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고등학교 6월 모의평가 국어 영역에서 플로리디의 정보철학을 주제로한 제시문이 나왔다고 합니다. 몇개월 전에 해당 주제를 다루는 플로리디의 <정보철학 입문> 책으로 독서모임을 한 적이 있었는데, 소식을 듣고 당시 작성했던 논평을 공유하면 좋을 듯 하여 이렇게 게시물을 작성하였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몇몇 이상하게 보이는 부분이 눈에 띕니다만, 명료하게 풀어낼 여유가 없어서 당시 작성했던대로 공유합니다. 더 잘 아시는 선생님께서 지적해주시면 해당 주제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 본서의 목표 및 기획
본서의 목표는 ‘데이터’ 개념을 바탕으로, 정보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주요한 의미들의 지도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는 정보의 개념을 ‘정보에 관한 의미 지도’ 상에 적절히 위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가령, 수학적 정보, 의미론적 정보, 물리적 정보, 생물학적 정보, 경제적 정보 등이 정보에 관한 의미 지도 상에 어디에 위치하는 개념인지 보이고자 한다.
저자의 이러한 작업은 ‘정보 형이상학’이라는 철학 체계를 제공하기 위해 토대를 마련하는 밑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정보’라는 개념이 어떻게 분류될 수 있고, 정리될 수 있는지 명확히 보이는 것이 독자가 저자의 정보 형이상학이 주장하는 바에 대한 참거짓을 판단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그 의미가 불명료한 어떤 개념을 바탕으로 어떤 형이상학적 주장을 했을 때 그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하면, 저자의 철학적 기획은 부분적으로 성취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2. ‘정보’ 개념체계의 문제점들
그러나 자세히 따져보면, ‘정보’라는 개념체계에 몇가지 문제점이 있다.
2.1. 첫째, 정보철학에서 지각 가능한 데이터 뿐만 아니라 ‘지각 가능한 데이터가 없는’ 상태 역시 하나의 데이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가령, ‘묵시적 동의’나, ‘자동차 엔진 쇠가 들리지 않음’과 같은 것 역시 데이터인 것이다. 그런데 이는 GDI의 2번째 요건과 같이 ‘잘 형성’된 데이터인가? ‘잘 형성됨’의 보다 구체적인 기준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이는 언뜻 보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하나의 역설적 경우를 불러일으킨다. 어떤 물질도, 공간도,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 무’라는 것을 생각해보자. 어떤 물질도 공간도 없기 때문에 당연히 그 절대적 무는 지각 가능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는다. 그런데 정보철학의 데이터 개념에 따르면 예시로 든 절대적 무와 같은 것도 일종의 데이터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데이터가 GDI의 3번째 요건인 유의미성을 갖는다고 가정하면, ‘절대적 무’가 ‘정보’ 범주에 들어간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를 정보 형이상학적 입장에 맞추어 더 밀고 나가면 ‘절대적 무’가 존재한다는 결론이 따라 나오게 된다. 정보철학자는 이와 같은 문제를 배제하기 위해서 ‘잘 형성됨’의 구체적인 의미와, ‘유의미성’의 의미를 엄밀하게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2. 둘째, 의미론적 정보의 확률론적 접근법에는 2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는 동어반복이나 연역 추론의 결과물이 비정보적이라는 연역의 스캔들이며, 다른 하나는 모순이 고도로 정보적이라는 바-힐렐 카르납 역설이다. 저자는 연역의 스캔들과 바-힐렐 카르납 역설이 모두 해소된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연역의 스캔들의 경우 정말 문제가 해소되는 것인지 의문이 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통해 연역이 정보적이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수리-논리적 연역의 정보적 풍요성은, 결론을 획득하기 위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지만 전제들에 전혀 포함되지 않은 정보 자원을 요령 있게 사용한 결과이다.” (p.109)
이는 추론의 과정에 쓰인 정보 자원이 전제에 포함되지 않는 정보일 수 있다는 것만을 나타낼 뿐, 추론의 결과에 해당되는 정보가 충분히 정보적임을 보여주는 설명은 아니다. 가령, 자연 연역을 통해 이끌어낸 결론 S가 충분히 정보적이지 않은 셈이다. 왜냐하면 가정에 해당 되는 가상 정보와 추론규칙을 활용하면 추론의 결과인 S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미론적 정보에 대한 확률론적 분석방식에서는 예측가능성이 확률이며 이 둘은 정보량과 역관계를 가지므로, 충분히 예측가능한 S라는 결과는 정보량이 거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저자의 논리를 따라도 연역의 스캔들이 해소되지 않는 것이다. 연역의 스캔들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로 인해 수학과 논리학의 정보적 풍요성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보철학 내에서의 ‘정보’ 개념체계 부분적인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3. 정보 형이상학
