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re Individual Wills Differentiated in Schopenhauer?

쇼펜하우어의 개인의지는 흥미로우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예전에 냈던 주간과제에 제가 이해한 바를 써서 냈었는데, 평도 좋았고 더 작업할 것 같지도 않아서 올려요.

How Are Individual Wills Differentiated?

In his World as Will and Representation, Schopenhauer says that “time and space are … the principium individuationis” (WWR I §23, pg. 137), meaning that things are individuated through time and space. But this claim generates a puzzle: individual wills, for Schopenhauer, are neither spatial nor temporal, but there are multiple individual wills. But if individual wills are not spatiotemporal, how can there be multiple wills at all? To address this puzzle, we first need to see what individual wills are.

A good starting place is following: “The body is given in two entirely different ways to the subject of cognition…: in the first place it is given as a representation in intuition by the understanding, as an object among objects and liable to the same laws; but at the same time the body is also given in an entirely different way… something designated by the word will” (WWR I §18, pg. 124). My body, as Schopenhauer sees it, can be known as this physical object that is extended spatially, but it is also given as an individual will. By “it is also given as an individual will,” I mean that I also am aware of my body as moving out of my will. I have my own desires and strivings, and I am aware of them as I move my body. As Jacquette puts it, individual will is that “to which we have access through inner perception in reflecting on volitional acts of body movement” (Jacquette 81).

However, as we have seen above, Schopenhauer implies that individual wills, although manifested spatiotemporally, are not themselves spatio-temporal. To understand this, I think an analogy will be helpful. Consider what it is to be an acorn. If something is an acorn, it must become an oak tree. But to become an oak tree, it must occupy some space and also has to grow throughout time. If it were not spatio-temporal, it cannot be an acorn. But that it is to be instantiated spatio-temporally doesn’t mean that the notion of acorn itself is spatio-temporal. Instead, the notion of acorn itself is a notion, which is abstract. Now, for Schopenhauer, individual wills will not be like the notions. For Schopenhauer, notions are abstract conceptual apparatus, while wills are phenomenal. But I think we can apply this analogy to the case of individual will. My individual will, just like how a notion of acorn has the process of becoming an oak tree built in it, will probably have desires and strivings that I will go through throughout my life. So, if I were to act out of my will, my will will be manifested in space and time. But just like how the notion of acorn need not be spatio-temporal, my individual will need not be spatio-temporal. So, it makes sense how individual wills are not spatio-temporal. But if individual wills are not spatio-temporal, how are they differentiated?

To see how, recall how spatio-temporal objects could be differentiated in terms of space and time. Although Schopenhauer doesn’t explicitly mention how, I take Schopenhauer to be applying some sort of Leibniz’s Law, where two objects are identical iff they have the same set of properties. So, if objects have different spatial extensions, then they can be differentiated. Individual wills can fit into this version of Leibniz’s Law for two reasons. First, Schopenhauer takes individual wills to be Platonic Ideas (MR 1, pg. 241; WWR I §28, pg. 180), where Platonic Ideas are objects: “the Platonic Idea is necessarily an object” (WWR I §32, pg. 197). This means that, if individual wills have different sets of properties, they can be differentiated. But recall that my individual will is an object that is manifested as me going through specific desires and strivings. And presumably, someone else’s individual will will be manifested as a different person going through their specific desires and strivings. Then, my individual will and their individual will will have different sets of properties, which allows us to differentiate non-spatio-temporal objects, that is, individual wills.

Works Cited

Jacquette, D. 2007. “Schopenhauer’s Proof That Thing-in-itself is Will.” Kantian Review 12 (2): 76-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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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명사를 시공간으로 해석하려고 하나요? 의지는 만유인력, 전자기력이 전환된 새로운 힘입니다. 신체에서 의지는 뇌 뉴런에 흐르는 전류의 한 종류에 불과하지요.

만유인력은 시간 공간 전체에 침투하여 한 공간으로 한정시키지는 않지만 굳이 의지를 시공간과 연관시킨다면 뇌에서 형성된 전류 흐름의 순간 사진 정도 되지 않을까요? 배속의 태아 사진처럼 의지의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쇼펜하우어는 이런 지식을 알 수는 없을테지만.

글쎄요. 연섭님의 말씀에 너무 많은 전제들이 있어서 어떻게 접근해야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정리를 해볼게요.

일단 의지가 만유인력과 전류로 환원될 수 있다는 전제는 2025년의 철학자들이 모두 받아들이진 않을 것 같아요. 물론 믿는 사람도 있겠지만 연섭님처럼 단언할 수 있을 정도의 정설은 아니지 않을까 싶네요.

