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und, Kausalität

요즘 칸트와 헤겔이 ground와 cause를 어떻게 쓰는지 관심이 많습니다. 칸트는 ground를 cause의 상위개념으로 씁니다. 예를 들어, 제가 동물이란 종 안에 있다는 것은 제가 인간이란 종 안에 있다는 것의 ground 지만 cause는 아닙니다. 헤겔이 ground와 cause를 어떻게 쓰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ground가 cause보다 먼저 나오는 것을 보니, 헤겔 역시 ground를 상위개념으로 쓰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독어 교수님께 Grund와 Kausalität 를 독일인들이 어떻게 쓰는지 물어봤습니다. 근데 놀랍게도, 칸트의 Grund는 일반 독일인들의 Grund 용법과 같다고 합니다. 저 위에 예는 일반 용법의 Grund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고 하더군요. 또, Kausalität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이 제가 노트필기를 해놨습니다:
Kausalität is the relationship between two events. How is one related to the other. Also, it can go both ways.

허허... 헤겔의 Kausalität과 여러모로 닮은 것 같습니다. 독어 교수님은 헤겔과 관련이 하나도 없는 분인데도 불구하고, relation between two events라는 지극히 헤겔의 Kausalität과 비슷한 설명이 나오더군요. 이래서 원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건가란 생각이 드는 날이었습니다.

또 별개로, Kausalität은 절대 일반적으로 쓰이는 단어가 아니라고 합니다. 모르는 독일인들도 많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한국어로 치면 인과관계 정도 될까요?

+지금 생각해보니 꼭 Kausalität 까지 않더라도 causality에서 비슷한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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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고 엥?해서 Kasualität를 검색해보니 C2레벨 단어로 나오긴 하네요.

Kasualität 경우처럼, 철학 공부를 하다보면 어려운 단어는 아는데 쉬운 단어는 모르는 경우도 많은 것 같긴합니다. 예를 들어 Kasualität를 모른다고? 생각한 저는 필통(아마 A1-2레벨?)이 독일어로 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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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네요. 적어도 영어 철학 문헌에서 "A grounds B", "A causes B", "A is a reason for B"는 전부 다른 의미를 갖고 있거든요.
그런데 "Kausalitaet"에 대해 쓰신 메모가 맞다면 적어도 저건 "causality"가 갖는 의미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독일어의 "kausal"이 더 넓은 의미로 쓰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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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안 간 사람들 기준 아닐까요? 물론 Phänomenologie 정도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는 거 같아요. 학부 논리학 수업이면 수준이 높긴 하니깐요 (대학 안 가는 사람들도 포함하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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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철학 기준으로 말씀하시는 걸까요? 독일철학은 구분을 두고, 스피노자는 구분을 딱히 안 둔다고 들었는데, 다른 철학에서는 또 어떨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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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옴표 생략합니당) cause와 reason은 각각 원인과 이유에 해당하는데요, 원인은 사건 간에 성립하는 관계이고, 이유는 때때로는 행위를 야기하게끔 하는 동기를 말하기도, 행위를 정당화하는 고려사항을 말하기도 합니다. 종종 화산폭발이 왜 일어났는지는 원인에 대한 물음인 반면 내가 왜 지각했는지는 이유에 관한 물음이라는 예시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ground는 비교적 최근에 분석형이상학에서 중심개념으로 다뤄지기 시작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칸트는 ground를 cause의 상위개념으로 씁니다. 예를 들어, 제가 동물이란 종 안에 있다는 것은 제가 인간이란 종 안에 있다는 것의 ground 지만 cause는 아닙니다.

이 설명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정확히는 이해를 못했습니다만, 대략적으로 말하면 "A because B"로 표현되는 관계 중에 인과관계가 아닌 형이상학적 관계를 포착하기 위한 개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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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논의라 끼어들어 봅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칸트 체계 내에서의 의미쌍은 다음과 같습니다. Grund-Folge(근거-귀결), Ursache-Wirkung(원인-결과). Grund는 칸트에게 적어도 이론철학 내에서는 논리적 관계 속에서만, 그리고 Kausalität은 실제 시공간 내에서 일어나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지목할 수 있는 원인-결과 관계로 쓰인다고 생각합니다. 관련해서 근거로 제시될 수 있는 부분은 선험적 변증론이고요. 거기서 칸트가 독단론의 오류-선험적 가상으로 여긴 것은 무제약자가 '주어져 있다는 것'이었으며, 그러한 칸트의 주장을 저는 논리적 의미에서 '주어진' 것을 실제 경험세계에서도 '주어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오류가 생긴다는 논지로 이해합니다. 즉 생각할 수는 있되, 실제 규정되지는 않는-규정될 수 없는 것을 규정하고자하는 시도, 그리하여 순전한 생각을 '실체화'하는 시도들을 변증론에서 칸트는 비판하고 있고, 그러한 비판의 근거가 되는 중심적 개념쌍이 Grund-Folge / Ursache-Wirkung 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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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군요. 혹시 관련 자료들 있을까요?

여기서 저는 Grund가 Kausalität을 포괄한다고 생각하는 것 빼고는 저와 해석이 같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초월적 변증법을 리거러스하게 읽어보지 않아서, 더 얘기하면 제 밑천만 드러날 거 같습니다.

저도 잠깐 관심이 생겨서 도움이 될만한 글이 좀 있을까 해서 찾아봤는데, 글쎄요.. 다들 저한테는 그렇게 썩 쉽게 쓰인 글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저한테 젤 친절하게 느껴졌던 글은 Jonathan Schaffer의 "On What Grounds What"이라는 글이었습니다.(구글에 바로 나오네요)

https://plato.stanford.edu/entries/grounding/

SEP 항목도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구요. Ted Sider 홈페이지에 Seminar on Ground 강의자료를 올려놨는데 아무래도 강의자료다 보니 설명이 상세하지는 않습니다.

그 외에도 Kit Fine이 쓴 "Guide to Ground"라는 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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