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Hodge, 「아도르노와 현상학 : 헤겔과 후설 사이에서」 (2019)

초록

아도르노는 헤겔과 후설의 현상학을 병행적으로 비판한다. 그는 양자의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철학, 진보, 역사, 자연에 대한 그들의 설명에 대해 결합된 비판을 반복적으로 제기한다.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과 후설의 초월론적 관념론(transcendental idealism)을 비판하면서, 아도르노는 그들의 텍스트를 읽는 과정에서 철학적 탐구의 텍스트적 물질성을 드러낸다. 이 물질성은 그의 비판을 지지하는 물질적 증거를 제공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과정의 역동성을 드러내고, 그것이 미셸 앙리의 현상학적 탐구와 자크 데리다의 해체에서 제시된 결과들과 일정한 평행 관계를 이룬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만약 하나의 시대가 여전히 개념 속에서 포착될 수 있다면, 아도르노가 전개한 부정변증법적 개념성은 그 시대에 공통된 조건을 포착해야 하며, 또한 부분적으로는 그러한 사상가들과 공유되는 조건을 드러내야 한다.

핵심어 : 현상학, 역사, 자연, 자연사(natural history), 멜랑꼴리, 메시아주의, 유럽, 정신, 지평, 개념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헤겔과 후설의 현상학에 대해 두 갈래의 비판을 제기한다. 그는 1933년 망명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로의 귀한이라는 간극을 가로지르며 이 비판 작업을 지속한다. 그는 일련의 철학적 유보를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각각에 대한 비판을 전개한다. 또한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고찰을 끌어들여, 철학적 탐구가 오늘날의 현실 조건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개념성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부정변증법』 머리말(preface)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정적 변증법이라는 표현은 전통(inheritance)과 위배된다 (국역본, 51쪽)

또한 서론(introduction)에서는 혁명적 변혁 속에서 자유의 철학이 현실화될 수 있었던 순간을 둘러싼 유명한 마르크스주의적 주장을 환기한다. “한때 낡아 보이던 철학이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 그 실현의 순간이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헤겔에 대한 부연설명」라는 부제가 붙은 후반부 에서 그는 헤겔의 정신과 세계정신 개념과, 자신이 선호하는 자연사(Naturgeschichte) 개념 사이의 관계를 논의한다. 이 자연사 개념은 일정 부분 발터 벤야민의 연구에 빚지고 있다. 이 ‘자연사’ 개념은 역사와 자연 어느 쪽도, 그리고 그 개념 자체도 이전과 동일하게 남겨두지 않는다. 그것은 본질 연구로서의 헤겔의 ‘자연철학(Philosophie der Natur)’과 구별되어야 한다. 헤겔의 자연철학은 개념의 전개로서의 논리학과, 논리학과 자연철학을 다시 통일하는 정신철학(Philosophie des Geistes) 사이에 위치하며, 이는 헤겔이 『엔치클로페디』 초안에서 체계적으로 조직한 구조이다.

아도르노에게 있어, 20세기의 두 가지 힘은 철학적 탐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느 데 장애를 증대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독일 관념론의 위대한 체계들 – 칸트, 셸링, 헤겔 – 의 계보 안에서 철학을 다시 수행하고자 한다. 이 전통은 키르케고르, 니체, 후설에 의해 문제제기 되었다. 부정변증법은 바로 이러한 유산과 충돌한다. 철학이 점진적 세련화를 통해 발전해온 하나의 통일적 역사라는 관념은 의심받게 된다. 또한 아도르노에 따르면,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고, 자연이 비자연화되는 과정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온갖 기술적 개입을 통해 매개되고 변형된다. 아도르노는 마르크스주의 비판에 설득되어, 자연적 힘들이 역사적으로 규정된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전환되었으며, 역사적 과정들은 의사결정 절차와 행정적 명령, 오늘날 ‘통치성의 논리’라고 불리는 것에 종속되었다고 본다. 그 결과 역사적 과정들은 자기조직적 체계로 변모하고, 역사는 자기결정적 인간들이 수행하는 자유로운 행위의 영역이라는 이전의 지위를 상실한다. 헤겔과 후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철학 내부의 진보라는 이상에 헌신하며, 더 나아가 인류 전체의 역사적 진보를 상정한다. 아도르노는 이 주장들의 세 측면 모두를 문제 삼는다. 첫째, 헤겔과 후설의 현상이 갖는 내적 정합성과 개연성. 둘째, 철학을 누적적 자기개선의 통일적 궤적으로 이해하는 관념, 여기서 헤겔의 정신(Geist)와 후설의 의미(Sinn) 개념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셋째, 진보 이상 속에서 인류의 운명을 가정하는 포괄적 가설이 그것이다. 이 글의 주된 초점은 현상학에 대한 철학적 논쟁과, 그에 대한 아도르노의 양가적 태도에 있다. 그러나 후자의 두 문제틀은 이 논의가 전개되는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통로를 제공한다.

아도르노에게 중요한 역사적 증거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1933년 나치가 독일에 집권하면서 발생한 사회적, 인종적 공포의 증거와 그 결과들이다. 그는 강제 망명자의 처지에서, 그리고 삶이 파괴되거나 죽음의 수용소에서 종결된 세대의 일원으로서 경험한 이 트라우마를 장기간 분석한다. 이 과정은 전후에 『미니마 모랄리아 :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라는 제목으로 풀판된 일련의 단편들 속에서 표현된다. 이 글들은 일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망명 시기에, 일부는 전쟁 직후에 작성되었다. 제목 자체가 개인적 경험의 균열과, 세계 자체의 균열, 그리고 사회-역사학자(social historian)가 이해하려 하는 세계 내 사태들의 균열을 암시한다. 이 저작은 또한 18세기와 18세기의 고양된 희망이 붕괴된 이후, 미완성과 멜랑꼴리를 특징으로 하는 철학적 기획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형식을 찾으려는 고투를 증언한다. 벤야민과 프리드리히 니체의 저작은 단편적이고 단절된 표현 양식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두 번째 증거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버리는 일련의 전도의 과정이다. 『미니마 모랄리아』의 헌사에서 아도르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삶을 생산에 부수된 하루살이 현상으로 격하시킨 삶과 생산의 관계는 완전히 부조리한 것이다.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것이다. (국역본, 27-28쪽)

이러한 전도 과정은 헤겔의 『정신현상학』 「힘과 오성」 장에서, 의식에서 자기의식으로의 이행 속에서 분석된다. 헤겔은 거기서 직접적 지각을 지배하는 ‘전도된 세계의 법칙’을 정식화한다. 그러나 오인과 전위의 극단이 이후의 역사 운동 속에서 교정될 것이라는 그곳의 전제는, 아도르노에게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아도르노는 헌사의 서두에서 니체의 『즐거운 학문』이 제안한 기쁨에 찬 긍정의 학문을 대신하여, ‘우울한 학문(melancholy science)’을 제안한다. 생산보다 소비가 우선하고, 삶의 요구보다 생산의 명령이 우선하는 전도된 세계에서, 순간적이고 소멸하는 것 속에서 진리의 자기실현을 추적하려는 헤겔의 시도는 거부되어야 한다. 아도르노에게 진리는 드러내는 것은 소멸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파편으로 남는 소멸이다.

