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의 Geschick(역운)에 관련한 의문

철학적 해석학에 관련해서 주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이따금 하이데거의 존재 사유가 가다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약간 공부를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간단한 의문이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단지 간단한 문제만은 아닐수도 있어서 문제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질문을 남깁니다.

"하이데거의 Geschick 개념의 의미가 무엇이고, 이 개념은 '역운[역사적 운명]'으로 번역되곤 하는데, 이것이 적합한 번역어일까요?"

-> 우선 제가 이해하기로는, 이 개념은 하이데거의 존재 사유와 관련해서 형식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개념으로 보입니다. 존재와 인간의 관계,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고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현존재에게 존재가 드러나는 것, 존재가 자신을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것을 하이데거는 Geschick이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말 그대로 존재 의미가 현존재에게 보내짐(Ge- + Schick(en))이라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하이데거의 Geschick이 '역사적 운명'으로 번역되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해 의문이 생깁니다. 물론 영미권에서도 이 개념은 Fate, Destiny 등으로 번역되곤 한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운명이라는 말 자체가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거슬린달까요? 존재가 현존재에게 부여하는 운명이라는 표현 자체가 하이데거 자신이 그토록 부정해 온 (그러나 제 개인적으로 보기에 본인이 상당히 자초한) 존재 개념을 실체화하는 혹은 신과 같은 존재자적인 것으로 오인하게 하는 듯 보입니다...

-> 사실 이 개념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더 크게는 하이데거의 존재론 자체의 문제점(존재와 존재자의 관계에서의 일방성), 그리고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서도 약간은 묻어나오는 것 같은, 하이데거적인 존재론의 문제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하이데거와 가다머는 분명 각기 다른 철학자이고, 가다머의 존재론적으로 이해된 해석학이 하이데거와 같은 정도로 존재와 존재자의 관계를 일방적 고지의 관련으로 보고 있지도 않지만, 그렇게 해석될 여지를 크게 남겨놓은 것 같아요. "이해될 수 있는 존재는 언어다"라는 가다머의 테제가 존재와 존재자의 관계, 존재론적으로 이해된 언어와 그 언어 속에 살고 있는 존재자의 관계의 상호성을 적절히 해명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남습니다.

애초에 제시한 'Geschick'개념을 어떻게 이해할것인가에서 꽤 벗어난 문제라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이와 유사한 혹은 관련된 선행연구 혹은 서강올빼미 분들의 의견을 듣고자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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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적 운명'이라는 번역어

말씀하신 것처럼, '운명'이라는 번역어가 다소 오도적일 수 있다고는 생각해요. 보통 '운명'이라고 하면 결정론적인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 운명 개념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하이데거가 말하는 'Geschick'는 시대에 따라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혹은 사람들이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용어이니까요.

오히려 존재를 근대의 수리물리학 같은 특정한 '이론'으로 완벽하게 고정하여 파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이론'으로 파악된 존재가 특정한 역사적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이 하이데거의 중심 논지라는 점에서, 하이데거의 'Geschick'는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운명' 개념에 비판적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아요.

다만, 저는 '역사적 운명' 혹은 '역운'이라는 번역어에 익숙하다 보니, 저 번역어가 자칫 오도적일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하긴 해도, 저 번역어 말고는 다른 대안이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2) 하이데거와 가다머

문득 든 생각이지만, 하이데거의 '역운'에 대응할 만한 개념이 가다머에게 있을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하이데거의 역운 개념은 존재가 다소 일방적으로 자신을 고지하는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다머와 다르기도 하지만, 애초에 가다머에게는 '역운'에 대응할 만한 개념 자체가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시대적 간격'에 대한 가다머의 강조점도 '역운'에 대한 하이데거의 강조점과는 많은 차이가 있고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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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Geschick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제가 이 주제를 깊이 찾아본 것은 아니지만, 주변의 하이데거 전공하시는 분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 개념에 대해 대략 두 가지 입장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한 입장은 Geschick를 일종의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이해하시고서, 시대에 따라 존재자를 늘 새롭게 발생시키는 역동적 '힘'이나 '차이'라고 해석하시는 것 같아요. 또 다른 입장은 Geschick를 쿤의 '패러다임' 개념이나 푸코의 '에피스테메' 개념에 상당 부분 대응하는 일종의 '인식론적' 개념으로 이해하시고서,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의 세계 이해 틀 정도로 해석하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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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의문을 제기하기는 했지만, '역운' 외에 대안이 될만한 번역어가 있냐면,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네요.
실제로 가다머는 Geschick이라는 단어 혹은 이와 유사하게 존재가 존재자에게 어떠한 의미를 고지한다는 의미의 표현을 그다지 자주 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철학적 해석학에서도 인간 현존재는 존재의 영향하에 있고, 그 존재의 영향을 언어, 역사, 영향사와 같은 표현들로 다소 구체화시키기는 하지만, 그 존재의 영향을 '운명'이나 '고지'와 같은 표현으로 서술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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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Geschick이 하이데거 존재론의 형이상학적 측면을 매우 선명하게 드러내는 개념이라고 보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만큼은 아니더라도 철학적 해석학 역시 '형이상학적'이라는 혐의가 - 사실 혐의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그게 결정적으로 큰 잘못이나 허점인가 싶기도 합니다만 - 완전히 지워지느냐... 그건 잘 모르겠다는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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