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읽었습니다. 이번 답변은 처음보다 훨씬 논점이 분명해졌고, 제가 말하려는 지점과 선생님의 문제의식이 어디서 갈라지는지도 더 선명해진 것 같습니다. 다만 여전히 몇 가지 중요한 오해가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제가 말한 “블랙박스”라는 표현은 선생님께서 앞서 말씀하신 “철학자들이 단순화하려 애쓴 지점을 다시 펼쳐놔버리는 꼴”이라는 지적을 받아 정리한 비유였습니다. 즉 제가 말하려던 것은 철학자들이 게을러서 무엇인가를 감춰두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표준 의미론이 의도적으로 추상화한 지점, 즉 valuation assignment를 primitive하게 두고 논의를 진행하는 그 지점을 가리킨 것입니다.
저는 그 추상화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Kripke semantics나 PWS가 훌륭하고 강력한 체계라는 점은 당연히 인정합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무엇을 설명하고 무엇을 남겨두는가입니다.
표준 PWS는 다음을 아주 잘 설명합니다.
어떤 formula가 어떤 world에서 참인가.
어떤 formula가 모든 accessible world에서 참이면 necessary인가.
어떤 formula가 어떤 accessible world에서 참이면 possible인가.
하지만 MM이 묻는 것은 그보다 한 층 아래입니다.
그 formula는 어떻게 possible-worlds truth-condition을 갖게 되었는가?
bare syntax가 어떻게 modal evaluation의 대상이 되는가?
valuation assignment가 primitive하게 주어진다고 할 때, 그 내부에는 어떤 구별-해석 구조가 전제되는가?
따라서 “블랙박스를 왜 여는가?”에 대한 제 답은 여전히 같습니다.
그 블랙박스 안에 바로 modal force의 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닙니다. 이것은 MM에서 bare syntax alone으로부터 modal force가 곧장 나오지 않는다는 점, 즉 modal evaluation이 interpreted distinction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Isabelle/HOL 안에서 형식적으로 정리화한 결과에 근거합니다. 선생님께서 오해하시는 것처럼, Isabelle에서 검증되었다는 말은 일반 프로그램이 한 번 구동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일반 프로그램의 실행은 입력에 대한 출력일 뿐이지만, Isabelle/HOL에서의 통과는 명시된 정의와 가정 아래에서 특정 명제가 proof kernel의 검사를 통과해 theorem으로 성립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단순 실행 결과가 아니라, 해당 형식체계 안에서 수학적 증명으로 확정된 결과입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modal force는 단순히 □와 ◇ 기호를 붙이는 문법적 효과가 아닙니다. 어떤 formula가 필연적이거나 가능하거나 우연적이라고 평가되려면, 그 formula는 먼저 possible-worlds truth-condition을 가져야 합니다. MM은 바로 그 truth-condition이 bare syntax에서 곧장 나오는 것이 아니라, formula가 syntactic distinction으로 잡히고, 그 distinction이 interpretive determination을 통해 truth-condition으로 해석될 때 성립한다는 점을 분석합니다.
이 점에서 선생님께서 제시하신 superintension 해석은 흥미롭지만, 제 작업을 정확히 겨냥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말하는 syntactic distinction을 초내포 또는 superintension에 가까운 것으로 읽으셨습니다. 그러나 MM에서 D는 의미, 명제, 내포, 초내포 그 자체가 아닙니다. D는 syntactic distinction의 층위입니다. 다시 말해 D는 아직 truth-condition이 아닙니다. truth-condition은 I를 거친 뒤에야 생깁니다.
