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자본주의적 두꺼운 놀이에 관한 생각 - 메이드카페 @home cafe 아키하바라 돈키호테점을 방문한 경험을 기반으로

거창한 제목이지만, 결국 아키하바라 메이드카페에 처음 다녀온 경험과 생각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엉성하거나, 이상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첨삭에 AI를 사용하였다는점 미리 밝힙니다.


하위징하의 정의에 따르자면 놀이란 일정한 시간과 장소의 한계 안에서, 자유롭게 받아들여졌지만 일단 받아들여지면 절대적으로 구속적인 규칙에 따라 수행되는 자발적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 하위징하의 정의를 "전통적 놀이"라 부르겠습니다. 이는 역사적 놀이라는 의미보다는 하위징하의 정의에 따른 추상화된 놀이의 이념형이라 부르는 것에 가깝습니다.

전통적 놀이에 자본주의 구조가 일차적으로 적용된 형태를 얇은 놀이라 정의하겠습니다. 즉 소비자는 일정한 시간일정한 장소를 구매합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당구장, 볼링장, 노래방등을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장소에서 소비자는 놀이에 참가하게 됩니다.

얇은 놀이에서는 참가자의 자아가 행위 자아로 동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수처럼 노래하는 나맛세이 멋지게 넣는 나처럼 내가 어떤 행위를 하는가가 중요해집니다. 또한 우발적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당구장에 들어가는 순간, 어떤 역할을 맡을지 정해지지 않습니다. 시기와 상황, 그리고 같이간 집단에 따라 자아가 매 순간 변형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이와 반대로 두꺼운 놀이의 참가자의 자아는 역할 자아라고 정의하겠습니다. 대표적인 예시가 메이드 카페입니다. 메이드 카페에서 참가자는 주인님의 자아를 부여받고, 그에 따른 문법을 충실히 따를것을 요구받습니다. 이것이 두꺼운 놀이와 얇은 놀이를 구분하는 중요한 지점입니다.

물론 과거에도 두꺼운 놀이는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후기 자본주의적 두꺼운 놀이는 두꺼운 놀이를 분해하고, 각각의 요소에 가격표를 달게됩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요소-입장료, 음료수, 오무라이스, 체키-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감정적인 요소마저 분해되어 가격표가 알게모르게 달리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home cafe 아키하바라 돈키호테점 메이드카페에 처음 다녀온 경험을 기반으로, 후기 자본주의적 두꺼운 놀이가 어떻게 종래의 놀이를 분해하고 가격표를 다는지 설명하겠습니다.

입장
아키하바라 돈키호테 5층으로 올라가면 일반적인 돈키호테가 나옵니다. 그 사이를 구불구불 지나가면 @home cafe의 분홍빛 벽이 보입니다. 이를 지나면 드디어 카페의 입구가 나옵니다. 입구는 분홍빛 아치로 되어있고 리셉션에서 예쁜 메이드들이 분주히 지나다니는 것이 보입니다.

웨이팅 티켓을 뽑은 다음, QR코드로 체크인을 하면 벽 앞에서 대기를 하게 됩니다. 벽 앞에서는 계속해서 메이드들이 분주히 일하며, 환호성을 지르고, 즐겁게 떠드는 소리가 들립니다. 더 이상 그곳은 가게 바깥이라 부르기 어려운 대기장소가 되었습니다. 이미 안쪽 상황이 상상이되는, 반-내부 장소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를 담당해준 메이드 A쨩이 나타나 안내해주었습니다.

A쨩은 파란 메이드복에 하얀 레이스가 달린 머리띠를 하고 있었습니다. 컬이 들어간 옆머리에 짧은 머리였고 이쁜 미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는 청초하였고, 키는 컸으며, 아리따운... 아니 이 부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저는 이미 그 공간의 매력에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저는 제가 관찰자인 동시에 소비자였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습니다.

A쨩은 저를 부르더니 가게 안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곤 차임벨을 들고 귀엽지만 크게 말했습니다.

"ㅇㅇ주인님의 귀가입니다!".

안쪽에서 화답하듯 여러 목소리가 외쳤습니다.

"어서오세요 주인님!"

