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로트니츠키는 복소수가 가진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한다: 실수 평면은 수학적으로 복소수와 같은 대상이 아니다. √-1과 같은 복소수들과 그들의 기능은 실수 평면을 통해서, 그 중에서도 복소 평면을 통해서만 기하학적으로 표현 되고represented 시각화 될 수visualized 있다. 다른 수학적 대상들이 그들 자신을 통해, 그들의 실제의actual 수학적 속성property들을 통해서 이해 가능한 것과 달리 복소수는 복소수 자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점에서 점을 통해 포괄적으로, 도식적인 그림으로만 이해 가능 하다는 것이다. 이것의 주된 이유는 이차원 평면 위, 예를 들어 데카르트 좌표 위의 실수 점real point들은 ‘숫자’가 아니다. 실수들과 (실직)선 같이 실수들의 기하학적 표현들과 달리, (복소수의 경우) 모든 필수적인 산술 연산arithmetical operation, 특히 곱셈 또는 나눗셈(덧셈과 뺄셈은 문제가 될 게 없다)을 생각해 낼 conceive of ‘자연스러운’ natural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 즉, 실수의 경우 실직선은 “자연스럽게” 산수로 전환된다.
결론적으로, 복소수는 엄밀히 말해 실수 평면에서 점으로 표현되는 것이 불가능 하며 인식론 적으로 상상visualize하거나 기하학적 대상으로 사용될 수 없다. 그들의 속성은 대수학적으로만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대수학에서 실수와 복소수 사이의 인식론적 차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수의 대수학적 속성의 기본적 차이는 존재할지라도) 결국, 복소수는 상상적일 뿐만 아니라, 최소한 기하학적으로는, 엄격하게 상상 불가능unimaginable하다. 복소수는 최소한 실수가 그러하듯이 시각화되지 않는다nonvisualizable.
정리하자면 플로트니츠키는 그 자신의 속성을 통해 기하학적으로 표현가능한 실수들과 달리, (실수는 수직선으로 표현할 수 있고, 수직선 전체와 일대일 대응을 이룬다) 숫자가 아니라 이차원 평면 위의 ‘위치’로 표현되는 복소수는 그 자신의 속성을 통해 기하학적으로 표현 불가능하다. 따라서 √-1은 ‘기하학적 재현의 궁극적 결여’the ultimate lack of geometrical representation를 나타낸다.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복소평면 위에 점으로 표시가 가능하다면, 기하학적 표현이 가능한 것 아닌가? 이 문단에 대한 보론으로 플로트니츠키는 각주에서 수학자 코시Augustin-Louis Cauchy가 복소수의 기하학적 표현에 의구심을 가져 순전히 상징적인 (대수적) symbolic (algebraic) 실체entity로간주했던 것을 언급한다. 해당내용은 Heinz-Dieter Ebbinghaus의 Numbers라는 대학 교재에 실려 있는데, 확인 결과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CAUCHY (1789-1857). The French mathematician Augustin-Louis CAUCHY did not regard the geometric interpretation of complex numbers as the last word on the subject. He wrote in 1821, in his "Cours d'Analyse de l'Ecole Royale Polytechnique": "On appelle expression imaginaire toute expression symbolique de la forme a+b√-1, a, b désignant deux quantités réelles... toute equation imaginaire n'est que la représentation symbolique de deux équations entre quantités réelles." [We call an imaginary expression, any symbolic expression of the form a + b√-1, where a, b denote two real quantities Every imaginary equation is only just the symbolic representation of two equations between real quantities.] (Oeuvres 3, 2 Ser., 17-331, p. 155). This conception of imaginary expressions as symbolicrepresentations of two real numbers is, in contrast to GAUSS's geometric interpretation, purely algebraic.
