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그리고 Esotericism

현재 Yale대학 교수인 Paul Franks의 하버드 대학교 Dissertation은 "Kant and Hegel on the Esotericism of Philosophy (1993)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록 중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Why are Kant and Hegel so notoriously hard to understand? It has hitherto gone unnoticed that Kant and Hegel account for philosophy's necessary obscurity by recasting what they think is an ancient tradition of philosophical esotericism..."

즉, 칸트와 헤겔의 철학이 그토록 난해한 이유에 대해 철학적 'esotericism'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이 esoteric이란 단어는 '난해하다'는 뜻과 '밀교(密敎)적'이라는 뜻이 있죠. 여기서 사용되는 문맥을 고려해 보고, 또 초록의 내용으로 보아서 esoteric은 주로 두번째 의미(Franks 자신이 넓은 의미의 esotericism을 고려한다고 하기도 했죠)로 보이며, 동시에 그 두가지 의미가 함께 고려되는 효과도 의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Arthur M. Melzer는 자신의 저서 "Philosophy Between the Lines: The Lost History of Esoteric Writing"(University of Chicago press)에서 '...서양사상사는 자신 혹은 타인의 저작에서 esoteric writings를 사용했음을 증명하는 주요철학자들의 수백개의 진술을 포함한다'고도 했지요.

철학사 기술이나 개별 철학자들에 대한 연구에서 이런 사실들은 지금도 경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만약 이에 대한 연구가 계속 이루어진다면 어쩌면 미래에 우리가 아는 서양철학사는 좀 다른 모습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주제를 발굴해 보는 것도 의의가 있을 듯해요.

5개의 좋아요

대충 읽어보니 Franks 교수도 칸트와 헤겔이 비의적 철학을 지향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사실 칸트와 헤겔은 비의적 철학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들이죠. 칸트의 경우 대중을 향한 계몽주의적 지향을 끝까지 놓치지 않았던 그야말로 public thinker입니다. 헤겔의 경우 초기에는 쉘링의 영향을 받아 신비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경향성을 보이지만, 1802년 전후의 기간에 쉘링의 비의적 철학에 거리를 두기 시작하여 자신의 변증법 철학으로 향하게 되었죠. 정신현상학(1807) 서론에서 헤겔은 쉘링의 이러한 비의성을 정면으로 조준하여, 철학은 반대로 exoteric이어야 하고 개념적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헤겔의 체계에서 철학이 종교나 예술보다 우위에 서게 되는 배경에 바로 철학의 이러한 공적이고 개방적이고 논변적이고 개념적인 특성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헤겔의 책은 왜 이리 읽기 어려울까요...)

철학사나 철학자들에 대한 비의적 접근은 제가 아는 한 이미 꽤 많은 케이스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컨대 플라톤의 서한에 대한 튀빙엔 학파의 접근은, 플라톤이 글로 쓴 것과 구두로 가르친 것이 상이하다고 해석합니다. 다른 예로, 근대 정치철학사의 영역에서 레오 스트라우스는 애초에 비의적 독해(신학-정치적 독해)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죠.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러한 비의적 접근이 개별 사상가의 biographical 역사연구에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철학적 혹은 철학사 연구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령 플라톤이 자신의 "진짜" 철학을 비의적으로 남겼다고 칩시다. 그런데 후대의 사상가들이 실제로 접근했던,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플라톤의 출판된 철학 뿐이었다면, 플라톤의 "진짜" 가르침을 연구하는 것이 과연 "철학사" 연구일까요? 그게 아니라면 "철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만약 이 "진짜" 가르침이 철학적 논변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면 "철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그 비의적 속성상 철학적 접근 역시 쉽지 않아보입니다 (소위 "진짜" 철학들은 원래 문자와 논변으로 다뤄질 수 없다고 주장하곤 하지요..).
물론 어떤 이의 비의적 가르침을 동시대 혹은 후대의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이해를 마찬가지로 비의적으로 숨긴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요. 이 경우에는 물론 이념사/지성사적 접근을 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요. 그러나 이 경우 역시 철학적/철학사 연구와는 조금 멀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6개의 좋아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제가 Paul Franks 의 논문을 구하지 못해 다 읽어보지 못해서 엄밀하게 그의 입장이 무엇인지는 말하긴 어렵다고 일단 말씀드리고 싶어요.

