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갖고 있는 게 펠릭스 마이너 판이 아니라 주어캄프 판이라서 인용 쪽수에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헷갈리실 테니 원문을 인용할 때는 영역본의 쪽수를 같이 표기하겠습니다.)
1. 일단 번역 관련한 문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가져오신 디조바니의 구절에 정확히 해당하는 부분을 명기하겠습니다.
논의되는 명제에 반해 성립되고 있는 심급들에서는, 어떤 것은 있든지 없든지 무관한 것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존재 혹은 비존재와 관련하여서가 아니라 다른 내용과 관계 맺는 그것의 내용과 관련하여 그러하다. 규정적인 내용이, 여하한 규정적인 현존재가 전제된다면, 이 현존재는 규정적이기 때문에 다른 내용과의 잡다한 관계 속에 놓이게 된다. 현존재는 그와 관계 맺는 특정한 다른 내용이 있든 있지 않든 무관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관계를 통해서만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현존재인 것이기 때문이다. (WL, I, 87-88/SL, 63-64)
문제 삼으신 문장의 독일어 원문은 “es ist für dasselbe nicht gleichgültig, ob ein gewisser anderer Inhalt, mit dem es in Beziehung steht, ist oder nicht ist[.]”인데, “dasselbe”를 받는 명사가 “Inhalt”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내용”이 아니라 “현존재”가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번역이 맞습니다. 영역본은 “it is not a matter of indifference …”를 첨가하고 있습니다만, 틀린 번역이라거나 글의 요지를 결정적으로 바꾼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가져오신 두 번째 구절은 정확히는 실재와 부정의 구별이 “무상하고 지양된다”(nichtig und aufgehoben)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구별이 안 되는” 것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특히나 현존재 이후에 등장하는) 범주들은 무차별적으로 동일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간직하면서 고차적인 범주 속에서 통일되기 때문입니다. 인용하신 문단 바로 밑에서 헤겔은 이렇게 말합니다.
구별들의 이 지양은 순전히 구별들을 되돌리고 도로 무르는 일이나 단순한 시작 자체로서의 현존재로의 회귀 그 이상의 것이다. 구별은 철회될 수 없다. 구별은 있기 때문이다. (WL, I, 123/SL, 88-89)
인용하신 구절에서 보이듯이 실재와 범주는 서로를 포함하지요. 양자의 차이가 보존되기 때문에 이 포함 관계는 무차별적 동일성이 아니라 질의 자기관계이고, 따라서 어떤 것이 도출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 존재론적 신 증명을 헤겔이 비판하고 있다는 서술은 제 오류입니다. 존재론적 증명에 대한 헤겔의 입장은 제 위의 서술과 정확히 반대입니다. 인용하신 구절에 나와 있는 대로 헤겔에 의하면 무한자인 신의 개념은 100탈러를 비롯한 유한자들의 개념과 다른데, 칸트는 이 구별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개념과 실재가 분리되는 유한자의 경우와 달리, “신의 개념과 신의 존재는 분리되지 않고 분리될 수 없”(WL, I, 92/SL, 66)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개념은 그 현존을 포함하며, 존재론적 증명은 옳습니다. 나아가 헤겔은 여러 가지 신 증명 중 존재론적 증명만이 유일하게 참된 증명이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존재론적 증명은 처음에 기독교에서 캔터베리의 안셀무스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러고 나서 그것은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볼프에 의해 이후의 모든 철학자들에 의해 거론되었는데, 존재론적 증명만이 홀로 참된 증명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증명들과 나란히 열거되고 있다. (Hegel, G. W. F., “Ausführung des ontologischen Beweises in den Vorlesungen über Religionsphilosophie vom Jahre 1831”,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Religion II, Werke in zwanzig Bänden 17, Frankfurt: Suhrkamp, 1986, 529)
한데, 이와 별개로 헤겔의 비판점 중 하나는 현존재/비현존재의 구별과 존재/무의 구별을 혼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내가 100탈러를 지니는지 지니지 않는지의 구별을 순전한 존재와 비존재로 밀어내는 기만이다.─”(WL, I, 89/SL, 64) 그리고 헤겔이 보기에 양자의 구별의 차이는, 존재와 무가 아무 차이도 지니지 않는 것과 달리 현존재/비현존재가 차이를 지닌다는 데 있습니다. yhk님께서는 현존재/비현존재가 개념적으로 구별이 안 되고 그 적용(application)에 있어서만 차이가 난다고 하셨지만, 해당 부분을 보면 정확한 요지는 “존재하다”라는 술어가 특정한 내용에 적용되었을 때 순수성을 잃어버린다는 것, 그리고 순수하지 않은 의미에서의 “존재하다”는 순수 존재가 아니라 현존재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앞 글에서 인용했던 부분을 다시 보겠습니다.
