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raru, Mihnea D. I. "A Counterexample to Variabilism", Analysis 76 (1), 26-29 (16)

Sam Cumming은 영향력 있는 2008년 논문에서 변항주의를 논증한다. 이는 고유 이름을 자연 언어로서 변항에 유비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특히, 변항주의는 고유 이름이 속박 변항 (bound variables)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변항주의에 대해서 확실히 이해한 것은, 이름의 의미가 외연(지시체)으로 알려진다는 것이다. 술어적 사용에서는 술어주의(predicativism)의 양상을 띠는 것 같다. 그게 같이 갈 수 있는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그리고 변항주의는 "Del Naja might be Banksy."에서 'Del Naja'나, 단독으로 불린 'Del Naja'에 대해 설명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고유 이름이 속박 변항이라는 말은 고유 이름이 대명사처럼 취급된다는 말로 이해된다. 즉 (고유) 이름이 속박 변항이라면, 이름은 앞에서 그것이 누구를 가리키는 데 쓰였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예컨대 '델 나자는 뱅크시였을 수 있다.'에서 최소한 내 이해에 의하면 '뱅크시'는 '델 나자였을 지도 모르는 사람'으로 속박되고, 이름의 의미는 뱅크시라는 사람 자체이다.

1 There is a gentleman in Hertfordshire by the name of 'Ernest'. Ernest is engaged to two women. (Cumming 2008, 535)

Cumming에 의하면 이것은 참이다 iff:

2 ∃xyz (gentleman x ∧ in-Hertfordshire x ∧ named-Ernest x ∧ woman y ∧ woman z ∧ y≠z ∧ engaged xy ∧ engaged xz) (Ibid., 536)

이 진리 조건은 순수하게 일반적이며 누군가를 특정하여 (in particular) 지목하지 않는다; 묘사된 것으로서 어떤 남성의 존재를 요구할 뿐이다.

Cumming은 이름이 그런 순수하게 일반적인, 변항 속박적인, 비지시적 의미론적 값을 가질 수 있다는 더 오랜 전통에서 [이를] 도출한다:

때로 이름은 지칭을 결여한다. ... 속박된 변항으로서 지시사 [demonstrative]가 작용하는 경우 ... 가 있다 - "어떤 사람이 첫 번째 돌을 cast했다. 그가 누구였든 그를 'Alfred'라 하자. (그) Alfred는 hypocrite였다."고 할 때처럼. (Tyler Burge 1973, 435-436)

Cumming 자신의 다른 예시:

  1. 한 남자가, 그를 'Ernest'라고 하자, 오늘 오후 3시에 공원을 걷고 있었다. Ernest는 이 벤치에 앉았다. ... 어떤 사람은 (18)에서 두 번째 문장의 Ernest 사용이 지시적이라고 - (18)의 화자가 염두에 두는 개별자를 지시하는 식으로 - 말할 것이다. 그러나 (18)의 발화자가 누구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 ([Sherlock] Holmes...). 또한 심지어 화자가 염두에 둔 사람에 대해 잘못하고 있더라도, 묘사된 방식으로 행위한 다른 사람이 있는 한 (18)이 참이라는 것은 그럴듯하다. 그러한 (18)의 이해에서, 'Ernest'의 발생은 지시적이 아니라 존재적으로 속박적 변항으로서 해석된다. (Cumming 2013)

그런 예시가 정말로 순수하게 일반적인 진리 조건을 갖는지 의심할 여지가 있다. 예컨대 두 사람이 공원에 걸어들어와서 정확히 하나가 벤치에 앉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존재 진리 조건이 예측하는 것처럼 발화는 여전히 그때도 참인가? 나는 회의적인 쪽이다. Cumming 자신은 사실 "우리의 직관이 왔다갔다한다"고 인정한다 (2008, 536).

그러나 명백한 (clear-cut) 반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자:

3 Every time a gentleman named 'Ernest' walks into a bar, Ernest tells a joke.

'어니스트'라는 이름의 남자가 바에 들어올 때마다, 어니스트는 농담을 한다.

이는 특히 Cumming의, 이름이 어떻게 속박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주어지면 우려스럽다:

부정형 (인데다 naming construction)은 x 자리에서 맥락의 변항 할당을 선별적으로 변화시키는 연산자다. ['x'는 문제가 되는 이름을 모형화하는 변항] 전체로서 논의는 참이다 iff 부정형의 오른쪽으로의 부분이 (단지 범위scope뿐 아니라) 그러한 변화와 유관하게 참이다 (Cumming 2008, 542-543).