Kant의 경우에도 논란은 있습니다. 당시 스웨덴의 신비사상가 Swedenborg가 그의 사상에 얼마나,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연구서가 출판되어 있기도 하지요.

Kant und Swedenborg: Zugänge zu einem umstrittenen Verhältnis (Hallesche Beitrage Zur Europaischen Aufklarung, 38) (German Edition) https://a.co/d/1TtlJhi

제가 읽어보지 못하고 제시하는 텍스트라서 죄송합니다만, 문제가 그리 간단한 것만은 아니라는 반증이라고는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헤겔의 경우도 Glenn Maggie 같은 학자는 연구를 통해 헤겔이 야콥 뵈메, 조르다노 브루노, 파라켈수스와 같은 헤르메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철학자 플라톤의 예는 고대라는 시간적 거리가 있어서 전하지 않는 자료들이 많으므로 다소 적절한 예인지 모르겠습니다만, esoteric한 것이 '진짜' 철학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진짜' 철학이 아니라는 주장을 저는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소위 신비적/비의적인 전통의 영향을 '철학적인 것'과 극을 이루는 것처럼 대비시키고, 소위 "진짜" 철학은 문자와 논변으로 다뤄질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마치 비의적인 것의 대표적 특징으로 여기시는 듯한 말씀에는 다소 오해가 있으신 듯 합니다. Esotericism에도 무척 다양한 견해와 입장들이 있으며 비의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관계가 무척 복잡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암스테르담 대학 교수 Wouter Hanegraaff 가 면밀한 연구에서 보여주듯이 르네상스기 이래로 학계는 esoteric한 것들을 이교적, 악마적인 것과 연관시키는 등으로 배제시키고 이성적인 것을 강조해 왔습니다.

막스 베버가 "우리 시대의 운명은 합리화와 지성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의 탈주술화를 특징으로 한다."고 말한 것처럼 비교적인 것은 이성에 의해 추방되고 심지어 불건전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것은 "진짜" 철학사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생각들이 존재해 왔습니다. 물론 철학자 개인에 대한 연구에 비교적 요소를 다루는 것은 어느정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저렇게 말한 베버 자신이 Jason Josephson-Storm 의 실증적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처럼 신비주의적 "뮌헨 코스믹 서클"의 멤버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처럼요.

철학사 혹은 이념사/지성사에서 비의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관계는 무척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비의적인 것이 마치 숨겨야 될 것으로 여겨져서 소수의 제자들에게 비밀리에 전수되었다는 것은 일종의 선입견을 바탕으로 한 인상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메인스트림에 의하여 기술된 내러티브에 너무 익숙해서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엄격한 자세는 오히려 그런 선입견에 고정되지 않은 개방적인 자세일 거라 생각합니다.

참, 제 글을 이렇게 읽어주시고 친절하게 긴 의견까지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blush: 저는 Herb님께서 제 댓글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시지는 않으셨으면 해요. 앞으로도 서강올빼미에서 오래오래 보게 될텐데, 절대 절~~대 서로 불화같은 것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혹시라도 제 반론이 마음에 안 드셨다면 죄송요...:sob: Herb님의 의견 깊이 새겨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개의 좋아요

유익한 지적 감사합니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몇몇 부분은 Yates 님과 제가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몇몇 부분은 서로 다른 주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네요. 이하 제 생각을 조금 더 명료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먼저 esoteric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쪽 분야에 대해 깊이 있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로 "소수에 의해 이해되는 or 이해될 수 있는 or 이해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라고 간주했습니다. or 을 통해 연결시킨 것은 제 생각에 문맥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기준이 지시될 수 있는 듯 보여서입니다. 예컨대 과거 어느 시점에 어느 종교 비밀결사단체에 의해 A 사상이 전승되었다면 저는 A를 충분히 esoteric하다고 볼 것 같은데요. 반면에, 특정한 물리학의 고급 이론 같은 경우는 사실상 소수의 전문 물리학자에 의해서만 이해되고 있지만, 물리학이라는 "공적" 담론의 특성상 esoteric하다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자의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겠네요.

