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lsen 1948] 철학과 정치에서의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오랜만에 글 올리네요.

옛날 글이라 철학적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에 관한 설명이 나이브합니다.


Absolutism and Relativism in Philosophy and Politics (Kelsen 1948)
철학이 있었던 이래로 철학과 정치학을 연결하려는 시도가 있어 왔다. 이 시도는 정치 이론과 윤리학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한 옳아 보인다. 그렇다면 지식에 관한 이론이나 가치 이론과 같은 다른 철학 영역은 어떠한가? 철학은 정치와 평행 관계에 있는가? 이 논문은 철학과 정치 사이에 평행 관계가 있음을 철학에서의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대립이 전제 정치(정치적 절대주의)와 민주주의(정치적 상대주의)의 대립과 같은 모습을 한다는 점을 통해 보인다.

1.
철학적 절대주의는 우리 인간 지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절대적 실재가 있다는 형이상학적 견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우리 인간의 지식을 제한하는 시공간을 넘어 혹은 그 안에 무제한적인 그리고 객관적으로 절대적인 실재가 존재한다.
철학적 상대주의는 실재는 오직 인간 지식 내에 있고, 지식의 대상으로서의 실재는 앎의 주체에 상대적이라는 경험주의적 견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절대적인 것 또는 물자체라고 불리는 것은 인간 경험을 넘어서서 존재하기에, 우리는 그것에 접근 불가능하고 그것을 알 수 없다.

절대적 실재를 가정하는 것은 절대적 참과 절대적 가치를 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판단이 절대적 실재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그 판단은 시공간과 인식 주체와 관련 없이 절대적으로 참이다. 어떤 실재가 절대적이라면 그것은 완벽한 것이기에, 어떤 가치가 절대적 실재에 내재한다면 그 가치는 절대적으로 가치 있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견해는 일종의 유일신 종교와 같은 경향을 띤다.
반면에 철학적 상대주의는 경험 너머의 영역에 있는 절대적 실재는 이해 불가능한 것이라면서, 상대적 참과 가치를 인정할 것이다. 동시에 유아론적 경향을 띤다.

철학적 절대주의는 앎을 그 자체로 존재하는 대상을 단지 반영하는 거울 기능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절대주의에 따르면 인식 주체는 절대적 권위를 가진 객관적 실재 (혹은 그것이 내세우는 법칙)에 타율적인 방식으로 종속되어 있다. 이렇게 철학적 절대주의에서는 주체들 사이의 인식 능력상의 평등이 아니라, 절대적이고 최고의 존재와 맺는 주체의 관계가 불평등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 철학적 상대주의는 앎을 인식 주체가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우선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동일한 세계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누구도 인식할 수 없다. 그렇다고 상대주의는 앎(인식) 과정이 완전히 임의적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인식 과정을 동일하게 지배하는 법칙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법칙은 우리 마음에서 비롯하며, 지식의 주체는 인간이다. 이렇게 철학적 상대주의에서는 절대적 존재와 주체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나 주체들 사이의 불평등이 아니라, 주체들 사이의 평등이 핵심이 된다.

2.
정치학에서 ‘절대주의’란 용어는 국가의 모든 권력이 한 명의 개인에게 집중되어 그의 의지가 곧 법인 통치 형태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다. 통치자 외의 모든 개인은 통치자에게 종속되어 있고, 정치에 참여할 수 없으며 피치자는 개인적 자유를 상실한 상태에 있다. 이러한 통치자와 피치자 사이의 불균형으로 인해 정치적 절대주의는 평등이라는 이념과 양립할 수 없다. 정치적 절대주의의 동의어로는 폭정, 독재, 전제 정치, 전체주의 국가 등이 있다.
정치학에서 절대주의와 반대되는 통치 형태는 평등과 자유의 원칙에 기반한 민주주의다. 이 정치 형태는 모든 형태의 절대주의를 배격한다.

철학적 절대주의와 정치적 절대주의의 평행 관계는 다음처럼 분명하게 존재한다: 절대적인 앎의 대상과 인식 주체인 개별 인간 사이의 관계는 절대 군주인 통치자와 그에 종속된 신민과의 관계와 같다. 절대 군주의 권력은 신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피치자의 영향력 바깥에 있다. 인식 대상은 인식하는 자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완전히 후자의 인식을 결정한다. 그래서 정치적 절대주의는 인식론적 전체주의로 특징지을 수 있다.

철학적 절대주의와 정치적 절대주의의 평행 관계는 외적인 방식이 아닌 내적인 방식으로도 확인된다: 정치적 절대주의는 자신의 절대적 권력과 타인의 무조건적 복종을 정당화하기 위해, 즉 이데올로기적 실천을 위해 철학적 절대주의를 사용한다. 절대 군주는 자신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을 유일하게 참된 앎을 지닌 자로 제시한다.

