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 발기기관이라는 라캉의 말을 읽어보자(1) - 허수와 무리수는 관련이 없는가?

  1. 소칼은 <지적사기> 2장에서 라캉의 수학 사용, 특히 ‘허수’ 개념을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데에 비판한다. 문제가 되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주를 달면서 내 머리에 떠오른 공식들 가운데 하나를 써먹어도 좋다고 만일 여러분께서 허락하신다면, 나는 인간의 삶을, 제로가 비합리적으로 작용하는 계산법이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 공식은 그저 하나의 이미지 혹은 수학적 은유일 뿐입니다. 비합리적(irrational)'이라는 말로 내가 가리키려는 것은 파악하기 어려운 어떤 감정 상태가 아니라, 정확히 허수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마이너스 일의 제곱근은 우리의 직관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적인 것, 즉 수학에서 말하는 실수 또한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보존되어야 하며 그 총체적 기능 역시 보존되어야 마땅합니다(라캉, 1977a:28~29쪽, 원래의 세미나는 1959년에 개최). (지적사기 43, 여기서 향유는 라캉의 주이상스를 뜻한다.)

이 대목에서 소칼은 라캉이 무리수 irrational number와 허수 imaginary number를 혼동하고 있다 비판한다. 소칼에 따르면 둘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위 문장에서 라캉은 은유를 들먹이지만 이 은유가 어떤 이론적 역할을 수행하는 지 종잡기 어렵다.

  1. 아르카디 플롯닛츠키는 자신의 저서 에 실린 에서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철학적 맥락에서 √-1과 발기기관이 어떻게 동일시 되는지, 그리고 거기에 따른 수학적, 정신분석학적, 철학적 맥락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플롯닛츠키에 따르면 소칼을 비롯한, 과학전쟁 당시 라캉에게 비판적인 평자들은 라캉을 읽는 데 필요한 철학적 지식은 물론 심지어 수학사, 과학사적 맥락에서도 일정 무지를 보인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적, 철학적 내용과 맥락과 결부시키지 않고서는 라캉의 수학적 언급을 읽어 낼 수 없다.

친절하게도 플롯닛츠키는 수학을 전혀 모르거나 다 까먹어버린 나 같은 독자를 위해 허수imaginary number와 복소수complex number 개념부터 설명해준다. 둘을 알기 위해선 먼저 제곱근 square roots을 알아야 한다. 아시다시피 2의 제곱은 4, 4의 제곱근은 2 혹은 -2이다. 하지만 √2는 수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복잡한 문제다. 한 변이 1인 사각형의 대각선의 길이는 √2이다. 누구도 그것의 정확한 수치exact numerical value를 알지 못하며, √2가 정확한 수치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2는 유한 또는 무한 주기, 소수, 분수 및 그에 따른 (두 정수의 비율에 의한) 일반 분수로 표현될 수 없다. 오로지 근사치를 가질 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무리수irrational number라고 부르는 것이다.

피타고라스 학파에 의해 발견된 무리수는 “고대의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비견될 만큼 당시엔 엄청난 충격이었다고 한다. (irrational에는 Alagon(logos를 벗어난)과 areton(이해할 수 없는incomprehensible)이 사용되었다.) 그것은 모든 것이 합리적이고, 우주는 정수와 정수의 비율로 나누어질 수 있다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믿음을 약화시켰다. 또한 무리수는 수학과 철학에서 산수적arithmetical 사고에서 기하학적geometrical 사고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중요한 발견이었다.

분수와 정수는 유리수rational number이다. 유리수와 무리수는 실수real number이다. 실수는 양수, 음수, 0을 포괄한다. 우리가 실수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측정, 특히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보이는 물질 세계의 곧거나 굽은 선분들을 측정하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직선의 연속 위의 점으로서 그것들을 표현하고 시각화 할 수 있고, 산수를 통해 새로운 실수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제곱근이란 문제가 생긴다. 숫자가 양수일 때야 문제가 없다. 언제나 수학적으로 양수의 제곱근을 정의하고 어느 정도의 근사치로 계산해낼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실수의 영역에서 제곱은은 양수 일 때만only for positive number 규정되고 define 수학적으로 의미 있다 can be given mathematical sense. 왜냐하면 양수와 음수를 제곱하면 결과는 언제나 양수 지만 음수의 제곱근은 최소한 실수가 존재하는 방식대로, 혹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방식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음수의 제곱근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상상적imaginary, 때로는 불가능한impossible 수라 불린 이유다.

이게 왜 문제가 되나면, 음수의 제곱근은 다른 숫자들과 자연스럽게 계산할 수 있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혹은 넷을 다해서) 나아가 불가능해 보이는 √-1이 x2+1=0 같은 간단한 수식에서 자연스럽게 쓰인다. 이것이 √-1을 비롯한 허수들이 르네상스 시기에 처음 등장한 방식이다. 음수의 제곱근은 수학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간단히 말해, 한편으로 수학은 특정한 때에 at a certain point -1부터 시작되는 허수를 ‘다뤄야’ deal with – 계산에 이용할 수 있어야 –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허수들은 이미 존재하는 다른 숫자들any numbers already available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허수를 어떻게 규정하느냐define를 두고 수학계에서는 거의 두 세기간 논란이 있었다. 수학적 대상들로서 허수의 지위는 오랫동안, 특히 철학의 영역에서 허수의 수학적 실재를 어떤 용어로 표현할지, 혹은 물리학에서 물질적 실재를 기술하는 데 허수가 가능한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거리로 남아왔다. (오늘 날에도 그렇다.) 그런데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물론 우리들 한테야 간단하지만 당시로서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방식이었다) 실수와 허근(√-1)square root of -1을 붙이는adjoin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해결책으로 인해 새로운 종류의 수들이 탄생했고, 이들이 복소수complex number라 불린다. (A+Bi, 여기서 A와 B는 실수로, 허수의 경우 A=0이 된다.) √-1은 실수의 낡은 영역 the old domain of real numbers과 결합해 새로운 영역 domain을 만들어 내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 the fundamental element로 볼 수 있다. 실수(혹은 유리수)가 그러하듯이, 복소수는 수학에서 ‘체’field – 중복도multiplicity의 요소들로 사칙 연산을 수행할 수 있으며 그 결과들을 다시 계산에 중복도의 요소로서 이용할 수 있는 – 를 형성한다.