이 순간 방문은 귀가로 번역되었습니다. 저는 처음 방문한 관광객이었지만, 그곳의 문법 안에서는 돌아온 사람이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가게에서는 손님이 입장합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주인님이 귀가합니다. 바로 이 언어적 전환에서 메이드카페의 두꺼운 놀이가 시작됩니다. 저는 더 이상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주인님으로 호명된 놀이의 참여자가 되었습니다.

시스템

카운터석에 앉은 이후, A쨩은 시스템을 안내해주었습니다. 음료는 이렇고, 시간 제한은 이렇고, 메이드의 사진은 함부로 찍으면 안되며... 정확한 내용까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투는 귀엽고, 늘 웃으며 이야기 해주었지만, 그 안에는 지켜야만 하는 명백한 시스템이 존재했습니다.

이 부분은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저는 "귀가한 주인님"으로서 메이드들의 시중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저는 시간 제한, 메뉴, 촬영 금지, 주문 방식, 요금 체계안에 놓였습니다. 주인님이었지만 이 세계의 규칙을 따라야만 하는 주인님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당연합니다. 놀이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하위징아가 말했듯, 놀이는 자유롭게 받아들여지지만 일단 받아들이면 구속적인 규칙에 따라 수행됩니다. 메이드카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이곳의 규칙은 놀이의 규칙인 동시에 가게의 운영 규칙이었습니다. 어디까지 사진을 찍어도 되는가, 얼마나 머무를 수 있는가, 어떤 상품을 주문할 수 있는가, 어떤 상호작용이 가능한가. 이 모든 것이 세계관 바깥에 있는 차가운 규칙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세계관이 무너지지 않게 만드는 틀이었습니다.

특히 촬영 금지는 중요했습니다. 메이드를 함부로 찍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체키-메이드와 함께 찍는 폴라로이드 사진-는 살 수 있습니다. 즉 시선은 허용되지만, 기록은 통제됩니다. 마음대로 기억을 가져갈 수는 없고, 공식적으로 허가된 형식의 기억만 구매할 수 있습니다. 이때 체키는 단순한 사진이 아니라, 이 세계 안에서 허락된 기억의 형식이 됩니다.

A쨩은 제 이름을 물어보고, 입장 카드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카드는 @home의 문을 여는 열쇠 같은 것이라고 설명되었습니다. 사실 그 순간에는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 컨셉이구나,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면 이 카드도 꽤 이상한 물건입니다. 그것은 회원 카드이면서, 동시에 세계관 안의 열쇠였습니다. 다음에 오면 업그레이드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방문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방문을 향해 열려 있었습니다.

후기 자본주의적 두꺼운 놀이는 현재의 경험만 판매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음에 다시 올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현재 경험 안에 심어둡니다. 입장 카드는 단순히 “오늘 왔다”는 증거가 아니라, “다음에도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의 물질화였습니다. 저는 그 카드를 여행 도중 잃어버렸고, 아직까지도 꽤 아쉽습니다. 단순한 플라스틱 카드 하나였음에도, 그 세계와 이어져 있던 작은 끈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시스템 설명의 시간은 짧았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메이드카페의 구조가 거의 전부 들어 있었습니다. 세계관, 규칙, 시간 제한, 촬영 금지, 상품 선택, 입장 카드, 재방문 가능성. 이 모든 것이 귀여운 말투와 분홍빛 공간 속에서 안내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스템은 세계관을 깨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세계관이 유지될 수 있도록 뼈대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메이드카페는 무질서한 환상의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질서정연한 놀이 공간이었습니다. 다만 그 질서는 귀엽게 포장되어 있었고, 가격표는 분홍빛 세계관 안에 조용히 숨겨져 있었습니다.

음료

시스템 설명이 끝난 뒤, 저는 특제 음료가 포함된 체키 세트를 주문했습니다. 주문 자체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메뉴판을 보고 고르면 되었고, 저는 아직 이 공간의 문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음료를 주문했다고 해서 곧바로 무언가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동안 저는 카운터석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무대 바로 앞 자리였고, 메이드들은 분주히 오갔습니다. 다른 손님들은 조용히 음료를 마시거나,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메이드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참이 지나자 다른 메이드가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제가 주문한 음료를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곧 주문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냥 음료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음료가 제 앞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작은 의례가 필요했습니다.