CAUCHY was still, in 1847, and thus long after HAMILTON (see next paragraph) unsatisfied with the interpretation of the symbol i. In a note in the Comptes rendus entitled "Mémoire sur une nouvelle théorie des imag- inaires, et sur les racines symboliques des équations et des équivalences" (Oeuvres 10, 1 Ser., 312-323) he gives a definition which makes it possible "...à réduire les expressions imaginaires, et la lettre i elle même, à n'être plus que des quantités réelles." Using the concept of equivalence (with an explicit reference to the work of GAUSS on classes of quadratic forms) he now interprets computations involving complex numbers as computations with real polynomials modulo the polynomial X2 +1. In modern terminology this is equivalent to interpreting the field C of complex numbers as the splitting field of X2 +1 that is, C = R/(x² + 1). CAUCHY thus proves here a special case of what is now known as KRONECKER's theorem, the theorem that for every (abstract) field K and every irreducible polynomial fЄ K the residue class ring L = K/(f) is a finite extension field of K, in which f has at least one 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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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발기 기관’을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플로트니츠키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체계 내에서 ‘발기 기관’erectile organ이라는 상징이 복소수, 특히 √-1의 문제에서 마주쳤던 복잡성과 인식론적으로 유사하다고 본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구성에서 발기 기관의 이미지, 특히 발기 기관의 시각적 이미지는 시니피앙(기표)signifier의 이미지일 수밖에 없다. 이 기표 자체는 기본적으로, 더 이상 단순화할 수 없이irreducibly 시각화 불가능하다. 이 발기 기관으로 지정된 기표의 궁극적 구조는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상상 불가능하고 inconceivable 발기 기관 자체나 팔루스phallus(라캉의 주체성과 욕망의 경제에서 발기기관과 동일한 것이 아닌)처럼 이름 붙여질 수 없다unnameable. 하지만 우리는 수학체계 내의 대수학에서 복소수를 이용하듯이, (라캉이 부분적으로 모방하지만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은) 라캉의 대수학에서 (발기기관으로 지정된 시니피앙의) 이미지와 이름, 그와 관련된 형식적인 상징들을 조종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최소한 (접근할 수 없는inaccessible 시니피앙의 경제로 정의되는 defined)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상황 아래서within the Lacanian psychoanalytical situation, 우리가 그것(발기기관으로 지정된 기표)이 진정 무엇인지 모르고, 원칙적으로 그것의 속성이 무엇인지 상상 불가능 하다. 하지만 발기 기관의 시니피앙을 도입하는 것이 ‘이전에 확립된 상황 내에서 발생하지만 그 수단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발기 기관은 √-1과 유사하다analogon. (여기서 analogon은 두 담론이 동일하다기identical 보다 평행하거나parallel 비례하는proportionate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을 의미한다.) 발기 기관의 경우 그것은 분석 이전의 상황, 순진하게 표현하자면 정신 분석에서 구성된 분석적 상황(이전 체제에서는 특정한 형태의 불안에 접근해야 했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이고 허근의 경우엔 실수들(예를 들어 다항 방정식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때 엄격하게 복소수를 정의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이다. -
플로트니츠키는 이처럼 수학에서의 √-1과 라캉의 정신분석학 체계에서 발기 기관이 각각의 체계 내에서 역할 상 유사하기 때문에 라캉이 발기 기관을√-1에 등치시키는 것이지, 결코 학문적 의미의 수학에서 √-1을 발기기관에 등치시키는 것은 아니라 주장한다.
Indeed, the proper way of conceiving of the situation is to see the erectile organ, or, again, a certain formalization of it, as (as defined by and as defining) “the square root of -1” of the Lacanian system itself – that is, as an analogon of mathematical concept of mathematical square root of -1 within this system – rather than anything identical, directly linked, of even metaphorized via the mathematical square root of -1. In a word, the erectile organ is the square root of -1 of Lacan’s system, the mathematical square root of -1 is not the erectile organ. There is no mathematics in the disciplinary sense in Lacan’s analysis, only certain structural and epistemological analogies or homologies with the mathematics of complex numbers, most particularly the following.
그렇다면 이 주장의 근거 – 라캉이 발기 기관을 √-1과 유사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 는무엇인가? 그 근거로 플로트니츠키는 본격적으로 라캉의 에크리를 독해하기 시작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본고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소칼이 비난한 라캉의 악명높은 공식을 한 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S(기표))/s(기의) =s(언표)
S=(-1)이니까 s=√-1이 된다
라캉은 시니피앙을 대개 “다른 시니피앙을 위해 주체subject를 나타내는 것”이라 정의한다. 시니피앙 S는 “그것의 기능은 시니피앙의 보물로서 고유한, 대타자the Other[Autre]의 결여의 시니피앙”으로 소개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S는 모든 다른 시니피앙들이 주체를 나타내기 위한 시니피앙이다: 즉, 이 시니피앙이 결여되면 모든 다른 시니피앙들은 아무것도 나타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다른 것에 대해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다. Since nothing is represented only for something else. 시니피앙 S는 -1로 상징화된다. “S는 표현할 수 없지만inexpressible 그것의 작용operation은 그렇지 않다is not inexpressible. 고유명사proper noun가 말해질 때 마다 그것(S의 작용)이 일어나기produced 때문이다.”
