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렘(ḥērem)에 대한 이해?

종교철학에 관련된 질문입니다. 구약성경 여호수아서 6장을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는 헤렘(ḥērem), 즉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헤렘이란 간단히 말해 모두 죽여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 주었음이니라 (여호수아 6:17)

그러자 이스라엘 민족은 이렇게 그 명령을 이행합니다.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여호수아 6:21)

이는 문언 그대로 보자면 성인으로 구성된 무장한 군인뿐 아니라 전쟁과 상관 없는 영아나 어린아이 등 모든 사람과 동물을 하나님(내지는 절대자)의 명령으로 죽인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이러한 구절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었어요.

이는 철학에 대응해 본면,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개념이라든가,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것처럼 윤리가 목적론적으로 정지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와 비견할 수도 있겠고,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개념으로 접근할 수도 있을 거에요. 이외에 벤야민의 '신적 폭력' 개념에 대한 생각도 듭니다.

신학적으로는 마르틴 노트의 '신명기 역사서' 개념을 이용하여 설명하려는 시도라든가, 이스라엘 핑켈슈타인의 연구와 같은 성서고고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한 견해, 혹은 고대 근동지역의 과장된 전쟁기술 양식으로 설명하려는 견해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철학자들의 학설 자체에 대한 설명도 의미있겠지만, 이 사안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계시는지 선생님들의 고견에도 귀를 기울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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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학이나 구약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저로서는 '헤렘'이라는 주제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철학적' 해석보다 '고고학적'이거나 '종교학적' 설명을 더 선호합니다. 적어주신 내용에서는

이런 종류의 설명들이 가장 문제의 핵심에 가까이 있지 않나 해요. 철학적 해석을 위해서라도 우선 고고학적이거나 종교학적인 설명들을 참고할 때에야 논의가 엇나가지 않을 수 있다고 평가하고요. 그리고 이 맥락에서, 우선 저는

(1) 역사적으로 헤렘은 실행된 적이 없다.

라는 점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은 현대의 수많은 역사학자들과 구약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는 점인 만큼, 거의 정설이라고 보아도 좋을 거예요. 성서에는 헤렘이 실행되었다고 나오지만, 고고학적 증거들은 헤렘이 현실적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건이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고, 심지어 여호수아서 같은 책들은 헤렘을 실행하였다고 기록하면서도 그 뒤에 헤렘 규정에서 면제된 이방인들이나 버젓이 살아남은 이방인들을 언급한다는 점을 볼 때, '완전 봉헌' 혹은 '진멸'에 대한 성서의 기록을 단순히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리고 바로 이와 연속되는 맥락에서, 저는

(2) 헤렘에 대한 기록들은 이념적 맥락에서 독해되어야 한다.

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여호수아서는 실제 가나안 정복 전쟁을 역사적으로 담아낸 책이라기보다는, 그 전쟁을 후대에 특정한 이념적이고 종교적인 목적을 가지고서 재구성한 책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거예요. 가령, 여호수아서는 다양한 문학적 장치들을 통해 '이상적인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데, 이 모습은 역사 속 실제 이스라엘의 모습이었다기보다는 일종의 '범형'이나 '모범'으로 제시된 것으로 해석되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즉, "과거에 우리는 이렇게 모범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가나안에서 쫓겨났다."와 같은 신학적 교훈을 주려는 것이 여호수아서의 목적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3) 헤렘 기록에서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세계관'이다.

라고 저는 생각해요. 헤렘 규정은 단순히 이민족을 다 죽여야 하고 배제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장 그 헤렘 규정이 가장 강력하게 제시되는 여호수아서에서조차 라합 같은 이방 여인은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신앙의 모범으로 칭송될 뿐만 아니라, 이방 민족인 기브온 주민과 이스라엘이 화친을 맺는 이야기도 강조되죠. (이런 점들을 통해 나타나듯이, 애초에 여호수아서 자체가 헤렘이 문자적으로 실행되지 않았다고 스스로 인정하면서, 이방인들도 얼마든지 야훼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셈입니다.) 즉, 여호수아서의 관심은 정말 이민족을 다 죽였는지 살렸는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얼마나 제의적으로 순수하였는지에 있죠. 여호수아서는 가나안 정복 과정을 '전쟁'보다는 일종의 '정화' 과정으로 묘사하면서, 그 당시의 이스라엘이야말로 이집트의 구습과 가나안의 악습을 완전히 끊어내고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에 근거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 모범적 공동체였다고 묘사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범적 공동체야말로 가나안을 상실한 현재의 자신들이 되찾아야 하는 이상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4) 오늘날 우리의 역사나 문학 텍스트도 종종 헤렘 규정과 유사한 방식의 어조를 사용한다.

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령, 톨킨의 『반지의 제왕』 같은 소설에서 곤도르와 로한 연합군이 오크 군대를 궤멸시킨다고 해서, 우리 시대의 그 누구도 "오크도 생명인데, 오크를 몰살시키다니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라는 불평을 제기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야기의 강조점이 특정한 종족이나 생명에 대한 몰살의 정당화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가 다 알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이순신 장군이 수많은 해전에서 왜군을 무찔렀다거나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는 것은 단순한 문학적 창작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기까지 하지만, 누구도 그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이순신은 대량학살자이다."라거나 "안중근은 살인자이다."라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위인전이나 교과서에서 언급할 때 두는 강조점이, 단순히 '일본인들은 나쁜 놈들이니 몰살시켜야 한다!'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저 역시 이순신과 안중근을 존경하면서도 일본 문화를 참 좋아합니다.) 즉, 여호수아서가 헤렘 규정을 통해 말하고 있는 내용은, 오늘날 『반지의 제왕』 같은 소설이 말하고 있는 내용이나 이순신과 안중근의 이야기가 말하고 있는 내용과 그리 멀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들이 쓰인 맥락과 그 이야기들이 강조하는 교훈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 이야기로부터 대량학살에 대한 정당화를 이끌어내기는 정말 어렵다고 생각해요.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유튜브 영상들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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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고 자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근본주의적 신학의 성경무오성을 전제로 하는 설명에서는 @YOUN 님의 말씀과 같은 방식의 답변을 좋지 않게 보고 있기에 그동안 개인적으로 고심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혁주의 보수신학 내에서도 다양한 설명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죠. 그리고

철학적 해석을 위해서라도 우선 고고학적이거나 종교학적인 설명들을 참고할 때에야 논의가 엇나가지 않을 수 있다고 평가하고요.

이러한 견해를 그동안 개인적으로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견해를 피력해 주셔서 큰 힘이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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