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 현상학의 일반적 입문 - 『이념들 i』을 중심으로 1: 본질의 유형학」

  1. 서론
    에드문트 후설의 초월론적 현상학의 뿌리는 『논리 연구 II』의 이른바 '기술적 현상학'에서 찾을 수 있으며, 또 그것의 뿌리는 『논리 연구 I』의 심리학주의 비판으로 거슬러올라간다. 후설이 그의 주저 『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1』의 시작을 "사실과 본질인식"이라는 표제 아래 범주론적 본질이론을 전개하며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로 후설의 초월론적 현상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선 현상학에서의 본질이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 시기적 구분 또한 사실상 의미가 없는데, 왜냐하면 후설은 『논리 연구』이래로 입장을 크게 변경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것의 제1권에도 타당한데, 왜냐하면 후설의 현상학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된 '범주적 오류의 지적'을, 그리고 '상대주의와 회의주의 비판'을 근본과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후설의 『논리 연구』와 『이념들 I』을 중심으로 그의 본질 이론을 설명하고자 한다.

  2. 『논리 연구 I』에서 심리학주의 비판
    후설의 현상학적 철학의 뿌리인 심리학주의 비판으로 되돌아가 그 궁극적 의미를 묻는(rückfrage) 방식이 필요하다.
    라이프치히 대학교와 베를린 대학에서 후설은 물리학, 천문학, 수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수학자의 길에 들어선다. 그러나 그는 빈 대학교의 프란츠 브렌타노에게 큰 감명을 받고 철학의 길로 전향하게 된다. 이때 그의 첫 철학적 저작이 「수 개념에 관한 심리학적 분석」(1887)이며, 이는 나중에 『산술철학』(1891)으로 출판된다. 이때 후설의 방법은 당대 심리학주의 경향에 참여해 수학의 기초를 심리학적 작용에서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레게 등의 수학철학자들에 의해 그의 작업은 '심리학주의'라고 비판되고, 이것은 후설이 자신의 입장을 반성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따라서 그의 『논리 연구 I』(1900)은 일종의 자기반성의 시도로 볼 수 있다. 여기서 후설은 자신의 이전 입장이기도 했던 심리학주의, 즉 논리법칙을 심리법칙으로 환원하고자 하는 심리학적 환원주의에 맞서서 순수 논리학을 그 본질성격에서 정초하고자 시도한다. 이때 나타나는 구분이 '이념성'과 '실재성'이다. 그는 심리학주의가 이 두 범주를 혼동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여기서 우리는 후설의 초기 입장이 반-철학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에서도 그의 목표는 "순수 논리학과 인식론에 새로운 토대를 부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념성은 무시간적이고 영원하다. 그것은 또한 반복가능성으로 특징지어진다. 가령 '5+3=8'은 언제나 참이며 언제나 같은 의미로 반복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실재성은 시간적이며 반복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우유를 마시고 기쁨을 맛본다'는 주관적 작용은 완전히 동일하게 반복될 수 없으며, 전적으로 시간적이다. 그러나 심리학주의자들은 이념적인 논리학의 진리를 심리적 작용으로 환원하고자 하는 오류를 범한다. 여기서 그들의 또 하나의 범주 오류가 나타나는데, 바로 대상과 작용의 혼동이다. 작용은 주관적이다. 그것은 시간적이고 반복 불가능하다는 점은 물론이고 공유 불가능성으로도 특징지어진다. 그래서 만일 심리학주의자들의 주장대로 논리법칙이 심리작용으로 환원될 수 있다면, 우리는 논리법칙을 상호주관적으로 공유하지 못하게 되어 소통 또한 불가능해진다. 이것은 결국 회의주의로 귀결되는데, 여기서 후설의 회의주의 돌파라는 과제는 그의 마지막 저작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게 된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여기서 후설이 두 범주 간의 혼동을 방지하고 둘을 엄밀히 구별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후술할『이념들 I』에서 나타나는 내재와 초재의 구별, 작용과 의미의 구별로 이어진다.

  3. 『이념들 I』에서의 본질이론의 기초
    후설의 작업은 1년 후 "현상학과 인식론 연구" 및 "인식에 대한 현상학적 해명의 기초"로 이행한다. 따라서 이 제2권은 전작에 비해 인식론철학적인 성격을 강하게 띤다. 우선 논의에 앞서, 나는 『이념들 I』에서 전개되는 본질이론의 내용적 차이를 무시하고자 한다. 여기서 문제시되는 것은 그러한 시기상의 내용적 차이가 아니라, 후설 현상학 전반에 깔려 있는 밑바탕이기 때문이다.
