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학 박사 유학 준비 절차 (4), (5) 完

프랑스 대학 박사 유학 준비 절차 (4), (5)

(1) 서론
(2) 진학 계획 및 타임라인
(3) 학교 선택, 지도교수 컨택 및 지도 승낙
(4) 장학금 지원
(5) 지출 비용 및 기타 꿀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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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장학금 지원
1지망이었던 지도교수님께 지도 허락을 받고 나서 이제 곧 있을 프랑스어 시험에서 C1을 따고, 출국 준비만 잘 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교수님의 메일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Il faut vérifier notamment les ressources financières exigées pour l'inscription, qui sont assez importantes." 저는 이 부분이 단순한 재정 증명일 거라고 생각하여, 장학금을 받으면 좋은 거고, 아니더라도 셀프펀딩 형식으로 박사를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확인 차 행정처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이것은 단순한 재정 증명 요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행정처에서는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Bonjour,

Les financements "personnels" ne sont pas admis pour une inscription en thèse à l'ENS de Lyon.

Seuls les financements émanant d'un contrat de travail ou d'une bourse sont recevables. Le justificatif de financement doit faire apparaitre les dates de début et de fin de financement ainsi que le montant de rémunération/de la bourse.

Pour vous inscrire en thèse, vous devez disposer d'un financement à hauteur du SMIC pour a minima 3 années universitaires.

Bien cordialement,
XXX

요지는 셀프펀딩은 불가능하며, 등록을 위해서는 고용 계약이나 장학금을 받아야 하고, 그 금액은 최소 SMIC(프랑스 최저임금) 이상, 보장 기간은 최소 3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는 워낙 Alternance(일 학습 병행제도)가 흔한 나라라 이공계열에서는 이런 식의 펀딩 요구가 존재한다고 들어왔지만, 이 조건을 인문계에까지 적용시킬 줄은 몰랐기 때문에 상당히 당황스러웠습니다. 프랑스 박사 과정은 등록금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 생활비만을 자비로 충당하며 박사 과정을 마치는 것이 인문계에서는 매우 흔한 일이기도 하고, 실제로 파리1대학, 파리4대학, 파리8대학, 그리고 파리10대학 등에 박사과정으로 재학 중인 지인들은 이런 규정에 대해 전혀 언급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리둥절 했습니다. 지인들과 얘기해 본 결과, ENS가 재정증빙과 관련하여 특히 국제학생들에게 까다롭게 구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ENS Paris 역시 같은 규정을 적용하고 있더군요. 홈페이지에서는 이 규정이 2022년인가 2023년부터 시행된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추후 행정처에서 공식 서류를 받게 되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국제 박사과정 학생은 첫 등록~3년 차까지 정부 장학금, 외국 기관, 혹은 프랑스 외교부 지원 등을 통해 최소 SMIC(법정 최저임금) 수준의 재정 지원을 확보해야 함.
  • 4년 차부터는 1년씩 연장 가능하고 최대 6년차까지 연장 가능한데, 이때도 동일한 수준의 재정 증명이 요구됨. 단, 인문사회계 박사과정 학생들은 최대 1년간만 예외적으로 자필 서약으로 등록이 가능하며, 그 이후에는 반드시 재정 조건을 충족해야 함.

