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 논고 4.0412 질문입니다

논고

4.041 이 수학적 다수성 자체는 물론 다시 모사될 수 없다. 모사할 때 우리들은 그 다수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4.0411 예컨대, 만일 우리가 "(x).fx"에 의해 표현되는 것을 "fx" 앞에 어떤 지표를 - 가령 "Gen.fx" - 처럼 붙임으로써 표현하려 한다면, 그것은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일반화되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g"라는 지표에 의해서 - 가령 "f(xg)처럼 - 지적하려 한다면, 그것도 역시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일반성 표시의 범위를 알지 못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독립 변수 자리에 어떤 표시를 - 가령 “(G,G).F (G,G)처럼 - 도입함으로써 그 일을 시도하려 한다면, 그것은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변항들의 동일성을 확립할 수 없을 것이다. 등등.

이 모든 지칭 방식들은 필연적인 수학적 다수성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충분하지 못하다.

위는 논고 4.041과 4.0411 내용인데요.

논고 4.401과 4.0411 에서 비트겐슈타인은 특정 상황의 존재 여부는 사태들의 어느 조합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태들 가운데 하나를 언어가 대표할 수 있도록 명제를 만들게 되는데, 그 명제는 요소 명제들에 부여되는 진리치들(진리성과 허위성)의 어느 조합이 그 명제를 옳게 만들고, 어느 조합이 그르게 만드는가를 보여주는 명제입니다.
"논리적 장치의 기능은 요소 명제들에 부여되는 진리성과 허위성의 올바른 조합 = 논리적으로 복잡한 명제를 옳게 만드는 조합을 정확하게 골라내는 것인데, 우리의 과제는 이 사고 과정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표기법, 다시 말해 어떤 명제의 말해서 복잡성이 그 명제가 대표하는 상황의 논리적 복잡성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표면에 드러내어 보여주는 표기법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 [논리철학론]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 - 참고

명제와 우리가 그것을 묘사하는 상황은 동일한 것이어야 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으로 이해됩니다.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경험할 수 있는 영역내에서 명제가 다수라면 이 상황도 다수여야 된다는 의미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4.0412 동일한 이유로, 우리들이 공간적 관계들을 보는 것은 “공간 안경" 에 의해서라고 하는 관념주의적 설명은 충분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 설명은 이 관계들의 다수성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4.0412에서 말하는 공간 안경은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칸트가 말하는 시공간에서 우리는 공간과 시간을 통해서 많은 경험과 정보를 얻는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렇듯 헤르츠의 역학 이론이나 공간 안경 그리고 관념주의적인 것으로서, 이런 양화 표기법(化 法, quantification notation)이 필요한것은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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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논고』의 아주 테크니컬한 논의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자신이 있는 편이 아니긴 하지만,

아마도 여기서 '공간안경(Raumbrille)'이란 칸트적 의미의 공간 개념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빨간 렌즈 안경을 쓰면 온 세상이 빨갛게 보이고, 파란 렌즈 안경을 쓰면 온 세상이 파랗게 보이잖아요. 칸트는 '공간'과 '시간'이라는 것도 우리가 이성적 존재자인 이상 쓰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 안경 렌즈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더욱 칸트적인 표현을 사용하자면, 공간과 시간이란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인식의 선험적 조건입니다. 사물에 대한 경험이나 판단이나 인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공간과 시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거죠. 가령, 우리는 아무런 사물도 없는 공간을 상상할 수 있지만, 공간이 없는 사물은 상상할 수 없잖아요. 공간이라는 조건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각각의 사물에 대한 모든 논의가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칸트에게 공간은 개별 사물들과는 다른 차원의 지위를 갖습니다. 공간이란 책상이나, 의자나, 연필처럼 어딘가에 존재하는 대상들 중 하나가 아니라, 그 대상들을 가능하게 하는 '인식의 조건'인 거죠. 빨간 렌즈 안경을 쓰면 온 세상이 빨갛게 보이는 것처럼, 칸트는 우리가 '공간'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책상, 의자, 연필 따위를 공간적으로 인식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공간안경'이라는 비유는 바로 이런 생각을 담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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