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24년의 18살 학생의 입장에서 직접 오감에 기초하여 관찰하고 논리를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기보단, '나 이전의 사람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지식을 배우는 경우가 많다는 점 아니, 전부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교과서같이 '이전에 만들어진 지식'을 맹목적으로 받아드렸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오만한 생각인줄을 압니다. 이전 세대가 만들어놓은 방대한 지식 위에 서는 것 조차 버겁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발작 더 내딛어야하는 것이 저의 궁극적인 목표인데, 정작 '이전의 지식들'을 믿고 확신할 수 있는 무언가가 부족했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이전의 지식들'을 확실히 믿기 위해서 "이전 세대의 모든 지식은 초월적 존재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이다"라는 가설을 만들고 반박해보려했는데...
여기서부터 탁 막혔습니다. 유아론적으로 '이전 세대+현 세대의 타인'을 부정하는 가설을 세우고 반박하고자 하니 너무 깊이 들어가는 느낌이고, 이전 세대만 부정하는 가설을 세우고 반박하고자 하니 현 세대는 이전 세대와 단절되어있지 않고 세대-세대를 거쳐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모순이 드러났습니다.
여기까지가 저의 반성이고 앞서 말했다싶이 저는 모르는 것 투성이므로 지적 많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반성의 목표인 '이전의 지식들을 확실히 믿을 수 있는 토대 만들기'에 대한 통찰을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다만 질문자님께서 왜 자기 질문에 안 맞는 것 같은 이런 요상한 제안을 하는거지? 라는 생각이 드실 것 같아서, 제가 좀 보론을 해볼까 합니다.
(2)
우선 지식(knowledge)라는 게, 직관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런것/아닌것을 꽤 구별 가능한것 같은데, 정의를 내리고 정리를 해보면 굉장히 어렵다는 걸 알게됩니다.
철학에서 "지식이란 무엇인가"를 다루는 인식론이 이천년 동안 내려왔고 아직도 논의가 되는 것을 보면 대략 감을 잡으실 수 있다 생각해요.
지금 수준에서는 어려울 수도 있으나, 우선 이 아티클이 제일 컴팩트한 입문 같습니다.
(3)
그리고 지식에 대한 정의 문제 (무엇이 적절한 정당화인가, 정당화는 지식이다/아니다 라는 양자 택일적 형태인가 아니면 더 믿을만하고/아니다라는 일종의 퍼센트적 형태인가 등등)의 문제도 있지만
이전 세대/타인의 지식이라는 것도 사실 굉장히 많은 형태의 지식을 망라합니다.
굉장히 자명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험과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논리학과 이보다 좀 논쟁적인 수학도 있고요. 이보다 더 논쟁적인 여러 자연과학 분야도 있습니다.
나아가 감각 지각도 (나에게는) 굉장히 자명해 보이지만, 이 역시도 계속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존재하죠. (예컨대 제가 보는 이 핸드폰이 환각이 아니라는 것을 누가 보증할 수 있을까요? 나보다는 타인의 지각과 증언이 더 믿을만하지 않나요? 적어도 모두가 잘못 보는 것보단 저 혼자 착각한게 확률이 더 높아 보입니다.)
게다가 제가 겪어보지 못한 일, 예컨대 4.19 혁명이 있었다 같은 것도 증언이라는 형태의 지식으로 내려옵니다만, 이 증언은 감각 지각도 아니고 자명하지도 않고 그저 증언자를 믿어야 하지만, 이걸 지식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요?
이처럼 굉장히 많은 형태의 지식을 저희는 가지고 있고, 이 영역들마다 저마다의 정당화 방식, 검증 방식이 다 다르다고 여겨집니다.
따라서 가장 최선은 질문의 범위를 좁히는 것처럼 보여요. 지금 문제는 너무 큽니다. 그래서 한 철학자의 주장을 요약하고 비판하라는 제안이 나온겁니다.
아니면 한 형태의 지식 (뭐 자연과학이나 증언이나 감각 지각이나)에 관해 탐구하는 것도 적절해 보이네요.
(사실 이조차 쉬운 일은 아닐거에요. 각 지식의 형태에 대한 논의는 이제 뭐 과학철학, 지각 철학, 사회인식론처럼 다 제각기 분화된 영역이 되었으니깐요.)
데카르트의 『성찰』을 읽어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글쓴이님이 제시하신 것과 굉장히 유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쓰인 철학의 고전이에요. (특히, 소위 '악신의 가설'이라고 불리는 부분이 말이에요.) 『성찰』의 내용이 이후 철학사에 어떠한 영향을 남겼는지, 그리고 그 내용이 이후에 어떻게 비판받았는지를 공부하신다면, 고민하시는 문제에 어느 정도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영어도 괜찮으시다면, <성찰> 입문서 (<성찰>이랑 같이 읽으면 좋을 책) 로는 Carriero - Between Two Worlds가 최고인 것 같습니다. 필요한 배경지식 같은 것도 많고, 굉장히 친절하고 자세하네요. 반대로 Wilson - Descartes도 굉장히 유명하지만, 연구서의 느낌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네요.
다만 <성찰>을 읽으실 때 유의하셔야할 점은, 데카르트는 나 이전의 모든 지식이 허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 모든 지식들을 유보하는 것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 (물론 모든 것의 범위가 좀 애매하긴 합니다만) 을 유보했을 때 그 안에서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진리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 이게 데카르트의 악신의 가설의 정수입니다.
카리에로의 저 책이 꽤 유명한가 보군요! 저도 예전에 저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적 입장을 일종의 '선언주의(disjunctivism)'로 해석하는 점이 독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선언주의'라는 표현을 카리에로 본인이 직접 내세우는 것은 아니지만, 뉴먼(L. Newman)이라는 유명한 데카르트 연구자가 카리에로의 데카르트 해석을 '선언주의적'이라고 지적하더라고요.
아마 카리에로의 해석이 데카르트에 대한 표준적인 해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저는 데카르트를 비트겐슈타인-맥도웰 진영과 유사한 방식으로도 읽는 연구자가 있다는 점이 신기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데카르트주의와 선언주의는 완전히 반대 진영으로 알려져 있거든요. (아래의 링크는 카리에로의 데카르트 해석에 대한 뉴먼의 비판적 논평문입니다.)
작년 출판된 Dika - Descartes's Method란 책도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초기 저작 Rules의 방법론을 서술하는건데, 디카의 해석을 <성찰>에 적용시키게 되면 카리에로의 <성찰> 해석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즉, 카리에로의 해석은 데카르트 초기저작과 상응 가능하다는 이점까지 최근에 얻게 된 것이지요. 특히 Dika가 Descartes's Method SEP 저자인 걸 생각하면, 확실히 카리에로의 <성찰> 해석은 어느 정도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확실히 하나의 메이저 해석으로 떠오르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뉴먼의 논문은 읽어보지 않았고, 카리에로의 책도 제게 필요한 부분만 읽긴 했지만, 데카르트의 순환논증도 제일 깔끔하게 풀어주는 것 같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카리에로의 해석에 가장 sympathetic하긴 합니다. 물론 데카르트의 방법론을 집중적으로 파본 적은 없지만요.
비트겐슈타인은 아직 생각이 없지만, 멕도웰은 한 번 쯤은 파보고 싶은 진영인데 연결점이 있다니 신기하군요. 나중에 멕도웰 파게 되면 염두에 둘 좋은 배경지식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