아도르노는 여기서 후설의 본질 직관 개념과 그것의 현상학적 기능, 그리고 데카르트주의의 복귀와의 연관성도 비판적으로 언급한다.

우리의 정신은 의심의 여지 없이 대상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데 충분하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을 대상으로 향하게 하기만 하면 된다는 데카르트의 규칙은 – 이러한 규칙과 연관된 모든 질서나 구성을 포함해서 – 이러한 경험과는 정반대가 되지만 저 깊은 곳에서는 유사한 본질 직관처럼 잘못된 경험 개념을 내놓고 있다. 본질 직관이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개개의 사유 속에서 자신을 타당하게 만드는 논리적 권리를 부인한다면, 경험은 개개의 지적 행위 속에서 인식하는 주체의 의식이 갖는 전체적 흐름과 매개되지 않은 채 그 직접성 속에서 논리를 얻는다. (국역본, 113쪽)

아도르노는 후설의 ‘의식 삶의 전체’ 개념을 비판하며, 그에 대해 제기된 반론을 헤겔이 제안하는 다양한 전체성과 화해 개념에도 적용한다. 이 전체는 분열과 난점으로 특징지어지며, 세계 속에서 이성과 질서를 현실화해야 했던 정신의 매개가 미완으로 남아 중단된 운동이다. 그 대신 아도르노는 자연과 역사 사이의 잘못된 관계 설정 속에서 가려져 온, 물질적으로 주어진 세계의 우선성을 주장한다. 따라서 아도르노의 헤겔과 후설 독해는 ‘폭력적’이다. 그는 가치 있게 여기는 개념적 통찰을, 유럽 중심적 자기 찬양과 낡은 역사 개념이라는 수용 불가능한 토대로부터 강제로 떼어내려 한다. 이 논의의 전개 과정에서, 정신과 의미, 지평, 수단과 목적, 그리고 삶과 죽음의 밀접한 연관성이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자크 데리다의 헤겔 및 후설 독해와 일정한 평행성이 드러날 것이다.

1. 사고의 운동

이미 1932년, 망명 이전에 아도르노는 프랑크푸르트 강연 「자연사의 이념」에서 자연과 역사적 · 정신과학(Gesteswissenschaften) 사이의 전통적 구분이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역사 개념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를 헤겔과 후설의 현상학과 충돌하게 만든다. 헤겔은 세계사를 세계에 대한 신적 심판으로 이해하며, 후설은 포괄적 지평 개념을 통해 역사를 파악하려 한다. 아도르노는 세계 내 사태들에 어떻게 접근하고, 그것들을 분석할 적절한 개념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를 문제 삼는다. 그는 또한 사유 내용, 언어 표현, 세계의 사태들 사이의 체계적 관계를 전제하는 의미와 질서의 통일성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오히려 의미와 사태 평가를 둘러싼 원초적 투쟁을 사고한다. 점점 더 파편화되는 사물 질서와, 그 질서를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덮어버리는 개념 체계의 생성 경향 속에서, 세계 내 존재자들의 가정된 통일성과 가용성은 문제가 된다. 이러한 도전은 계급투쟁과 이데올로기 개념을 통해 표현된다. 이데올로기는 사유 체계들이 필연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왜곡되어 특정한 입장을 유리하게 만든다는 비판적 통찰과 연결된다. 이러한 입장이 바로 아도르노가 현상학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자연 영역과 역사 영역의 분리를 둘러싼 아도르노의 비판은 1969년 그의 사후 더욱 절실해졌다. 오늘날에는 유럽 문화의 무비판적 우월성 주장과 그에 결부된 진보 이념에 대한 비판이 훨씬 더 널리 인식되고 있다. 헤겔과 후설의 저작에는 특정 민족들을 비역사적 존재로 규정하는 수용 불가능한 주장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주장은 특정 문화에 결부된 역사 개념의 우월성을 정당화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스스로 입증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아도르노는 동시대 사회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주장과 일정 부분 공명한다. 『야생의 사고』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이 개념을 ‘길들여지지 않은 사유(Untamed Thinking)’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시사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장폴 사르트르의 역사와 유물론 이해를 비판하면서, 유럽 특유의 역사 개념을 일종의 신화로 간주한다. 이는 민족지학자들이 연구하는 다른 문화의 신화들과 나란히 놓일 수 있는 것이다. 『슬픈 열대』에서 그는 기술적으로 강화된 사회와 토착 사회 사이의 만남을 서술한다. 부(富)와 무기, 폭력, 질병, 착취의 압력 속에서 토착적 삶의 방식은 생존을 위해 고투한다. 기후 변화 논쟁과, 토착 공동체들이 세계 자본의 팽창적 요구로부터 미개간 토지를 보호하려는 오늘날의 맥락 속에서, 이러한 문제들은 더욱 강력하게 부각된다.