존재와 비존재는 동일하다. 따라서 내가 있든 있지 않든, 이 집이 있든 있지 않든, 이 100탈러가 내 수중에 있든 있지 않든 동일하다.─이 추론 혹은 전자의 명제의 적용은 명제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버린다. 그 명제는 존재와 무의 순수 추상을 내포한다. 그러나 그 [명제의] 적용은 그로부터 하나의 규정적 존재와 규정적 무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미 말했듯이 규정적 존재는 여기서 논의거리가 아니다. 하나의 규정적인, 유한한 존재는 다른 존재와 관계 맺는 그러한 것이다. 그것은 다른 내용과, 전체 세계와 필연성의 관계 속에 있는 하나의 내용이다. (WL, I, 87/SL, 62)
헤겔에 의하면, 존재와 비존재의 동일성으로부터 특정한 어떤 것의 존재와 비존재의 동일성이 따라나오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100탈러 같은 구체적인 어떤 것에 관해 거론한 순간 ‘존재’라는 말은 순수 존재가 아니라 현존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순수존재와 달리 어떤 것은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 있고, 그 관계가 어떤 것의 내용 자체를 구성합니다. “그러한 관계를 통해서만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현존재”입니다. 결국 헤겔에게 현존재는 “있든 없든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관건이 되는 것은 존재/비존재, 현존재/비현존재의 개념적 차이이지 그것들의 특정한 적용 사례가 아닙니다. 이와 관련해서 윈필드의 설명(Winfleid, 2012: 56) 역시 참조할 수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저 차이가 순수존재/순수무와 그 이후의 규정들을 가르는 중요한 특징입니다. 존재와 무는 무규정적이기 때문에 양자의 구별 역시 직접적으로 소멸하는 반면, 실재와 부정은 소멸하지 않고 단적으로 다른 것으로 남아 있으며, 이는 논리학에서 등장하는 최초의 규정적인 차이입니다(Houlgate, 2006: 307).
3. 이건 그저 개인적인 잡념이지만, 저는 “이 범주와 저 범주가 구분이 안 되고 그래서 새로운 범주가 나온다”는 식의 서술을 각 범주에다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게 옳은 설명 방식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설명이 각 범주들이 왜 이런 정의를 지니고 그게 어떤 귀결을 낳는지를 이해하는 데는 크게 도움이 안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실재와 부정은 서로 구분이 안 되고 그래서 실재적이면서도 부정적인 것을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이 어떤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어떤 것이 왜 정의상 자기관계이고 이것이 어떻게 타자와 관계 맺는지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래서 마지막에 말씀하신 것처럼
과 같은 포인트들을 정확히 집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 범주에서 다른 범주로의 이행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니까요. 이런 이유에서, 정반합 같은 도식을 각 범주에다 적용하는 설명 방식은 단순명료하기는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에서 그러한 설명들이 헤겔이 진짜로 거기서 하는 말을 잘 잡아내고 있는 건지에 대해 저는 좀 회의적입니다. 물론 헤겔이 제시한 논증의 주된 논점을 오해하지 않으면서 논의를 간단명료하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참 고민이 많이 되는 일입니다.
P.S. 정황을 보니 아마 해외에서 유학중이시거나 한 것 같습니다. 특별한 사정으로 인해 이런저런 철학 개념들에 해당하는 한국어 번역어를 잘 모르신다면, 적어도 핵심 개념들은 그대로 영어로 놔두시거나 그 번역어를 물어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국내 연구자들도 영미권의 연구 문헌들을 참조하기 때문에(현실적으로 참조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에 해당하는 적절한 번역어를 찾아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S.2. reality(Realität)의 번역어는 "실재" 혹은 "실재성"이고, actuality(Wirklichkeit)의 번역어는 sophisten님 말씀대로 "현실" 혹은 "현실성"입니다.
Winfleid, D., Hegel’s Science of Logic: A Critical Rethinking in Thirty Lectures, Lanham, Maryland: Rowan & Littlefield, 2012.
Houlgate, S., The Opening of Hegel’s Logic: From Being to Infinity, West Lafayette, Indiana: Purdue University Press,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