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itment '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논문을 읽다보면 종종 commit to/commitment/commitment to라는 단어들이 나오곤 하는데, 이 친구들을 이해하는데 자주 어려움을 겪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받아들이시나요?
물론 쓰이는 환경에 따라 사용되는 바에 차이가 있겠지만,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고 좀처럼 감이 오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commit to/commitment/commitment to라고 한다면 헌신, 전념/~에 헌신, 전념 함일텐데 많은 경우 철학 텍스트에서 이러한 식의 해석이 꼭 들어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1) 'ontological commitment'는 '존재론적 입장' 혹은 '존재론적 전제' 정도로,
(2) 'commitment to the thesis A'는 'A 테제에 동의' 혹은' A 테제에 관여', 'A 테제에 참여'

정도로 정도로 해석 가능할 것 같습니다.
대충 후술할 내용과 긍정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동시에 그것 속에 자신을 둔다(?)라는 상이 떠오르기는 합니다만, 무언가 손에 잡히지 않는 찝찝한 느낌이 계속 듭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받아들이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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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어떤 주장을 승인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새기고 있습니다. 예컨대 "보편자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존재론적으로 commit하는 사람은 그에 뒤따르는 주장들인 "집합은 실재가 아니다", "관계는 실재가 아니다" 등을 승인해야 하는데, 이렇게 어떤 주장 등을 승인함으로써 부과되는 규범적 책무를 받아들이는 것을 저는 'commitment'라는 말로 이해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브랜덤의 Articulating Reasons 2장에서 관련 설명이 나왔던 것으로 압니다.

번역어로는 '언질', '찬동', '개입' 등이 있는데, 저는 '언질'을 씁니다. 물론 딱 들어맞는 번역은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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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감사합니다. 확실히 ‘승인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받아들인다’와 같은 방식의 해석이 제 방식보다 훨씬 좋아보입니다. 덕분에 commit이라는 친구와 이전보다 친해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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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 철학에서 등장하는 'commitment'라는 단어가 확실히 좀 생소하긴 하죠. TheNewHegel님이 이미 잘 말씀해주셨지만, 몇 가지 덧붙이자면,

(1) 아마도 콰인의 「존재하는 것에 관하여(On What There Is)」라는 유명한 논문 이후로 'commitment'라는 단어가 영어권 철학에서 전문 용어로서 본격적으로 사용된 게 아닌가 싶네요. (적어도, 분석철학에 대한 교과서적 설명에서 'commitment'라는 단어는 대부분 콰인에 대한 소개와 함께 등장하죠.)

이 논문에서 콰인은 "페가수스는 존재한다."와 같은 우리의 일상적인 진술들을

(a) "날개 달린 단 하나의 말은 존재한다. (∃x)[Hx·Wx·(y)(Hy·Wy⊃(x=y)}]." 혹은
(b) "페가수스화하는 단 하나의 어떤 것이 존재한다. (∃x)[Px·(y)(Py⊃(x=y)}]"

라는 형태로, 양화논리에 따라 다양하게 번역할 수 있다고 주장해요. 그리고 이렇게 번역된 문장을 참이 되게 만들어주는 속박 변항('모든'과 '어떤'이라는 표현에 의해 제약된 x와 y의 부분)의 값들이, 바로 우리가 존재하는 것들로 받아들이는 대상의 목록(존재론)이라는 거죠.

즉,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적인 문장에 대해 다양한 번역이 가능하고, 각각의 번역에 대해 그 번역을 만족시키는 다양한 존재자(entity)들이 가능한데, 우리가 어떤 번역을 따르는지에 따라 우리가 어떤 존재자들을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달라진다는 거죠. 바로 이런 맥락에서, 각각의 번역에 따라 우리가 개입(commitment)하는 존재론이 달라진다는 걸, '존재론적 개입(ontological commitment)'라고 이야기해요.

(2) 셀라스나 브랜덤의 맥락에서는 'commitment'를 '찬동'으로 번역하는 게 꽤 괜찮은 것 같아요. 서강대 석기용 선생님이 이렇게 번역하세요. 가령,

S is committed to the belief that …
= S는 …라는 믿음에 찬동한다.

라는 방식으로요. 물론, 이렇게 번역 하면 본래 수동태 표현인 'be committed to'라는 구문이 '찬동하다'라는 능동태 표현으로 바뀐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저는 'S가 …라는 믿음에 개입된다.'라는 말이 다소 어색하게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서 차라리 그냥 (석기용 선생님의 번역처럼) '찬동한다'라고 하는 걸 더 선호하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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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번역이 쉽지 않다 보니까 이병덕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현대 인식론>에서 그냥 음역해서 그대로 쓰신 것 같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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