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과 '선'이 교환적으로 쓰일 수 있는 상황도 많지만, 몇몇 특수한 맥락에서는 둘을 반드시 구분해 주어야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가령, '좋은'이 '유용한(useful)'이나 '실용적인(practical)'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선'이 '옳은(right)'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상황에서는 둘을 구분해 주어야죠.
그 대표적인 예가 니체의 『도덕의 계보』 제1장의 제목인 " First essay: 'Good and Evil', 'Good and Bad'"에요. 여기서 니체는 '선/악(good/evil)'이라는 도덕적 구분이 사실 '좋은/나쁜(good/bad)'이라는 더욱 원초적인 구분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것이라고 주장해요.
즉, 본래 고대 사회에서는 '선/악'이라는 도덕적 구분은 존재하지 않았고, '좋은/나쁜'이라는 실용적 구분만 존재하였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에요. 강하고 고귀한 인간들은 자신에게 더욱 큰 힘을 부여하는 것들을 '좋은' 것들로 명명하였고, 그렇지 않은 것들을 '나쁜' 것들로 명명하였다는 거에요.
그런데 소위 '노예'라고 표현되는 약하고 비천한 인간들이, 강하고 부유한 인간들을 질투한 나머지, '좋은/나쁜'이라는 구분을 뒤집어서 '선/악'이라는 구분을 만들어내었다는 거죠. "부자들은 악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선하다!" 혹은 "힘 있는 자들은 악하고, 약한 자들은 선하다!"라는 식으로, 고귀한 자들의 규범을 무조건 비난하면서 자신들의 비천한 상태를 정당화하였다는 거에요. 그래서 니체는 이렇게 말하죠.
Let us draw to a close. The two opposing values ‘good and bad’, ‘good and evil’ have fought a terrible battle for thousands of years on earth; and although the latter has been dominant for a long time, there is still no lack of places where the battle remains undecided. You could even say that, in the meantime, it has reached ever greater heights but at the same time has become ever deeper and more intellectual: so that there is, today, perhaps no more distinguishing feature of the ‘higher nature’, the intellectual nature, than to be divided in this sense and really and truly a battle ground for these opposites. The symbol of this fight, written in a script which has hitherto remained legible throughout human history, is ‘Rome against Judea, Judea against Rome’: – up to now there has been no greater event than this battle, this question, this contradiction of mortal enemies. (Friedrich Nietzsche, On the Genealogy of Morality, Keith Ansell-Pearson (ed.), Carol Diethe (trans.),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 pp. 31-32.)
이 부분에서 'good and bad'와 'good and evil'은 각각 '좋은과 나쁜'과 '선과 악'으로 번역해야겠죠. 니체가 분명히 그 둘을 대립시키기 위해 'good'이라는 용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전자는 도덕과 상관없는 실용적 구분이고, 후자는 도덕적 구분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