비의적 사상에 "영향받았다"와 비의적 사상을 "지향한다"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영향받았다"라는 것은 모호한 표현이죠. 영향의 정도와 이유, 대상 등이 다 다를 수 있으니까요.
칸트의 경우 Swedenborg을 읽고 칸트가 감명을 받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칸트가 비의적 사상을 지향할 정도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칸트는 독단주의자(라이프니츠-볼프 학파)와 회의주의자(흄, 버클리, 로크) 등 모두에게 "영향받았지만", 자신은 독단주의도 회의주의도 지향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못 박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만약 칸트가 esotericism에 대해서 말할 기회를 얻는다고 상상해본다면, 칸트는 자신의 철학은 esoteric을 지향하지 않는다 라고 한 줄 추가했을 것입니다. 헤겔은 이것을 명시적으로 썼구요. 따라서 헤겔 역시 뵈메 등의 신비주의 전통을 잘 알고 있었고 영향도 받았지만, 이들의 방식을 지향하지 않았습니다.

전술했다시피, 저는 역사적 연구(이념사/지성사/철학사)에서 esoteric 전통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러한 역사적 연구에서 오늘날 어떤 "철학적 가치"를 뽑아낼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만약 해당 esoteric 전통이 오늘날의 학술언어로 "철학적 논변"으로서 재구성될 수 있다면 이는 충분히 철학적 연구의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 해당 esoteric 전통이 오늘날 우리가 연구하는 철학자들(가령 칸트)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면, 이 역시 충분히 철학사적 연구의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esoteric 한 것을 만약 "소수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무언가로 본다면, 저는 이에 대해서는 적어도 역사적 접근과 구분되는 의미에서의 "철학적" 연구의 대상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적어도 오늘날 철학적 연구와 논변들은 모두에게 접근가능한, 공적인, 개념적인 의미론적인 지평 위에서 놓여 있기 때문에 그 철학적 가치를 지니는 것이죠. 플라톤의 예시를 가져왔던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였습니다. "플라톤이 언어로 쓴 것"과 "플라톤 및 그 지인들만 가지고 있던 esoteric한/사적인 것"이 충돌한다면, 저는 적어도 철학적 관점에서는 후자를 버리고 전자를 보존할 것이라는 거죠. 비슷한 이유에서 저는 유대-신학적 사유가 강하게 작동하는 철학자들(예컨대 발터 벤야민)의 작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은 관점과 취향의 차이가 어느정도 동반되는 것이겠죠.

6개의 좋아요

좋은 아침이에요. 이렇게 이른 시각에 장문의 글들을 정성스럽게 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Herb 님.

사실 esotericism이 무언지 그것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쉽게 답변을 하지 못하는데요, 그것은 Wouter Hanegraaff가 지적하듯 "Western esotericism"은 "ultimately historiographical concept"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선험적 기준 같은 것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죠. 따라서 현재 우리가 역사편찬/기술의 결과로서 이해된 현재의 esotericism을 기준으로 생각해 볼 때, 물리학자들만이 이해하는 '공적' 담론은 esoteric 하지 않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두번째로 칸트와 헤겔의 경우, 지적해 주신 논점에 저도 동의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그들이 신비주의자였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신비사상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고 앞으로 연구의 여지도 있다는 취지였죠.

