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력비판』, 순수 미감적 판단들의 연역(§30-35) 요약

§30. 자연 대상들에 관한 미감적 판단들의 연역은 자연에서 우리가 숭고하다고 부르는 것을 지향할 필요는 없고, 단지 미적인 것을 지향하면 된다

취미판단은 객관 자신에 개념적으로 근거하지는 않지만, 취미판단의 흡족 혹은 마음에 듦(gefallen)이 근거하는 주관적 합목적성은 “객관의 형식”(KU, 5:279)에 근거한다. 이 때문에 미감적 판단의 (과도한) 주관적 보편성 요구는 그 타당성에 대한 선험적 정당화(연역)를 필요로 한다. 반면 숭고의 판단은 대상이 무형식적임에도 불구하고 주관적 합목적성을 띤다. 이때 숭고의 주관적 합목적성은 대상 그 자신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사유방식, 보다 구체적으로는 “인식능력들의 합목적적인 관계”(KU, 5:280)에 귀속되며, 그러므로 숭고판단은 판단의 대상에 대해 비본래적이다. 이 점에서 숭고에 대한 해설과 별개로 숭고판단의 연역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순수 미감적 판단들의 연역은 취미판단의 연역만으로 충분하다.

(1) 취미판단의 주관적 합목적성은 객관의 형식에 근거한다.
(2) 따라서 취미판단의 타당성은 연역을 필요로 한다.
(3) 숭고판단의 주관적 합목적성은 객관의 형식에 근거하지 않는다.
(4) 따라서 숭고판단의 타당성은 연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미감적 판단의 연역은 취미판단에 대한 연역으로 충분하다.

§31. 취미판단들의 연역의 방법에 대하여

취미판단은 모든 사람들이 이 판단에 대해 동의해야 한다는 요구를 한다는 점에서, 즉 주관적 합목적성이 모두에게 보편적이라는 과도한 요구를 한다는 점에서 연역을 필요로 한다. 다만 취미판단은 사물에 대한 개념에 기초하지 않으므로 취미판단의 연역은 객관적 타당성 연역이 아니다.

취미판단은 사태, 사물에 관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론적 인식판단도 실천적 인식판단도 아니다. 그러므로 취미판단의 연역은 “단칭판단이 판단력 일반에 대해 보편타당성을 가지고 있음”(KU, 5:281)을 밝히는 것으로 충분히 수행된다.

취미판단의 보편타당성은 판단 주관의 자율성에 의거하면서도 개념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취미판단은 이중적 특유성을 지닌다. (1) 취미판단은 단칭판단의 비개념적 보편성을 지닌다. (2) 취미판단은 선험적 근거에 의거하지만 선험적 증명근거에 의거하지는 않는 필연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취미판단의 동의 요구는 강제력을 지니지 않는다.)

취미판단의 논리적 특유성의 연역은 그로부터 쾌의 감정을 사상하고 취미판단을 논리적 객관적 판단의 형식과 비교해봄으로써 가능하다.

(1) 취미판단은 보편타당성을 요구한다.
(2) 취미판단은 사태에 대한 객관적 개념에 근거하지 않는다.
(3) 사태에 관계하지 않는 판단은 객관적 보편타당성을 지니지 않는다.
(4) 따라서 취미판단은 개념에 근거하지 않으며 주관적이다.
∴ 취미판단은 주관적이면서도 보편적이며, 필연적이지만 필연적으로 증명되지는 않는다.

§32. 취미판단의 첫째 특유성

“x는 아름답다”는 대상을 아름답다고 규정하는 데 있어 모든 감각 주관의 동의를 요구한다. 일견 취미판단은 대상 자신에 아름다움이라는 속성을 객관적으로 귀속시키는 듯 보이며, 따라서 모든 감각 주관이 따라야 할 객관성을 지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사물의 아름다움은 수용 주관의 방식을 따르는 한에서만 성립하는 까닭에, 취미판단은 객관적 타당성을 지니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취미판단은 각 주관들의 쾌에 대한 경험적 판단이 아니라 “자기의 판단을 […] 선험적으로 언표”(KU, 5:282)하는 데서 성립하므로, (개념에 근거하는 인식판단과 달리) 비개념적으로 선험적이다.

개인의 취미판단은 모두의 실제적인 동의 여하에 상관없이, 타인의 주관이 아닌 순전히 자기의 주관에 근거해 이루어진다. 이 점에서 취미판단은 순전히 자율적 요구를 지닌다.

예술의 역사에 고전과 전범으로 여겨지는 작품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일견 취미판단이 주관의 자율성에 근거하는 선험적 판단이 아니라 경험적 판단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빼어난 선례를 통해 취미판단을 내리는 능력을 예리하게 다듬을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취미판단이 경험적이라는 결론이 따라 나오지는 않는다. 예컨대 예술뿐만이 아니라 수학처럼 명백한 선험적 판단의 영역에서도, 우수한 수학자들의 작업을 통해 주관의 수학적 소질을 갈고닦는 일이 이루어진다. 선대의 뛰어난 작업을 통해 미적 감각을 절차탁마하는 일은 선대에 대한 경험적 모방이 아니라, 취미판단을 선대가 근거했던 바와 동일한 선험적 원천에 근거하도록 하는 계승이다. 더구나 취미판단은 수학적 판단 등의 다른 판단과 달리 비개념적인 판단인 까닭에 빼어난 선례를 다른 영역에서보다 더욱 많이 필요로 한다.