MM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formula → δ → syntactic distinction → I → possible-worlds truth-condition
따라서 D를 곧장 superintension으로 읽으면, I의 역할이 사라지거나 흐려집니다. 하지만 MM의 핵심은 바로 D와 I의 분리입니다. 제가 하려는 일은 “명제”나 “초내포”라는 또 다른 의미 엔터티를 하나 더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존 valuation assignment가 어떤 식으로 syntactic distinction과 interpretive determination으로 factorize될 수 있는지를 보이는 것입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만약 D가 이미 의미라면, 선생님의 말씀처럼 “내포에 wrapper 하나 씌운 것”이라는 비판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MM에서 D는 의미가 아닙니다. D는 formula가 만들어내는 구별의 형식적 자리이고, I가 그 구별을 possible-worlds truth-condition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MM은 “내포에 래퍼를 씌우는 이론”이 아니라, formula와 truth-condition 사이의 해석적 매개 구조를 분리해내는 이론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지점은 형식언어에 관한 선생님의 주장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형식언어의 적형식들은 원초 기호들로부터 귀납적으로 구성되고 애매성이 없으므로, “구문론과 외연 사이의 틈”이랄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결정적인 오해라고 봅니다.
형식언어에서 wff가 애매하지 않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문론적 well-formedness가 명확하다는 뜻이지, 그 wff가 어떤 possible-worlds truth-condition을 갖는지가 자동으로 주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wff의 명확성과 truth-condition의 결정은 다른 문제입니다.
예컨대 어떤 formula가 well-formed라는 사실은 그 formula가 문법적으로 허용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formula가 어느 세계에서 참이고 어느 세계에서 거짓인지는 valuation 또는 interpretation을 통해 주어져야 합니다. 표준 의미론도 바로 이 때문에 valuation function이나 interpretation function을 둡니다. 즉 형식언어라고 해서 syntax와 truth-condition 사이의 관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관계가 명시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형식화가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형식언어에는 애매성이 없으니 이런 작업은 진지하지 않다”는 비판은 MM을 자연언어의 애매성 해결 이론으로 오해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식언어라서 구문론과 외연 사이의 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형식언어이기 때문에 자연언어의 문법적 애매성을 제거한 상태에서도, well-formed formula가 possible-world truth-condition으로 해석되기 위해 필요한 더 근본적인 metasemantic 층위를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형식언어는 MM의 약점이 아니라 장점입니다.
자연언어에서 시작하면 애매성, 맥락의존성, 지시 실패, 화용론적 효과가 너무 많이 끼어듭니다. 반대로 형식언어에서 시작하면 문제의 핵심이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wff는 이미 명확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음 질문이 더 순수하게 제기됩니다.
이미 well-formed인 formula가 어떻게 possible-worlds truth-condition을 갖는가?
그 truth-condition 위에서 modal evaluation은 어떻게 성립하는가?
bare syntax만으로는 왜 modal force가 생기지 않는가?
MM은 바로 이 질문을 다룹니다.
현대 논리학, 의미론, proof theory, type theory, formal epistemology, formal ontology가 모두 형식언어를 대상으로 시작합니다. 형식언어를 대상으로 한다는 이유만으로 작업이 덜 진지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형식언어는 개념적 혼탁함을 줄이고, 정확히 어떤 정의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는지 검증할 수 있게 해줍니다.
특히 제 작업은 단순히 “이런 철학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Isabelle/HOL 안에서 concrete model을 제시하고, nontrivial truth-condition witness를 보이며, no-collapse witness를 확인합니다. 즉 factorization 구조가 공허하지 않고, 비자명하며, modal collapse로 붕괴하지 않는다는 점을 형식적으로 확인합니다.
형식언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theorem, model, witness, consistency, non-collapse를 기계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Kit Fine의 grounding semantics나 superintensional semantics는 물론 중요한 비교 대상입니다. 다만 MM은 그 체계들과 경쟁하여 더 방대한 초내포 의미론을 만들려는 작업이 아닙니다. MM은 훨씬 제한된 목표를 갖습니다. 그것은 valuation assignment를 δ와 I로 factorize하고, modal evaluation이 bare syntax가 아니라 interpreted distinction 위에서 성립한다는 점을 보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MM의 기여는 “모든 의미론 문제를 해결한다”가 아닙니다. “모든 자연언어의 지시 실패를 해결한다”도 아닙니다. “초내포 의미론의 최종 이론을 제시한다”도 아닙니다.