메이드는 바텐더 쉐이커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동작을 알려주었습니다. "챠카챠카", "와쿠와쿠", "오이시쿠 나레", "모에모에 큥" 쉐이커를 흔들고, 몸짓을 하고, 귀여운 주문을 외우고, 마지막에는 음료가 맛있어지기를 바라는 마법 같은 동작으로 마무리됩니다.

저도 따라해야 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음료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게 됩니다. 일반적인 카페에서 음료는 주문하고, 기다리고, 받으면 끝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음료는 손님을 놀이에 끌어들이는 매개였습니다. 메이드가 혼자 귀엽게 주문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저도 그 주문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저는 관객으로만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동작을 따라 하고, 메이드의 움직임에 맞춰 주문을 소리내어 말하고, 웃고, 민망해하고, 그 문법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웃음이 났습니다. 즐거워서라기보다는 민망해서였습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행동은 이 공간이 일상과 다른 규칙을 가진 곳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려주었습니다. 머리로 "여기는 메이드카페다"라고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모에모에 큥”을 따라 하는 것은 다릅니다. 전자는 관찰이고, 후자는 참여입니다.

이 장면에서 음료 가격은 음료수 자체에만 붙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안에는 메이드가 다가오는 시간, 음료를 설명하는 시간, 주문을 알려주는 시간, 쉐이커를 흔드는 동작, 그리고 제가 따라 해야 하는 민망함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음료는 마시는 물건이면서 동시에 상호작용을 발생시키는 장치였습니다.

입장료가 놀이 가능성의 장에 붙은 가격이었다면, 음료는 그 장 안에서 실제 상호작용을 발생시키는 가격이었습니다. 입장료만으로도 저는 주인님으로 호명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음료를 주문함으로써 저는 더 이상 단순히 그 세계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문 의례를 수행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후기 자본주의적 두꺼운 놀이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상품은 물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호작용의 단위를 품고 있습니다. 음료는 음료이지만, 동시에 주문 의례입니다. 주문 의례는 귀여운 퍼포먼스이지만, 동시에 소비자를 놀이 안으로 더 깊이 밀어 넣는 장치입니다. 그리고 그 민망함, 웃음, 어색함은 우연히 발생한 부산물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설계된 감정입니다.

체키

체키는 거의 마지막에 찍었습니다. 이것이 @home cafe의 일반적인 진행 방식인지, 아니면 제 경우에만 그렇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제 경험 안에서 체키는 중간 이벤트라기보다는, 메이드카페 체험을 마감하는 의례처럼 느껴졌습니다.

처음 입장했을 때 저는 부끄러움과 긴장 속에 있었습니다. 차임벨이 울리고, "주인님의 귀가입니다"라는 말이 들리고, 안쪽에서 "어서오세요 주인님!'이라는 인사가 들렸을 때, 저는 그 세계 안으로 던져진 사람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음료 의례를 거치고, "모에모에 큥"을 따라 하고 나니, 어느 정도 이 공간의 문법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체키를 찍을 때쯤에는 이미 조금 달라져 있었습니다. 여전히 부끄러웠지만, 처음처럼 정신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메이드는 몇 가지 포즈를 제안해주었고, 저는 그중 하나를 골랐습니다. 이것도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저는 자유롭게 포즈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선택지 안에서 고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초보자인 저에게는 고마운 안내에 가까웠습니다. 두꺼운 놀이는 이렇게 작동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적절히 수행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합니다.

일반적인 사진이라면, 그것은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러나 체키는 조금 달랐습니다. 체키는 단순히 제가 그 장소에 있었다는 증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메이드카페의 놀이를 어느 정도 수행했다는 증거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주인님으로 호명되었고, 주문 의례를 따라 했고, 마지막에는 메이드와 함께 포즈를 취했습니다. 체키는 그 모든 과정을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했습니다.

그렇기에 체키는 기념사진이면서 동시에 완료 표식이었습니다. 음료가 저를 놀이 안으로 끌어들이는 장치였다면, 체키는 제가 그 놀이를 여기까지 수행했다는 사실을 고정하는 장치였습니다. 놀이의 시간은 원래 흘러갑니다. 차임벨, 목소리, 민망함, 웃음, 주문, 시선은 모두 지나갑니다. 그러나 체키는 그 지나가는 시간을 손에 들 수 있는 물건으로 바꿉니다.