그러나 후설과 헤겔 모두 비시간적이고 비역사적인 탐구 방식에 헌신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시간과 역사 속에서 경험의 기본 내용, 경험 개념 자체, 그리고 존재하는 것의 물질화 방식 – 무엇이 물질로 간주되는가 – 가 변형된다는 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이러한 점은 아도르노의 존중을 끌어낸다. 비록 그 존중이 때로는 마지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그의 분석은 ‘물자체’에 대한 정의를 시도하고, 구체성을 확보하려는 현상학의 주장과 일정한 근접성을 지닌다. 오늘날 지역주의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포퓰리즘과 고립주의의 재부상은 낡은 민족과 주권 개념을 되살리며, 이는 아도르노에게 극도의 의심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1930년대 후설은 나치가 ‘인류’ 개념을 전유하여 박해와 학살, 집단학살을 정당화하는 데 맞서, ‘칸트적 의미에서의 이념’이라는 표제 아래 강력한 보편주의를 옹호한다. 헤겔의 국과 권력에 대한 긍정 역시 파시즘에 대한 승인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가 제안하는 체계는 일시적인 분열이나 내전, 특정 집단에 대한 박해 아래에서도 작동하는 숨겨진 공통성을 드러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헤겔에게 국가 권력은 개념적으로 확보된 구별들 – 윤리와 도덕, 정치와 공공 질서, 집행 권력과 상징 권력 – 과 질서 있는 분업, 전통에 대한 존중에 기반한다. 이는 상호 경쟁하거나 서로를 방해하는 제도들을 의도적으로 발전시키는 권위주의적 · 전체주의적 체제와는 구별된다. 현재의 특수한 국면을 덮어버리기 위해 시대착오적 개념을 가져오는 왜곡 효과를 지적하는 것은 헤겔에게도 중요한 문제였다.

이 논의에 초점은 후설과 헤겔이 명시적, 암묵적으로 호출하는 ‘체계’ 개념에 있다. 아도르노는 후설의 의미, 지평, 그리고 재구성된 본질 개념에 기초한 일반 존재론과 지역 존재론을 문제 삼는다. 특히 그는 본질 직관을 강하게 비판한다. 헤겔에 대한 평행적인 비판은 정신 개념과 ‘개념의 노동’에 부여된 위상에 대한 것이다. 정신과 통일적 지평이라는 개념들은, 개별적으로 흩어져 나타나는 현상들을 하나의 틀 속에서 결합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럼에도 아도르노는 후설과 헤겔의 연구를, 에컨대 『본래성의 은어』에서 비판한 마르틴 하이데거나 오토 볼노, 또는 정치 참여와 역사 행진과의 화해 개념을 과도하게 복잡화한 장폴 사르트르와 게오르크 루카치보다 더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정치와 역사에 대한 이러한 전통적 개념들은 현대 조건을 포착하기에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미니마 모랄리아』 제29절에서 아도르노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진리는 전체이다”라는 명제를 전도하여 “전체는 비진리다”라고 선언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헤겔에게 자의식이란 스스로에 대해 확신하는 진리, 정신현상학의 어투에 따르면 ‘진리의 고유 영역’이었다. 시민 계급이 이런 것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게 되었을 때조차 그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부에 대한 긍지 속에서는 최소한 자의식적이었다. 오늘날 자의식이라는 개념에 대한 성찰은 어찌할 바 모르는 당황감이나 무기력에 대한 자각으로 자아를 파악하는 것,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국역본, 74쪽)

헤겔의 의식 개념은, 모든 분열과 분리가 극복되는 절대정신 개념이 확보되지 않는 한, 역사적 상대화를 스스로 요청한다. 이에 비해 후설의 의식 이론은, 개별 자아(ego)의 자기확증 속에서 실현되는 우연적이며 역사적으로 제한된 의식의 특징들을, 어떠한 의식이든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의 절대적 초월론적 의식(transcendental consciousness)으로 환원해야 할 잠재성과 필연성을 주장한다. 이러한 환원 절차가 경험적으로 주어진 개별 자아 상태들에 대해 수행된다면, 그 결과는 모든 자기의식적 존재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접근 가능하게 된다.

1932년 초기 강연 「자연사의 이념」에서 아도르노는 자연과 역사의 구분에 부여된 기초적 위상을 해체하는 역사 개념을 구성하려 한다. 그는 정신과학의 전개를 지탱해온 지배적 역사 개념 속에 잠재한 이상화와 몰수를 폭로한다. 이러한 재사유는 마르크스주의적 이유와 철학적 이유를 동시에 가진다. 오늘날 이는 환경 문제, 심층 생태학, 그리고 탈식민화 교육과정 논쟁과 접합된다. 인간학문이 인종적 차이와 역사적 운명이라는 방어 불가능한 개념에 근거해 어떤 민족은 역사적이고 어떤 민족은 비역사적이라고 구분해온 역할이 문제화된다. 1933년 나치 집권 이전, 망명 이전의 시점에서 이미 아도르노에게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적 이데올로기 개념이었다. 이는 왜곡된 사유 체게에 대한 비판을 요구하며,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이든 전문적으로 정교화된 개념이든 모두가 불의에 공모하고 억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가능성 아래 놓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점에서 그는, 세계에 대한 상식적, 자연주의적 전제를 급진적으로 괄호치기(Braketing)해야 한다는 후설의 요구와 일정한 친연성을 보인다.

『논리 연구』에서 『이념들』에 이르기까지 후설은 자연적 태도를 제거하기 위해 일련의 환원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의식의 직접성을 중단하고, 진리와 보편성을 지향하는 철학적 태도를 확립하려는 시도이다. 이 과정에서 후설은 범주적 직관 개념에서 출발해, 동일률과 모순율 같은 원리에 대한 인식을 설명하고, 나아가 본질 직관 개념으로 이동한다. 이는 직관 능력(Anschauung)에 결부된다. 아도르노는 바로 이 지점에 대한 강한 이의를 제기한다. 1930년대 중반, 나치즘의 부상에 대응하여 후설은 유럽 인류성의 위기를 선언한다. 유럽은 엄밀한 학문성, 진리, 보편성이라는 자신의 이상을 배반하고 있으며, 이미 전체 민족을 역사에서 배제함으로써 그 이상을 스스로 파기했다는 것이다. 『계몽의 변증법』에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1935년 빈 강연에서 제시된 이러한 위기 진단을 언급한다. 더 나아가 후설은 초월론적 역사(transcendental histoy)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는 제국과 유럽 우월주의의 수혜자들에 의해 서술된 역사로부터 교정된 역사여야 한다.

