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t는 과연 "창조된 신"이 될 수 있을까

얼마 전에 심리학과 친구가 GPT-4에 대한 강연을 듣고 감명받아서 저와 함께 내용을 공유했습니다. 그 강연을 주관하셨던 박사님이 자기가 어느 목사님에게 GPT를 가르쳐줬더니 더이상 새벽 기도문을 머리싸매면서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고, 신도들이 오히려 그 기도문에 감명을 받았더라고 하덥니다. 그러면서 그 친구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우리 삶에 종교가 필요하다면 그것이 꼭 신이 존재해야만 하는 것일까? 완벽해 보이는 인공지능을 갖고 있으니 종교경전과 신학들을 학습시켜서 그것이 하는 말에 감명을 받고 내가 바르게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닐까?

딥러닝에 Fine-tuning이라는 기법이 있습니다. GPT처럼 이미 학습된 인공지능에게 특정 데이터를 주입하여 조정하는 행위입니다. 이를 통해서 거의 정교한 설교문, 기도문, 신앙적인 감동을 줄 수 있는 글 등을 만들어낸다면, 그리고 인간이 거기에 감동을 받는다면 유신론이 지금보다 입지가 흔들릴거 같더군요.
사실 저도 인공지능을 계속 공부를 하면서 신앙이 갈수록 약화되긴 했습니다. 그래도 뭔가 금단의 영역이라고 생각됐는데...저 말을 들으니 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치더군요....
오래전에 인류는 마약과 술을 통한 환각이 종교적 체험이라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인지영역에서 둘을 구분할 수 없다면 "GPT로 만들어진 신"이 주는 "유사설교" 또한 가장 완벽한 신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혹은 또다른 사이비가 탄생하는 것을 금세기에 볼 수 있을까요? 논의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신학과 유/무신론, GPT와 연관한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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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 목사님께서 평소에 설교문, 기도문, 신앙적인 감동을 줄 수 있는 글 등을 작성하실 때마다 신으로부터 매번 직통 계시를 받아서 작성한게 아니라고 한다면, 텍스트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인해서 유신론에 대한 믿음이 기존보다 더 떨어질 이유가 없는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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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t가 유신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는 어렵겠지만, 종교나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 간접적으로나마 무신론적 함축을 가질 수는 있겠지요. 대부분의 신앙인들에게 신과의 직통계시(?)가 부재하는 상황에서 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설교라거나 신앙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라거나 하는 무형의 자산일텐데, Gpt가 수행하는 것을 보면 누군가는 종교가 주는 무형의 자산이 결국 알고리즘에 의한 규칙따르기와 그 학습의 결과에 불과할 뿐이라는 결론을 낼 수도 있으니까요.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탑급의 예술작품들이, 기존에 인간이 가지고 있던 예술작품과 작가들에 대한 경외감을 disenchant시킬 수도 있는 것이랑 비슷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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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논점들이 섞여 있어서 댓글만으로 충분히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제 생각을 몇 가지만 간략히 적어보자면,

(1) 인공지능이 기도문이나 설교문을 작성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현재의 기술만으로도 인공지능이 미술 작품도 만들고, 교향곡도 작곡하고, 시도 쓰고, 소설도 쓰는데, 단순히 테크닉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그보다도 훨씬 단순한 기도문이나 설교문이야 오히려 작성하지 못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심리철학적으로 일종의 제거주의를 지지하다 보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언젠가는 인공지능도 모두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해요.

(2) 다만, 인공지능이 쓴 글에 요즘 우리가 너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과대평가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드네요. 사실, 여전히 고도의 전문성과 논리력을 요구하는 글을 작성하기에는 현재의 인공지능이 많이 부족한데도, 우리가 기술의 '진보'나 '발전'에 너무 매료된 나머지 사실 별로 수준이 높지 않은 결과물들도 단순히 인공지능이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띄워주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적 탐구』 첫 머리에 인용한 네스트로이의 구절처럼 "진보란 대체로 그 실제보다 훨씬 위대해 보이는 법이다."라고 저는 평가해요. (게다가, 솔직히 말해, 교회 성도님들은 목사님이 어떤 기도를 하거나 어떤 설교를 해도 "은혜 받았다."라고 말씀하시죠. 기도문과 설교문이 반드시 좋아서 은혜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기본 태도가 목사님들에게 호의적이고 열려 있으까 어지간하면 다들 좋은 방향으로 목사님들의 말씀을 받아들이시는 거잖아요.)

(3) 인공지능이 기도문이나 설교문을 작성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신앙에 대해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상자 속 딱정벌레' 사고실험처럼, 우리의 언어적 소통이 반드시 지시체의 존재를 보증하는 것도 아니고, 지시체가 없다고 해서 언어적 소통이 불가능해지는 것도 아니죠. 즉, 인공지능이 기도문이나 설교문을 작성할 수 '있다/없다'라는 문제와 하나님이 '존재한다/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문제는 서로 별개의 문제라고 저는 생각해요.

(4) 다만, 인공지능이 기도문과 설교문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신앙인들이 위협을 느끼는 것은, 일종의 문화적 선입견 때문인 것 같아요. 빼어난 기도문과 설교문을 쓰기 위해서는 일종의 깊은 '영적 상태'가 요구된다는 선입견이 인공지능 때문에 깨졌다 보니, 이제 기도문과 설교문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같아요. 그렇지만 사실 이게 혼란에 빠질 만큼 정말 심각한 문제일까요? 애초에 그리스도교을 비롯한 절대 다수의 종교 전통에서는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위선자들을 아주 오래 전부터 비판했는 걸요. 빼어난 기도문과 설교문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반드시 깊은 영적 상태를 보증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은 이미 예수가 바리새인들을 비판하면서 강조한 점이잖아요.

(5) 인공지능이 기도문과 설교문을 쓸 수 있다는 사실보다도 제가 훨씬 더 우려스럽게 보는 것은, 우리가 인공지능에게 사유 자체를 맡겨버리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점이에요. 인공지능이 제시한 대답이라면 그게 윤리적인 평가이든 미학적인 평가이든 상관없이 '정답'인 것처럼 맹신하게 되는 날이 올까봐 걱정스러운 거죠. 그건 신앙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사실 '신앙'이라는 게 일요일에 목사님 설교를 듣는 활동이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살아가는 활동이잖아요. 그런데도 멀지 않은 미래에 인공지능 목사님의 설교만 듣고서 "오늘도 신앙생활 잘 했다! 은혜 받았다!"하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신앙을 인공지능에게 맡겨버리는 분들이 절대다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해봅니다. 자기 스스로 고민하고,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자기 문제 앞에서 분투하는 일들이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게 진정한 문제가 아닐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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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원글에서 이런 놓쳤던 부분들과 논리적 결함이 너무 많았던 것 같네요. 생각을 한 번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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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오히려 인공지능과 같은 도구를 이용하여 종교서적이나 어떠한 글귀에서 전하고자 하는 핵심(요지)만 전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 뒤 맥락이 있어야 제대로 의미가 전달되는 글 또한 있지만, 단순히 '유사설교' 가 종교적 의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종교인이 지은 글보다 영적 깨달음의 측면에서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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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다만 교계에선 그런 연구를 좀 금기의 영역으로 두는 감이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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