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c S. Nelson, 「자유에 반대하여 : 아도르노, 레비나스 그리고 자유의 병리들」 (2012)

안녕하세요.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을 공부하다가, 아도르노의 '객체 우위론'과 '비동일성'이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과 매우 유사함을 느껴 찾아보니 실제로 연구한 영어 논문이 있더라구요.

본 논문은 레비나스의 현상학적 용어와 아도르노의 문화산업을 교차하면서 자유의 병리적 문제를 진단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도르노와 레비나스 사이의 유사성을 포착합니다. 아도르노와 현상학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매우 부족한데, 유용한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에릭 넬슨은 레비나스와 아도르노 사이의 거의 논의되지 않은 연관성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시의성이 있고, 매우 흥미로운 교차점을 보여줍니다. 넬슨은 아도르노의 '물질'과 레비나스의 '얼굴'을 매개로 하여 얼굴이야말로 타자의 물질성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이를 통해 자유 개념을 재해석하여, "객체(object)를 향한 자유"를 적극적으로 계승합니다. 특히 아도르노가 하이데거를 비판하는 논증이 레비나스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합니다.

자유에 반대하여 - 아도르노, 레비나스 그리고 자유의 병리들.pdf (177.8 KB)
NELALA-4v1.pdf (89.6 KB)

9개의 좋아요

아마 두 인물 사이의 유사성에 대해 지적한 글들이 꽤 많이 있을 거예요. 저는 아도르노나 레비나스 전공은 아니지만, 이 인물들에 대해 학부 시절 서강대 서동욱 교수님의 현대철학 강의에서 처음 배울 때부터, 그 인물들이 같은 맥락에 있다는 해설을 자주 접하였거든요. 서동욱 교수님이 종종 '동일성 철학'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아도르노나 레비나스 등의 철학자들을 함께 묶어서 소개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그들 사이의 공통점만큼이나 그들 각각의 독자적인 특징이 함께 부각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기억으로, 아도르노는 단순히 '존재론' 같은 추상적 층위에서 동일성 철학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비판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강조한 입장으로 알고 있어요. 구체적인 사회 비판이나 사회적 실천의 변화가 동반되지 않고서, 이론적 층위에서만 이루어지는 동일성 비판에 대한 논의는 공허하다는 거죠. 반대로, 레비나스 같은 현상학 계열의 인물들은 형이상학이나 존재론 같은 근본적인 층위의 문제들을 철저하게 다루지 않고서 사회에 대해 말하려는 시도를 다소 피상적이라고 볼 것 같고요. 이런 차이들도 함께 비교하면서 어느 쪽이 좀 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하는지 살펴보신다면 아주 흥미로운 논의를 전개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저는 이 차이를 J. M. Bernstein, “Re-enchanting Nature”, in Reading McDowell (N. Smith ed., Routledge, London, 2002), pp. 217-45에서 처음 접하였습니다. 레비나스는 아니고, 맥도웰과 아도르노를 비교한 논문인데, 그 두 인물의 유사성을 강조하면서도, 아도르노와 달리 '사회적 실천'에 대한 분석이 전제되지 않은 맥도웰의 입장은 다소 공허할 수 있다고 비판하는 글이더라고요.)

4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