여기서 문제 삼아야 할 후설이 정확히 누구인가에 대한 불안감은 방대한 2차 문헌에서도 지적된다. 에디트슈타인, 마르틴 하이데거, 루트비히 란트그레베, 오이겐 핑크 등 텍스트 재작성에 관여한 협력자들의 역할은 후설 자신의 입장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특히 오이겐 핑크가 후설 저작에서 ‘작동적 개념’과 ‘주체화된 개념’을 구분하며 논의한 작업은 ‘지평’ 개념이 아직 현상학적 · 초월론적 환원에 의해 정초되지 않은 잠정적 개념 약속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 이러한 결과들은 잠정적일 뿐 결정적이지 않으며, 자신의 성과를 확정적 진리로 제시하는 헤겔의 어조와는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아도르노와 후설 사이의 근접성은 오히려 아도르노의 전면적 비판을 자극한다. 동시에 여기서는 아도르노가 후설을 과도하게 이상화된 의식 · 역사 · 의미 개념의 채택자로 오독했을 가능성도 검토되어야 한다. 후설 현상학이 칸트적 초월론적 관념론의 재발명으로 읽히는 지배적 해석과 달리, 후설이 의미와 개념의 경험적, 실재론적 기원을 여전히 인정하고 있었다는 주장 역시 검토 대상이다. 비록 그것들이 집단적으로 구성된 초월론적 의식 영역 안에서 가공되고 처리되더라도, 그것이 단순히 주관적이고 우연적인 인지 과정에서 기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를 필두로 한 마르크스주의적 후설 수용 전통과 더불어, 미셀 앙리의 연구도 주목된다. 앙리는 현상학이 오직 인간 삶의 물질화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생명, 정동(affect), 자기-감응(auto-affection),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내재성을 모든 인간적 사유의 근거이자 원천으로 본다. 인간 신체성의 특수한 물질성을 충분히 탐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 및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는 그의 입장은, 사르트르와 루카치의 마르크스주의와도, 그리고 그들과 논쟁했던 아도르노의 입장과도 교차하며 도전적 의미를 지닌다. 미셀 앙리의 후설 수용은, 아도르노가 전제하는 하이데거 중심의 계승 서사에 대한 도전으로 설정될 수 있다. 아도르노가 주로 1900년에서 1913년 사이의 후설 사유에 초점을 맞춘 반면, 폴 리쾨르, 자크 데리다, 미셀 앙리, 모리스 메를로-퐁티로 이어지는 프랑스 현상학 전통은 내적 시간의식 분석과 신체성의 특수성, 그리고 순간적 현재에 포착되는 직관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의 원초적 자료에 응답하는 과제를 강조했다.

아도르노는 자기몰입에 빠진 실재 인간의 물화된 자기의식을 비판한다. 그에게 초월론적 의식은 현실로부터 스스로를 부재화하는 일종의 환상적 지위로 전락한다. 그것은 빈곤, 비참, 인정의 실패라는 현실의 공동 재난으로부터 면역된 듯한 위치를 전제한다. 무국적 상태로 인한 정치적 박탈은 아도르노 자신과 동시대인들, 예컨대 발터 벤야민과 한나 아렌트가 실제로 경험한 조건이었다. 아도르노는 헤겔 자신의 주장 – 의식은 언제나 주어진 역사적 맥락 속에서만 고찰되어야 한다는 주장 – 에 호소하여 헤겔의 의식 개념을 반박할 수 있다. 20세기의 의식은 대중문화, 매디슨 애비뉴식 광고, 사물의 행정적 관리에 의해 심층적으로 규정된다. 따라서 그것의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성과 공적 영역으로부터의 일정한 후퇴가 요구된다. 반면 후설의 설명은 과도한 추상으로 비판된다. 1807년 헤겔이 『정신현상학』을 출간한 이후 1947년 아도르노가 『미니마 모랄리아』 초고를 완성하기까지의 유럽사는, 실제 의식과 이상적 의식 사이의 간극이 점진적으로 극복되며 자기해방과 계몽이 점진적으로 진전되고 있다는 가설을 확증하기보다는 오히려 반증한다.

위기가 심화되어야만 역사가 다시 해방적 과정으로서의 역사적 유물론을 향해 전환할 것이라는 레닌의 구상은, 아도르노가 사유하고 작업하는 맥락의 또 하나의 차원을 이룬다. 그는 스탈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반대를 위한 주관적 전제 조건, 즉 표준화되지 않은 판단이 고사당하고 있다면, 그런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집단 의식으로서 게속 수행된다. 스탈린은 그저 헛기침만 하면 되고, 그러면 그들은 카프카나 반 고흐를 쓰레기더미 위에 던져버릴 것이다. (국역본, 273쪽)

의식을 탈역사화하려는 후설의 시도와, 역사 과정을 해방과 계몽의 프로그램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긍정하려는 헤겔의 시도는, 20세기에 이르러 ‘역사’ 개념 자체가 문제적이라는 의심이 확산되면서 압박을 받는다. 헤겔과 후설은 모두 철학적 기원의 문제를 다시 제기한 데카르트로 돌아가지만, 데카르트주의 체계의 균열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반면 아도르노는 의식 문제에서 데카르트로 복귀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연장된 실체(res extensa) - 곧 물질 – 로 되돌아가 그것을 사유하는 실체(res cogians)에 종속된 상태로부터 해방시키려 한다. 데카르트적 분석에서 시작된 이러한 종속 구조는 이후 다양한 의식, 자기의식 이론 속으로 이주해왔다. 무엇보다 아도르노는, 이성이 그리스에서 처음, 그리고 17~18세기 유럽에서 다시 결정적으로 진보했다는 유럽 중심적 신화를 강하게 반박한다. 이러한 유럽 우월성 비판은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공동 집필한 『계몽의 변증법』에서 전개된다.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모두에서, 관찰자와 관찰대상을 급진적으로 분리하는 태도 역시 비판 대상이 된다. 객관적 사실이 주어져 있다는 신화가 문제인 것만큼이나, 주체가 중립적, 분리된 위치에 서 있다는 신화 역시 문제이다. 이 점은 트로이 함락 이후 귀한하는 오디세우스의 이미지 분석에서 극적으로 제시된다. 그는 사이렌의 노래를 들으면서 배의 돛대에 자신을 묶어 저항하고, 귀가 막힌 동료들은 계속 노를 젓는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이를 신화와 합리적 노동의 결합으로 해석한다.