정치적 절대주의는 국가를 자신에게 종속된 자들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으로 있는 절대적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도 형이상학적 이데올로기를 사용한다. 정치적 절대주의에 따르면, 국가는 개별 인간의 집단이 아닌 그 이상의 초개인적인 것이자, 그 구성원보다 더 실재적인 존재이자, 신비로운 유기체이자, 그 자체로 최상의 권위이다. 그리고 그것의 군주, 총통, 혹은 대원수는 그 권위의 대표이자 화신이다. 이렇게 통치자를 신과 같은 존재로 숭배하며, 그가 대표하는 국가의 신격화를 위한 개념이 주권 개념이다. 절대적이고 최고의 권위라는 의미에서 주권은 오직 한 국가만이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주권 국가로서의 절대주의적 국가는 모든 국가 위에 존재하여 각 국가에 의무와 권리를 부여하는 국제법이라는 개념을 부정한다. 오히려 국제법을 국내법의 일부로 편입시키고, 다른 모든 국가를 자신의 법에 따르도록 명령한다.
절대주의적 국가 이론과 정반대의 이론이 민주주의 국가 이론이다. 민주주의 국가 이론에 따르면, 국가는 법적 질서에 따라 개인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특수한 관계이자 공동체이다. 이 이론은 정치적 절대주의와 달리 모든 국가를 국제법 질서의 치하에 둔다. 이 견해에 따르면 국가는 분명히 법적 권위를 지니지만, 그렇다고 절대적 권위를 지니지 않는다.

3.
이상의 설명을 넘어, 역사적으로 상대주의 철학 지지자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지지했던 반면, 철학적 절대주의 지지자인 형이상학자들은 정치적으로도 정치적 절대주의를 지지하고 민주주의에 반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대의 경우, 프로타고라스나 에우리피데스와 같은 소피스트들은 상대주의자인 동시에 민주주의를 추종했다. 반면 가장 위대한 형이상학자인 플라톤은 프로타고라스에 반대하여 민주주의를 경멸할 만한 통치 형태라고 봤고, 완전한 전제 정치를 이상적 통치 형태로 봤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세습 군주제를 민주주의보다 우월한 것으로 봤다.

중세의 경우, 그리스도교 형이상학은 우주에 대한 신의 통치의 모상인 군주제가 최고의 통치 형태라는 확신과 결속되어 있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정론>과 단테의 <제정론>이 고전적 예이다. 반면 절대자를 알 수 없는 것으로 선언한 쿠사누스는 자유와 평등을 옹호했다.

근대의 경우, 반형이상학적 범심론을 펼친 스피노자는 민주적 원칙을 선호했지만, 형이상학자인 라이프니츠는 군주제를 옹호했다. 형이상학에 반대하며 경험론을 펼친 영국 철학자인 로크와 흄은 정치적 절대주의를 완고히 반대했다. 로크의 경우, 절대 군주제가 시민 사회와 양립할 수 없으며 정부 형태가 될 수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흄의 경우, <원초적 계약에 관하여>에서 인민의 동의가 최고의 그리고 가장 신성한 정부의 토대라고 주장하며, <완벽한 커먼웰스에 관한 아이디어>에서 민주 공화국 체제를 구상했다. 칸트의 경우, 자연 철학에서는 모든 형이상학적 사변의 무용함을 보였으나 윤리학에서는 다시 절대자를 도입하며, 그의 철학적 입장이 무엇인지 확정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그의 정치적 태도도 일관성이 없다. 반면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정신 철학으로 요약되는 철학은 절대 군주제의 옹호자였다.

4.
19세기 독일에서 반민주주의 운동을 이끈 것은 헤겔의 제자였다. 만일 절대적인 것의 존재와 가치를 믿는다면, 정치적으로 좋은 것을 다수결 투표로 결정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반면 절대적으로 참인 앎을 우리가 얻을 수 없다면, 그러한 방법은 무용하지 않으며 어떤 한 명의 개인이 다른 모두에게 구속력을 가진 법을 입법할 권리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반면 철학적 상대주의의 기본 원칙 중 하나가 가치 판단은 오직 상대적 타당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만일 모든 가치 판단이 상대적으로 타당하다면, 모두에게 구속력을 가하는 질서는 최대 다수의 평등한 개인들, 즉 다수의 의지와 조화를 이룰 때만 정당화될 것이다. 물론 다수의 의견이 아닌 소수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철학적 상대주의만이 인정할 수 있다. 절대적으로 참인 믿음과 그것을 아는 자가 있다고 가정하는 정치적 절대주의에서는 사람은 평등하고 자유롭기에 누구나 타인의 견해를 존중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은 용인될 수 없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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