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지문에서는 미학적 천재에 대한 인식의 역사적 이행 과정과, 반대되는 (나) 지문에서는 가다머의 해석학적인 미학이 나왔습니다. <보기>를 보고 푸는 3점짜리 문제에서는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내용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으로 즐겁게 풀 수 있었습니다.
이 지문의 난이도는 꽤 평이했는데, 비문학 문제가 끝나고 이어 나오는 문학 문제가 꽤 어려워서 머리가 아팠습니다... 이젠 그냥 빨리 수능을 보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서강올빼미에 같은 고3 분들이 꽤 많던데, 같이 화이팅해요... 어엿한 철학과 학부생이 되자구요.
전반적으로는 가다머의 해석학이 평이하게 잘 소개된 지문이네요! (나)의 첫 번째 단락은 『진리와 방법』 제2부의 중심 내용을 요약하고 있고, (나)의 두 번째와 세 번째 단락은 『진리와 방법』 제1부의 중심 내용을 요약하고 있네요. 다만, 해석학 전공자로서 한 가지 약간 아쉬운 게 있다면,
"이러한 지평의 융합을 가다머는 이해로 규정했으며, 지평이 융합되어도 간격은 존재하기에 대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라는 서술 부분입니다. 이 부분이 내용상으로 틀린 것은 아닌데, 서술 방식이 저에게는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네요. 가다머의 논점은 "지평의 융합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시대적 간격은 여전히 존재한다."라기보다는, "시대적 간격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평 융합이 이루어진다."에 더 가깝거든요. 말하자면, 지평융합과 시대적 간격은 마치 서로 대립하는 관계처럼 묘사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시대적 간격 그 자체가 바로 지평융합의 조건이에요. (이미 지문 속에도 이 점이 나타나 있는데 정작 저 문장은 시대적 간격이 지평융합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다시 희미하게 만들어서 다소 의아했네요.)
예를 들어, (a) 우리는 1세기에 신약성서가 쓰일 당시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용을 완벽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하고, (b) 그 사람들 역시 자기 시대 이후의 상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들에 대해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기란 불가능하죠. 하지만 (c) 오히려 바로 그 '시대적 간격 덕분에' 신약성서라는 텍스트의 의미란 특정한 한 가지 방식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시대마다 각각의 사람들에게 새롭게 독해될 수 있다는 것이 가다머가 말하는 '지평융합'이에요.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1세기나 21세기 사람들이 고정해 놓은 정답을 텍스트에서 단순히 발견해내는 과정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1세기 사람들과 21세기 사람들이 서로를 조율해 가면서 각 시대의 고민에 대해 함께 대화하는 과정이고, 바로 그 대화를 통해 얻은 결론으로서의 '의미'란 1세기 사람만의 대답도 아니고 21세기 사람만의 대답도 아닌 그 두 시대의 합작물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가다머의 지평융합은 시대적 간격과 상충하는 사건이라기보다는, 시대적 간격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에요. 시대별로 '차이'가 없다면, 시대별 지평이 '융합'될 이유도 없다는 것이 가다머의 논지인 거죠.
명쾌한 설명 감사합니다! 가다머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는데, 예시만 보아도 확실히 흥미롭습니다.
엄밀히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저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이승종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2인칭적 대화로서의 철학'이 떠올랐습니다. 대화 참여자 각각의 구체적인 삶의 굴곡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그 발화에서의 배경 차이가 있으니까요.
<진리와 방법> 꼭 읽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