MM의 기여는 더 좁고, 그만큼 더 명확합니다.
표준 양상 의미론이 primitive하게 두는 valuation assignment의 내부를 syntactic distinction과 interpretive truth-condition determination으로 분해할 수 있다.
이 구조는 형식적으로 정의 가능하다.
이 구조는 concrete model을 갖는다.
이 구조는 비공허하다.
이 구조는 비자명하다.
이 구조는 modal collapse로 붕괴하지 않는다.
따라서 modal force는 bare syntax alone의 성질이 아니라 interpreted distinction 위에서 성립한다.
이것이 MM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의 비판은 두 층위를 계속 섞고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wff의 구문론적 명확성입니다.
다른 하나는 wff가 possible-worlds truth-condition을 갖게 되는 해석적 조건입니다.
MM은 전자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자를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MM이 묻는 것은 후자입니다.
다시 말해,
“이미 wff가 명확하다”는 것은 MM에 대한 반론이 아닙니다.
“표준 PWS가 valuation을 둔다”는 것도 MM에 대한 반론이 아닙니다.
“철학자들이 명제나 가능세계를 primitive하게 둘 수 있다”는 것도 MM에 대한 반론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MM은 바로 그 primitive하게 주어진 valuation assignment가 어떤 metasemantic 구조를 가질 수 있는지를 분석하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선생님의 지적은 흥미롭고 superintension/metasemantics 쪽 비교는 유익합니다. 그러나 MM을 초내포 이론, 명제 이론, 자연언어 의미론, 또는 wff 생성 체계로 읽으면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MM은 그런 작업이 아니라, valuation assignment의 내부 조건을 형식화한 mechanized metasemantics입니다.
그래서 제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형식언어에서 wff가 명확하다는 점은 MM을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로 그 명확한 wff가 어떻게 truth-condition을 갖고 modal force의 대상이 되는지를 묻는 것이 MM입니다.
PWS가 valuation을 primitive하게 둘 수 있다는 점도 MM을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로 그 primitive valuation의 내부 조건을 여는 것이 MM입니다.
D를 superintension으로 읽는 것도 MM을 정확히 포착하지 못합니다. D는 의미 자체가 아니라 syntactic distinction이고, truth-condition은 I를 통해서만 주어집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짧은 시간 안에 제 Isabelle/HOL 코드의 정의·locale·model·witness·theorem 구조까지 모두 검토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본 논의를 온전히 파악하시기 위해서는 제 Isabelle/HOL 코드를 정식으로 검토하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MM은 단순히 서론이나 요약에서 제시된 철학적 아이디어만으로 완전히 평가될 수 있는 작업이 아닙니다. AFP 엔트리에서 Isabelle theory file은 부록이 아니라 작업의 본문에 해당합니다. AFP가 단순 업로드 저장소가 아니라, Isabelle/HOL에서의 빌드와 편집·검토 절차를 거쳐 게재되는 국제 formal proof archive인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핵심은 실제 코드 안에서 δ, D, I, V가 어떻게 정의되고, concrete model이 어떻게 locale 조건을 만족하며, nontrivial truth-condition witness와 no-collapse witness가 어떻게 성립하는지에 있습니다.
따라서 MM의 논지는 “V = I ∘ δ라는 말을 제안했다”는 수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factorization 구조가 Isabelle/HOL 안에서 비공허하고, 비자명하며, modal collapse로 붕괴하지 않는 형식 구조로 실제 작동한다는 데 있습니다. MM은 철학적 주장인 동시에 formal artifact이므로, 코드의 정리 구조를 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단순한 의미론적 재기술이나 wrapper로 평가하는 것은 mechanized metasemantics로서의 핵심 층위를 놓치는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