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wing One's Way About: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한 가지 대답(feat. 비트겐슈타인 & 셀라스)

영어 숙어 중에 "know one's way about" 혹은 "know one's way around"라는 표현이 있죠. 대략 "지리에 밝다." 혹은 "사정을 훤히 알고 있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에 이 표현이 사용된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A philosophical problem has the form: "I don’t know my way about."

L. Wittgenstein,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Rev. 4th Edition, G. E. M. Anscombe, P. M. S. Hacker, and J. Schulte (trans.), Malden, MA : Wiley-Blackwell, 2009, §123.

즉, 비트겐슈타인이 보기에, 철학적 문제란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형식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에 직면해서 "어쩌라는 거야?", "뭐가 뭔지 모르겠네?", "답이 없네?"라고 탄식하는 상황이 철학적 고민이 시작되는 상황이라는 거죠. 그리고 이 구절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등장하는 §125에 따르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문제 상황이란 '모순(contradiction)'이라고 재서술될 수도 있습니다.

The civic status of a contradiction, or its status in civic life — that is the philosophical problem.

L. Wittgenstein,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125.

말하자면, 철학적 문제는 §123에서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표현되고, §125에서는 "모순의 시민적 지위, 또는 시민 세계에서(in der bürgerlichen Welt) 모순의 지위"라고도 표현되는 거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서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상황이 넓은 의미에서 '모순'이라고 불리는 것이고, '모순'이 바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상황을 집약하는 용어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제 윌프리드 셀라스의 "Philosophy and the Scientific Image of Man"을 오랜만에 다시 뒤적이다 보니, 여기에도 똑같은 내용이 있었네요. 그동안은 그냥 넘겼던 표현이었는데, 지금 다시 살펴보니 셀라스가 정확히 비트겐슈타인이 사용한 표현을 가져와서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더라고요. 그것도 논문의 가장 첫 번째 단락에서요. 물론, 셀라스의 글 속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요.

THE aim of philosophy, abstractly formulated, is to understand how things in the broadest possible sense of the term hang together in the broadest possible sense of the term. Under 'things in the broadest possible sense' I include such radically different items as not only 'cabbages and kings', but numbers and duties, possibilities and finger snaps, aesthetic experience and death. To achieve success in philosophy would be, to use a contemporary turn of phrase, to 'know one's way around' with respect to all these things, not in that unreflective way in which the centipede of the story knew its way around before it faced the question, 'how do I walk?', but in that reflective way which means that no intellectual holds are barred.

W. Sellars, "Philosophy and the Scientific Image of Man", Science, Perception and Reality, Atascadero, California: Ridgeview Publishing Company, 1991, 1.

예전에 저는 셀라스가 굳이 "know one's way around"라는 숙어를 사용한 이유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해서, 이 숙어를 고민 끝에 '숙달하다'라고 번역하였는데, 지금 보니 '숙달하다'로는 의미가 정확히 전달이 안 되겠네요. '훤히 알다'라거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다'라는 의미가 번역어에 들어가야 할 텐데, 솔직히 어떤 식으로 번역해야 하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셀라스가 논문 앞부분에 저 표현을 굉장히 빈번하게 사용하는데, 저로서는 어떻게 번역해도 우리말로 하면 문장이 이상해지는 것 같아서요. (굳이 '숙달하다'로 번역한 것도 나름대로 많이 고민한 결과였는데, 셀라스가 "knowing one's way around"를 일종의 "knowing how"라고 강조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랬던 거였거든요.)

여하튼, 셀라스에게도 철학적 앎이란 "knowing one's way around"라고 표현됩니다. 철학은 특수한 대상이나 분야를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전체에 대한 눈(eye on the whole)'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학문이라는 거죠. 좀 더 전문적인 셀라스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철학이 지향하는 목표는 '통관적 전망(synoptic vision)'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통관적 전망을 얻기 위해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바로 인간에 대한 '과학적 이미지(scientific image)'와 '현시적 이미지(manifest image)' 사이의 모순이죠. 과학이 말해주는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과 우리의 일상적 자기 이해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지가 오늘날 철학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라는 것이 셀라스가 이야기하는 내용이에요. 비록 셀라스가 비트겐슈타인을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철학이 어떠한 학문인지에 대해서는 셀라스와 비트겐슈타인이 꽤나 유사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 거죠. 두 사람 모두 (a) "knowing one's way about"이라고 표현될 수 있는 전망을 얻는 것이 철학의 목표라고 강조하고, (b) 이 전망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순(contradiction)'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철학적 문제라고 주장하고, (c) 특별히, (여기에서 제가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과학적 세계관과 우리의 일상적 세계관 사이의 관계를 자신들이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주제로 보았다는 점에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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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달하다"가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지리에 통달하다"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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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좋은 번역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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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라스는 "know one's way around"라는 의미를 독특하게 쓰는 것 같습니다.

뭐라고 해야하나, 보통 "know one's way around"라고 할 때의 'know'은 "중요한건 이론보다는 실전이지!"라는 느낌의 "앎" 같습니다 (Merriam-Webster).

반면에 셀라스 같은 경우에는 명시적으로 '반성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상기 의미와는 좀 다른 독특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습니다. 요컨대 지네가 "실전"에서 잘 걸어다니는 것과 무관하게, 문득 '잠깐만, 내가 어떻게 걷는거지?'라고 "이론"적으로 반성하며 자문하게 되는 시점에서 'know one's way around'하게 된다고 말하는걸 보면 말이죠.

잘 모릅니다만, 어쩌면 비트겐슈타인과 셀라스의 견해가 이 부분에서는 좀 갈라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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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셀라스가 "know one's way around"라는 용법을 좀 특이하게 사용하는 것 같아요. 셀라스는 이 '앎'으로 개별 대상이나 분야를 아우르는 일종의 전체적 앎, 통합적 앎, 포괄적 앎 같은 걸 염두에 두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저 표현을 그냥 '이론'과 대비되는 '실천'이라는 의미에서 "숙달하다" 정도가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뭔가 그 맥락보다는 앎의 총체성을 더 강조하고 있는 것 같아서 고민하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