체키는 허락된 기억이었습니다. 메이드의 사진은 함부로 찍을 수 없지만, 체키는 살 수 있습니다. 비공식적 기록은 제한되고, 공식적으로 승인된 기억만 상품으로 제공됩니다. 동시에 체키는 접객 노동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메이드는 사진 속에 함께 서는 것을 넘어, 세계관을 유지하고, 포즈를 제안하고, 손님의 어색함을 받아줍니다. 그러므로 체키는 매우 후기 자본주의적이며, 놀이의 시간을 기억 가능한 상품으로 변환하는 장치이며, 놀이, 상품, 노동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결제

문제는 체키를 받는 순간 결제가 함께 다가왔다는 점입니다. 저는 1600엔짜리 체키 음료 세트를 주문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제 시점에 입장료 800엔이 더해진 금액을 들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조금 놀랐습니다. 속았다는 감각보다는 “아, 그렇구나”에 가까웠습니다. 다만 그 순간 세계관이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방금 전까지 저는 주인님이었습니다. 적어도 주인님으로 호명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결제의 순간, 저는 다시 손님이 되었고, 더 정확히는 구매자가 되었습니다. 체키는 놀이의 완성이었지만, 결제는 그 놀이-역할 자아가 동작하던 시간-를 상품의 단위로 마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메이드카페에서 돈을 낸다는 것은 단순히 음료값이나 사진값을 지불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입장료는 주인님으로 호명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에 붙은 가격이었습니다. 음료는 주문 의례와 짧은 상호작용에 붙은 가격이었습니다. 체키는 개인화된 상호작용과 기억의 고정에 붙은 가격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제는 그 모든 시간을 하나의 상품 단위로 정리하는 절차였습니다.

이때 후기 자본주의적 두꺼운 놀이는 자신을 아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그것은 놀이를 통째로 팔지 않습니다. 놀이를 더 작은 단위로 나눕니다. 입장 가능성, 주문 의례, 상호작용, 사진, 기억, 재방문 가능성. 이 모든 것이 서로 다른 층위에서 가격표를 갖습니다.

물론 이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돈은 이 이상한 놀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돈을 냈기 때문에 저는 이 공간 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돈을 냈기 때문에 메이드는 정해진 방식으로 저를 맞이하고, 주문 의례를 수행하고, 사진을 찍어줄 수 있었습니다. 돈은 세계관을 깨는 요소이면서 동시에 세계관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입니다.

그럼에도 결제 순간에는 어떤 식으로든 마법이 닫힙니다. 입장할 때 차임벨이 울리고 “주인님의 귀가입니다”라는 선언이 있었다면, 결제는 그 반대편에 있는 의례입니다. 입장은 고객을 주인님으로 만들고, 결제는 주인님으로 존재했던 시간을 고객의 영수증으로 돌려보냅니다.

나오며

밖으로 나왔을 때, 저는 흥미롭지만 짧아서 아쉬웠습니다. 사실 그 아쉬움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음료가 부족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진이 부족했던 것도 아닙니다. 제가 더 원했던 것은 아마 상호작용이었을 것입니다. 조금 더 오래 그 문법 안에 있어보고 싶었습니다. 조금 더 능숙하게 웃고, 반응하고, 이 이상한 놀이를 이해해보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부끄러웠고 들어가기 전에는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 부끄러움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놀이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저는 진짜 주인님이 아니었습니다. 메이드도 저를 진짜 주인으로 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이에서 중요한 것은 진짜로 믿느냐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놀이가 지속되도록 행동하느냐입니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버지가 진짜 괴물이라고 믿지 않아도 괴물 흉내를 내듯이, 메이드카페의 손님도 진짜 주인님이라고 믿지 않아도 주인님으로 호명된 문법을 따라갑니다. 거리두는 참여자와 놀이 파괴자의 차이는 내면의 믿음이 아니라 행동에 있습니다. 저도 그곳의 문법을 믿었다기보다, 그 문법이 깨지지 않도록 따라갔습니다.

