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연구자들은 "요청으로서의 신" 개념을 뭐라고 파악하나요?

질문 하나 드립니다

칸트 철학을 주해하는 연구자들은 "요청으로서의 신"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의문입니다.

세 가지 가정적인 답변을 생각해보았습니다.

  1. 결국, 신 증명과 신학에 대한 요청

  2. 형이상학적 필수 전제이지만, 증명 대상일 순 없는 것

  3. 신 현존에 대한 유보적인 인정

이와 같이 해석의 여지가 있는지, 아니면 보편적으로 통용하는 결론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질문이 투박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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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하신 물음은 사용하신 "증명", "신학", "인정" 등의 용어를 어떤 의미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일단 요청(공준; Postulat)은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하지만 증명될 수 없는 것이고, 이론이성의 관점에서 신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요청됩니다. 그렇다면 "증명"이라는 말이 이론적 증명을 뜻하는 한, 신에 대한 칸트의 입장은 2에 한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한편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신의 현존에 관한 도덕적 논증을 개진합니다. 칸트가 여기서 보이는 것은 신의 현존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신이 현존한다는 믿음이 합리적인 기대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도덕적 행위자로서 선과 행복이 일치하는 이상적인 상태(최고선)를 그 목적으로 지향할 수밖에 없는데, 그처럼 최고선을 지향하려면 최고선의 인과적 산출자인 신의 현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칸트의 요지입니다. 이러한 사정을 신이 "증명"된다거나 "인정"된다는 말로 기술하려면, 신의 현존에 대한 기대가 필연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점을 증명하고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1과 3은 그런 의미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칸트 자신이 직접 하는 이야기입니다.

한편 "그래서 결국 칸트가 신이 있다고 봤느냐, 없다고 봤느냐?"라고 묻는다면, 이에 대해서는 실천철학의 종교적인 요인들을 강조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칸트 연구자들 사이에 견해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요인을 강조할수록 답은 전자에 가까워지고, 강조하지 않을수록 답은 후자에 가까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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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감사합니다. 유념하며 독해해보겠습니다ㅎㅎ

제 생각에는 1, 2, 번의 경우 칸트의 입장으로 보기 어색하고, 3번의 경우 유의미하지 않은 진술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모든 "이론적" 맥락에서 칸트는 신에 대한 진술을 객관적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서 거부합니다. "신"은 이성이 개별적 지식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한 규제적 원리로서 도입하는 일종의 개념이지만, 이 "신" 개념에는 그에 상응하는 경험적 대상이 주어질 수 없기 때문에 유의미한 인식 및 지식을 구성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신"을 구성요소로서 포함하고 있는 모든 이론적 명제는 참/거짓을 판단할 수 없는, 소위 의미론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명제가 됩니다. 이러한 배경의 연장선상에서 칸트는 신존재증명의 3가지 전형(우주론적/존재론적/자연신학적 증명)을 제시하고 이것들이 모조리 실패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론철학 및 이론이성의 맥락에서 "신"개념은 교정되어야 할 "가상 Schein"에 불과합니다. 즉 "신" 개념은 이론적 맥락에서 증명대상도 아니고 (증명 대상이 될 수 없고), 자연 형이상학을 위한 필수 전제도 아닙니다.

문제는 실천적 맥락인데, TheNewHegel님이 설명해주신 것처럼 칸트는 실천적 맥락에서 신, 영혼불멸 등에 대한 유의미한 논의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긴 합니다. 따라서 이 주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혹은 이러한 논의에 얼마만큼의 가중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학자들마다 의견이 갈리게 됩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리면, "칸트가 신에 대한 유의미한 사유를 인정한 것은 맞지만 적어도 비판철학 내부에서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입니다. 가장 중요한 전거가 되는 실천이성비판에서의 논의 역시 도덕법칙과 최고선에 대한 논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보충적인 주제로서 신의 현존이 요청되는 것일 뿐, 신의 현존과 신학이 그 자체로 실천이성비판의 중심주제(특히 "자유")가 아닙니다. 따라서 "칸트가 신 증명과 신학을 요청했다"라는 명제는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저는 이것이 본말을 전도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지금까지 논의한대로, 칸트는 무신론이나 불가지론을 주장하지는 않았고, 따라서 신 현존에 대한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긴 합니다. 그러나 "유보적인 인정"이 도대체 무엇인지가 정확히 기술되지 않았고, 따라서 이러한 진술은 논의의 출발점이었던 바(신에 대한 칸트의 입장이 무엇이냐), 유의미한 대답이라고 보기 어렵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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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맥락에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대답이 다소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이라는 표현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 것인지에 따라 '그렇다'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다'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성의 이념들'에 대한 설명부터 해야 할 것 같네요.

