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의 외, 『입증』, 1-2장 요약

글이 명료하고 초심자도 이해하기 쉽게 잘 쓰여있네요.

이영의 외, 『입증』, 서광사, 2018.

1장 증거와 가설 그리고 입증

증거와 가설

과학적 지식은 자연세계에 관한 참된 주장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연세계에 관한 한 주장이 참인지 확인할 수 있는가? 즉 어떻게 과학적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

첫째로, 직접 경험을 통해 주장이 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3억 8,000만 년 전부터 3억 6,500만 년 전 사이의 지층에서 사지동물의 특징을 지닌 어류가 발견된다”라는 주장은 이를 직접 조사함으로써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이 주장은 과학적 지식이 된다.

둘째로, 경험적 증거의 뒷받침을 받아 주장이 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지동물은 어류로부터 진화했다”라는 주장은 직접 경험을 통해 확인될 수는 없지만, 직접 경험을 통해 얻은 과학적 지식을 경험적 증거로 삼아 이것이 참된 주장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과학적 지식의 후보를 가설이라고 부를 것이고, 증거를 경험적인 것으로 제한하여 말하겠다. 또한 이 책에서 증거와 가설은 모두 참/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문장/명제/진술이다. 이 책의 목적은 증거와 가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입증/반입증/중립

증거가 가설을 입증한다(confirm)란, 대략 다음을 의미한다:

증거가 가설의 참됨을 뒷받침한다.
증거가 가설이 참일 가능성을 높인다.
증거가 가설이 거짓일 가능성을 낮춘다.

증거가 가설을 반입증한다(disconfirm)란, 대략 다음을 의미한다:

증거가 가설의 거짓됨을 뒷받침한다.
증거가 가설이 참일 가능성을 낮춘다.
증거가 가설이 거짓일 가능성을 높인다.

증거가 가설을 입증하지도, 반입증하지도 않는 경우, 증거가 가설에 중립적(neutral)이라고 한다.

(증거가 가설을 검증한다(verify)란, 가설이 참이라는 것을 증거가 확정적으로 증명한다는 의미이다. 반면 증거가 가설을 반증한다(falsify)란, 가설이 틀렸음을 증거가 확정적으로 증명한다는 의미이다.)

입증에서 증거와 가설 사이의 관계는 논증 및 추론에서 전제와 결론 사이의 관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따라서 논증이나 추론과의 연관 하에 입증을 분석하기도 한다.

2장 가설연역법의 입증 이론

가설연역법

과학적 방법은 대체로 1) 관찰 2) 가설 수립 3) 가설 테스트 4) 가설 평가의 절차를 따른다. 이는 다시 크게 가설의 도입과 가설의 평가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설의 도입은 논리적 분석이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과학 철학은 가설의 평가에 논의의 초점을 맞춰왔다.

가설연역법은 가설의 평가에 대한 이론이다. 가설연역법은 가설과 배경지식(초기조건, 보조가설 등)으로부터 예측을 연역적으로 도출하는 부분과, 그 예측을 경험적으로 따져 보는 부분으로 나뉜다. 예측이 참으로 밝혀진 경우 가설은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고, 반대의 경우 가설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주의할 점은,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하여 가설이 검증되는 것은 아니며,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가설이 반증되는 것 또한 아니다.

가설연역법에서는 도출된 예측이 틀리더라도 이를 보조가설이 잘못된 탓으로 돌려 문제의 가설을 항상 보호할 수 있다. 나아가 보조가설을 수정함으로써 다른 예측을 도출할 수도 있다. 가설로부터 올바른 예측을 도출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수정된 보조가설을 미봉가설이라 부른다. 이와 같은 사실은 가설연역법의 문제점으로 작용하지만, 가설연역법의 지지자들은 미봉가설의 사용이 옳지 못하다는 등 배경지식에 제한을 걺으로써 비판을 피해갈 수 있다.

가설연역법의 입증 이론

증거 E는 배경지식 K 아래에서 가설 H를 입증한다
=df. K⊭E and (H&K)⊨E

증거 E는 배경지식 K 아래에서 가설 H를 반입증한다
=df. K⊭~E and (H&K)⊨~E

증거 E는 배경지식 K 아래에서 가설 H에 중립적이다.
=df. 증거 E는 배경지식 K 아래에서 가설 H를 입증하지도, 반입증하지도 않는다.

(A⊨B란 A가 B를 함축한다는(entail) 의미이고, A⊭B는 A가 B를 함축하지 않음을 뜻한다.)

가설연역법의 입증 이론의 문제점

1 대안가설의 문제

가설연역법의 입증 이론은 서로 양립불가능한 가설들을 모두 입증하는 증거를 허용한다. 예컨대 어떤 증거 E가, 동시에 참이거나 거짓일 수 없는 가설 H1과 H2를 모두 입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이상하다. 이 상황에서 H1이 참이라면 H2는 거짓이므로, H1이 참일 가능성이 커지면 H2는 작아져야 한다. 다시 말해 H1을 입증하는 증거는 H2를 반입증해야 한다.

2 통계적 가설의 문제

통계적 가설로부터는 합당한 예측을 연역적으로 도출할 수 없다.

반감기 가설: 방사성탄소가 5,730년 안에 붕괴할 확률은 1/2이다.
증거 1: 1,000개의 방사성탄소 중 500개가 5,730년 안에 붕괴하였다.
증거 2: 1,000개의 방사성탄소 중 5,730년 안에 붕괴한 것은 없다.

증거 1은 분명히 반감기 가설을 입증한다. 그러나 가설이 증거 자체와 그의 부정을 연역적으로 함축하지 않으므로, 가설연역법의 입증 이론에 따르면 증거 1은 반감기 가설에 중립적이다. 마찬가지로 증거 2는 분명 반감기 가설을 반입증하지만, 가설연역법의 입증 이론에 따르면 증거 2는 반감기 가설에 중립적이다. 요컨대 가설연역법의 입증 이론은 통계적 가설과 증거 사이의 관계를 중립적이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입증 이론에 연역적 예측 뿐만 아니라 귀납적 예측도 허용하는 것이다. 이를 가설유도법(hypothesis-driven) 입증 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설이 참일 때 증거가 발생할 확률이 층분히 크다면, 증거는 가설을 입증한다.
가설이 참일 때 증거가 발생할 확률이 충분히 작다면, 증거는 가설을 반입증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확률이 ‘충분히’ 크거나 작다는 것의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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