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iel Dennett> 1장: "The Project of Naturalism"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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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자연주의 프로젝트(The Project of Naturalism)

언뜻 보기에 과학적 세계는 가치중립적(value-free)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세계는 가치들로 가득차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사랑과 미움, 평화와 폭력, 좋음과 싫음 등이 우리들 삶에 의미(meaning)를 준다. 게다가 '의식'(consciousness)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러한 의식을 바탕으로 자라난 '나'(self)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그러한 '나'가 이러저러한 마음을 먹고 결단을 내리는 '자유의지'(free will)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러나 '순전하게'(purely) 과학적인 세계관에서는 '의미', '의식', '나', '자유의지' 등과 같은 인간적인 특성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이 없어보인다. 세계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에서는 이러한 인간적인 특성들이 끼어들 틈은 도저히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삭막해보이는 과학에 윤리적, 정치적, 미학적, 종교적인 가치들을 지닌 인간의 존재를 조화시킬 수 있을까? 결국엔 둘 중 하나의 세계만을 배타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제부터 우리가 살펴볼 철학자 대니얼 데닛(Daniel C. Dennett)은 이러한 질문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2. 데닛은 누구인가?

데닛은 주로 영미 분석철학 계열의 학자로 정체화되면서도, 그의 수많은 중심 주제들은 현상학과 대륙철학 계열 사상가들에게 잘 어울리는 측면이 크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다닐 당시에 콰인(W. V. O. Quine.)의 학생이었다. 그는 하버드에 있을 당시에 후설의 현상학에 의해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전한 적이 있다. 이후에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지도교수인 길버트 라일(Gilbert Ryle) 아래에서 수학하며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당시에 길버트 라일이 데카르트적 이원론에 가한 행동주의적 비판들은 훗날 의식에 대한 데닛의 논의들에 스며들게 되었다.

데닛은 초기에 심리철학 분야의 저작들을 통해 명성을 얻었다. 대표적으로 , ,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 이후에 그는 존재론, 인지과학, 로봇과학, 자유, 다윈주의 진화생물학, 윤리학, 종교학 기타 등등의 분야들에 대해 폭넓게 연구하고 집필해왔다. 언뜻 보기에는 그 분야들이 서로 상관이 없는 별개의 영역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것들은 인간의 체험을 과학적 세계관과 종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하나의 중대한 비전에 의해 통합된다.

3. 자연주의의 역사적 맥락

(1) 기계론과 제거주의

데닛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의 사상을 서양 철학의 역사적 맥락에 둘 필요가 있다. 일단 16세기 근대 과학의 발전은 철학적 사고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과학들은 **기계론적 원리들(the principles of mechanism)**에 기초해 있었다. 모든 결과들은 원인들에 의해 설명이 되고, 원인은 결정론적인 자연법칙을 따른다. 자연은 관측자와는 독립적인 객관적 영역이다. 그리고 가치와 목적(value and purpose)은 자연적 질서로부터 추방당했다. 언어의 역할은 세계를 기술하고 설명하는 역할일 뿐이지, 마술적 주문에 의해서 세계를 구성해내거나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에 대한 객관적 실재와는 대조적으로, 인간의 체험은 주관적인 현상의 영역으로 밀려났다.

기계론은 인간 세계에 대한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는다. 홉스(Thomas Hobbes)와 같은 몇몇 사상가들은 자연과학적 방법론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현상들에 결단코 적용되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처음에는 이러한 생각이 주로 도그마적인 위치에 있었으나, 몇 세기가 흐르고 경험적 방법이 사회학 및 심리학 등에 의해 인간 활동들에 대해서까지 적용되면서, 이데올로기(ideology)는 사회, 가치, 마음에 대한 메커니즘을 상당히 잘 설명함으로써 뒷받침되는 비전에 자리를 내 주었다.

유물론자들은 인문학적인 현상들이 환영들(illusions)이며 원시적인 신화들(primitive mythologies)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환영들은 자연적 질서에 대한 발전된 이론들에 의해서 점차적으로 줄어들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제거될 운명에 놓여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유(freedom), 도덕(morality), 아름다움(beauty), 심지어는 사랑(love)까지도 환영들이라는 점을 성공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이와 같이 자연에 대한 유물론적 비전은 **제거주의자(eliminativist)**라 불릴 수 있다.

