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시간: 한충수의 「하이데거의 “존재의 시간”에로 (i): 그의 『존재와 시간』을 중심으로」에 대하여

(1) 한충수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국내의 젊은 하이데거 연구자들 중에서 제일 주목할 만한 분들 중 한 명이 아닐까 한다. 우연히 이분이 박사과정 2학년 때 쓰신 「하이데거의 “존재의 시간”에로 (I): 그의 『존재와 시간』을 중심으로」이라는 논문을 읽었는데, 상당히 잘 쓰셨다. 그래서 어떤 분이신가 하고 찾아 보았는데, 하이데거의 『철학의 근본 물음: 논리학의 주요문제』도 번역하셨고, A&HCI급 학술지에 하이데거와 관련된 논문들도 영어와 독일어로 여러 편 게재하셨다. 다른 논문들 중에서도 내가 평소에 관심 가지고 있던 내용들이 있어서 나중에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2) 나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순간(Augenblick)'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말하자면, "존재와 시간"이라는 표현에서의 '시간(Zeit)'이란 바로 이 '순간' 개념과 동일시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하이데거는 자신이 말하는 '시간'이 현존재의 시간적 구조로서 '시간성(Zeitlichkeit)'이라고 텍스트상에서 명시적으로 쓰고 있지만, 바로 그 시간성이 '시간화(Zeitigen)'할 때 주어지는 본래적인 시간이 '순간'이기 때문에, 그리고 '시간성'이란 결국 '도래', '기재', '현재'라고 일컬어지는 탈자태들이 통일성을 이루면서 시간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시간화하고 있는 시간성이란 결국 순간과 다른 것이 아니라고 본다.

(3) 그런데 바로 이 내용을 한충수 선생님이 자신의 논문에서 그대로 강조하고 있어서 참 반가웠다. 사실, '순간' 개념은 하이데거의 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데도 정작 『존재와 시간』에서 이 개념의 지위를 제대로 분석하는 연구서나 논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정말 많은 글들이, 『존재와 시간』 제2편의 내용을 꼼꼼하게 독해하면서 '시간성' 개념을 해명하기보다는, '죽음을 향한 존재'와 '결단성' 같은 개념들을 맥락 없이 제시하여 하이데거가 말하는 시간의 의미를 대충 얼버무려버린다. (대중적인 하이데거 해설서들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드레이퍼스의 뛰어난 연구서인 『세계-내-존재』조차, 『존재와 시간』 제2편이 지닌 의의를 다소 무시하면서 책 말미에 부록의 형태로만 이 부분을 다룰 뿐이다. 드레이퍼스의 제자인 블라트너의 해설서 역시 제2편에서 시간성 개념이 지닌 의미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4) 한충수 선생님이 『철학에의 기여』를 인용하면서 '순간'을 "존재의 시간"으로 표현하신 부분도 정말 공감이 되었다. 지도교수님이 종종 이야기하신 내용 중에 철학자들이 "와(and)"라는 표현을 너무 무책임하게 사용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존재와 시간", "존재와 무", "진리와 방법", "말과 사물", "목소리와 현상", "차이와 반복"처럼, 책 제목을 지을 때 두 개념 사이의 구체적인 관계를 드러내지 않은 상태로 단순히 두 개념을 "와"라는 연결사로 느슨하게만 묶는 것이 불만스럽다는 지적이었다. 나도 이런 지적에 공감을 해서, "존재와 시간"이라는 제목이 사실 "존재의 시간"이나 "존재의 순간" 정도로 바뀌어야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혼자만의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한충수 선생님은 실제로 하이데거가 순간 개념을 『철학에의 기여』에서 "존재의 시간"이라고 사용했다는 구체적인 텍스트 전거를 제시해주셔서, 논문을 읽으면서 상당히 놀랐다.

(5) 그런데 이 논문이 2008년에 한국하이데거학회에서 출판되어서 나온지가 벌써 13년이 지났는데도, 왜 후속작으로 예정되었던 「하이데거의 “존재의 시간”에로 (II)」가 쓰이지 않은 것인지 궁금하다. 그 사이에 순간 개념에 대한 해석에서 오류를 발견하신 것인지, 다른 주제로 관심 분야가 바뀌신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개인 사정 때문에 바빠서 후속작을 못 쓰시다가 시간이 너무 지나서 글을 이어 쓰시기가 부담스러워지신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미완성인 이 글만으로도 상당히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직접 뵙고서 하이데거 해석에 대해 이것저것 여쭤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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