(1) 이성의 이념들이란 무엇인가?

칸트에게서 '이성(Vernunft)'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넓은 의미에서의 이성은 감성과 지성을 포괄하는 우리의 사유 전체를 의미하고, 좁은 의미에서의 이성은 감성과 지성과 달리 '무제약자(das Unbedingte)'를 추론하는 우리 사유의 하위 능력입니다. 여기서 '무제약자'란 사유에 총체성을 부여하는 요소죠. 가령,

(a) 영혼론적 이념: 우리의 판단들은 "모든 S는 P이다."처럼 '주어+술어'의 구조로 되어 있죠. 그리고 어떤 판단에서 '주어'의 자리에 놓인 용어들은 때로 다른 판단에서는 '술어'의 자리에 놓이게 되기도 하죠. (이 점은 "모든 M은 P이다. 모든 S는 M이다. 따라서 모든 S는 P이다."라는 정언 삼단논법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때 판단의 '주어'에 대응하는 실체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다 보면, 결국 우리는 '영혼'이라는 최종적 실체에 호소하여 판단들의 총체적인 계열을 설명해야 한다는 추론을 하게 됩니다.

(b) 우주론적 이념: 우리는 "~이면 …이다."라는 조건문을 사용하여 현상을 이해하는 데 익숙하죠. 그런데 이런 조건문의 가장 끝에 있는 근본적인 조건들을 묻다 보면, 결국 우리는 '세계'가 근본적으로 어떻게 조건지어져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빠지게 됩니다. 세계가 시공간적 한계를 갖는지 갖지 않는지, 세계가 무한분할되는지 되지 않는지, 세계에 자유가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세계에 필연적 존재자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이율배반적 문제에 대한 추론을 하게 되는 거죠.

(c) 신학적 이념: 우리는 "A는 b이거나 c다."라는 선언문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런 선언문을 극단까지 전개시켜서 "A는 b이거나, c이거나, d이거나…."라는 식으로 선언적 술어를 무한하게 확장하다 보면, 결국 모든 선언적 술어들(속성들)의 총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이 생겨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바로 이때 모든 선언적 술어들이 귀속되는 실체로서 '신'이 존재할 것이라는 추론이 나타나는 거죠.

(2) 이성의 신학적 이념으로서의 신은 형이상학의 필수 전제가 맞다.

바로 이런 식으로, 우리의 이성이 추론을 극단까지 전개시킬 경우 나오는 결론이 '영혼', '세계', '신'이라는 이성의 이념들입니다. 이 점에서, @TheNewHegel 님이 설명하신 것처럼, 칸트가 이론이성의 측면에서 신의 존재를 요청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성의 이념들은 이성의 근본적인 구조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이성의 다른 모든 판단들에 총체성을 부여해주는 것이고, 이성이 자신의 운명으로 인해 사유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유의 '조건'이죠. 실제로, 칸트는 이러한 이념들이 '형이상학 일반의 가능성'을 부여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형이상학은 우리가 이성을 지닌 존재자인 한에서 수행할 수밖에 없는 학문이고, 그 학문은 바로 이성의 이념들에 대한 학문이라는 거죠.

(2) 초월적 가상으로서의 신은 형이상학의 필수 전제가 아니다.

그러나 칸트는 '영혼', '세계', '신'이라는 이성의 이념들이 경험의 영역에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매우 강조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Herb 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이성의 이념들에 대한 추론조차도 결국 일종의 '가상(Schein)'에 대한 사유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우리의 이성이 그러한 대상들을 추론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빠져 있다고 해도, 그 대상들이 마치 실제로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오류라는 거죠. 그래서 칸트는 '형이상학 일반'과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을 엄격하게 구분합니다. '영혼', '세계', '신'이라는 이념들이 형이상학 일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은 맞지만, 그런 식의 형이상학이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존 형이상학은 '사이비 학문'이라는 것이 칸트의 주장이죠. 칸트 자신의 형이상학은 그런 사이비 학문을 넘어서는 형이상학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내가 보증하거니와, 이 『서설』에서나마 『비판』의 원칙들을 천착하고 파악한 이는 어느 누구도 두 번 다시 저 낡고 궤변적인 사이비 학문(기존 형이상학 일반)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모종의 희열을 가지고 이제야 자신의 통제 아래에 있고 어떤 준비적인 발견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며, 비로소 이성에게 지속적인 충족을 줄 수 있는 하나의 형이상학을 내다볼 것이다." (임마누엘 칸트, 『형이상학 서설』,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12, 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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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술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런 서술에 동의한다면,

이렇게 서술할 수 없습니다.

