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철학 논고의 4.0031 명제에 대한 질문

4.0031 모든 철학은 언어 비판이다. [...]

먼저 여기서 '언어 비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습니다.

조중걸 교수의 해제에는 언어의 영역을 한계 짓는다는 의미(Kritik)이라는데, '모든 철학' 이라 함은 지금까지의 모든, 또한 그냥 모든 철학을 말하는 듯 하고, 그렇다면 '지금까지의[그리고 모든] 철학은 언어 비판이다.' 라는 뜻인데, 언어의 한계를 밝혀 한계짓는 작업은 비트겐슈타인 이전(지금까지의 철학)에서는 없었던 것 아닙니까. 즉 조중걸 교수의 해제에서 설명되는 '모든 철학은 언어 비판이다'에 대한 해석은 맞는 설명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조중걸 교수의 의미의 '언어비판'은 '언어의 한계지음 작업' 이라는 뜻인데, 이는 4.0031 문장을 그 뜻으로 해석하면 '모든 철학은 언어의 한계지음 작업이다' 가 되기 때문입니다. 언어의 한계지음 작업은 비트겐슈타인이 시작한 것이지 모든 철학이 언어의 한계지음 작업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철학은 언어 비판이다'는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자세히 쉽게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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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내용과 별개로 조중걸의 책을 버리시고 다른 책을 보실 것을 권장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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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해당 구절과 관련된 요런 논문이 있는데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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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걸의 책은 『논리철학논고』를 수미일관하게 오독하고 있는 책이지만, 적어도 인용하신 구절의 이해에서는 '한계 지음'이라는 그 말이 그리 엇나가는 말은 아닙니다. 해당 구절에서 그는 서양철학사의 흐름이나 철학 전통들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그저 철학이라는 활동이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의 한계를 명확하게 긋는 것(=언어의 한계를 밝히는 일)을 과업으로 삼는다는 점을 말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논고』의 관점을 따라간다면, 비트겐슈타인 이전의 철학자들은 비트겐슈타인적 의미에서 철학을 했거나(칸트가 유력한 후보 중 하나일 수 있겠죠), 중요한 문제이지만 말할 수는 없는 것에 대해 말하려 함으로써 오류를 저질렀거나, 언어적 착각으로 인해 사이비 문제를 붙들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Sellars님의 말씀대로 조중걸의 해제는 『논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기에는 최악의 책이기 때문에, 다른 책을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R. M. 화이트의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론 이렇게 읽어야 한다』나, 박정일 선생님의 『논리-철학 논고 연구』나, 이영철 선생님의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등을 참조하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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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고』는 워낙 함축적인 어조로 쓰인 책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비트겐슈타인의 명제 p는 q라는 의미이다."라고 단정지어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몇 가지를 말씀드리자면,

(1) 해당 명제는 프레게와 러셀 이후의 20세기 초반 분석철학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분석철학자들은 '철학'이라는 활동이 곧 '언어분석'이라고 보았거든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2차적 담론을 논리적 통사론에 따라 분석하여, 그 아래에 숨겨진 1차적 담론을 드러내는 작업이 바로 철학이라는 거죠. 가령, "프랑스 왕은 대머리이다." 같은 말들은 (∃x)[Kx∙(y){Ky⊃(x=y)}∙Bx]라는 구조로 분석되어야 하고, 이런 분석을 수행하는 작업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철학'이라는 데 많은 분석철학자들이 동의한 거죠.

(2) 실제로, 전통적인 철학도 의미에 대한 '개념적 분석'이었다는 점에서 '언어 비판'이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가령, 플라톤은 『에우티프론』에서 "경건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고, 『라케스』에서 "용기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고, 『테아이테토스』에서 "지식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잖아요. 이렇게 "X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X = df. …"라는 형태의 대답을 제시하는 작업은 이미 그 자체로 단어 X의 의미에 대한 분석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바로 이런 의미에서, 분석철학뿐만 아니라, '모든 철학'이 언어 비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에요. (그리고 구스타프 베르그만이라는 철학자는 20세기에 이르러 지난 2500년동안 철학이 해 온 모든 작업이 언어 분석을 통해 새롭게 정초되기 시작했다고 강조하면서, 현대철학의 경향을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이라고 요약하기도 하고요.)

(3) '비판'을 한계를 짓는 활동으로 규정한 건, 칸트의 철학적 전통을 따르는 입장이에요. 실제로, 비트겐슈타인은 칸트를 '가장 심오한 사상가들 중 하나'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높이 평가했고, 『논고』가 칸트의 작업과 많은 유사성을 지닌다는 점도 연구자들 사이에서 상당 부분 동의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언어의 한계를 밝혀 한계짓는 작업"이라고 설명한 게 아주 틀린 주장은 아니에요.

(4) 다만, 저도 다른 분들처럼 조중걸 선생님의 책은 추천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5) 개인적으로, 국내에 나와 있는 가장 훌륭한 『논고』 연구서는 박정일 선생님의 『논리-철학 논고 연구』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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