2. 탈식민화적인 현상학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도르노는 후설 연구서 『인식론 메티비판 : 후설과 현상학적 모순에 대한 연구』와 『세 편의 헤겔 연구』를 출간했다. 이 두 저작에는 망명 기간 동안 축적된 사유의 퇴적이 분명히 드러난다. 『계몽의 변증법』에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1935년 빈 강연을 기점으로 한 후설의 유럽적 위기 분석을 일정 부분 인정했지만, 이후의 후설 단행본 연구에서는 『논리 연구』에서 1913년의 초월론적 전회로 나아가는 결정적 이동에 다시 주목한다. 아도르노는 이를 관념론의 전환이라는 지배적 해석을 수용한다. 환원 절차를 통해 의식을 맥락으로부터 분리하고, 주어짐(Givenness)과의 더 근본적 연관을 드러내려는 후설의 기획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에게는 자연적 동물로서의 인간, 즉 마르크스가 말한 인간적 본질(Menschenwesen)과 그 자연적 환경에 대한 영향 사이를 인위적으로 절단하는 이데올로기적 분리로 보았다. 특히 이 전환은 계급적 특권, 그리고 출생의 장소와 시간이라는 우연성을 은폐한다. 모든 사람이 과학적 진보에 참여할 수 있는 위치와 기회를 동등하게 가진다는 가정이 이로써 성립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자크 데리다는 『불량배들』에서 후설을 계몽의 유산을 긍정하는 문제적 기획 안에 위치시킨다. 그는 이성의 목적론, 계산과 주권 개념을 강조하는 계몽적 합리성의 계보 속에서 후설을 읽는다. 동시에 1935~1936년의 빈 강연에서 유럽 인류성의 위기를 분석하려 했던 후설의 시도를 상기시킨다. 데리다는 또한, 계몽과 유럽적 합리성 개념이 인간 종을 자연 종들 가운데 특권화하고, 거대한 아시아 대륙의 변두리 곶에 불과한 유럽인에게 문화적 특권을 부여하는 방식을 분석한다. 크리스토프 멘케는 아도르노와 데리다 사이의 교차 지점을, 이성의 부정적 힘에 대한 강조에서 찾는다. 그러나 데리다가 텍스트성의 차연을 통해 전통을 해체하는 반면, 아도르노는 물질과 물질화 개념으로 보다 직접적으로 복귀하려 한다. 아도르노와 데리다 모두 제안하는, 인문과 자연과학의 분리를 선행적으로 해체하는 사유 공간을 오늘날의 기후 재난 맥락과 접속시키는 작업은 아직 충분히 수행되지 않았다. 전체는 진리가 아니라는 테제를 공유하는 부정변증법과 해체적 읽기는, 개념을 조작화하고 존재하지 않는 통일성을 강요하는 실천에 맞서는 상호 얽힌 저항 지점을 형성한다.

아도르노가 헤겔과 후설 모두에 대해 제기하는 두 번째 중대한 반론은, 유럽 역사와 진보 개념, 그리고 암묵적인 유럽 문화 우월성 사이의 연관을 전제한다는 점이다. 그는 유럽 문화와 그 북미적 확장이 부패와 왜곡 속에 빠져 있다고 보았으며, 이에 상응하는 문화적 응답을 요구했다. 그의 시대 독일은 반유대주의로 황폐화되어 있었고, 오늘날까지도 ‘자유의 땅’은 노예제 유산이라는 고유한 인종주의적 구조에 얽매여 있다. 따라서 아도르노는 ‘유럽적임’의 이상화 논리, 그리고 미국 망명 중 관찰한 북미 문화에서 그 논리가 확대되는 양상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한나 아렌트가 전쟁 이후 독일어로 “이곳에는 실제로 자유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쓴 것과 같은 평가를 그는 공유하지 않는다. 아도르노에게 역사적 비판과 용어 비판은 분리될 수 없다. 헤겔 연구에 대한 그의 핵심 반론은, 19세기 초의 맥락에서는 작동했을지 모르나 오늘날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헤겔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입하는 데 있다. ‘개념 속에서 시대를 파악한다’는 발상, 그리고 세계사를 신의 심판으로 이해하는 관념은, 철학과 정치, 역사와 종교의 관계가 전면적으로 변화한 상황 속에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후설에게 유럽 문명은 하나의 이상이며, 이는 ‘칸트적 의미의 이념’을 산출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과제다. 실제로 후설은 1930년대에 나치의 부상과 박해 속에서 이 이상이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1938년 3월 오스트리아 병합 직후, 4월 프라이부르크에서 사망한다. 이에 반해 헤겔에게 유럽 우월성의 이상은 이미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입증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의 선별적 역사 서술에서 중국과 인도 문명은 거의 중요하지 않으며,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문명은 사실상 무시된다. 이러한 서술에서 자본과 식민화에 의한 자연 자원의 체계적 약탈은 유럽의 기술적 우월성의 부패가 아니라 오히려 창의성과 진보의 증거로 간주된다. 『정신현상학』이 출간된 1807년은 영국 의회에서 노예무역폐지법이 통과된 해였으나, 노예제 자체는 1833년이 되어서야 폐지된다. 노예무역과 식민지 수탈이 유럽의 부 축적, 산업화와 기술 혁신의 재원 마련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아직 충분히 연구되고 승인되지 않았다. “우리를 원치 않았다면, 당신들이 직접 면화를 땄어야 했다”는 구호는 그 역사적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헤겔에게 인간의 역사는 곧 역사 일반의 시작이며, 자유의식의 진보라는 관념은 의식의 본질적 특징이다. 그러나 그는 이 범주에서 비유럽인을 배제한다. 이 배제가 인종적 근거를 갖는지 여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후설에게 의식 능력의 발전과 확장은 집단적 과정으로 이해되는 역사적 · 문화적 발전의 표지다. 아도르노는 후설을 부르주아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의식 개념에 묶여 있다고 비판하지만, 후설이 이러한 탐구를 가능케 하는 물질적 · 제도적 조건과 집단적 연구의 이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충분히 평가하지 않는다. 후설에게는 노예가 지적 억압을 극복하고, 플라톤 『메논』의 노예처럼 인식론적 권위에 도달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는 초월론적으로 환원된 의식의 지위, 즉 선입견에서 해방된 의식의 지위로 상승하는 것을 의미한다. 후설은 나치 인종법에 따라 프라이부르크 대학 명예교수 지위를 상실했다. 그러나 그에게 더욱 뼈아팠던 것은 동료 철학자들의 인정의 철회였다. 이는 상호인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헤겔의 분석을 역설적으로 확인한다.

