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의 변증법 "서문" 질문: 한국어판 13p

계몽의 변증법 13p에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질문드립니다.

승리한 사상이 기꺼이 비판적 요소를 포기하고 단순한 수단이 되어 기존 질서에 봉사하기 시작할 때, 그것은 자기 의지와는 반대로 예전에 선택했던 긍정적인 무엇을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 변질시키게 된다. 18세기에 뻔뻔스런 자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심어주었던 철학은, 산더미처럼 쌓여 불태워진 책과 인간들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 밑에서 이미 자신을 다시 그들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콩트의 변명적인 학파는 비타협적인 백과전서학파로부터 승계권을 빼앗아와서는 이들이 저항했던 모든 것과 손을 잡았다. (13p)

여기서 프랑스의 예시와 콩트의 예시가 나와 있는데도, 이 예시들에서 "승리한 사상이 기꺼이 비판적 요소를 포기하고 수단이 되어 기존 질서에 봉사하기 시작할 때, 예전에 선택했던 긍정적인 무엇을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 변질시키게 된다"는 게 보이지가 않습니다. 콩트와 백과전서학파는 제가 모르니까 그렇다고 쳐도, 프랑스의 예시가 어째서 '저 사실'을 보여주는지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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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프랑스의 계몽주의적 사상 조류와 그것이 지지했던 가치들(자유, 평등 등)은 기존의 지배 질서를 비판하며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는 데 공헌했습니다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의 새로운 지배자로 떠오르고 곧이어 황제로 즉위하면서 도리어 새 지배 질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와는 별개로 콩트가 비판받는 이유는 실증주의적 입장 때문입니다. 콩트 자신이 직접적으로 지배체제를 옹호한 사실은 없지만, 객관적으로 주어진 사태를 경험적으로 연구한다는 식의 사상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보기에 사태 자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암암리에 현상태(status quo)를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태도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콩트의 학파를 지배에 순응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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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뉴헤겔 님이 핵심을 잘 설명해 주셨으니, 저는 내용을 약간 보충해 보겠습니다. 우선 김유동 교수의 <계몽의 변증법> 번역이 워낙 안 좋아서 제가 대충 해봤습니다. 원문과 번역문은 각각 다음과 같습니다.

Tritt er willentlich aus seinem kritischen Element heraus als bloßes Mittel in den Dienst eines Bestehenden, so treibt er wider Willen dazu, das Positive, das er sich erwählte, in ein Negatives, Zerstörerisches zu verwandeln. Die Philosophie, die im achtzehnten Jahrhundert, den Scheiterhaufen für Bücher und Menschen zum Trotz, der Infamie die Todesfurcht einflößte, ging unter Bonaparte schon zu ihr über. Schließlich usurpierte die apologetische Schule Comtes die Nachfolge der unversöhnlichen Enzyklopädisten und reichte allem die Hand, wogegen jene einmal gestanden hatten.

"[사회 문제에 대한] 사유가 어떤 존속하는 것의 단순한 봉사 수단이 되어서 그의 비판적 요소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면, 그 사유는 자기 의지에 반해서 그가 선택한 긍정적인 것을 어떤 부정적인 것, 파괴적인 것으로 변하게 만든다. 18세기에 책들과 사람들을 장작더미에 불태웠음에도 불구하고, 불한당에게 죽음의 공포를 불러일으켰던 철학은 보나파르트 치하에서 벌써 불한당에게 넘어갔다. 결국 콩트의 [체제] 옹호적 학파는 [체제와] 불화하는 백과전서파들의 후계를 찬탈하고 그들이 한때 반대했던 모든 것과 손잡았다."

일단 전체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서문>의 서두에서 던지는 문제는 (서구) 문명이 왜 야만이 되었고, 계몽이 왜 신화로 퇴행했는지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계몽주의 사상에 따르면 역사는 진보한다는데,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보기에 역사는 진보가 아니라 퇴보했고, 그것은 이성적 사유가 지배의 도구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18세기 프랑스 백과전서파였던 달랑베르, 디드로, 루소 등의 사상은 왕족과 성직자 같은 봉건 세력에게 위험한 사상이었고, 그래서 탄압을 받았죠. 1789년에 바로 그 계몽주의의 자유, 평등 사상으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는데, 1804년에 보나파르트가 황제로 등극해버렸습니다. 자유와 평등의 사상이 부르주아 계층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전락한 것이죠.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19세기에 등장한 콩트의 실증주의 사상이 계몽주의의 자유, 평등 사상을 대신해서 부르주아 계급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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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동 번역본은 최근 개정판은 제가 갖고 있는 구판보다는 나아졌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을 것입니다. 독일어 원본을 대조할 수 없으면 영역본이라도 대조해서 읽어야 합니다.

제 번역 원칙 (최대한 직역하되 영역판을 참조한다) 에 따른 번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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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단지 학문의 자기망각적 도구화로부터 발생하는 장애들이라면, 사회에 대한 물음들에 관한 사유는 최소한 공식적 학문에 대립하는 지향들에 자신을 붙들어 맬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지향들 또한 생산의 전체과정에 장악되어 있다. 그것들은 그것들이 겨냥했던 이데올로기 못지않게 변했다. 예로부터 승리한 사상에 일어났던 것이 그것들한테도 일어난다. 승리한 사상이 자신의 의지대로 그것의 [자신의] 비판적 요소로부터 걸어나와 순전히 기성체제에 봉사하는 수단이 되면, 그것은,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그것이 [자신이] 옹호했던 적극적인/긍정적인 것을 [적극적인/긍정적인 대의를] 하나의 부정적인 것, 파괴적인 것으로 변하도록 추동한다. 18세기에 분서와 화형에 맞서/분서와 화형을 무릅쓰고 야비한 이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불러일으켰던 철학은 보나파르트 치하에서 이미 야비한 이들에게 넘어갔다. 마지막으로 콩트의 변명적 학파는 비타협적인 백과전서파로부터 승계권을 빼앗아 와서는 이들이 저항했던 모든 것과 손잡았다.

Wären es nur die Hindernisse, die sich aus der selbstvergessenen Instrumentalisierung der Wissenschaft ergeben, so könnte das Denken über gesellschaftliche Fragen wenigstens an die Richtungen anknüpfen, die zur offiziellen Wissenschaft oppositionell sich verhalten. Aber auch diese sind von dem Gesamtprozeß der Produktion ergriffen. Sie haben sich nicht weniger verändert als die Ideologie, der sie galten. Es widerfährt ihnen, was dem triumphierenden Gedanken seit je geschehen ist. Tritt er willentlich aus seinem kritischen Element heraus als bloßes Mittel in den Dienst eines Bestehenden, so treibt er wider Willen dazu, das Positive, das er sich erwählte, in ein Negatives, Zerstörerisches zu verwandeln. Die Philosophie, die im achtzehnten Jahrhundert, den Scheiterhaufen für Bücher und Menschen zum Trotz, der Infamie die Todesfurcht einflößte, ging unter Bonaparte schon zu ihr über. Schließlich usurpierte die apologetische Schule Comtes die Nachfolge der unversöhnlichen Enzyklopädisten und reichte allem die Hand, wogegen jene einmal gestanden ha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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