    우선 후설의 이러한 작업의 바탕에는 두 가지 전제가 깔려 있는데, 먼저 사실과 본질의 구분이 있다. 이 구별은 '경험(사실)과학'과 '본질과학' 간의 차이에서 명백해진다. "경험작용을 기초짓는 인식작용은 실재적인 것을 '개별적으로' 정립하며, 이것을 공간-시간적으로 현존하는 것으로, 즉 자신의 지속을 갖는 이 시간위치에서 존재하는 것으로"(『이념들 I』 61쪽) 정립한다. 이런 존재는 '우연적'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달리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언급된 이 말은 곧 우연적인 것에는 비우연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실 아래에 본질이 있다. 따라서 "어떤 본질과 따라서 순수하게 파악 가능한 어떤 형상을 갖는다는 것은 모든 우연적인 것의 의미에 속한다"(같은 책, 62쪽). 그것은 단순히 개별적인 것, '여기의 이것(Dies da)'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자신의 성질을 지닌다. 이로부터 본질의 '보편성'이 지시될 수 있고, 그것은 다른 개체가 그 본질에 속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이행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본질뿐만 아니라 본질의 '영역'을 가질 수 있다.
    이에 따르는 두 번째 전제는 우리가 본질을 '직관'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 이것은 인식에는 명석함의 단계가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모든 실재성에 타당하다. 본질직관에 주어진 것은 순수한 본질이다. 이것은 본질을 파악하여 대상을 원본적으로 부여하는 직관이다. 이때 이 본질직관의 과정에는 '이념화작용' 내지 '상상변양'이 속하는데, 이에 관해 짧게 알아보도록 하자.
    이념화작용 또는 상상변양은 주어진 경험적 대상을 본질대상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그 대상을 그것의 본질로 환원하는 작업이다. 예컨대 눈 앞의 빨간 사과 하나를 보고 있다고 하자. 우리는 그것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과연 '사과를 사과이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본다. 그것은 그 사과로부터 여러 속성을 도출해내도록 한다. 빨간색, 둥긂, 그것의 맛 등등. 이때 우리는 그것을 상상 '속에서' 변양을 가해볼 수 있는데, 말하자면 초록색 사과를 생각해보거나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계속되면 우리는 끝내 사과의 본질형태, 즉 '달콤한 맛이 나며 원형의 사과'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 본질직관의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그의 현상학적 작업 전체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가령 그가 인식작용에서 초재적 인식의 본질을 사유할 때, 개별적 인식에서 인식의 본질적 성격을 이끌어낸다. 이는 후설의 본질이론 및 『논리 연구』시기가 결코 이른바 '초월론적 현상학 시기'로부터 떼어내질 수 없음을 뜻한다. 더 강하게 말해서, 후설의 흔히 구분된 세 시기, 즉 '기술적 시기'와 '초월론적 시기' 그리고 '생활세계 시기'는 하나의 바탕 위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이 셋은 서로 떼어내질 수 있는 '전회'가 아니다.
    후설의 본질이론에서는 전통적인 논리학을 복원하고자 하는 시도가 보인다. 그는 먼저 기체(substrat) 개념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먼저 판단작용에는 대상이 있다. 작용은 언제나 무엇에 관한 작용이다. 이것이 바로 지향성의 특징이다. 그런데 그 대상은 더 높은 단계, 다시 말하면 더 낮은 층으로 소급될 수 있다. 그것은 최초의 대상 내지 가장 낮은 단계의 대상이다. 이것이 본질탐구의 영역이다. 이것에 반해 구문론적 대상성은 인식의 형성물이며, 이는 사실탐구의 영역적 대상이다. 후설이 말하듯이, 현상학자는 "어떤 구문론적 형식화도 내포하지 않는 궁극적 명사, 즉 궁극적 기체로 필연적으로 되돌아간다"(같은 책, 84쪽).

  4. 본질의 유형학
    후설의 본질이론은 전통 논리학의 개념인 유와 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은 사실과 본질의 위계관계에서 자연스레 따라나오는 귀결이다. 즉, 그는 일반성과 특수성을 구별한다. 맨 아래에는 가장 낮은 종차 또는 형상적 단일성이 있고, 맨 위에는 최고 유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때 '본질'이라는 명칭을 유적인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후설이 말하듯이 "모든 형식적-존재론적 범주를, 그 최고 유를 '형식적-존재론적 범주 일반'이라는 본질 속에 갖는 형상적 단일성이라 해야 한다"(『이념들 I』 87쪽).