아도르노의 비판은 여러 층위에서 전개된다. 때로 그는 후설과 현상학이 후임자 하이데거의 정치적 선택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것처럼 다룬다. 물론 하이데거가 현존재의 실존론, 세계성, 역사성 개념을 통해 후설의 현상학을 급진적으로 변형시켰음을 후설 자신도 뒤늦게 인식했다. 후설에게 이러한 개념들은 여전히 비판되지 않은 철학적 인간학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생활세계(die Lebenswelt)와 초월론적 역사 개념에서 후설이 전개한 다른 층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1930년대 당시 아도르노는 하이데거에 대한 후설의 불안을 알지 못했지만, 후설 사후 그의 부인 말비네 후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그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아도르노는 기술(記述)에서 초월론적 철학으로의 전환, 범주적 직관에서 본질 직관으로의 이동, 경험적으로 주어진 의식에서 초월론적 의식으로의 이행에 집중하며, 이를 후설 현상학의 필연적 관념론적 성격과 분리 가능한 자아 중심주의의 진리로 간주한다.

아도르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고로 출간된, 1917년부터 1928년 은퇴에 이르기까지 프라이부르크 강의에서 점진적으로 전개된 후설의 사유 발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그 강의들에서는 의식의 구성과 경험적으로 주어진 것과 초월론적으로 주어진 것 사이의 층위 이동이 복잡하고도 세밀하게 분석된다. 아도르노는 본질 직관의 결과와, 그것을 가능케 한느 직관 활동 사이에서 전개되는 상관관계의 관계성을 충분히 드러내지 않는다. 이 직관은 자기 수정적이며, 검토와 수정에 열려 있다. 따라서 후설 사유의 발생사와, 그의 서술 속에 내장된 점진적 정교화와 수정의 누적 과정을 아도르노는 간과한다. 『인식론 메타비판』이라는 제목은 후설 체계를 하나의 확정된 인식론 체계로 전제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는 후설의 현상학을 오직 인식 문제에 한정된 완결된 체계로 오해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이에 비해 데리다는 『후설 철학에서의 발생의 문제』에서 후설 사유의 발생적 전개를 강조한다. 그는 기술적 현상학에서 초월론적 현상학으로의 이행, 그리고 다시 초월론적 차원에서 세계적 의미 발생으로의 이중 운동을 추적한다. 데리다는 ‘발생’과 ‘의미’가 서로 교차적으로 함축하는 키아즘(chiasm)을 형성한다고 본다. 의미 발생은 능동적 · 수동적 종합의 작용 속에서 이루어지며, 동시에 발생의 의미는 역사 속 이론적 이해의 전개를 규정한다. 그는 또한 후설이 의식을 다시 자연화하려는 경향에 대해 비판적이었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후설에게 의식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성취된 것이다. 본질 직관의 결과 역시 고정된 것이 아니다. 데리다는 「기하학의 기원」 번역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우리가 후설에게 제기할 질문은 다음과 같이 될 수 있다. 존재론적 가능성과 동시에 그 의미에 있어서, 변증법과 비변증법의 절대적 변증법을 정초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 변증법 속에서 철학과 존재는 서로를 완전히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서로 안으로 스며들 수 있는가?

여기서 데리다는 철학의 층위와 존재론적 사태의 층위가 여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헤겔과 후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주장했던 것처럼 상호 개방되지 않았다고 가정한다. 1990년 서문에서 데리다는 자신이 1953/54년 텍스트에서 ‘변증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이후에는 이를 차연(différence)이라는 개념 아닌 개념으로 대체했다고 밝힌다. 그는 후설 사유 전체를 하나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전개로 읽는다.

문제는 언제나 기원의 기원적 복잡성, 단순한 것의 최초 오염, 분석이 현상 속에 현전시킬 수 없고 동일한 점적 순간으로 환원할 수 없는 최초의 이탈에 관한 것이다. 이 전체 궤적을 지배하는 질문은 이미 다음과 같다. “어떻게 정초의 기원성이 선험적 종합이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는 이어서 현상학에서 작동하고 있는 일련의 기초적 구별들 속의 불안정성을 지적한다: 초월론적/세속적, 본질적/경험적, 지향적/비지향적, 능동적/수동적, 현전하는/비현전하는, 기원적인/파생적인, 순수한/불순한 등등. 따라서 데리다는 철학과 진리를 위한 절대적 제일 원리 또는 기원을 추구하는 후설의 시도에 대한 아도르노의 비판에 공감한다. 그런데 이 비판은, 역설적으로 현상학자들 자신에 의해 후설의 제일 원리가 여러 방식으로 증식적으로 정식화된다는 점에서 기묘한 확인을 얻게 된다. 데리다는 후설 현상학이 헤겔의 변증법의 유산과 맞물리는 방식을 언급하는데, 그것은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에 대한 논쟁을 경유한다. 이 논쟁은 아도르노가 사르트르와 벌인 논쟁만큼 격렬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후설과 헤겔 사이의 공통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양자를 구별하는 일련의 차이들을 설정하는 것이 데리다와 아도르노 모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정신이라는 개념의 전개는 삼위일체의 세 번째 계기, 즉 성령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왜냐하면 헤겔이 분명히하려고 하듯이, 정신은 신성의 육화가 개념적 차이들의 물질화로 전치되는 매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육화는, 물질로서의 현실화라는 점에서, 헤겔에게는 모든 개념적 구조에 내재하는 운동이다. 개념적 구조들은 규정을 요구하며, 그리하여 개념 안에서 규정적 한정을 제공함으로써 비로소 요구되는 규정성을 획득한다. 헤겔에게 종교 발전의 여러 현상적 증거들은 자연종교에서 표상종교를 거쳐 계시종교로 이행하는 운동을 드러내며, 이는 『정신현상학』의 종결부에서 분석된다. 후설 역시 반복된 순수 기술(記述)의 시도들과 직접적으로 주어진 직관들에 대한 일련의 환원을 통해, 인간이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이해에 도달한다고 보는 점에서 이와 유사한 입장을 취한다. 그런데 그러한 이해는 전통적으로 모든 존재의 창조자라는 점에서 신성에게 부여되어 온 것이다. 주목할 점은 데리다가 종교(Religion)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다른 종교들, 심지어 일신교들 위에 기독교를 유리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질문한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접두사 ‘re-’가 이미 분열된 공동체를 다시 묶는(re-binding) 것을 암시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어떤 지속적 유기적 공동체의 개념과는 다르다. 또한 그는 기독교 안에서 화해를 긍정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은 연기(postponement)하는 의미의 계전(relay) 체계를 지적한다. 이는 ‘최후의 심판’이라 불리는 결정적 사건에서 회복이 기대되지만, 결코 도래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표시한다. 데리다가 탈신화화된 시간의 중단으로서 메시아적인 것과 메시아적 시간을 모색하는 반면, 벤야민에게는 모든 것이 정확히 그대로이면서도 동시에 자기 자신의 신격화로 완전히 변용되는 변용의 순간에 대한 신비주의적 헌신이 남아 있다. 바로 벤야민의 저작들 속 이러한 시간 형상에 대해 데리다는 가장 큰 이의를 제기한다. 데리다와 아도르노 사이의 또 다른 공통점은, 벤야민 사유 안에 남아 있는 이 신비적 요소와 신적 폭력에 대한 그의 개념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인데, 이는 여전히 더 탐구되어야 할 주제이다. 아도르노는 『미니마 모랄리아』 제98절 ‘유산’에서 벤야민의 저작을 다루며, 마지막 절[153절 결론]에서 다시 벤야민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절망에 직면해 있는 철학이 아직도 책임져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사물들을 구원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서술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한다.” 이 가설적 구원 관점과 현실적 화해 개념 사이의 구별은 주목되어야 한다. 이 발언은 헤겔이나 후설보다는 오히려 키르케고르와 벤야민에 대한 아도르노의 독해의 흔적을 더 많이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철학적 유물론을 향하여: 정신과 지평의 유물론적 변증법