(플로트니츠키에 따르면) 그 자체로는 표현될 수 없지만 그것의 작용은 표현될 수 있는 형식적 대상formal object이라는 점에서 S는 -1과 인식론적으로 유사하다. 반면 √-1은 형식적 대상으로조차 (최소한 기하학적 표현에서) 접근할 수 없다inaccessible는 점에서 S와 유사하지 않다. 대신 √-1은 주체로서는 접근할 수도 없고, 생각할 수조차 없는 시니피앙 s와 등치 된다. (아직 s는 발기기관과 동일시 되지 않고 있다)그러나 이 접근할 수조차 없는 시니피앙 s는 주체의 변증법dialectic 속에 고유한 것이며, 이 체계system(욕망의 변증법)를 궁극적으로 생성하는 시니피앙이다. “이것이 주체가 자신의 코기토에 의해 지친 그 자신을 생각하기 위해 주체가 결여한 것이다. 즉 그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국역본: 이것이 자기가 코기토에 의해 속속들이 설명된다고 생각할 때 주체가 결여하게 되는 것이다. 즉 자기에 관해 생각할 수 없는 것이 결여되는 것이다.) 그리고 라캉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하지만 고유명사의 바다 속에서 모종의 방식으로 결여된 것으로 나타나는 이 존재는 어디서 기원originate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라캉은 남근의 이미지phallic imagery를 염두에 두고 상상계imaginary order와 상징계symbolic order를 넘어가는 통로passage를 주목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팔루스phallus는 거세castration 콤플렉스를 통해 의미signification의 전체 경제에서 특권화된privileged 역할을 획득한다. 라캉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콤플렉스가 향유를 무한성 속에 유일하게 가리키는데, 그것은 향유의 금지 표시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러한 표시를 구성하기 위해 희생을 내포하고 있다. 즉 이 희생의 상징, 즉 팔루스를 선택할 때와 동일한 행동 속에 함축되어 있는 희생이 그것이다.
이 선택이 허용되는 것은 팔루스, 즉 페니스의 이미지가 거울 상에서의 자기 자리에서 부정당하기 때문이다. 그것에 의해 팔루스는 욕망의 변증법에서 향유를 구현하도록 운명지어진다.
따라서 상징적 성격을 가진 희생의 원리와 이 원리에 봉사하지만 그것에 도구를 부여하는 동시에 그것을 감추는 상상적 기능을 구분해야 한다. (국역본 969p)
그런 다음 라캉에 따르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의미의 방정식equation of signification을 따르는 것이 subject to 바로 발기 기관 – 이미지, 혹은 팔루스의 이미지가 아닌as un-image 시니피앙으로서, 따라서 남근penis의 이미지의 이미지가 아닌 것으로서(라캉의 상징계에서) – 이다. 라캉의 체계 안에서 발기 기관은 √-1로 존재한다.
그리하여 발기 기관이 물론 그 자체로서나 심지어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욕망된 이미지에는 결여된 부분으로서 향유의 자리를 상징하게 된다. 이 기관이 앞서 제시한 의미작용의 기호 √-1과 등가의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언표의 계수를 통해 그러한 기관이 시니피앙의 결여의 함수 즉 -1에 반환하는 향유의 기호와 말이다. (국역본 970)
따라서 팔루스의 의미”the signification of the phallus”는 접근 불가능한 시니피앙 inaccessible signifier의 경제에 순응한다conform. 그것은 시니피에signified나 지시 대상referent조차 단순히 정지되는suspended 것이 아니며, 사실은 궁극적으로 라캉의 실재Lacanian Real를 통해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는conceived 것이다. “비록 앞의 기관이 이렇게 향유의 금지를 꿰메두기 위해 시니피앙에게 주어지더라도 그러한 일은 형태상의 이유들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국역본 970)”라고 라캉은 말한다.
플로트니츠키는 이상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상상계에서 접근 불가능한 시니피앙과 지시대상을 포함하는 “팔루스의 의미signification”은 접근 가능한 것으로 정의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may be seen as defined by accessible signifiers, 하지만 (부분적인 결과로서in part as a consequence) 그것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무용하다useless. 하지만 상징계라는 새 시스템에서, 특히 발기 기관은, 궁극적으로 접근 불가능하다. 같은 이유로by the same token, 상징계가 욕망의 변증법에 소개되며 주체가 상징계를 통해 정의되도록 하는 거세는 라캉의 분석적 상황analytical situation이 작동하도록 한다.
- 지면 문제 때문에 플로트니츠키가 라캉의 개념들을 세세히 다루지 않고 최대한 요약해서 썼는데(본고에서 그렇게 쓰겠다고 말하고 논의를 들어간다) 플로트니츠키의 문제인지 내 후진 번역 실력 때문인지(…) 몰라도 글이 아주 개판이 되었다. 여러 중언부언들이 섞여 있지만 요약만 보자면 결국 플로트니츠키가 하고 싶은 말은 ‘기하학적 표현이 불가능하지만, 대수학적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허근과 마찬가지로, 팔루스의 시니피앙이라 할 수 있는 발기 기관이 (발기기관 자체에) 접근 불가능 함에도 불구하고 상징계를 가능하게 한다’는 말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