    이제 그는 실질적 기체와 앞서 말한 공허한 기체의 구별을 시작한다. 여기서 그는 "개체"의 다른 정의를 시도하는데, "추상물(abstractum)이라고 불리는 의존적인 본질과 구체물(concretum)이라고 불리는 절대적으로 독립적인 본질"(같은 책, 91쪽)에서 구체물만을 본질적 개체로 삼는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Claudio Majolino, 개별자와 존재영역: 후설의 "머리 없는" 존재론의 원리를 통일하는 것에 관하여」참조). 이때 그가 사용하는 그리스어 "여기에 있는 이것(tode ti)"은 개체(individuum)라고 불리는 구체물이다. 이는 궁극적 본질에 대립되지만, 그것이야말로 현상학의 출발점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현상학의 방법을 특수자에서 본질을 이끌어 내려는 시도로 요약할 수도 있다. 현상학의 대상인 구체물은 형상적 단일성이다. 그런데 그 형상적 단일성은 또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으로 나뉜다. 이것에 상응하여 추상적 유와 구체적 유가 있는데, 전자는 실재적인 것, 즉 감성적으로 충족되어 나타나는 것이고, 후자는 공간형태, 시각적 성질 등의 것이다. 이 유와 종 이론으로부터 본질이론적 '영역'개념이 나타난다. 이것은 "분석적으로"(같은 책, 92쪽) 정의되는데, 그것은 "어떤 구체물에 속한 최고 유의 전체 통일체"를 뜻한다. 후설은 거듭해서 어떤 개체가 그 본질영역을 '미리 지시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현상학이 가능하기 위한 본질적인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형식적 존재론과 질료적 존재론에 대한 후설의 새 구별이 생긴다. 형식적 존재론은 본질 '일반'에 관계하는 것이고, 질료적 존재론은 그 '영역'의 본질에 관계하는 것이다. 이때 후설의 현상학이 후자에만 편향되어 있다고 그릇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실로 후설의 현상학적 철학은 그 양쪽 모두를 포괄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순수논리학의 토대 위에, 순수논리학으로부터 출발하는 모든 가능한 인식 또는 인식의 대상성에서 근본체제의 부분"(『이념들 I』 94쪽)으로 이행하게 되었다. 여기서 개체들은 "아프리오리한 종합적 원리 아래 개념과 법칙에 따라 규정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경험적 학문은 "이 영역적 존재론에 근거해야 한다". 그래서 과제는 다음과 같다. 즉 "직관의 범위 속에 구체화의 최고 유를 규정하는 것"(같은 곳)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아주 명백하다. 곧 이것은 서로 다른 존재영역을 엄밀히 구별함을 의미한다. 후설의 현상학은 처음부터 이런 범주 오류 지적과 해결을 과제이념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5. 현상학에서의 본질이론의 현현
    그렇다면 이제 『이념들 I』의 본론 그리고 다른 현상학적 저작들에서 위에서 언급한 본질이론이 어떻게 직간접적으로 나타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제일 먼저 우리는 그의 마지막 저작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저작에서 후설은 두 가지 본질영역을 구별한다. 바로 자연과학의 학문영역과 철학의 학문영역 그리고 다른 경험과학들의 학문영역이 그것이다. 이는 초기 후설이 심리학주의를 논박한 것처럼 당대 과학적 환원주의를 직접적으로 격파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왜냐하면 과학적 환원주의는 철학과 다른 학문들을 이른바 회의주의로 이끈 주범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의주의를 철학의 엄밀한 이념에 대립되는 것으로 본 그로써는 이에 필연적으로 반론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먼저 과학적 환원주의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과학적 환원주의는 우리 세계의 모든 학문적 대상들을 단 하나의 방법, 즉 자연과학적 방법론으로 탐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대상을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획일화하고자 하는 사조이다. 이는 "자연의 수학화"(『위기』 95쪽)이며 그 주범은 다름아닌 갈릴레이다. 후설은 갈릴레이의 학문적 도정을 추적해가며 그가 자연적 대상들에 수학적 정밀성(Exaktheit)을 원했으며, 따라서 그의 측정술로서 대상들을 수학적 기하학적 대상으로 환원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 자연과학적 환원주의자들은 이것을 "참된 자연을 인식하는 방법"이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후설이 지적하는 것은 그들이 본질범주의 혼동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논의에 따르면 그들이 망각한 것은 선과학적 세계인 "생활세계"이다. "수학과 수학적 자연과학'이라는 이념의 옷 또는 이것에 대해 상징적-수학적 이론들의 상징의 옷(Kleid der Symbole)은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교양인들에게 객관적으로 현 실적이며 참된 자연인 생활세계를 대표하고, 생활세계를 분장시키는 모든 것을 포괄한 다. 이 이념의 옷은 하나의 방법(eine Methode)에 지나지 않는 것을 참된 존재 (wahres Sein)로 간주하게 한다. 게다가 그 방법도 생활세계에서 실제로 경험된 것이거나 경험할 수 있는 것 안에서 근원적으로 유일하게 가능한 조잡한 예견들을 '과학적' 예견들로 무한히 진보하는 과정에서 개량하기 위한 것이다. 이념의 옷을 입힘으로써 방법 · 공식. '이론'의 본래 의미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되었고, 방법이 소박하게 형성되는 경우 결코 이해할 수 없게끔 되었다"(같은 책, 136쪽) 그들은 학문들의 다양한 본질영역을 무시하고 하나의 방법 아래 통합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의 대가는 회의주의와 "유럽학문의 위기"로 귀결된다.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사실인간"만이 나타나며 인간의 이성이 의문시되는 원인이다.
