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몰트만(1926-2024) 별세

'희망의 신학'으로 유명하신 몰트만 교수님이 6월 3일에 별세하셨네요.

책을 읽어본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분이 싱숭생숭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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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철학 전공자이지만, 몰트만의 글들은 그 어떤 철학 책들이나 논문들보다도 저에게 깊은 통찰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별히,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은 제가 읽어본 모든 책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책이었습니다. 몰트만의 글들을 통해 부활, 종말, 삼위일체, 성령의 의미에 대해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몰트만 같은 위대한 신학자와 동일한 시대를 살 수 있어서, 또 몰트만이 방한하였을 때 직접 강연에 참석해서 질문도 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참 영광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학자가 반드시 사회 변혁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또 학자가 내는 목소리가 반드시 사회 변혁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간혹 드물게 학자의 활동이 사회 변혁을 위한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까지 부정하지는 않아요. 몰트만의 책들이 바로 그런 보기 드문 사례일 거예요. 몰트만의 책들은 정말로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한국을 비롯하여) 제3세계 그리스도교 실천가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었으니 말이에요. 아마 그리스도교 신앙 자체가 지닌 강력한 실천적 힘과, 그 실천적 힘을 포착하여 감동적인 방식으로 서술한 몰트만의 신학적이고 문학적인 능력이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75년 내가 한국에 갔을 때, 시인 김지하는 사형수의 감방에 있었으며, 지금의 김대중 대통령은 감옥에 갇혀 있었다. 조금 후에 안병무 교수는 감옥형에 처해졌고, 많은 신학생이 구속되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나의 책들이 감옥에서 읽혔다는 사실에 나는 매우 감동을 받았다. 우리 개혁교회의 신조에 따르면 '폭군에게 저항하고 억눌린 자들을 풀어주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위르겐 몰트만, 『희망의 신학』, 이신건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 7쪽.)

"이 책을 쓰는 동안에, 나는 1989년 12월 16일에 엘살바도르에서 살해당한 예수회원 중의 한 사람, 쥬안 레이몬 모레노(Juan Ramon Moreno) 형제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혼 소브리노(Jon Sobrino)의 방에서 피살당했는데, 그의 피범벅 속에는 나의 책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El Dios Crucificado)이 떨어져 있었다. 그를 추모하면서 나는 이 장을 그에게 바친다." (위르겐 몰트만, 『오늘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이신건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 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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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트만과 몰트만의 신학에 대해 회상하는 글을 써보았습니다.

https://blog.naver.com/1019milk/223503158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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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죄의 문제를 다룬 신학을 배울 때 저도 비슷한 감상을 받았어요. 특히 글에는 안나왔지만 고대 교부들의 속죄론 중 "승리자 그리스도" 이론은 음? 싶더라구요. 하나님과 악의 싸움을 위해 '인성으로 위장된 미끼'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왔고, 여기에 의심없이 낚인 악한 세력은 십자가와 부활 앞에 패배한다.....

너무 예전에 수업에서 들었던지라 제대로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이런 뉘앙스였던 것으로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게 뇌리에 남는 이유는 '신앙'을 위한 '신학'이 아니라, 신학을 위한 신학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마치 우리가 믿는 바를 어떻게든 설명하기 위해 이런저런 이유를 대다가, 신앙마저 오도하게 되는.. 속된말로 뇌절하게 되는 듯 하는 인상을 받거든요.

그런데 몰트만의 글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서 계속 고찰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승리자 그리스도론이 어떻게 속죄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을 제시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오늘 신앙하고 있는 신앙인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과는 반대로요.

그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가 되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세상 속에서 어떠한 가치를 지향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즉, 그리스도인은 고통 가운데 놓여 있는 모든 사람과 연대하여 부정의한 현실에 저항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들의 편에 함께 계시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들의 편에 함께 서야 한다는 사실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출처] 만유 안에 계신 하나님에 대한 신학: 몰트만과 몰트만의 신학에 대한 회상|작성자 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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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몰트만의 신학은 대단히 강력한 실천적 힘이 있고, 그 힘은 몰트만 본인의 생애에서도, 몰트만에게 감명을 받은 사람들의 생애에서도, 더 나아가, 몰트만의 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제3세계 여러 나라들에서도 스스로 증명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리스도교가 단순한 형이상학적 사변에 그치지 않고서, 정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신앙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거죠.

그런데 저는 '승리자 그리스도론'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이에요. 말씀하신 '인성으로 위장된 미끼'라는 비유는 닛사의 그레고리우스가 제시한 것인데, 승리자 그리스도론에는 이런 형태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형태들이 있어요. 이레나이우스의 총괄갱신론에 근거한 승리자 그리스도론이 더욱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어떤 의미에서, 종말론적 희망을 강조하는 몰트만의 입장도 넓은 의미에서는 승리자 그리스도론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특별히, 오늘날 조직신학에서는 승리자 그리스도론이 다시 부활하고 있어요. (a) 소위 '속사도 교부'라고 불리는 사도 시대 직후 교부들의 문헌에 대한 연구를 통해 승리자 그리스도론이 초기 교회의 십자가 이해에 가깝다는 사실이 부각되었고, (b) 요한 블룸하르트,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 구스타프 아울렌 등 걸출한 신학자들을 통해 승리자 그리스도론의 의의가 드러났거든요.

십자가와 승리자 그리스도: 한스 부르스마, 『십자가, 폭력인가 환대인가』 제8장
https://blog.naver.com/1019milk/221572557049

특별히, 블룸하르트 부자(父子)의 승리자 그리스도론이 현대신학에 끼친 영향이 대단했다고 저는 평가해요. 19세기 말에 요한 블룸하르트 목사는 고트리빈 디투스라는 여성에게서 악령을 쫓아내게 되는데, 그 이후로 "예수는 승리자다!"라는 구호를 자신의 표어로 삼아 목회를 수행하였거든요. 흥미로운 점은, 블룸하르트의 활동이 단순히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에 머무르지 않고서, 종교사회주의 같은 사회 변혁 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이에요. 또 이 운동의 신학적-종교적 의의가 신학자 칼 바르트, 종교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분석심리학자 칼 융 등에게까지 대단히 긍정적으로 평가받기도 하였고요. (몰트만도 블룸하르트 부자에게 강한 영향을 받은 신학자 중 한 사람이에요.)

예수는 승리자다!: 요한 블룸하르트의 투쟁
https://blog.naver.com/1019milk/221570868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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