(2) 이원론

이러한 제거주의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이원론(dualism)**인 것처럼 보였다. 이원론은 한편에 과학적 지식이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자연적·물질적 질서를 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mind)이라는 이차적 질서(a second order)**를 두기도 한다. 이는 과학에 의해 자연으로부터 추방당한 모든 인문학적 현상들을 위한 피난처로써 기능할 수 있는 질서다. 마음의 질서에서는 이유(reason)가 원인(cause)을 대체하고, 자유(freedom)가 결정론(determinism)을 능가하며, 목적과 가치(purpose and value)가 맹목적인 자연법칙들(blind natural laws)을 극복한다.

마음과 물질은 공통적인 속성을 갖지 않는 서로 독립적인 실체라고 주장함으로써, 이원론은 과학이 주관적이거나 종교적인 기타 인간의 관심사들로부터 방해받지 않으며 진보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었다. 동시에 그것은 인생을 살만한 가치가 있게 만들어주는 가치들(values), 신들(gods), 사회적 관계들(social relationships)이 과학에 의해 침해당하는 것으로부터 보호한다.

(3) 데닛의 자연주의

이와 같이 이원론자들이 그어놓은 한계선(this line in the sand drawn by dualists)은 처음부터 도전을 받아오긴 했지만, 최근의 과학적 발전들은 마음이 고립되었다(the isolation of the mind)는 설명의 타당성을 점점 잃게 만들었다. 다윈은 인간을 생물학적인 것에 통합시켰다. 그리고 뇌과학의 최근 연구들은 인지, 감정, 그리고 행동이 신경생리학적인 과정들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데닛은 위 두 가지 대안들이 서로 양립불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다. 그의 접근의 본질은 인문학적인 현상들의 타당성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과학적 세계관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제거주의적인 입장과는 다르게, 그는 의식, 자유, 도덕, 그리고 기타 등등의 실재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정신적이고 인간적인 현상들이 과학적 방법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의 관점은 이원론과 차별화된다.

이러한 접근은 확실한 타협을 요구한다. 몇몇 인간적인 특성들은 우리가 실제로 체험한 바를 적절히 반영하기 위해서라도 디플레이션될(deflated) 필요가 있다. 이는 다양하게 인플레이션된, 형이상학적인, 절대주의적인 해석들과는 반대되는 입장이다. 자유나 의식에 대한 모든 철학적 혹은 이론적 개념이 보존될 수는 없으나, 그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참되게 바라는 본질적 특질은 보존될 수 있다.

반면에 과학적인 측면에서는 특정한 조정이나 양보가 필요하다. 과학적 방법은 여러 가지 방향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뇌에 대한 연구는 기능적이면서도 지향적인 분석들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반드시 타자현상학적인(heterophenomenological) 방법들을 채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윈 진화생물학의 이론은 밈에 대한 이론, 즉 **'밈학'(memetics)**까지 포함할 수 있을 정도로 확장되어야 한다.

(4) 자연주의의 일반적 특성들

이러한 타협적 입장은 **'자연주의'(naturalism)**이라 불린다. 데닛의 자연주의 프로젝트에 대한 전체 설명은 이 책의 나머지 주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자연주의 입장에 대해 일반적이면서도 전반적인 특질들을 다루고자 한다. 우선적으로, 무언가를 자연주의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떻게 그것이 자연에 들어맞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가장 뚜렷하게 반대되는 입장은 자연 바깥에 있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신들과 영혼들에 대한 호소라거나 자연 너머에 있는 다른 힘들에 대한 호소를 하는 것은 자연주의와 전형적으로 반대되는 입장이다. 허리케인에 의한 파괴를 설명하기 위해서 신들의 변덕스러운 분노에 호소하는 것은 전형적인 초자연주의자의 설명이다. 이와는 반대로 자연주의자는 자연이 규칙적이며 비인격적인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연주의자의 프로젝트는 모든 현상들을 특정한 자연적 과정들에 호소함으로써 설명하려는 것이다.

