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P <Truth> 문서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설명이 재밌네요

Truth 문서의 Coherence Theories 설명 부분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coherence theory의 가장 최근 형태 중 하나로 소개합니다.

문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형식으로 설명합니다.

coherence theory of truth에서 그 명제가 참이라고 주장한다 iff 그 명제가 ___와 정합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빈칸에 “자신이 속한 사회 대다수 사람들의 믿음”을 넣을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지식인들의 믿음들”을 넣을 수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급진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은, 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실제로 참인 것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관점을 갖는 사람들에 따르면 영향력 있는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협상이 진리를 구성한다고 하네요. 인간이 무엇이 참인지를 결정하고, 합의가 곧 진리이며,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결합체라고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학자들은 [인간에게는 초자아가 있다]는 명제가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들에 의해 구성된 것이며, 따라서 이 명제가 참이라는 데 비교적 쉽게 동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물리학자 같은 사람들은, 어떤 명제의 참/거짓을 결정하는 기준이 저명한 학자들의 합의의 산물이 아니라, 그 명제가 객관적 현실을 정확히 기술하는가를 중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요컨대 물리학자들은 현실이 명성, 사회적 영향력보다 우위에 있다는 관점이라네요.

포스트모더니즘을 진리 이론의 일종으로 설명하는 것이 독특하네요...이러한 설명이 자주있는 편인가요? 이 설명 방식이 좋은 방식인지, 또 실제로 자주 사용되는 설명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간극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는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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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가 「진리와 정당화」라는 논문에서 로티의 신실용주의를 이런 식으로 비판하기는 합니다. 명제와 실재 사이의 관계를 통해 규정되어야 하는 '진리(참)'와 사회적 토의를 통해 규정되어야 하는 '정당화'는 서로 다른 층위인데, 로티의 신실용주의는 그 두 가지를 구분하지 못한 채 '진리'를 '정당화'로 환원시키고 있다는 비판이죠. 로티가 생전에 데리다와 함께 '포스트모던' 운동의 선구자로 일컬어졌던 것을 고려해 본다면, 로티에 대한 하버마스의 저 비판을 '포스트모던' 운동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다만, 정작 로티 자신은 이러한 식의 비판이 자신의 철학에 대한 오해라고 강력하게 반발합니다. 실제로, 로티가 대응론적 진리 개념을 거부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리 개념을 '정합성'으로 재규정하고자 시도하거나, 진리 개념 자체를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서요. 좀 더 세분화해서 말하자면,

(1) 로티는 "참(true)"이 무엇인지를 특정한 이론에 따라 정의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언제나 특정한 '형이상학'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S is true if and only if P"에서 P의 자리에 무엇을 집어 넣든지 P를 해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존재론적 개입에 빠지게 되고, 그에 따라 실재가 존재한다는 입장이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구체적으로 논증해야 하는 책임을 짊어지게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로티의 신실용주의는 애초에 모든 종류의 형이상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입장이다 보니, "실재가 존재하고, 진리는 명제와 실재 사이의 일치이다."라는 '실재론적' 주장을 거부하는 것만큼이나 "실재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는 명제와 실재 사이의 일치가 아니다."라는 '반실재론적' 주장도 거부합니다. 실재론만큼이나 반실재론도 '형이상학'인 만큼, 그 두 가지 입장 모두를 다 극복하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할 때에야 진정한 '형이상학의 극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거죠.

(2) 로티의 신실용주의는 사회적 활동과 분리된 실재 그 자체를 상정하려는 입장에 대해 비판을 제기합니다. 그러한 실재가 정말로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를 떠나서, 적어도 그러한 실재를 마치 자명한 것처럼 전제한 상태에서 철학을 시작하려는 시도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로티에게 '참'은 실재와의 대응을 바탕으로 정의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우선적으로는 특정한 명제가 특정한 사회 공동체 내부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태일 뿐입니다. 실재를 상정하지 않은 채 일단 우리가 "참"이라는 형용사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에만 주목한다면, "참"은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명제들을 표현하는 '승인적 형용사(approbative adjective)'라는 거죠. "S는 참이다."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는 S라는 명제가 승인되고 있다."라는 말로 우선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3) 그러나 이러한 로티의 입장이 반드시 '참'을 사회적 승인으로 환원시키는 입장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로티가 제시하고자 하는 주장은, "진리 대응론이 틀렸으니, '참'이란 사회적 승인을 바탕으로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명제가 참인 명제이다."와 같은 적극적 진리론이 아니라, "현재로서는, 이러저러한 명제들을 우리 사회가 '참'이라는 명칭으로 승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참'이라고 말하는 것의 기준이나 내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른다."와 같은 소극적 진리론이라서요. 말하자면, 로티는 "참"이라는 형용사가 '주의를 촉구하는 사용(cautionary use of true)'을 지닌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참"이라고 말할 때, 그 말을 아주 절대적이고 확실한 근거에 따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거죠. 단지, "우리는 그 명제를 현재로서는 승인한다."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고, 그 명제가 앞으로 어떠한 지위의 변화를 겪을지에 대해서는 우리로서는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에, '참'에 대한 완결적인 이론을 구성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리고 바로 이런 맥락에서 (a) 로티는 진리 대응론에 반대하면서도, (b) "진리"나 "참"을 특정한 기준에 따라 정의하는 이론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것이고요.

리처드 로티의 「실용주의와 철학」
https://blog.naver.com/1019milk/220944732881

리처드 로티의 「힐러리 퍼트남과 상대주의의 위협」
https://blog.naver.com/1019milk/22146530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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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러운 답변 감사합니다! 평소 실용주의에 대해서도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덕분에 좋은 글을 보게 됐네요.

@YOUN 님의 댓글을 보니, 로티의 신실용주의에 대한 하버마스식 비판을 ‘포스트모던’ 운동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넓혀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겠네요. 또 그런 비판이 로티 철학에 대한 오해일 수 있다는 점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네요.

저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협상이 진리를 구성한다”라는 설명에서, ‘사회적 협상’보다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라는 부분이 더 강조되는 듯한 인상을 받았었어요. 그래서 정치적·문화적 권력 구조에 의해 '진리는 구성는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했었습니다. 제게는 이런 해석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근대적 이성·합리성 비판과도 더 잘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제 부족한 식견으로는 아직 포스트모더니즘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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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보고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원문을 확인해보니 실제로 말씀대로 되어 있네요.

they claim that the social negotiations among influential people “construct” the truth.

그런데 제가 보기엔 위 설명은 부적절한 측면이 좀 있습니다. 우선, 진리를 구성하는 쪽이 "people"이라고 단정 짓기 힘들다는 생각이 드네요. 포스트모더니즘이 일종의 구체적인 실체 없는 권력 구조(권력을 행사하는 특정한 행위자 없거나/불확실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를 강조하는 입장이라는 점을 반영하면, 권력을 구성하는 쪽은 인간 개인/집단 그리고 사회-정치-문화적 권력 구조이기도 해서요.
진리를 구성하는 자들은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더라도, 그들이 진리를 구성하는 방식/매개체가 "social negotiations"라는 점도 좀 걸리네요. 물론 권력을 지닌 개인/집단이 진리를 구성하는 한 방식이 협상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어도, 그 외의 방식(예를 들어, 한 쪽이 파워 게임에서 승자가 되어 진리를 결정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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