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stin의 언어적 도플갱어 문제 관련 질문 드립니다

요즘 진리론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는데, 오스틴에 관한 구절에서 막혔습니다. 출처는 Nietzsche on the Truth and Philosophy, pp. 36-37입니다. 출처와 달리, 니체랑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니체를 모르셔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전의 맥락을 설명드리면, 대응론과 정합론 중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오스틴이 나오기 이전에는 레셔(Rescher)의 주장 "certainly not the premise of the correspondence theory that truth means correspondence to fact, but merely its consequence, that truths must correspond to the facts"에 대해 다뤘습니다.

1.

이하는 오스틴에 대한 구절입니다.

John Austin offered one of the last defenses of the view that truth is correspondence to the facts. As a standard piece of English, he wrote (121), it can hardly be wrong to say that a statement is true "when it corresponds to the facts," but it can be misleading. We are misled, he claimed, if we infer either that "fact" is only an alternative expression for "true statement," or that "for every true statement there exists 'one' and its own precisely corresponding fact" (123). In the first case, we follow coherence theorists in their "failure to appreciate the trite but central point that truth is a matter of the relationship between words and world" (130). According to Austin, facts are situations in the world, states of affairs which are toto mundo distinct from the true statements they make true, as we see in the "great gulf fixed" between saying, however truly, that I am feeling sick and feeling sick (124). However, if we assume a one-to-one correspondence between facts and truths, we will "grossly overpopulate" the world with linguistic Doppelgdnger such as negative and general facts (123).

제가 볼드처리한 부분을 대강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것이 사실에 대응한다"라고 할때, 이 진술은 참이지만 두 가지 추론을 피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사실"은 단지 "참된 진술"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둘째, "모든 참된 진술에는 그것에 정확히 대응하는 '하나의' 그리고 그것만의 사실이 있다".

그런데 그 이후의 문장들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이하 문장을 설명해주실 분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2.

오스틴을 다룬 이후, 오스틴의 문제를 짚은 데이비슨의 논의를 다룹니다. 원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The problem for Austin's defense of facts is brought out by Davidson's argument that if a statement corresponds to one fact, it will correspond to all facts. To vary his example slightly, consider the statement that New York is east of Chicago. This obviously corresponds to the fact that New York is east of Chicago.
But it also seems to correspond to the fact that Chicago is west of New York, and therefore to the fact that Chicago is west of Detroit and Detroit is west of New York, as well as the fact that Chicago is west of the largest city in the United States. It becomes difficult to resist the conclusion that our original statement corresponds to all facts when we recognize that New York satisfies the following description: it is the largest city in the United States, and such that Springfield is the capital of Illinois (Davidson, 42).
Thus, if we say that true statements correspond to the facts, we must submit that they all correspond to the same facts, to the "Great Fact," as Davidson puts it. This forces us to abandon the intuitive idea that different truths are made true by different states of affairs. We could avoid this by insisting that a statement corresponds only to the fact that the same words express – for example, the true statement that New York is east of Chicago corresponds only to the fact that New York is east of Chicago. But then we return to the situation Austin wanted to avoid, overpopulating the world with linguistic Doppelgdnger.

데이빗슨의 논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데이빗슨은 오스틴의 주장의 문제를 지적한다. 만일 하나의 진술이 하나의 사실에 대응한다면, 그 진술은 모든 사실들에 대응하게 될 것이라는 게 지적의 핵심이다. 예컨대, “뉴욕은 시카고의 동쪽에 있다”라는 진술은 뉴욕은 시카고의 동쪽에 있다는 사실에 분명히 대응한다. 그러나 그 진술은 시카고는 뉴욕 서쪽에 있다는 사실, 시카고는 디트로이트의 서쪽에 있고 디트로이트는 뉴욕의 서쪽에 있다는 사실 등등에 대응하게 된다. 이렇게 원래의 진술이 모든 사실들에 대응하게 되면, 그 진술들은 모두 “Great Facts”에 대응하게 된다. 이는 곧 ‘서로 다른 참인 문장들은 서로 다른 사태들에 의해 참이 된다’라는 우리의 직관을 버리게 만든다. 따라서 이 문제를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의 진술은 그 단어가 표현하는 하나의 사실에만 대응한다(예를 들어 “뉴욕은 시카고의 동쪽에 있다”는 뉴욕은 시카고의 동쪽에 있다라는 사실에만 대응한다)’라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오스틴이 피하고자 했던 상황, 즉 언어적 도플갱어에 의해 세계를 과잉하게 만드는 상황에 접어들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We can avoid this situation only by admitting that talk of the "facts" does not pick out distinct entities to which truths could correspond, but only constitutes another way of talking about truths. If we agree with Austin that the business of philosophy is "to prise the words off the world and keep them off it" (124), we should agree with Strawson that we thereby "prise the facts off it too; but the world would be none the poorer" (197).

볼드처리한 문장의 내용은 다음처럼 보이는데요,

도플갱어 상황을 피하려면 "사실들"을 참인 진술이 대응하는 독립된 실체로 여겨서는 안 된다. 즉. 참인 진술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실들"을 이해해야 한다.

볼드처리 이후의 문장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이하 문장을 설명해주실 분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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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영어 해석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1)

(대충 요약하면)

"사실"은 곧 "참된 진술"이 아니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사실 = 세상에 있는 상황이지, 이 사실로 인해 참이 되는 "참된 진술"과 같은 것이 아니다.
"내가 아프다"라는 진술이 나의 아픔과 구분되는 것처럼 말이다.

(2)

(마찬가지로 대충 요약하면)

참된 진술과 (이 진술을 참으로 만드는) 사실이 "일 대 일" 대응이라 해보자.
이 경우, 세상은 "언어학적 도플갱어"로 가득차게 된다. 예컨대 부정표현에 해당하는 사실이라던가 ("나는 아프지 않다") , 총칭적 표현에 해당하는 사실이라던가 ("모든 사자는 갈기가 있다.")

[즉 이런 사실까지 다 있다하면, 이 세상에 사실이 너무 많아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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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살려서 번역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만일 철학의 작업이 "세계로부터 말들을 떼어내어 그 말들을 떼어진 상태로 유지하는 것"(124)이라는 오스틴의 주장에 우리가 동의한다면,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로부터 사실들 역시 떼어내지만, 세계가 더욱 빈곤해지지는 않을 것"(197)이라는 스트로슨의 주장에도 우리는 동의해야 할 것이다.

저는 이 논의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써주신 내용과 Mandala님의 댓글을 읽어보았을 때, 언어적 도플갱어에 의한 세계의 과잉을 비판한다고 해서 세계가 빈곤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볼드체 이후 문장의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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