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철학은 언제 삐걱대는가? ftx 사태와 효과적 이타주의

효과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는 행위 공리주의의 논리적 연장선 상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는 철학적 입장이자 사회운동입니다. 그 핵심은 '기부도 효과적으로, 많이 하는게 도덕적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 10여년 동안 윤리학계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기도 합니다.

흔히 '(둘다 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는 가정 하에서) 미미한 시민단체 활동가의 삶보다는 월스트리트로 진출해서 떼돈을 벌어 그 돈으로 많은 기부를 하는 삶이 도덕적으로는 더 낫다'라는 빡센 논지로 유명한 입장이기도 합니다.

이런 효과적 이타주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아서 금융업계, 보다 정확히는 암호화폐계에 진출하여 큰 인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장본인이 최근 경제지면에서 봤던 FTX의 창업자라는 샘 뱅크먼-프리드라는 인물인지는 잘 몰랐습니다. FTX는 현재 파산을 신청한 상황이고, 투자자 자금 무단 운용 같은 혐의도 받고 있다고 하네요.

만약 이 억만장자가 이런 문제적인 삶을 살게 된 것에 효과적 이타주의라는 도덕철학이 전폭적인 영향을 미쳤다면, 효과적 이타주의는 도덕철학적으로 결격사유가 생긴걸까요?

(물론 샘 뱅크맨-프리드의 철학적 멘토 역할을 하기도 했던 윌리엄 맥애스킬은 이번 FTX 사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규탄을 했다는 점, 그리고 사실 반대로 '투자자에게 사기를 침으로써 결과적으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이룬다면 그 도덕적 평가는 어떻게 해야하나? (링크)' 같은 논점도 있습니다만,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도덕철학은 그 현실적 파급력에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하는걸까요? 특히나 그 현실적 파급력이라는게 해당 도덕철학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면요. 나아가 만약 그 특정 도덕철학이 (그 주창자들의 의견과는 무관하게) 현실 세계에서 독자들의 '몰이해'를 야기할만한 경향성을 갖고 있다면, 그 도덕철학은 그 자체로도 뭔가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철학사적으로도 여러 사례가 떠오릅니다.

일례로 법가가 동아시아 철학계에서 크게 위축된 것에는 흔히 '법가를 내세웠던 진나라의 몰락'이 논거로 제시됩니다. 과연 상앙이라는 한 개인이 얼마나 많이 법가라는 철학적 전통을 대변하는지와는 무관하게요.

또한 역시나 니체와 나치 얘기 역시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니체가 나치에 동조했으리라는 주장은 (니체가 페미니스트였다는 주장만큼이나) 문헌적으로는 근거가 빈약한 주장입니다만, 니체의 여동생이었던 엘리자베트를 비롯하여 니체철학이 '오독'을 야기하기에 아주 효과적이라는 점만큼은 (조심스럽게 생각하건데) 니체학자들도 많은 부분 동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법가, 니체, 그리고 이번의 효과적 이타주의에 이르기까지, 이런 연쇄적 효과에 대해서 도덕철학은 책임을 져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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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뱅크먼의 배경에 효율적 이타주의가 있다는 건 처음 들어보네요.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저는 책임이 귀속되는 대상은 사람 혹은 사람으로 간주할 수 있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치의 만행의 배후에 하이데거의 존재론이 있다느니 니체의 권력의지론이 있다느니 하는 식으로 이론에 책임을 귀속시키는 시도가 저에게는 어쩐지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원튼 원치 않든) 만행을 저지른 행위 주체들의 책임을 경감시키는 측면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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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해주신 바에 동의합니다. 다시 보니 제가 명료하게 쓰지 못한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도덕철학은 그 현실적 파급력에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하는걸까요?

라고 말을 했을 때는

는 의미로도 분명 생각을 했던 것 같긴한데, 아마 내심에는

효과적 이타주의는 도덕철학적으로 결격사유가 생긴걸까요?

내지는

도덕철학은 그 자체로도 뭔가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같은 이론적 결격사유 해당 여부에 더 의중을 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컨대 마치 '뚱뚱한 남자 트롤리 사례'가 고전적 공리주의에 대한 반례로서 '결격사유'로 기능하듯이, 이번 사태가 효과적 이타주의가 도덕철학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방증하는 '결격사유'로서 기능할 수 있다고 보는게 합당할지 여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철학사 사례들을 통해 언급했듯이, 이는 사뭇 어느 철학적 전통에 서있냐에 따라 답이 갈릴 문제 같기도 하다는게 제 추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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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썼다가 지웠다가 반복하게 되네요.
한가지만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저도 @Raccoon 님 말씀처럼 몰이해에 의해 행위를 저지른 행위 주체들의 책임을 경감시키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동시에, 한 철학 X가 오독될 가능성이 높은것이라고 할지언정 그 철학 자체보다는 X주의 연구자 쪽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연구자의 의무를 (1) 자신이 연구하는 철학을 명료화, 체계화하고 (2) 그를 통해 철학이라는 학문 운동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연구자는 연구를 통해 해당 철학이 얼토당토하지 않다는 것을 밝혀내 원천적으로 차단하거나, 그것이 받아들일만 한 것이라면 자신의 연구 대상이 오독되거나 몰이해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몰이해와 그에 따라 일어나는 비극적 사태를 직접적으로 막는 것은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인 반면, 그것을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수정하거나 체계화하여 비극적 사태의 가능성을 차단하거나 (최소한) 줄이는 것은 가능한 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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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적 이타주의가 FTX 사태를 발생시킨 여러 도덕적 문제들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이론인지가 쟁점일 것 같네요. 저는 효과적 이타주의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고 FTX 사태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해서, 이 사안을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FTX 사태에 대해 규탄한 효과적 이타주의자도 있다는 사실을 보면, 반드시 효과적 이타주의가 잘못된 철학이라고 비난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니체와 나치 혹은 하이데거와 나치에 대해서는, 그 두 인물의 철학 자체 속에 나치즘적인 요소가 내재되어있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들이 종종 있기도 해요. 저는 동의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런 연구자들은 그 두 인물의 핵심 주장들을 받아들이게 되면 결국 나치즘까지도 긍정적으로 봐야 하는 결과가 도출된다고 지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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