순수이성비판 변증론에서 등장하는 이성은, 논리적 추론(가령 삼단논법)을 통해서 경험적 지식들에 총체성과 질서를 부여해주는, 기본적으로 논리적 능력입니다. 따라서 이미 경험을 통해 주어진 판단들에 논리적 형식을 적용하는 인식능력일 뿐, 그 자체로 경험적 지식을 생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종합적이지 않고 분석적입니다). 논리학이 그 자체로 경험과학을 산출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따라서 경험적 지식과 판단들이 이미 재료로서 주어지지 않는 이상, 이성은 그자체로 실재에 대한 객관적 지식 (자연 형이상학 포함)을 생산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범주의 연역을 다루는 선험적 분석론에서, 처음에 지성의 (마찬가지로) 논리적 형식에 불과했던 범주가 대상에 대한 객관적 타당성을 규정하는 선험적-종합적 원리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성은 마찬가지로 논리적 형식인 이성과 (이성이 가지고 있는 개념인) 이념을 통해서 객관적 타당성을 가지는 경험적 지식을 구성할 수 있다는 잘못된 기대에 빠집니다 (B378). 이러한 잘못된 기대에 부흥하여, 이성이 선험적으로 만들어내는 이념들이 바로 신, 영혼, 세계와 같은 "선험적 이념 transzendentale Idee"입니다. 그러나 변증론의 고찰 결과, 이러한 선험적 이념들은 이론적 맥락에서는 사이비 개념이고 따라서 transzendental하게 보일 뿐인(scheinen) "선험적 가상(transzendentaler Schein)" (B352) 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조건문의 논리적 형식을 통해 경험적 지식을 확장할 수 있는 경우는, 이 "if ... then..."의 논리적 형식이 (경험의 선험적 근본원리인) 인과율에 종속되는 한에서 입니다. 즉 "if P, then Q"라는 논리적 추론이 경험적 지식으로서 타당하기 위해서는, 이 논리적 형식이 적용되는 개별 명제 P, Q가 경험적 직관을 통해서 생산된 명제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을 무시하고, 예컨대 라이프니츠적인 충족이유율에 따라 근거의 근거, 근거의 근거의 근거 ... 를 묻게 된다면 경험에 주어질 수 있는 직관을 포함하지 않는 개념/판단에 이르게 됩니다. 모든 것의 원인/근거로서의 "신" 개념이 이렇게 탄생하게 됩니다. 즉 이성이라는 논리적 인식능력을 "잘못" 사용한 결과 나타나는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신, 영혼, 세계 라는 이성의 개념들이 단지 개인의 부주의한 잘못에 의해서 생산된 사이비 개념들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칸트는 이러한 개념들이, 지식에 통일성을 부여해주고자 하는 것을 "주관적" 원리로 삼고 있는 이성이라는 인식능력의 "자연적" 소질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B354). 이런 점에서 이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자는 신, 영혼, 세계라는 이념들을 불가피하게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이러한 점에서 단순히 사이비 개념으로 치부하지 않고 "선험적 이념 transzendentale Idee"라는 지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이념들은 전술했다시피 "이론적" 형이상학과 아무런 적법한 연관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이 이념들이 "요청"되는 연관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실천적 연관일 뿐입니다 (B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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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에서의 신은

  1. 이론적으로는 우리의 이론이성의 한계 밖에 놓이는 것으로서 그것의 존재여부에 대해서 우리는 정당한 판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순수이성비판 2판 서문)
  2. 실천적으로는 그것을 가정함으로서 도덕 법칙의 지시를 절대적인 것으로 (모든 경향성의 요구보다 우선하는 것으로) 여기는 칸트적 윤리관이 참일 수 있게 만드는 전제입니다. 이 점에서 이 전제는 참으로 가정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에 유클리드의 공준과 같은 단어(postulate)로 이 신에 대한 특수한 전제를 의미하기로 합니다(실천이성비판 서문 각주)
    (다만 한국어 번역에서는 이론적 맥락에서는 공리공준으로, 실천적 맥락에서는 요청으로 번역합니다)
  3. 칸트의 신 논의 혹은 증명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떠한 성격을 가지며 몇 가지인지는 최근까지 논의중입니다. 3개+1개(판단력비판의 목적론적 신)라고 하는 최근 논문을 본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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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공부할 게 많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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