한편, 저자는 체계적으로 분석된 ‘정보’를 바탕으로 하나의 형이상학적 주장을 제기한다. 이는 ‘정보’라는 것이 실재론적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으로, 존재의 규준(p.29)을 고대 및 근대적 의미가 아니라 ‘상호작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대체함으로써 이전의 실재론적 입장들(보편자, 명제, 가능세계, 인과 등에 관한 실재론적 입장)과 그 결을 달리한다. 이는 ‘존재함’의 의미를 새롭게 규정한다는 점에서 참신하다는 평가를 할 수 있겠으나, ‘존재함’의 의미가 꼭 저자가 제시한 의미만을 가져야 하는 것인가 하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가령, 지각적 경험되는 것들을 존재자로 받아들이는 근대 경험론의 관점이 배제되어야 할 이유를 저자는 제시하고 있지 않다.
4. 정보 윤리
뿐만 아니라, 저자는 자신의 정보 형이상학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보윤리적 입장을 제시한다. 그 입장은 모든 정보적 존재자는 그 자체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고 존엄하다는 것이다. 즉 모든 ‘있음/정보/존재자’는 그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지니며, 자신의 지위를 계속 지키고 번영할 수 있는 권리와 자신의 존재 및 본질을 개선하고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권리는 가진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인간중심의 윤리관이나 생명중심의 윤리관에서 벗어나 ‘정보’라는 큰 틀 안에 포함되는 모든 존재자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는 윤리관이다. 따라서 이러한 윤리관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이 따라나온다:
모든 개별적인 정보적 존재자는 도덕적 지위를 갖는 행위자이다. 어떤 행위나 사건이 전체 인포스피어(정보적 환경)의 성장에 기여하면 그 행위 및 사건은 좋게 평가된다. 전체 인포스피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행위 및 사건은 나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전체 인포스피어의 엔트로피 값의 증감 여부와 관련된다. p.199 참조)
5. 정보윤리적 입장의 문제점들
이와 같은 플로리디의 정보윤리적 입장은 몇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비의식적 존재자 역시 행위자로 분류하고 도덕적 지위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위라는 존재자 역시 물리적 정보로서의 정보적 존재자이므로 도덕적 행위자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는 ‘행위자’ 개념의 요건에 들어맞지 않는 것으로 플로리디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견해로 만든다.
둘째, 모든 존재자가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 것인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플로리디는 존재론적 평등의 원리를 제시하며 모든 존재자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예를 들어, 바깥 뒤뜰에 있는 어떤 바위나 안드로메다 은하의 주변부 어딘가에 위치한 티끌 만한 우주 먼지 등의 존재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가 있으며, 그래서 인간과 같은 행위자가 그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해명하고 있지 않다. 이는 플로리디의 정보윤리적 입장이 응용윤리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받아들일 만한 윤리적 입장이 되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셋째, 권리는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을 때 그 효력이 발생된다라는 권리-의무 프레임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플로리디의 입장을 받아들인다면, 바위나 우주 먼지와 같은 정보적 존재자들이 행위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의무가 있을지도 미지수일 뿐더러 그들이 자발적 행위를 수행할 수 있을지 조차 미지수이다.
플로리디의 <정보의 윤리학>에서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본서의 내용만 고려했을 때 위와 같은 문제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