후설과 헤겔은 통일성과 완결가능성에 대해 헌신한다. 그것은 단지 원리적으로만 아니라 개념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그러하다. 헤겔의 경우 이는 개념의 운동과 그 필연적인 자기완결적인 구조의 결과로서 그러하며, 후설의 경우에는 존재하는 것의 본질적 구조를 포착하기 위해 기술 체계를 검토하고 발전시키려는 학자들과 사상가들의 노력의 결과로서 그러하다. 아도르노는 바로 이러한 헌신을 문제삼는다. 아도르노에게는 비완결성과 미시적 질서들이 있으며, 이는 그가 말하는 미시학에서 논의된다. 이러한 미시적 질서들은 하나의 포괄적이고 자기완결적인 체계에 의해 포섭될 수 없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개념성이 본래적인 물질적 비동일성을 관리하고, 포장하며, 극복하려는 방식으로 작동된다는 것이다. 다만 ‘비동일성’의 동일성에 대한 우선성이라는 구호는 아도르노가 실제로 제기한 주장들을 정확히 포착하지 못한다는 경고가 필요하다. 아도르노의 주장은 첫째, 관념적 역사를 대신하여 자연사의 개념이 등장한다는 것, 그리고 그와 함께 신적 목적이나 섭리에 대한 잔여적 개념들이 해체된다는 것이다. 둘째, 변증법의 물질화이다. 이는 소크라테스적 문답의 추상적 아포리아와 칸트의 분석에서 나타나는 개념적 이율배반을, 현대 사회의 일상적 삶에서 벌어지는 실제적 갈등으로 대체한다. 이 변증법의 물질화는 아도르노에 따르면 헤겔과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출현하지만, 루카치와 사르트르에게서는 다시 관념론적으로 배반된다. 이것이 그들에 대한 아도르노의 적대감의 일부를 설명한다. 이 물질화는 마르크스가 예상했던 것처럼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갈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과정들 자체의 현실적 물질적 일관성을 인정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점점 더 핵분열, 전이하는 암세포, 자기지속성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체계, DNA와 RNA의 우연적 조직화는 이러한 과정을 상징하는 사례들이다. 지구온난화와 종의 멸종이 초래하는 파괴적 결과들 역시 이 틀에 속한다.

『부정변증법』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는 객체 우선성에 대한 헌신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이는 한편으로 후설과 초월론적 현상학, 다른 한편으로 헤겔과 그의 현상학을 병치하여 읽는 독해를 통해 형성되는 하나의 성좌(Konstellation)로 제시된다. 현상학의 복잡한 발전 경로와 20세기 마르크스주의의 운명을 추적하면서, 아도르노는 1932년 「자연사의 이념」에서 부활된 자연사 개념에 대한 집중으로부터 출발하여, 철학이 원초적 유물론으로 회귀한다는 가설에 이른다. 그러나 이 회귀는 종종 탐구 대상(object)을 물신화하면서 주체성을 그것에 종속시키는 방식 속에 은폐되어 있다. 아도르노는 벤야민의 발명을 그대로 긍정하지 않으며, 자연사와 애도, 메시아주의와 역사의 정지 사이의 연결을 강조하는 벤야민과 차이를 지닌다. 그럼에도 그는 친구이자 스승의 죽음을 기념하면서 그 사유로 되돌아간다. 벤야민에게 있어 후설이나 헤겔을 읽는 것보다 더 긴급한 것은 로렌츠바이크와 보들레르를 읽는 것이다. 철학사에서 주변적 인물처럼 보일 수 있지만, 로젠츠바이크는 세가지 일신교의 관계를 탐구했고 보들레르는 덧없는 구원 개념에 접근했다. “길이요 진리요 빛”이라 선언하는 구세주 대신, 후기 자본주의의 서정시인 보들레르에 대한 벤야민의 분석은 부분적 구성을 통해 자본주의의 진리와 진보 개념과 실제 자연사 사이의 불일치를 드러내려 한다. 보들레르의 제스처로서의 삶은 그 불일치의 상징이다. 아도르노는 벤야민 생전에 이 텍스트를 비판했지만, 벤야민의 자살 이후에는 그를 그러한 덧없는 재난의 증인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64/65년 강연 『역사와 자유의 이론에 관하여』에서 아도르노는 하이데거의 염려(Sorge), 오토 볼노의 안식(Geborgenheit), 루카치의 소외에 대한 비판을 묶어, 사회적 과정 속 집단적 의미 형성과 개인의 자기 동일화 및 자기 긍정 시도 사이의 간극을 파악하지 못한 집단적 실패를 진단한다. 여기서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17번 테제가 인용된다.

역사주의가 보편사에서 그 정점을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유물론적 역사서술은 방법론적으로, 어떠한 다른 종류의 역사보다 바로 이러한 보편사와 비교해 보면 아마 가장 뚜렷이 구별될 것이다. 보편적 세계사는 아무런 이론적 장치도 갖고 있지 않다. 보편사의 방법론은 가산(加算)적이다. 그것은 균질하고 공허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사실의 더미를 모으는 데 급급하다. 유물론적 역사서술은 이와 반대로 하나의 구성의 원칙에 근거를 둔다. 사유에는 생각들의 흐름만이 아니라 생각들의 정지도 포함한다.