마지막으로 지적하신 것도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물론 '소수'가 어느 정도라고 하여야 할 지 모호할 수는 있습니다만, 이를테면 생존에 거의 이해되지 않았던 무명의 학자가 후대에 발굴되는 경우가 꽤 있는 것처럼, '소수에 의해서만 이해되던' 학자/학문이 주류로 편입되는 일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소수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 esoteric한 것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선생님 말씀대로 그것은 모두에게 접근가능한, 공적인, 개념적인 의미론적인 지평 위에서 놓여 있는 철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적합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연구의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esoteric한 것으로 여겨진 것이 그러한 주류 철학에 편입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을 테고요.

@Herb 선생님의 좋은 말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올빼미 포럼에서 많이 접하고 여러가지 글들울 통해 배워가겠습니다. 좋은 하루, 시원하게 보내실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2개의 좋아요

(1)

@Herb 님의 지적처럼 escotericism의 범위가 모호한듯합니다.

(a) 말 그대로 헤르메스주의, 카발라처럼 (이성으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주의적 사상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고
(b) 아니면 (신비주의적 사상은 아니지만) 소수의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접근이 허용된 사상이라는 의미 같기도 하고
(c) 아니면 텍스트 자체를 공개되어있지만, 그에 대한 '진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능력 (초자연적인 능력일 수도 있고요, 아니면 그냥 암호학/수비학적 방법일 수도 있겠죠, 아니면 그냥 뭉갠 단어들이 원래 무엇인지 아는 능력이라던가요.)이 필요한 사상 같기도 합니다.

(아마 이 셋이 전부 서로 겹쳐있지 않을까....생각을 하긴 합니다.)

(2)

사실 이런 비의적인 요소는 철학사든 무엇이든 연구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도교 문헌 중에서도 연단술/연금술 문헌들은 이런 비의적 표현들이 많은데, 실제 어떤 자연 현상/심리 현상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고. (이는 텍스트 자체가 은유적으로 쓰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애당초 합리적인 설명이 아니었을 수도 있죠.)

불교/힌두교 문헌 중에서도 이런 경우도 많고, 아니면 지금도 아랍권에 남아있는 소수 종교인 Alawits처럼 외부인들에게 자신들의 종교적 내용을 전혀 공개하지 않는 종교들도 있죠. (얄궃게도 시리아-이라크 전쟁으로 난민들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공동체의 구심점이 파괴되면서 서양권에서 이러한 아랍권 소수종교에 대한 연구 분량이 늘었긴 하죠...)

여러모로 흥미롭지만, 어려운 일이 많은 연구 분야 같습니다.

3개의 좋아요

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Mandala 님. 사실 esotericism을 명학히 정의내리기가 어려워서 연구서 같은 것에서도 주로 topic의 목록을 정해놓고 다루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a) 말씀하신 헤르메스주의나 카발라가 이성으로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고는 하지만, 이에 대해 수많은 연구가 이성적인 언어로 이루어져 온 것도 사실이긴 하죠.

(b) 소수에게만 접근이 허용된 사상이 모두 esotericism에 속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개 esotericism의 지식은 소집단에게 혹은 도제식으로 계승되는 경우가 일반적인 것 같긴 해요.

(c) 사실, 마법사라는 논란이 있었던 중세 베네딕트회 수도원장 Johannes Trithemius는 실제로 tabula recta를 이용해 다중문자 암호체계를 고안하기도 했고, 유대의 전통적인 게마트리아가 수비학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것이 실제 esotericism으로 논의되는 것 자체에 있어서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흥미롭지만 연구하기 어려운 분야라는 말씀, 참 적절하게 요약해주신 결론 같아요. 이런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비주류적인 위치에 서게 되긴 하지만, 그들의 노력도 존중받아야 할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Mandala 님, 그리고 @Herb 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2개의 좋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는게 일천하다 보니 제가 맥락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위에서 이뤄진 대화를 보면서 막연하게 느낀 바가 있다면,

칸트 철학은 신비주의적 면모를 담고 있었다.