홉스와 돌바크(Baron d’Holbach) 자연을 오직 물리적 자연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모든 설명은 보편적인 물리 법칙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데닛은 자연에 대해 더욱 포괄적인 개념을 가졌다. 그가 생각한 자연은 생물학적인 진화 과정의 결과로서 창발된 규칙성(regularity)을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생물학적 유기체들(biological organisms)과 시스템들을 지배하는 그 규칙성은 **진화적인 적응(evolutionary adaptation)**에 기반한 **기능적 자연(a functional nature)**이다. 그것들은 어떠한 보편적 물리 법칙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순전하게 물리적인 것을 넘어서서 자연주의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설명 방식(a mode of explanation)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서, 수많은 유기체들은 빛에 반응하는 행동들을 진화시켜왔다. 그러나 오직 광학과 광양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반응들을 설명하기에는 부적합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진화적인 관점을 통해서만 이러한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다. 즉, 그들이 포식, 방어, 짝짓기 등에서 하는 기능들을 고려하고 그들의 창발을 이끈 진화적인 역사를 파악해야만 이러한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다. 생물학적 관점이나 기능적 신경생리학의 입장에서 인간 현상을 설명하려는 것은 데닛의 입장에서 여전히 자연주의다.

심지어 데닛은 다윈의 적응주의를 문화적 특성에도 적용하려는 태도를 고수한다. 인간 문화와 언어적 환경에서 어떤 특성들은 다른 특성보다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살아남았을 것이다. 살인을 범죄로 간주하는 것은 인간 문화들에서 그 월등히 적응적인 특질들 때문에 널리 복제되어온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살인의 범죄성에 대한 이와 같은 종류의 설명은 신성한 계명에 호소하는 종류의 설명과는 대비된다. 데닛에 따르면 이러한 설명은 여전히 자연주의적 설명으로 간주된다. 자연주의의 기획은 순전히 물리적이거나 기계론적인 것을 뛰어넘으려 한다. 데닛이 호소하는 "자연"은 기계론보다 더 나아가면서도, 그 어떠한 초자연적인 존재와도 거리를 두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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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데닛과 현대 사상

현대 사상의 관점에서 볼 때, 데닛의 심리철학은 기능주의(functionalism)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기능주의는 마음이나 뇌에서 그들이 수행하는 역할을 통해 심적 상태들(mental states)을 규정하려 한다. 그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심적 상태들이 두뇌처리과정의 관점에서 설명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원론과는 상반된 견해다. 존 설(John Searle)과 콜린 맥긴(Colin McGinn)은 이와 같은 이원론자의 입장들을 옹호하려 한다.

다른 어떤 측면에서 기능주의는 물리주의(physicalism)를 거부하기도 한다. 물리주의는 심적 상태들이 물리적인 기본 입자들과 그 구성들에 의해 정의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런데 기능주의는 심적 기능들(mental functions)이 복수실현이 가능하다고(multiply realizable) 본다. 두 가지 심적 상태는 그것들이 같은 심리적 기능을 실현할 때 동일하다고 본다. 심지어 그 둘이 서로 상당히 다른 신경과정을 예화한다고(instantiate) 해도 말이다.

물리주의는 **제거주의적 유물론(eliminative materialism)**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제거주의적 유물론은 심적 술어들(mental predicates)에 의해 인간 경험과 행동을 묘사하는 것이 적어도 다소 먼 미래의 이론 체계에서는 오직 물리적이면서도 신경학적인 용어들만으로 표현되는 기술들(descriptions)을 지지하게 됨으로써 버려질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처칠랜드 부부가 그러한 제거주의 입장을 옹호하는 현대 철학자들의 예시다.

힐러리 퍼트넘(그의 초기 저작)과 같은 기능주의자들은 스스로를 두 극단 사이에 위치시킨다. 심적 상태들은 과학의 범위를 넘어선 신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순전하게 물리적인 범주들에 대한 호소를 함으로써(by appealing to purely physical categories) 심적 상태들에 대한 참조(reference)를 없앨 수는 없다. 데닛 또한 스스로의 입장을 두 극단 사이에 위치시키지만, 그의 입장은 고전적 기능주의(traditional functionalism)보다 더욱 정교하다. 고전적 입장은 심적 상태를 (그것이 기능적 상태라 할지라도) 뇌의 실재 상태들(real states of the brain)로 간주했다. 데닛은 심적 상태들이 물자체(Ding-an-sich)의 의미에서 실재적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데닛은 심적 상태를 특정한 관점에서나 태도로부터(from within a specific point of view, from a stance) 유기체에 귀속시킨다고(attributed to) 본다. 그의 입장은 명백히 길버트 라일과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행동주의로부터 영향받은 것이다. (참고로 데닛의 태도 이론(Dennett’s theory of stances)은 본 책의 6장 주제다.)