또, 쇼펜하우어의 의지 개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의지 개념과 다릅니다. 스피노자의 Natura naturans 를 자신의 의지 개념과 동일시하지요. 그래서 돌도 쇼펜하우어는 의지가 있다고 말하지요. 그러니깐 쇼펜하우어의 의지라는 개념은 우리가 쓰는 의지라는 개념과는 사뭇 다릅니다. 과학에서 다루는 전기신호 같은 거보단 훨씬 추상적이에요.

마지막으로, 철학사에서 과학적으로 틀린 것이 있다고 폐기해야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글에서 나온 내용이 과학적으로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지요.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에는 과학적으로 틀린 게 많아요. 하지만 2025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형태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 개념은 현대 양상 형이상학 (metaphysics of modality) 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요. 그리고 이런 신아리스토텔레스 주의는 현대 물리학과 충분히 양립가능합니다 (애초에 물리학보다 훨씬 추상적이어서 물리학과 비양립적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다시 말하면, 우리는 철학사를 볼 때 어떤 점이 틀렸나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틀린 부분이 있어도 나머지를 다시 우리의 지식에 맞게 되살릴 수 있나에 집중하는 것이 더 의미있는 접근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쇼펜하우어가 현대 물리학과 양립하는 철학 이론에 대해 도와줄 수 있는 게 꽤 있어요. 최근에 양자역학이 떠오르면서 모니즘이 주목을 받고 있어요. 특정 양자역학 현상들이 모니즘적인 그림에 더 맞는다는 주장이 제기됐지요 (Ismael & Schaffer - Quantum holism: nonseperability as common ground, 그리고 Calosi - Quantum Monism: an assessment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쇼펜하우어는 스피노자의 모니즘을 받아들이면서 그만의 수정을 하려고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모니즘을 받아들일 때 쇼펜하우어는 충분히 매력적이에요 (한 가지 생각하는 가설은: 스피노자의 모니즘은 존재에 정도가 있다는 ontological pluralism을 기반으로 하지만, 최근에는 ontological monism이 대세입니다. 그렇다면 모니즘과 ontological monism을 둘 다 (아마) 채택하는 쇼펜하우어가 스피노자보다 더 매력적일 수 있겠지요). 특히 다른 포스팅에서 저는 쇼펜하우어가 현재주의에 매력적인 대안을 보인다고도 주장했고요. 그리고 현재주의가 아직 가능한 옵션이란 걸 감안하면 (에머리, 지머맨, 마코시안, 부일러스등이 보였죠) 쇼펜하우어가 현대 시대에서 매력적이라는 것은 충분히 보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할 작업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에서 과학적으로 틀린 부분들을 찾을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틀린 부분이 있더라도 쇼펜하우어의 영감을 되살릴 시도를 하는 것이 더 건강한 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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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저는 2025년 많은 철학자들이 인정하지 않는 점을 밝히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틀리지는 않을 겁니다. 이는 저가 과학과 철학을 보면서 발견하거나 직관한 것이니 다른 분들의 반대 입장도 충분히 존중합니다.

그리고 다른 철학자의 주장에서 건설적으로 응용하자는 주장도 학문하는 사람의 좋은 태도지요.

저가 좀 도발적으로 표현했지만 완곡하게 답변하시는 모습은 저도 배우고 싶군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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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넘는 말일 수 있지만, 물리학적 직관을 쓰고 싶으시면 물리철학과 연관된 분야를 공부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물리철학이나 물리철학과 연관된 형이상학 같은 것들이요. 그런 것들을 하게 되면 물리학적 지식을 적용하려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물리학 어느 정도 다 아는 사람들이라 재밌게 보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철학사 같은 경우는 물리학과의 양립가능성보다는 부활시킬 수 있는 체계와 같은 것들에 대한 관심이 더 많기 때문에 연섭님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 같습니다. 물리철학 입문 책은 Maudlin - Philosophy of Physics 하고 Albert - Quantum Mechanics and Experience 정도가 유명합니다. 물리학에 대해 이미 충분한 지식이 있으시니, 입문보다 더 가고 싶으시면 머들린의 다른 책 Quantum Non-Locality and Relativity도 유명하지요. 형이상학과의 관계는 Lewis - Quantum Ontology정도가 유명하고, 앞서 말한 Ismael & Schaffer, Calosi, Builes, Emery, Zimmerman, Markosian등의 페이퍼들도 재밌게 읽으실 것 같습니다.