라는 얘기를 들으면 아 그럴 수도 있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면거도 문득

아, 그렇다면 칸트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가 직접 신비주의적 의식에 참여해야 된다는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 덜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건 아마 오독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을 해봅니다만, 저 같은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이런 함축이 의도된게 만약 맞다면 쉽사리 수긍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1개의 좋아요

(1)

뭐랄까요. 이성의 언어지만, 헤르메스주의나 카발라의 내용을 '진심으로' 납득하는 것은 (저에겐) 꽤 어려운 듯합니다. 사실 (일종의 차별주의적 생각일 수도 있지만) 기독교나 불교에 비해 더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 저에겐 있었습니다.
아니면 사실 저의 과학적 지식 (약학적, 화학적, 심리학적)의 부족으로 인해, 이들이 지칭하는 현상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는, 개인적인 한계일 수도 있죠.

이 부분을 말한 것은, 여러 '비의적' 전통들이 비의적 지식에 접근하는 방식이 이렇다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시아파에서도 쿠란의 진의는 선지자의 혈통을 계승한 자가 가진 '특별한 재능'으로 읽어야만 밝혀진다 주장하기도 했고, 중세 유대교/카발라에서는 토라를 해석하는 '특정한 수학적 수식'을 고안해 이를 통해 진의를 접근할 수 있다 주장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모음이 몇 개, 자음이 몇개 이런 것을 세는 방식으로요.)

과거에는 이런 것이 엄밀한 언어학적 방법이나 논리학적 방법 혹은 내러티브적 방법과 구분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학문의 경우, 중국 문헌에 적힌 '한자'에 대한 연구에서도 [한문이 가진 그래픽적 요소 때문인지] 조금 이런 비의적으로 느껴지는 해석을 접한 바 있습니다.)

(2)

사실 (c)의 예시 때문에, 비의와 비의가 아닌 것의 경계가 참 애매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경>이 비의적 해석을 의도했든 안했든, 후대 사람들은 이 성경을 온갖 방법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도덕경>에 대해서도 우리는 동일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몇몇 해석은 분명히 '비의적'이라 부를 수 있을겁니다. 칸트나 헤겔의 저서에 대해서도 이러한 것이 불가능할까요? 저는 불가능하다 보지는 않습니다만, herb님의 견해처럼 이 해석이 '철학적으로 중요한지'는 의문스럽습니다.

에구에구. 쓰다보니 두서가 없었네요. 그래도 예이츠님의 덕심(?)어린 글 잘 읽었습니다. 언젠가 한 번 헬레니즘 - 로마 - 로마 후기 시절의 비의적 지식들에 대해서 정리한 글을 제가 써볼까 했었는데, 여러모로 저 혼자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이 많은 힘이 됩니다!

1개의 좋아요

말씀 감사해요, @wildbunny 님.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는 전쟁 중 포로수용소에서 완성되었다. 이 저작에는 전쟁이라는 상황에서의 사색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위 문장이 사실이라 해도 여기서

따라서 우리가 비트겐슈타인의 초기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선 전쟁에 참전하고 포로수용소에 갇히는 경험을 해야만 한다

라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염려는 마셔요, @wildbunny 님. 염려하신 함축 같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1개의 좋아요

이쪽 분야에 참 조예가 깊으신 것 같아요. @Mandala 님. 여러모로 새로운 것들도 덕분에 알 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 주제를 '잡념' 쪽으로 올린 것도 사실 제가 이것이 진지한 철학적 주제라기보다 '잡념'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한데, @Herb 님, @Mandala 등 여러 선생님들께서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댓글을 달아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헬레니즘 - 로마 - 로마 후기의 비의적 지식에 대한 글을 올려주신다면 정말 감사히 읽어보겠습니다. '동양인은 정말 모순율에 둔감할까?' 중에서 인용하신 단락은 마치 이후에 쓰실 글의 Teaser 같은 느낌이 들어요. 시몬 마구스라든지,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에 관한 내용이랄지, Saoshyant (Saoš́iiaṇt̰)에 관한 심도 깊은 글이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1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