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뭐랄까요. 이성의 언어지만, 헤르메스주의나 카발라의 내용을 '진심으로' 납득하는 것은 (저에겐) 꽤 어려운 듯합니다. 사실 (일종의 차별주의적 생각일 수도 있지만) 기독교나 불교에 비해 더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 저에겐 있었습니다.
아니면 사실 저의 과학적 지식 (약학적, 화학적, 심리학적)의 부족으로 인해, 이들이 지칭하는 현상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는, 개인적인 한계일 수도 있죠.
이 부분을 말한 것은, 여러 '비의적' 전통들이 비의적 지식에 접근하는 방식이 이렇다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시아파에서도 쿠란의 진의는 선지자의 혈통을 계승한 자가 가진 '특별한 재능'으로 읽어야만 밝혀진다 주장하기도 했고, 중세 유대교/카발라에서는 토라를 해석하는 '특정한 수학적 수식'을 고안해 이를 통해 진의를 접근할 수 있다 주장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모음이 몇 개, 자음이 몇개 이런 것을 세는 방식으로요.)
과거에는 이런 것이 엄밀한 언어학적 방법이나 논리학적 방법 혹은 내러티브적 방법과 구분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학문의 경우, 중국 문헌에 적힌 '한자'에 대한 연구에서도 [한문이 가진 그래픽적 요소 때문인지] 조금 이런 비의적으로 느껴지는 해석을 접한 바 있습니다.)
(2)
사실 (c)의 예시 때문에, 비의와 비의가 아닌 것의 경계가 참 애매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경>이 비의적 해석을 의도했든 안했든, 후대 사람들은 이 성경을 온갖 방법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도덕경>에 대해서도 우리는 동일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몇몇 해석은 분명히 '비의적'이라 부를 수 있을겁니다. 칸트나 헤겔의 저서에 대해서도 이러한 것이 불가능할까요? 저는 불가능하다 보지는 않습니다만, herb님의 견해처럼 이 해석이 '철학적으로 중요한지'는 의문스럽습니다.
에구에구. 쓰다보니 두서가 없었네요. 그래도 예이츠님의 덕심(?)어린 글 잘 읽었습니다. 언젠가 한 번 헬레니즘 - 로마 - 로마 후기 시절의 비의적 지식들에 대해서 정리한 글을 제가 써볼까 했었는데, 여러모로 저 혼자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이 많은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