(1) 술어 ‘아름답다’는 오직 대상을 수용하는 주관의 방식 속에서만 성립한다.
(2) 따라서 취미판단은 객관적 타당성을 결여한다.
(3) 한편 취미판단은 주관이 (남이 아닌) 순전히 자기의 자율성에 의해 쾌를 언표하는 것이다.
∴ 취미판단은 주관적이면서 동시에 선험적이다.

§33. 취미판단의 둘째 특유성

취미판단은 증명될 수 없다. 첫째로, 취미판단에 대한 경험적 증명은 불가능하다. 이를테면 다른 모든 사람들이 어떤 취미판단에 동의한다는 사실은 개인의 취미판단을 정당화하거나 반박하는 근거가 결코 될 수 없다. 취미판단은 선험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판단한다는 사실은 개인의 취미의 계발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나, “사람들이 x가 아름답다고 판단한다”라는 경험적 사실에 대한 판단 근거일 뿐이다. 둘째로, 취미판단에 대한 선험적 증명 역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취미판단은 지성이나 이성에 근거하는 판단이 아니며, 따라서 지성개념이나 이성개념에 논리적으로 근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평이론 일반에 의해 정립된 아름다움의 규칙들을 근거로 해서 개인 주관의 취미판단을 근거짓거나 반박할 수는 없다. 미감적 판단능력에 ‘취미’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다른 사람들이 제시하는 판단과 그 이유들이 아니라 오직 나의 쾌/불쾌만이 판단의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취미판단은 단칭판단이다. 물론 “모든 튤립은 아름답다”에서처럼 “아름답다”라는 술어가 전칭판단을 구성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전칭판단은 취미판단이 아니라 객체와 취미의 관계에 대한 논리적 판단이다. 취미판단의 특유성은 그것이 마치 객관적 판단인 것처럼 모든 주관에 대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데에 있다.

(1) 다른 주관의 판단은 취미판단의 근거가 될 수 없다.
(2) 따라서 취미판단은 경험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
(3) 취미판단은 지성개념이나 이성개념에 근거하지 않는다.
(4) 따라서 취미판단은 선험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
∴ 취미판단은 필연적이면서 동시에 증명 불가능하다.

§34. 취미의 객관적 원리란 있을 수 없다

개별 대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을 추론해낼 근거가 되는 취미의 원리란 전혀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취미판단은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 없고 오직 개별 주관의 쾌/불쾌에만 관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평은 객관적인 규칙에 근거해서 증명할 수 없으며 “자기 자신의 (쾌 또는 불쾌의) 상태에 관한 주관의 반성”(KU, 5:286)에만 근거할 수 있다.

비평의 과업은 취미판단의 근거가 되는 객관적 원리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미적 판단의 개개 사례들로부터 미감적 판단에 개입하는 상상력 및 지성을 탐구하고, 양자의 상호작용을 통해 성립하는 주관적 합목적성을 분석하는 일이다. 취미비판은, 감각이나 개념을 미리 전제하지 않고서 상상력과 지성의 상호관계를 탐구하는 기예 또는 학문인데, 취미판단의 가능성에 대한 탐구라는 이 과업이 경험적인 실례 속에서만 수행될 경우 기예이고, 상상력과 지성이라는 인식능력들의 선험적 본성으로부터 길어내어진다면 학문이다. 그러므로 미감적 판단력비판이 학문으로서의 취미비판이라면 비평은 기예로서의 취미비판이다. 전자가 대상에 대한 미적 판단에 개입하는 능력들에 대한 선험적 탐구라면, 후자는 취미판단의 경험적-심리적 규칙들에 근거해서 예술작품을 비평한다.

(1) 취미판단은 오직 개별 주관의 쾌/불쾌에만 근거한다.
(2) 취미판단은 증명 불가능하다(§33).
∴ 취미판단의 원리는 객관적이지 않다.

§35. 취미의 원리는 판단력 일반의 주관적 원리이다

논리적 판단이 표상을 객관의 개념 아래 포섭하는 반면, 취미판단은 표상을 개념 아래 포섭하지 않는다. 이처럼 취미판단은 비개념적인 판단이기 때문에, 논리적 판단과 달리 객관성을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미판단은 주관적으로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는다. 취미판단은 개념이 아니라 “판단 일반의 주관적 형식적 조건”(KU, 5:287), 다시 말해 판단력 자신에 기초한다. 이 판단력이 어떤 대상의 표상에 사용되기 위해서는 상상력과 지성이 교호작용해야 한다. 한편 여기서 양자의 교호작용은 객체에 대한 어떤 개념도 전제하지 않은 채 직관과 개념을 매개하는 조건들, 즉 도식 아래에 포섭된다. 즉 상상력은 앞서 정해진 객관적 개념에 따르지 않고 자유롭게 스스로를 도식화한다. 즉 취미판단이 근거하는 취미의 원리는, 객관적 개념에 매개되지 않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합법칙적 지성의 상호 유희의 원리로서의 주관적 합목적성이다. 이론적 인식에 개입하는 규정적 판단력이 직관을 개념 아래에 포섭한다면, 취미판단에 개입하는 미감적 판단력은 직관의 능력을 개념의 능력 아래에 포섭하는 데서 성립한다.

취미판단의 연역의 단서가 되는 것은 취미판단의 이러한 형식적 특유성이다.

(1) 취미판단은 주관적 판단력에 근거한다.
(2) 주관적 판단력은 상상력과 지성의 교호작용에 근거한다.
(3) 이때 상상력은 합목적성을 원리로 해서 지성에 포섭된다.
(4) 지성에 의한 상상력의 포섭은 객관적 개념에 매개되지 않은 채 이루어진다.
∴ 취미판단의 원리는 객관성을 결여한 주관적 합목적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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