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생각으로 갑자기 번역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결과를 공유합니다. 역시나 번역은 참 어렵네요.
S. Chambers, 2024, Ch.2
현대 민주주의 이론 내에서 민주주의의 최선의 형태나 모델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보다 우리가 왜 민주주의를 가치 있게 여기는지에 대한 질문이 더 중요하게 다뤄지기 시작했다. 어떤 면에서 이는 훨씬 더 오래된 논의로의 회귀에 해당한다. 민주주의 이론의 역사는 민주주의 정당화의 역사이므로, 다른 대안들과 비교하여 민주주의의 우월성이나 열등성을 논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정당화의 맥락은 두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새롭다. 첫째, 우리는 오늘날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실제 세계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고, 번성하며, 실패하는지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안다. 둘째,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성장하던 시기가 지난 후, 민주주의는 곤경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분명한 상승 궤도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궤도는 상승에서 하강으로 바뀐 듯하다. “왜 민주주의인가?”라는 규범적 이론의 질문은 민주주의에 대한 방대한 양의 경험적 연구와 이상으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전 지구적 열광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명백한 불안정성의 징후들을 무시할 수 없다.
현대의 논쟁들이 민주주의를 최선의 상태로 만들려는 시도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매력을 규명하는 것은 개혁과 ‘어떻게 민주주의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논쟁의 대부분은 특정 유형의 민주주의를 다른 유형과 대비하여 옹호하는 방식으로 짜여 있지 않다. 현저하게도 그 대비는 대개 왜 우리가 더 권위주의적이거나, 기술관료주의적이거나, 능력주의적이거나, 에피스토크라시적적이거나, 과두제적이거나, 시장 기반의 대안들보다 민주주의를 가치 있게 여겨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내가 서론에서 제안했듯이, 이는 21세기 민주주의의 회복력에 대한 깊은 우려와 관련이 있다. 철학자들이 민주주의를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민주주의를 더 많이 하기보다는 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주장(Bell 2015; Brennan 2016; Jones 2020)이나 민주주의가 달성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자고 제안하는 것(Achen and Bartels 2016)은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민주주의의 미덕에 대한 학문적 의심과 회의에 더하여, 일반 시민들은 민주적 제도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으며, 민주적 퇴행—민주주의의 건강함에 관한 전통적 척도를 이루는 제도와 규범을 약화시키고 훼손하는—을 조장하는 정당과 지도자들에게 기꺼이 투표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맥락은 왜 논의의 초점이 경쟁하는 민주주의 모델들에서 민주주의의 정당화로 이동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장과 다음 다섯 개의 장에서 나는 이 논쟁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다양한 주장들과 입장들,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에 관한 질문이 중요한 이유를 분석할 것이다. 이 예비적 장에서는 경쟁하는 주장들을 구분하는 지점들을 소개하고, 문헌 도처에서 등장하는 “내재적”, “절차적”, “결과 기반”, “도구적”이라는 용어에 대한 해설을 제공하며, 정당성과 관련하여 “가치”의 의미를 다룬다. 마지막으로는 민주주의의 가치 논쟁에서 무엇이 관건인지를 가늠할 것이다.
1절. A new vocabulary
민주주의의 좋은 점은 무엇인가? 왜 우리는 다른 통치 형태보다 민주주의를 가치 있게 여기거나 여겨야만 하는가? 이 논쟁은 두 가지 유형의 답변을 내놓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한 가지 유형의 답변은 민주주의의 가치가 절차에서 나오는 실질적인 결과보다는 절차 그 자체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민주주의가 무엇을 결정하는가보다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항상 최선의 정책을 산출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계몽 군주나 선의의 기술 관료가 대중보다 더 자주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도 있고, 여하간에 모두가 동의하는 척도로 삼을 수 있는, 좋은 결과가 무엇인지 따지기 위한 독립적 기준을 우리가 갖고 있기나 한가? 그러나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여기거나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는 유일하게 공정한 방법이라고 주장된다. 이러한 유형의 이론은 민주주의 내재적 가치를 찾는다고 말해지거나 절차주의적이라고 묘사된다.
다른 편의 주장들은 민주적 절차를 도구적으로 또는 결과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여기서 민주주의의 가치는 그것이 다른 형태의 의사 결정 방식보다 평화, 번영, 안정, 또는 더 나은 정책, 법, 통치를 산출한다는 점에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도구적 및 결과 기반 관점은 잠재적으로 민주주의를 과대평가하는 것에 회의적인 이론을 낳는다. 어쩌면 민주주의가 항상 최선의 의사 결정 방식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민주주의는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엄격한 도구주의자는 이러한 경우에 민주주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열광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물론 내재적 이유와 도구적 이유를 통해 민주주의를 가치 있게 여기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많은 민주주의 이론가들이 그 범주에 속한다(Anderson 2009; Habermas 1996). 하지만 일부 철학자들이 이 관점들 중 오직 하나만이 옹호될 수 있다고 주장하여 이 논쟁에 흥미로운 전개가 발생했다. 이를테면 내재적 가치 옹호자들은 때때로 좋은 결과에 대한 객관적이거나 합의된 척도가 없다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민주주의에서 논쟁하는 지점이다), 우리는 좋은 결과 접근법을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Christiano 2008; Waldron 1999). [반면] 엄격한 도구주의자들은 만약 의사 결정 절차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는다(Arneson 2003; Wall 2007). 만일 민주주의가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들고 시급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면, 그 어떤 양의 (어차피 확인하고 측정하기도 어려운) 내재적 가치도 그 사실을 메울 수는 없다.
민주주의의 정당화를 이렇게—내재적, 절차, 결과 그리고 도구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분석하는 것은 널리 퍼진 방식이다. 엘라나 질리오티(Elana Ziliotti)는 “Democracy’s Value: A Conceptual Map”라는 제목의 에세이 첫 두 페이지에서 이러한 어휘를 사용하는 50개가 넘는 현대 저작을 인용한다. 그리고 이 목록은 전체를 망라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논쟁의 기본 용어들은 매우 분명치 않고, 이 용어들에 부여된 합의된 의미가 없다”라고 인정한다(Ziliotti 2020: 408). 한편으로, 이론가들마다 이 용어들을 다르게 사용해서 혼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용어들에 대한 분석적 정확성을 추구하려는 시도들은 논쟁을 실제 세계의 정치적 문제에서 벗어나 분석 철학의 형식적 문제라는 곁길로 새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여기서 가능한 한 일상 언어의 의미에 충실하면서 중도를 지키고자 한다. 그럼에도 이어질 논의는 다소 추상적이지만, 나는 그 논의가 3장에서 7장까지 설명하고 분석할 구체적인 이론들에 깊이 파고들 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