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호 교수님의 『인간의 우주적 초라함과 삶의 부조리에 대하여』 제10장은 '반대신론(anti-theism)'이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무신론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과 달리, 반대신론은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적 입장을 취합니다. 다만, 반대신론은 신의 존재가 우리의 삶을 초라하게 만든다고 주장하면서, 신이 있는 편보다는 신이 없는 편이 우리에게 더 낫다고 말합니다. 무신론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형이상학적 논제를 내세운다면, 반대신론은 "신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실존적 논제를 내세우는 셈입니다. 최성호 교수님은 자신의 반대신론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시기도 하죠.
인류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그 존재가 이 우주가 만들어 내는 드라마의 진정한 주연이고 우리는 영원히 볼품없는 조연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는 그 존재가 만들어낸 우주적 왕국의 소모품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것을 나는 참을 수 없다. 그 존재가 언제나 우리보다 우월한 도덕적 권위를 누린다는 것을, 그 존재의 눈에서 우리는 언제나 부모의 눈에 비춰지는 실수투성이 어린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참을 수 없다. 그 존재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응시하며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도덕적 잣대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고로 그 존재와의 관계에서 우리에겐 사적 영역이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존재가 눈길을 거두지 않는 이상 우리는 결코 고독을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참을 수 없다. 그 존재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우리의 삶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런 점에서 우리와 그 존재의 관계는 노예와 선량한 주인 사이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것을, 신이 아무리 선한 존재라 하더라도 우리는 노예일 뿐이고 그런 이유로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참을 수 없다. (최성호, 『인간의 우주적 초라함과 삶의 부조리에 대하여』, 필로소픽, 2019, 170쪽.)
저는 반대신론이 상정하고 있는 신에 대한 이미지가 왜곡되거나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를 포함하여 어떠한 세계 종교에서도 신과 인간의 관계를 단순히 '선량한 주인'과 '노예'로 묘사하지는 않으니까요. 당장 구약의 야훼나 신약의 예수가 사람들을 향해 "나의 자녀"나 "나의 친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말이에요. 부모나 친구의 존재가 그 자체로 우리의 삶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신의 존재가 그 자체로 우리의 삶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라고 보입니다. (특별히, 최성호 교수님은 신이 인간에게 목적을 부여한다는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신의 '완전성', '절대성', '탈시간성', '불변성' 같은 초월적 속성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러한 경우 전통적 유신론 신앙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몰트만이나 판넨베르크나 융엘이나 같은 현대신학자들은 애초에 성서 전통의 신이 그리스 철학의 초월성을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신에게도 '고통을 느낌', '열정을 지님', '생성됨', '희망함' 같은 비초월적 속성들이 귀속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귀속되어야만 한다고까지도 논증하죠.)
오히려 제가 흥미로운 것은 반대신론이 묘사하는 신의 이미지가 요즘 급부상하고 있는 AI의 이미지에 더욱 닮아 있다는 점입니다. 인류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하고, 인류를 영원히 볼품없는 조연에 머무르도록 만들며, 어쩌면 우리를 자신의 우주적 왕국의 소모품으로까지 만들 수도 있는 존재를, 저로서는 AI 이외에 더 떠올리기가 힘들어서요. 실제로, 2022년에 ChatGPT가 등장하면서 일어난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AI야말로 반대신론이 '참을 수 없을' 대상이라는 점을 해마다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지 않나 합니다. 최정상급 바둑 기사부터 최정상급 수학자와 과학자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지성 자체가 AI의 존재 앞에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고, 인간은 이제 AI가 제시한 대답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사후적으로 보조하는 역할만을 맡고 있고, 개인은 AI가 구성해 낸 사회 시스템 속에서 마치 부속품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AI 빅테크 기업들이 우리가 인터넷에 남긴 수많은 기록들을 모두 취합하여 매 순간 우리의 행동을 은밀히 지켜보면서 유도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고려한다면, AI야말로 카뮈 같은 부조리 작가들이 소름끼쳐 한 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합니다.
그래서 저는 반대신론의 진정한 논적은 신이라기보다는 AI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반대신론이 정말로 의미 있는 사조로서 성립하려면, '신' 같은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주제보다는 'AI'라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주제를 심각하게 다룰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기성 종교 전통은 신을 반대신론이 상정하는 이미지로 떠올리고 있지도 않은 마당에, 반대신론의 논의가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가 아니라 실질적 문제가 되기 위한 가장 확실한 길은 신보다도 AI가 만들어내는 인간의 초라함을 성찰하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반대신론'이 자신의 논의를 '반대AI론'으로 확장해 나가야, 자신이 고민하는 주제를 현실에서 정말로 철저하고 정확하게 전개할 수 있는 것이죠. 특별히, 유신론자인 저 자신조차 AI가 앞으로 미칠 파장에 대해 상상할 때면 종종 오싹한 기분이 들 정도이니, AI를 논적으로 삼는 사유는 신을 논적으로 삼는 사유보다 훨씬 광범위한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정말로 이러한 맥락에서 '반대AI론'이라는 철학적 사조를 제시한다면, 저는 그 사조에 대해 (완전히 동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상당히 공감할 것 같습니다. 적어도, AI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신이 종종 AI 앞에서 인간의 초라함을 느끼고는 하니까요.
- 이 글은 AI 번역기 돌리면서 논문 읽다가 현타가 와서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