데닛은 그의 심리철학에서 고전적인 이분법을 피하고, 조심스러운 뉘앙스로 세 번째 대안을 향해서 움직이려 한다. 그러한 방식의 영감은 그의 철학 전반에 걸쳐서 동일하게 작용한다. 그가 의식으로부터 시작해서 자아(selfhood), 자유(freedom), 그리고 윤리학(ethics)까지 나아가려고 할 때, 언제나 보통의 이원론자/물리주의자 사이의 대치상태(standoff)를 초월하면서 양쪽 진영에서 공유되는 공통적 전제들(the common presuppositions)을 비판하는 접근들을 제공하려 한다. 데닛은 전형적으로 다윈 진화생물학을 통해 현상들이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해 탐구하려 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유, 자아, 도덕 등이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로부터 그것들이 존재하는 우리 자신의 세계까지 어떻게 도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진화적 관점에 의존한다. 그렇게 도달하는 길은 점진적인 단계를 수반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재 범주들에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는 중간 현상들(intermediate phenomena)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들은 순전히 생물학적이지(purely bioological) 않다. 데닛은 다윈적 적응주의를 유전자를 넘어서 문화적 특성인 "밈"(memes)까지도 확장시키려 한다. 밈은 인간들을 순전히 생물학적인 한계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 이와 같이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발전은 우리가 범주화하기 어려운 **중간 단계들(intermediate stages)**을 기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인간 자아가 아닌 존재자들에서 자아와 같은(self-like) 특성들, 자유의지로 가는 여정에 있지만 아직은 아닌 과정들, 그리고 순수한 이기주의에 기초하지는 않지만 아직 진정으로 윤리적인 것들이 아닌 가치들과 같은 중간 단계들 말이다. 이렇게 온통 모호한 것들로 가득찬 진화적 역사 속에서 데닛은 마음과 인문학적 가치(humanistic values)의 기원과 현재적 본성(the present nature)을 탐구한다.

결국 그의 목표는 인문학적 가치와 과학이 양립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도와주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설득하는 것이다. 즉, 어떻게 하면 인문학적 세계관의 중요성(importance), 타당성(validity), 가치(value)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과학적 세계관과 통합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데닛은 평생을 골몰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의식(consciounsness)과 뉴런들(neurons), 물리학적 결정론(physical determinism)과 자유(freedom), 진화적 과정들(evolutionary processes)과 사회적 가치들(social values). 그 둘 중 하나의 가치만을 취하고 나머지 하나의 가치는 훼손 및 제거(undermine or eliminate)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그 둘을 직소 퍼즐(jigsaw puzzle)처럼 정합적으로 짜맞추고 통합시키느냐가 최대의 관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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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좋아요

(1)

확실히, 데닛이 현시적 이미지와 과학적 이미지를 화해시키려는 셀라스의 기획을 계승하는 학자라는 게 여기 적으신 부분에서 잘 드러나네요.

(2)

여기엔 플라톤도, 데카르트도, 니체도 하이데거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쌩쌩하게 살아서 대활약 중인 데닛, 밀리칸, 드레츠키, 페레붐이 등장한다.

ㅋㅋㅋㅋㅋ 책 표지가 도발적이네요. 그런데 밀리칸이 '생생하게 살아서 대활약' 중인 철학자인지는 저로서는 잘 모르겠어요. 데닛과 함께 셀라스 우파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생존해 있는 철학자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글을 그다지 잘 안 쓰는 것 같아서요;; (제가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요,)

ㅋㅋㅋㅋ 저도 어느 정도 도발적이면서도 과장적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책 팔려면 저렇게 어그로를 확 끄는 문구가 있는 게 도움이 되긴 하겠고 봐줄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