당황했지만 로마에 가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할 테니 별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a) 장학금을 확보해서 ENS 입학을 계속 시도해보든지, (b) 재정증명을 요구하지 않는 다른 대학의 다른 교수에게 다시 컨택해보든지 양자 택일의 상황이었습니다. 문제는 공교롭게도 제가 1지망으로 생각한 교수님들이 모두 ENS에 계시다는 점이었습니다. 두 분은 리옹에, 두 분은 파리에 계셨기 때문에 어디로 가든 재정증명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1지망 교수를 포기하고, 어느 정도 핏을 포기하면서 다른 대학의 교수님께도 컨택을 시도해야 하나 많이 망설였습니다. 1월, 2월, 3월에는 계속 이 고민을 하면서 보냈었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히 그 고민할 시간에 그냥 Projet de recherche 하나 더 써서 2지망 교수들한테 컨택하는 것이 좋았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DALF C1 시험을 준비하느라 너무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여서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그냥 장학금 따서 1지망 교수님한테로 가자, 장학금도 많은데 뭐라도 하나는 붙겠지, 이런 객기를 부리고 맙니다. 유학 준비 기간 동안 제가 저지른 실수 중 가장 큰 실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우후죽순 장학금에서 탈락하던 5월, 6월, 7월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혹시 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분이 계신다면, 꼭 플랜B와 플랜C를 만들어두시고, Projet를 최소한 두 편~세 편은 써서 다양한 교수님께 컨택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어쨌든 저는 컨택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장학금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6개월 동안 지원할 수 있는 대부분의 장학금에 지원하게 됩니다. 가능성이 있든 없든 일단 지원할 수 있는 장학금은 다 지원했는데요, 목록으로 만들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고등교육재단 KFAS 장학금 - 서류 합격 / 면접 탈락
  • 포니정 해외박사 장학금 - 서류 탈락
  • 관정재단 해외유학 장학금 - 서류 1차 합격 / 서류 2차 탈락
  • SBS 문화재단 해외유학 장학금 - 서류 탈락
  • France Excellence 장학금 - 서류 탈락
  • 한국정부 국비유학 장학금 - 최종 합격

저야 물불 가릴 것 없이 장학금을 확보해야 해서,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립재단들에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원서를 넣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동향을 고려할 때, 프랑스로 인문학 박사 유학을 가는 사람이 지원해서 합격할 가능성이 있는 장학금은 저 목록 중 2-3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대다수의 장학금은 미국 탑스쿨을 선호하며, 이공계를 선호하기 때문에 지원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장학금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대륙으로 유학가는 인문학 박사생이 기대해 볼만한 장학금만 나열하도록 하겠습니다.

[1] 한국정부 국비유학: 한국 정부에서 프랑스 기준 최대 3년 간 30000달러 정도를 보장해주는 장학금입니다. SMIC 이상의 지원금이 나오고, 국가 기관이 재정 보증을 서주기 때문에 프랑스 학교에 증빙서류를 내기 편리합니다. 학교 합격 전과 합격 후 모두 지원할 수 있는 장학금이고, 1차 서류 심사와 2차 면접 심사로 이뤄집니다. 이 장학금의 장점은 인문과학 전공 TO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전형 기준 매년 3-4명 정도이긴 하지만,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을 분리하여 문사철 등에게 따로 TO를 주는 장학금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엄청난 메리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장학재단이 으레 보일법한 미국 탑스쿨 선호가 크지 않다는 점 역시 장점입니다. 대체로 영미권 탑스쿨 학생을 지원해주는 여타의 재단 장학금과 달리, 국비유학은 다양한 국가로 나가는 유학생들을 지원해주며 학교의 네임벨류를 크게 따지지는 않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로 가는 학생들에게도 가능성이 많이 열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점은 국가기관에서 시행하는 것이다 보니 행정절차가 매우 귀찮고 까다롭다는 점입니다. 요구하는 서류의 양이나 서류 처리를 위해 드는 초기 비용이 꽤 많습니다. 또 결과발표가 모든 장학금들 중 제일 늦게 나서(거의 7월 중순~말), 합격 후 비자를 준비하게 되면 타임라인이 상당히 꼬이게 됩니다.

지원시 한 가지 주의해야 하는 점은 국비유학 선발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한국사 자격증 3급 이상이 필수라는 점입니다. 매년 4월 쯤 공고가 뜨고 5월에 모집이 마감되니 그 전까지 한국사 자격증을 마련해두셔야 합니다. 일주일 정도 투자하시면 3급을 따는 데는 문제가 없는 수준의 시험입니다만, 시험이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 은근히 티켓팅(?)이 치열한 편이라 미리 대비해두는 편이 좋습니다.