이것이 특히 문제가 되는 이유는 변항주의자가 단순하게 자의적으로 이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Cumming은 심지어 이름이 부정형의 범위에 있지 않을 때조차, 부정형이 그 우측에 발생하는 어떤 이름을 묶도록 할 좋은 이유가 있다. (1) 같은 예시에서 이름은 논의에서 그것에 선행하여 문장에 발생하는 부정형에 anaphoric (전방 조응)하다. 이 이름들은 속박자(binder)의 범위에 있지 않지만, 여전히 그 우측에 있다. 그러나 (3)에서 이러한 범위 밖의, left-to-right 속박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못한다).

(Side note: 우리가 따옴표 없는 (unquoted) 이름을 대명사로 바꾸면, donkey anaphora의 사례를 갖게 된다. 4 Every time a gentleman named 'Ernest' walks into a bar, he tells a joke. (3)과 달리 (4)는 분명 수용할 만하다. E-type 대명사(?)나 논의 지시체(discourse referent)를 부과하지 않은 채 donkey case를 우리가 설명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 우리가 그것을 대명사에 적용하면 - Cumming의 관점의 미덕이다.)

Donkey anaphora: 해당 전방 조응이 현상으로 발생하는 문장인 donkey sentence는 의미론적으로 속박되어 있지만 구문론적으로 자유로운 대명사를 포함하는 문장이다. 대표 예문은 'Every farmer who owns a donkey beats it.'이다 (그리고 그래서 'donkey anaphora'라고 한다). (수정) 'it'이 어디에 등장하든 그것은 'donkey'라는 선행사를 받아야 할 것이다.

변항주의를 구제하기 위해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두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다.

  1. 변항주의자는 우리의 반례가 의미론 자체가 고려될 때 속박적 독해를 허용하겠지만, 독해는 어떤 종류의 재난급 화용론적 실패에 의해 막힌다고 주장할 수 있다. 비슷하지만 덜 재앙적인 화용론적 실패는 1쪽과 같은 in-between 사례에서 발생할 것이다.
    e. g. 어쩌면 이름은 uniqueness를 전제하며 쓰일 수 있다: (3)을 보편 양화사와 충돌시키는 전제를 가진 채로. 그러나 그럴듯하지 않다: 5 Every Henry was a Tudor. (영국은 'Henry'라는 이름의 왕을 여덟 명 가졌고 두 명만이 Tudor 왕조의 사람이었다.) (5)는 거짓이지만 문법적이다: 보편 양화사는 uniqueness 가설과 충돌하지 않는다.

  2. 변항주의자는 Binding Theory를 수정함으로써 (3)을 설명할 수 있어 보인다. Binding Theory란 공지칭/공지표(co-indexed) 이름, 대명사, 기술 등의 distribution에서 (즉 유관한 position에서) 구문론적 제한을 연구하는 문법의 한 갈래이다. 원리상 우리는 이런 종류의 제한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중 한 전략을 취하거나 세 번째 길을 가는 부담(onus)은 변항주의에 있다. 한편, 어느 정도의 회의주의는 정당화되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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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항주의'의 원어가 무엇인가요?

제 집에 있는 "프린스턴 수학 안내서 1권"의 261쪽에서는 'predicativity'가 '서술성'으로, 'impredicative'가 '비서술적'으로 번역돼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predicativism'을 '서술주의'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Epilotasy 님의 생각은 어떤가요?

변항주의에 따르면 이 문장은 어떤 일차 논리식으로 옮겨지나요?


참고 자료

  • 티모시 가워스, 준 배로우 그린, 임레 리더 엮음. The Princeton Companion to Mathematics 1. 서울: 도서출판 승산, 2014.

1 Variabilism입니다!

2 아무래도 (고유) 이름에 관한 구문론/의미론 문제에 초점이 있다 보니 잠정적으로 저는 predicative (술어) -> predicativism을 '술어주의'로 번역 중입니다.

3 제 기억에 해당 사용(shifted use)에 대한 명확한 논리식이 Schoubye의 논문에서 나온 적은 없습니다. ("Names Are Variables")

거의 유일하게 기억나는 "논리적" 무언가는 고정 지시어의 분석에 대한 것입니다. [[Del Naja]]c, g, i에 대해:

"...function from an expression, a context c, an assignment g, and a possible world w to
the semantic value (the extension) of that expression at c, g, and w." (p.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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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저는 그동안 고유 이름을 거의 매번 상항[constant]으로 나타냈다 보니, 이 논문의 요지가 다소 당황스럽네요. 그래도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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