사유의 운동과 그 정지의 결합은 벤야민의 변증법적 이미지의 기초를 형성한다. 아도르노는 이에 동의하지 않으며, 이는 벤야민을 후설의 본질직관 개념에 근접하게 만든다.

야만의 기록이 아닌 문화의 기록이란 결코 없다. 그리고 문화의 기록 자체가 야만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그것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간 전승의 과정 역시 야만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역사적 유물론자는 가능한 한도 내에서 그러한 전승을 비켜선다. 그는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본다. [7번 테제]

각 인간은 이러한 개선 행렬의 미시적 우주이다. 일부는 포로, 일부는 승자로서, 수탈 체계의 야만성과 문화적 전리품을 동시에 상속받는다. 이 강연들은 『부정변증법』에서 형식화될 사유를 준비한다. 그곳에서 헤겔의 정신 개념은 강한 개념과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신화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부정변증법』에서 아도르노는 이러한 여러 가닥들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풀어헤친다. 부분적으로는 벤야민의 도움을 받아 그러하며, 그의 판정은 가혹하다:

헤겔은 역사의 한가운데서 불변성, 항등성, 과정의 동일성을 편들며, 그것의 총체성이 구원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말 그대로 그가 역사신화론에 빠져 있다고 비판할 수 있다. (국역본, 462쪽)

의미 또는 감각으로 지탱되는 통일적 지평에 관한 후설의 추정은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에 의해 문제화되지만, 아도르노는 존재와 역사에 대한 하이데거의 개념들이 지닌 추상성에 대해 성급함을 드러낸다. 그는 최소한 『부정변증법』에서는 의미와 지평을 정식화하려는 후설의 시도에 대해 더 많은 인내심을 보인다. 왜냐하면 아도르노에게 있어 하이데거의 역사성 개념, 즉 그 담지자를 그의 역사에 의해 실존적으로 표지하는 개념은 모든 역사적 내용을 제거당한 채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연화된 역사 개념이지만, 신화적 운명, 곧 명백한 운명, 신적 안배, 숙명과 유사한 것이다. 이는 아도르노의 자연사 개념과 대조된다. 요약하자면, 후설의 절차에 대한 아도르노의 중심적 반론은 이중적이다. 첫째, 주어진 본질에 대한 직접적 접근이라는 관념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둘째, 접근해야 할 어떤 규정적 내용이 이미 존재한다는 전제 역시 문제적이다.

아도르노에게 규정된 내용은 형성 과정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생산 과정에 비유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생산이라는 것은 그 생산에 필요한 장비와 생산 모델이 이미 준비되어 있고 과제에 적합하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후설을 이러한 반론으로부터 구출(rescue)하려면, 역사(이성적 역사이든 자연사이든)에 선행하여 미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형성 과정 안에 있는 본질을 사유하고 주제화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명백히 말할 수는 없지만, 오이겐 핑크가 현상학에서 제시한 작동적 개념과 주제화된 개념의 구별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존재하는 것이 질서 있고, 의미 있으며, 통일적 설명의 기초를 제공한다는 전제는 아도르노의 저작 전반에 걸쳐 문제화된다. 오히려 우리가 서술해야 할 것은 자기명증성을 결여하고, 동일성 조건을 갖지 않으며, 필연적 응집성이나 일관성도 보장하지 않는 복합적 구조이다. 설령 자기명증성, 규정된 동일성 조건, 응집성과 일관성이 존재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관리되는 사회의 힘들은 존재하는 것에 대한 명확하고 분명한 관념을 획득하는 것을 가리고, 혼란시키며, 방해하고, 저지할 수 있다. 그리고 아도르노에 따르면 관리되는 사회는 자기보존적이고 자기유지의 구조 속에서 자신의 존속을 촉진하고, 비판을 거부하도록 체계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후설 독해에서 전개된 반론들은 헤겔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이해하는 데에도 적용될 수 있다. 20세기에 결정적으로 출현한 사회 조직 형태로서의 관리되는 사회의 핵심 특징은 공적 공간으로부터 정치적 논쟁과 비판의 차원을 박탈하고, 변혁의 잠재성을 제거하는 경향이다. 그 대신 비판과 논쟁의 여지를 최소화하도록 설계된 관료적 정상화 절차가 설치된다. 이러한 관리되는 사회의 특징들은 또한 헤겔이 정신의 자기완결적 이해가능성의 논리 속에서 의미와 질서의 필연적 현현으로서 이론화했던 개념적 완결을 차단한다. 관리되는 사회는 네 번째 계기로서 스스로를 부과하며, 변증법적 화해의 운동을 정지시키거나 지연시킨다. 이 화해는 『법철학』에서 즉자성으로서 가족에 주어지고, 시민사회에서 자기소외되며, 공적 규제(경찰)와 법인체의 특수화 힘 속에서 전개된 뒤, 민족국가의 긍정 속에서 보편적 의미로 재통합되는 과정으로 분석되었다. 그러나 아도르노에게 있어 후설과 헤겔의 저작들은 또 다른 미덕을 지닌다. 그것은 의미의 분열, 개념과 개념적 작업의 재배치, 이념과 개념의 노동이 필연적으로 물질적 형태를 취하며, 순수 추상의 지위를 상실한다는 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헤겔의 개념과 후설의 의미 지평이다.

이처럼 계승된 추상이 물질화되는 과정, 곧 계승된 철학적 용어들이 행사하는 구속력과 그것들이 문화 제도 형성에 수행하는 역할을 분석하는 것이 아도르노에게 중요하다. 이는 실증주의의 물신성과 정치경제학적 수탈의 폭력에 대한 이해 없이 사회 질서의 표면 아래에서 전개되는 철학사 서술로부터 의미를 구출하는 과제의 일부이다. 따라서 후설과 헤겔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순전히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일종의 현상학의 형태를 띤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들 자신의 의도와는 반대로, 철학적 유물론에 대한 헌신이 그들 저작 안에서 어떻게 출현하는지를 추적하기 때문이다. 이 저작들은 개념성의 발전 속에서의 역사적 과정을 드러내며, 필연성, 보편성, 완결성을 증명하려 했던 야심 대신 우연성, 제한성, 특수성을 드러내도록 자극을 제공한다. 『부정변증법』은 이처럼 이중의 내재적 비판의 과정으로 도달하며, 그 결과의 범위에 관해서는 제한된 야심의 필요성에 대한 교훈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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