이런 것도 추천드립니다. 현대 양자역학의 특정한 해석에 입각해서 소위 "근대적 물질관에 아직도 사로잡혀있는 전통적 형이상학"을 비판하는 책입니다 (도중에 읽다가 포기해서 정확한 서술일지는 모르겠네요). 오히려 이런 게 더 구미에 맞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https://philpapers.org/rec/LADE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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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진행하려는 스터디에 시안 도어가 이 책에 대해 쓴 리뷰가 있는데, 이렇게 보니 반갑네요. 링크도 같이 첨부합니다:
https://ndpr.nd.edu/reviews/every-thing-must-go-metaphysics-naturalized/

지금 아마존 설명을 보니 더 재밌어보여요. 언젠가 한 번 읽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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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udlin 책 괜찮나요? 저는 Maudlin 하면

https://www.bostonreview.net/articles/grand-delusion/

이 글에서 보여준 이상한 정도의 칸트 증오("the biggest self-deluder", "the grandest intellectual hocus-pocus in scholarly history", "forbiddingly impenetrable") 같은 것이 떠오르네요.
그렇게까지 칸트식 독일 관념론이 이상한 건지?

사실 칸트도 불쌍해요. 어디에서는 (전통적) 형이상학을 없앴다고 욕먹고, 어디에서는 그놈의 물자체 때문에 욕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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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초월적 관념론은 확실히 현대 형이상학에서 무시를 받긴 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칸트가 현대 형이상학에 끼치는 영향력은 무시 못하긴 해요. 특히 Langton - Kantian Humility 는 잊을만하면 현대 형이상학에 인용이 되지요. 근데 그와 별개로, 최근에 칸트의 형이상학에 대한 변호가 이뤄졌어요 (링크: https://philpapers.org/archive/STAWSM.pdf; 아직 forthcoming이니 "이뤄졌어요" 가 아닌 "이뤄질 예정이에요"라고 해야될 수도 있겠네요). 결국 우리는 체계성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고, 체계성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순간 현대 형이상학이 칸트의 초월 철학보다 더 나은 점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직 칸트 철학을 완전히 배제하긴 힘들다... 정도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머들린은 굉장히 말을 강하게 하는 편이에요. 머들린과 델라로카가 만난 적이 있는데 (!!!!), 머들린의 태도가 굉장히 인상깊어요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aQ2P7j4qb8Y&ab_channel=TheInstituteofArtandIdeas 풀버전은 pod cast에 있어요). 여기 보면 델라로카와 굉장히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지요. 그래서 머들린 볼 때 이런 말들은 어느 정도 감안하고 봐야하는 거 같아요.

그래도 머들린의 책은 거의 교과서 수준입니다. 특히 Philosophy of Physics는 비교적 최근에 나왔는데, 알버트가 갖고 있던 모노폴리를 조금은 깨는 느낌입니다. 물리철학 관심 있으면 꼭 봐야하는 책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쉬운 부분은 너무 쉽고 어려운 부분은 갑자기 어려워지는 부분이 있어 난이도 조절에 조금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래도 워낙 글을 잘 쓰고 굉장히 배울 게 많아요. 후회는 안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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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제가 읽은 Maudlin 글들은 비주류적인 견해를 너무 세게 주장하는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예를 들면

이 인터뷰에서
"I hold a minority view and would happily violate fundamental Lorentz invariance, explaining observational Lorentz invariance by appeal to what is called quantum equilibrium."
같은 주장을 하는데, 솔직히 왠만한 주류 물리학자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입니다. 봄 역학에 대한 관점이야 원체 양자역학 해석 분야가 시끄러우니 그러려니 하지만, 이것을 relativity의 작용과 연결시켜서 하는 것은 좀....(물론 John S. Bell이 비슷한 것을 옛날에 주장했던 것은 압니다. 제가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그 태도에요. Bell은 그런 제안을 하면서도 fundamental Lorentz invariance가 왜 물리학계에 널리 받아들여졌는지를 이해하고 동감하는 것이 느껴지는데, Maudlin은 학계가 그냥 멍청한 듯이 얘기하는 듯한...)

솔직히 Bohmian mechanics에 대한 이 글과 Tim Maudlin의 댓글 보면 약간 웃기다는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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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에 대한 advance는 좀 의외네요. 솔직히 저는 프랑크프루트 빼면 굉장히 회의적인 편입니다.

저 댓글을 보니 머들린이 제가 생각했던 거보다 불도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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