고 믿도록 하는 계시적인 종류의 오류는 의미의 표류, 흩뿌림 그리고 통제 불가능한 유희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견해는 그것이 비판하고자 했던 이성주의적 문제틀에 여전히 종속되어 있다. 다음과 같이 지적됐듯이 말이다: '고전적 형이상학자들의 진짜 잘못은 형이상학적 토대가 있다는 믿음이 아니라, 어찌됐든 그러한 토대가 필요하다는 믿음, 토대들이 없다면 무언가를 잃어버리거나 위협받거나 약화된다거나 꼭 문제가 된다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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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글링하니 인용문이 어디서 나왔는지 찾았네요.

Philosophy may in no way interfere with the actual use of language; it can in the end only describe it.
For it cannot give it any foundation either.
It leaves everything as it is. (PI § 124).

PI니깐 <철학적 탐구>인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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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인용문이라 한마디 보태보겠습니다.

우선 'apocalyptic postmodernism'에서 apocalyptic은 '종말론적'이라 번역하는 게 정확할 것 같습니다(포스트모더니즘은 누락됐네요).

또 두 번째 문장을 약간 수정하면 어떨까 합니다 : '그런 점에서 우리가 의미의 표류, 분산 그리고 통제 불가능한 유희로 특징지어지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고 믿게 하려는 모종의 종말론적 포스트모더니즘은 오류이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토대의 부재가 곧장 이러한 종말론적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저자는 토대의 필요성과 종말론적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에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을 놓는 것 같습니다. 토대를 찾아야 할 필요성과 토대가 없으니 모든 게 허용된다는 입장 사이에서, 뭔가를 어거지로 하려 하지 말고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두고 언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기술하기만 하자, 옛 질문들에 새롭게 접근해보자, 그런 얘기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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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이 '형이상학적 토대' 혹은 '인식론적 토대'를 부정하는 대표적인 철학자라서 무페가 인용한 것 같네요. 비트겐슈타인은 우리의 일상적인 주장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따로 '토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거부하거든요. 그러니까, '일상적인 주장'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토대'를 통해 일상적 주장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생각을 비판하는 거죠. 그래서 모든 일상적인 주장들은 "존재하는대로 내버려" 두는 거고요. 가령,

"2와 11 사이에는 소수들이 존재한다. 즉, 3, 5, 7이 존재한다."

이건 일상적인 주장이죠. 그런데 철학자들은 이 일상적 주장이 별도의 '형이상학적' 주장에 따라 정당화되거나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요.

실재론자: "2와 11 사이에는 소수들이 존재한다. 즉, ‘3’, ‘5’, ‘7’에 대응하는 형이상학적 실재가 존재한다."
유명론자: "2와 11 사이에는 소수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3’, ‘5’, ‘7’에 대응하는 형이상학적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단순화하자면,) 수학적 실재론자나 유명론자는 '3', '5', '7'에 대응하는 형이상학적 실재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에 따라 "2와 11 사이에는 소수들이 존재한다. 즉, 3, 5, 7이 존재한다."라는 일상적 주장이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일상적 주장들이 참이 되려면 형이상학적 실재가 존재해야 하고, 형이상학적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일상적 주장들은 사실 (진정한 철학적 의미에서는) 거짓으로 드러난다는 거죠.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은 일상적 주장이 별도의 철학적 논쟁에 의해 정당화되거나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거부해요. 수학적 실재론이나 유명론의 논쟁에 상관없이, "2와 11 사이에는 소수들이 존재한다. 즉, 3, 5, 7이 존재한다."라는 주장이 일상에서 잘 사용되기만 하면 이 주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참'이라는 거죠. 언어의 사용이 그 자체로 의미와 진리값을 결정하는 것이지, 형이상학적 토대나 실재가 의미나 진리값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요.

"모든 것을 존재하는대로 내버려 둔다."라는 건 바로 이 점에서 나온 말이에요. 이건 우리의 일상적 주장들이, 형이상학적 논쟁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잘 성립하고 있다는 이야기예요. 쉽게 말해, 형이상학자들이 서로 치고 받으면서 "실재론이 맞네!" 혹은 "유명론이 맞네!"라고 하고 있는 동안, 수학자들은 그런 논쟁과 무관하게 자신들의 분야를 잘만 발전시켜가고 있다는 거예요. 애초에 일상적 주장들을 형이상학적으로 정당화하거나 폐기하려는 시도 자체가 우스꽝스럽고 잘못된 시도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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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고 친절한 전공자의 답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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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설명 감사합니다. 한 가지 질문이 생겨서요. 사용하신 예를 비트겐슈타인이 직접 쓰는지 궁금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비트겐슈타인이 토대 또는 토대의 부재와 관련해 수학적 진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는지, 그리고 수학적 진리의 근거를 실제로 언어 사용의 '관습'에서 찾으려고 했는지 궁금해서요(한다면 어떤 책에서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언어 사용과 그 의미는 때와 장소에 따라 바뀔 텐데, 적어도 수학 만큼은 바뀌지 않는다는 게 대체적 견해일 거라 생각되는데요. 꼭 소수의 형이상학적 토대까지 안 가더라도 웬만한 과학자라면 수학에 어떤 필연성이 있고 자연 현상을 정확하게 예측한다고 말할 거 같은데, 수학적 진리가 대응하는 대상이 없다면 과학에서 동떨어지게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전공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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