곧 복소수는 기존의 실직선real line(혹은 수직선이라고도 불리는)으로 이루어진 2차원 평면regular real (in mathematical sense) two dimensional plane에서 표현 가능해졌다. (수학에서 2차원은 x축과 y축으로만 이루어진 공간을 뜻하는데, 데카르트 좌표계를 떠올려 보자.) 수평선은 실수축, 수직선은 허수축으로 표시함으로서 복소수를 데카르트 좌표(함수)에서처럼 점으로 나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실수가 1차원적인 선에서 표시되는 것과 반대된다) 오늘날 이를 고안해낸 수학자들의 이름을 따 아르강 평면, 혹은 가우스 평면(우리에겐 복소평면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으로 불린다.

2.본래 논문에선 이 부분에서 허근과 발기기관이 왜 일치하는 지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나, 무리수와 허수의 연관성에 대한 보론을 위해 그 뒷부분을 먼저 설명하겠다.

이렇게 허수가 지닌 복잡함은 가우스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수학자들이 철학적으로 고민하길 멈췄지만, 현재까지도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다. 라이프니츠는 아마 이 문제를 가장 화려하게 표현한다: “허근은 신령의 미묘하고 환상적인 휴양처로, 존재와 비존재를 한 몸에 걸친 것과 같다.”

Imaginary roots are a subtle and wonderful resort of the divine spirit, a kind of hermaphrodite between existence and non-existence.

허근의 본질nature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던 사람들 중 한명이자 허수에서 ‘허구’imaginary라는 말을 처음 쓴 데카르트의 말은 마지막으로 와야 한다: “허구의 양(허수)를 시각화할 수 있다.”

”One is quite enable”, he said, “to visualize imaginary quantities.”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와야 할 것은 라캉이 “욕망과 햄릿의 욕망의 해석”Desire and the Interpretation of Desire in Hamlet에서 한 말이다: “√-1은 우리의 직관에 종속되는 어떤 것 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어떤 실제적인 – 용어의 수학적인 맥락에서- 것도, 그러나 그것은 그것의 온전한 기능과 함께 보존되어야만 한다.”

”the square root of -1 does not correspond to anything that is subject to our intuition, anything real – in the mathematical sense of the term – and yet it must be conserved, along with its full functioning.”

플로트니츠키는 라캉의 언급이 좀 더 자세해야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옳다며, 이 언급이 자신의 분석의 근거이자 지침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라이프니츠의 초기 언급에 대한 업데이트라고도 볼 수 있다: “비합리로부터 본질이 매우 이상하지만 그것의 쓰임새는 경멸할 수 없는 불가능한, 혹은 허구의 양이 태어난다.”

“From the irrationals are born the impossible or Imaginary quantities whose nature is very strange but whose usefulness is not to be despised,”

결론적으로 플로트니츠키는 라캉이 라이프니츠와 같은 맥락에서 허수를 ‘비합리적’이라 부른 것으로 파악한다. 라캉의 언급은 소칼과 브리크몽의 주장대로 허수와 무리수를 헷갈린 것이 아니라, 허수를 (앞서 살펴보았듯이) 고대 수학적, 철학적 기원까지 연장된 개념적 의미에서, 그리고 현대 대수학적 의미에서 무리수의 아이디어의 연장으로 파악한 그의 감각sense의 반영이다

Instead it may be seen as a reflection of his sense of imaginary numbers as an extension of idea of irrational numbers – both in the general conceptual sense, extending to its ancient mathematical and philosophical origins, as considered earlier, and in the sense of modern algebra – which is correct, and displays, conceptually, a better sense of the situation on Lacan’s part than that of Sokal and Bricmont.

3.내가 이해하기론, 플롯트니츠키는 결국 개념상으로 보기에 무리수와 허수는 별개의 대상 같지만(사실 뒤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플롯트니츠키는 어떤 실수로도 표현될 수 없다는 점에서 두 수는 유사성이 있는데, 그 점을 소칼이 몰랐을리 없다고 지적하며 두 수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을 수 없다고 말한다.) 수학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할 때, 두 수 처음 이해되지 않은irrational 유사성이 있으며, 라캉 역시 그런 맥락을 염두에 두고 허수를 ‘비합리적’이라 부른 것 같다 주장한다. 아마 이런 주장의 가장 큰 근거는, 역사적으로 볼 때 라이프니츠 역시 허수의 출현을 두고 irrational하다 부르면서 허수의 유용성을 인정했고, 소칼이 인용한 대목에서 라캉 역시 그런 식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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