[2] 포니정 장학금: 학교 합격 전 장학금입니다. 인문학 분야 박사과정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립재단 장학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따기 쉬운 장학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단점은 지원 금액이 너무 적다는 점입니다. 년 간 1만 5000달러를 3년 간 지원해주는데, 한화로 환산 시 200만원이 채 안 되는 금액이라 SMIC에 못 미칩니다. 따라서 장학금에 합격해도 ENS에는 입학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재정 요건이 까다롭지 않은 대학을 1지망으로 희망하시는 분들께서는 밑져야 본전이니 지원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3] 프랑스 정부 France Excellence 장학금: 합격 후 지원하는 것을 선호하는 장학금입니다. 박사생에게 매달 1690유로의 생활비성 장학금을 3년 간 지원합니다. 프랑스 정부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이다보니 공신력이 매우 높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비자나 행정처리 비용에 있어서도 여러 혜택을 볼 수 있고, SMIC 기준도 넉넉히 넘습니다. 또 큰 장점 중 하나는 발표가 상당히 일찍 난다는 겁니다. 타 재단이 1차 심사를 겨우 끝내는 6월에 이미 최종 결과 발표까지 해주기 때문에, 입학을 일찍 확정하고 비자를 미리 준비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인문계생으로 합격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들 합니다. 애초에 지원 공고에 "공학, 기초과학, 상경계 순으로 우선 선발할 예정이며, 특히 박사과정생의 많은 지원 바랍니다." 이렇게 명시되어 있으니 인문학은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되겠죠. 하지만 인문학 전공자로서 수혜 받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고, 최근 기수에도 수혜 받은 사실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참고로 제가 대사관에서 진행한 설명회에서 질문했을 때는, 당해 이공계 지원자가 많이 없어야 인문계 지원자가 뽑힐 가능성이 있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당연히 만족스러운 답변은 아니지만, 지원하지 말라는 답변보다는 나으니 이것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지원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에 더해 프랑스 정부에서 주는 에펠 장학금 같은 것도 있다고 들었는데, 지원 시기를 놓쳐 지원하지는 못했네요. 프랑스 역사와 관련된 전공이 지원할 수 있다고 봤던 것 같은데, 인문학 일반을 인정해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5) 지출 비용 및 기타 꿀팁

마지막으로는 비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된 뒤, 드디어 유학을 확정짓고 본격적으로 출국 준비를 할 수 있었는데요. 초기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어 놀랐습니다. 유학 확정 후, 출국 준비를 하며 지출한 비용을 대략적으로나마 설명드리면서, 초기 비용으로 어느 정도를 마련해두셔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항공권 - 약 140만원 (1회 경유. 제가 급하게 끊어 비싸게 샀습니다. 100만원 전후가 적정선인 것 같습니다.)
첫 달 월세 및 보증금 - 약 300만원
비자 준비 비용 - 약 100만원 (행정처리 비용뿐만 아니라, 공증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듭니다. 특히 박사 등록을 위해서는 수능성적표나 석사학위수여증, 석사과정 성적표 등을 번역해서 내야 하는데 번역비도 상당히 많이 들었습니다.)
스페어 안경 구입 비용 - 약 50만원
생활용품 구입 비용 - 약 50만원
국비유학 확정 신청 비용 - 약 100만원
새 전자기기 구입 비용 - 약 150만원 (핸드폰과 태블릿)

제가 잘 아껴쓰는 타입의 사람은 아닌지라 낭비한 부분이 분명히 있겠지만, 어쨌든 적게 잡더라도 약 500만원 정도는 한국에서 미리 지출하는 초기 비용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제 지금까지 쓴 내용에서 추출할 수 있는 꿀팁이라면 꿀팁일 것들을 제시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두 학업에 큰 진전이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 석사 과정과 박사 과정을 동시에 준비해, 박사과정이 여의치 않더라도 석사과정으로 진학할 수 있도록 보험을 마련하자. 이를 위해 C1 자격은 반드시 1월 전까지 확보해 두는 것이 좋다.
  • Projet de recherche는 석사 졸업 직후부터 최소 1-2개월의 시간을 투자해 준비하자. 가능하다면 반드시 프랑스인의 피드백을 받음으로써, 여러 차례 수정하자.
  • 지도 교수마다 관심사가 다르니, projet de recherche를 교수별로 맞춤형으로 조정해 제출하자. Lettre de motivation도 마찬가지.
  • 합격 전·합격 후 지원 가능한 장학금을 구분해 정리하고, 그에 맞춘 타임라인을 세우자.
  • 재정증명을 요구하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를 구분해, 장학금 확보에 실패하더라도 진학은 가능하도록 배수진을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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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잘 읽었습니다. 고생 많으셨고 축하드려요. 잘 마치셔서 금의…금의…금의 입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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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ㅋㅋ 출국해서도 잘 버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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