    여기서 후설의 처방은 물론 두 가지 영역범주를 구별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사실경험의 영역과 본질의 영역이 그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그는 철학에 자리를 내어 주는 한편 자연과학 및 여타 학문의 객관적 타당성을 승인한다.
    우리가 두 번째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탐구해볼 수 있는 곳은 『이념들 I』에서의 대상과 의미의 구분이다. 후설의 이 기획의 배경에는 지향성 이론에 대한 이전의 오해들이 결부되어 있다. 후설이 『논리 연구』를 집필하던 시기에 브렌타노의 지향성은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이때 특히 의식의 지향성에서 그 대상은 실제 사물과 동일하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들의 주장은 얼핏 들으면 타당해 보인다. 실로 우리는 저 실제 컵을 보는 것이지 어떤 다른 것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해석은 아주 큰 결함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실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의식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나는 여기에는 없는 추억 속 작은 집을 회상하기도 하고, 아예 존재하지 않는 괴물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해석은 현실에 부딫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다음의 해석은 지향성이 순수 내재적 작용이라는 주장이다. 즉 나의 마음속 내부의 대상을 나는 지향한다. 그러나 이 해석 또한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는데, 앞선 심리학주의 비판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어떤 작용의 대상/의미는 반복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소통은 아예 불가능해질 것이니 말이다. 따라서 이 주장도 현실에 의해 무너지게 된다.
    후설은 결과적으로 지향성을 '의미를 향하는 초월적 작용'으로 본다. 이때 이것이 '초월적'임에도 주의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의미'에 관련된다는 점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후설에게 있어서 인식작용은 노에마(noema)와 노에시스(noesis)로 양분된다. 이때 전자는 인식대상을, 후자는 인식작용이라고 불릴 수 있다. 그런데 왜 사물이 아니라 의미에 대한 지향인가?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식하는 것은 오로지 의미를 통해서이며, 따라서 본질적으로 인식의 사물은 하나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의미라는 명칭을 통해 우리는 내실적이지 않은 구성요소까지 지시할 수 있다"(『이념들 I』308쪽). 이렇게 하면 어떻게 동일한 대상이 상이한 의미양상에서 나타날 수 있는지도 명백해진다. 후설의 유명한 예시가 말해주듯이, "실제 나무는 탈 수 있지만 나무라는 의미는 탈 수 없다"(같은 책, 311쪽). 이 구별이 중요한 이유는, 의미와 사물의 혼동이 많은 철학적 혼란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설의 현상학적 본질분석을 통해 이 또한 해결될 수 있다.

  6. 결론
    후설의 현상학적 작업의 근저에는 그의 본질이론이 있다. 따라서 『논리 연구』와『이념들 I』의 제1부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책이며, 우리는 그 연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후설의 본질이론이야말로 현상학에 올바르게 입문하는 길의 첫 번째 도정인 것이다.

참고문헌
에드문트 후설, 『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1』 이종훈 옮김, 한길사, 2021
에드문트 후설,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이종훈 옮김, 한길사, 2016
Claudio Majolino, 「Individumm and region of being: On the unifying principle of Husserl's "headless" ontology」 『Commentary on Husserls Ideas I』 De gruyt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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