하위징아가 말한 놀이의 정의는 이 경험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효합니다. 메이드카페는 분명 일정한 시간과 장소 안에서, 자유롭게 받아들였지만 일단 받아들이면 강하게 구속되는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 놀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통적 놀이의 이념형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놀이의 각 요소에 가격표가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입장료에서 결제에 이르기까지, 그곳에서 가격표가 붙은 것은 음료와 사진만이 아니었습니다. 가격표는 입장 가능성, 주문 의례, 상호작용, 기억,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작은 약속에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후기 자본주의적 두꺼운 놀이는 놀이를 새로 발명하지 않습니다. 두꺼운 놀이는 과거에도 존재했습니다. 축제에도, 종교적 의식에도, 가면에도, 역할극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기 자본주의는 그 두꺼운 놀이를 잘게 나눕니다. 가능성, 입장, 상호작용, 기억, 재방문. 그리고 그 각각에 가격표를 붙입니다.

그래서 메이드카페는 단순히 “메이드가 있는 카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놀이가 상품의 단위로 분해되고, 다시 재조립되는 거대한 세계였습니다. 분홍빛 아치 안쪽에서 저는 주인님으로 불렸고, 주문을 따라 했고, 체키를 찍었고, 결제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서, 저는 후기 자본주의가 놀이를 어떻게 다루는지 조금 본 것 같습니다. 그것은 놀이를 없애지 않습니다. 오히려 놀이를 아주 정교하게 살려냅니다. 다만 그 놀이가 더 이상 우리 사이에서 우발적으로만 발생하지 않고, 입장료와 메뉴판과 체키와 카드와 영수증 사이에서, 구매 가능한 경험으로 도착한다는 점이 문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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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부럽습니다. 나중에 저도 일본에 놀러가면 같은 오타쿠인 아내랑 방문해보고 싶네요. 주인 부부가 되려나요?

개인적으로,

라고 주장하신 부분에는 공감이 됩니다만, 이 주장을 위해 굳이 '얇은 놀이'와 '두꺼운 놀이'의 구분이 필요할까요? (a) 놀이의 세부 내용에 가격표가 매겨지는지 매겨지지 않는지의 문제는 '얋은/두꺼운' 놀이라는 개념과는 크게 관련되지 않는 것 같고, (b) 애초에 하위징아의 놀이 개념에서도 일단 놀이가 받아들여지면, 놀이의 규칙은 참여자에게 절대적인 구속력을 지닌다는 점에서 '얋은/두꺼운'의 구분 자체가 그다지 엄격한 것 같지는 않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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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글쓰기가 많이 익숙하지 않다보니, 말씀하신 대로 ‘얇은 놀이/두꺼운 놀이’라는 구분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것 같네요. 이 구분은 엄밀한 분류라기보다는, 놀이 설계의 밀도를 구분하기 위한 자의적인 구분이라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한 "얇은 놀이"는 판매자가 주로 놀이의 장소, 시간, 도구, 기본 규칙을 제공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당구장, 볼링장, 노래방에서는 소비자가 일정한 시간과 공간을 구매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놀이 경험이 발생할지는 비교적 우발적입니다. 누군가는 승부에 매진하고, 누군가는 즐겁게 경험하고, 누군가는 조용히 구경만 할 수도 있습니다. 판매자는 놀이의 조건을 제공하지만, 놀이의 내부 상호작용에 강하게 개입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제가 말한 "두꺼운 놀이"는 판매자가 놀이의 조건만이 아니라 역할, 세계관, 상호작용 방식, 감정의 흐름까지 더 적극적으로 설계하는 경우입니다. 메이드카페에서는 손님이 단순히 공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인님"으로 호명되고, 주문 의례, 체키, 촬영 금지, 입장 카드 같은 장치들을 통해 특정한 놀이의 문법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 판매자는 단순히 놀이의 틀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놀이의 내부 참여자로서 계속 개입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하위징아의 놀이 개념에서도 모든 놀이는 일정한 규칙의 구속을 받습니다. 그래서 "얇은/두꺼운"의 차이는 규칙의 유무 혹은 많고 적음에 있다기보다는, 그 규칙과 역할, 상호작용, 감정, 기억이 얼마나 세밀하게 설계되었는가에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얇은 놀이/두꺼운 놀이"보다는 "얇게 판매되는 놀이/두껍게 판매되는 놀이"가 더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었던 핵심도 놀이 자체의 본질적 차이라기보다는, 놀이가 어떤 밀도로 설계되고 가격화되는가의 차이에 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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