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철학은 사실상 뉴턴의 고전역학에 대한 철학적 수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그대로 양자역학에서도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 지금 대부분의 사람이 인정하는 견해죠. 헤르만은 칸트철학으로 뉴턴역학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고 있는 것 같은데, 고전적 관점에 대하여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고전적 관점은 외부를 인식하는 인지자가 인지한 내용과 인지자 외부의 독립적인 세계가 서로 대응한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서 양자역학에서는 - 선생님께서 올려주신 글에도 등장하지만 -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에 인식하는 이가 관여하게 되지요. 아마도 이 정도가 보통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대한 대중적인 설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마르부르크 학파 등의 신칸트주의자들은 다시 반론을 제기하는데요, 그들에 따르면 (양자역학을 포함한) 모든 자연과학적 인식구조는 사유의 선험적 논리 형식에 의존한다고 하죠.
이러한 논리를 주장하자, 칸트의 주장 자체마저 새롭게 바라보도록 하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즉, 주체마저 객체화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는 존재론적으로 불안정한 주체라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후설에 의해서 이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후설은 존재론적인 확실성을 과학의 요건에 아예 포함시켜버리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요.
이제 프랑스 쪽에서 베르그송-시몽동-들뢰즈로 이어지는 '표현적 유물론'이라는 새로운 입장이 등장합니다. 이는 기존 유물론의 환원주의적인 입장을 고수하지 않고, 물질에 내재하는 힘에 이한 창조적 형성을 강조하는 견해입니다. 복잡계나 비선형적인 것을 다루는 과학분야, 양자역학 등에 나름대로 최적화된 철학적 입장이라고 볼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사실, 양자역학에 대한 해석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이 토론의 피처링을 해 주신 하이젠베르크와 닐스 보어 같은 분의 견해를 위 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이는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불리는 현재 주류적인 입장이고 다른 마이너한 견해들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양자역학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면, 이를 해명하려는 철학적 설명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을 거에요. 이를테면 에버렛의 다세계 해석이랄지, 최근 유행하는 멀티 유니버스 가설 같은 것이 나중에 더 적합한 해석으로 받아들여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저도 깊이 아는 주제가 아니라 극히 피상적으로만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재미있는 글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